아직 송쿨까지 정확히 얼마나 더 가야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앞으로 3,500m 이상 되는 큰 산 두 개를 넘어야 한다는 것.
(해발 2천 미터 정도에 있던 보기 드믄 산촌 가옥)
그리고 오늘 내로 그 중 하나를 넘어 ‘까제르만’이라는 동네까지 도착해야 잠을 잘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무모한 모험이었습니다만...
그 때 저의 가슴은 차가버섯님과 발로제에 대한 신뢰로 가득 차 있었던 데다가,
전두엽과 측두엽은 시도 때도 없이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들에 온통 접수당한 상태였고....
그런 이유로 변연계는 끓어오르는 행복감을 주체하기에도 벅차 있었으며,
갈수록 험악해지는 도로 사정 상 시상하부 또한 생존의 불안을 달래느라 많이 바빴던 터라...
무지한자에게 평화 있을진저....저의 마음은 그저 무사태평, 즐거울 뿐이었더랬습니다.
보이시지요, 저 아름다운 풍경들....
아마 여러 분들도 저와 같은 마음이실 것으로 믿습니다.
(나 여기에서 태어나 여기에서 자라고 여기에 뼈를 묻노니....그 이름은 한혈마.)
그런데 제가.... 언제부턴가 발로제와 차가버섯님의 말수가 줄어들고 있으며.... 라디오의 볼륨이 높아져 있고....
두 사람의 얼굴에 숨길 수 없이 걱정스런 표정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사태는 되 돌이킬 수 없이 진행된 이후였습니다.
해가 지고 있는데 ‘까자르만’은커녕 해발 3,500m의 고개조차 한참을 더 남겨놓고 있었던 겁니다.
저 두 사나이의 표정, 보이시죠.
그리고 여기서 ‘까자르만’까지는 앞으로도 4시간 이상을 더 가야만 하고.....
결론은 밤길을 가야만 한다는 것. (다른 대안이 없습니다)
저런 천길 벼랑을 옆에 끼고 어둠속에서 4시간을 달려야 한다...?
지금까지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옆에 두고 달리는 아슬아슬한 기분도 오히려 풍경의 즐거움을 더해주면 주었지 두렵지는 않다는 느낌이었는데...
갑자기 대뇌반구 전체가 변연계의 주장에 동의하고 나섭니다.
“비상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벼랑은 더욱 위태롭게 나타나기 시작 합니다^^.
그리고 사진 위쪽에 손바닥만큼 남아 있는 빛, 보이시나요.
그게 없어지면 우리는 이제 어둠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겁니다.
어라...근데 저게 뭐야....해발 3천5백 미터 가까운 급경사에 깨알같이 박힌 점들....
야크라는 군요.
야크는 원래 고산지대에 살고 급경사에서도 잘 적응하는 동물이랍니다.
그래? 야크는 그렇다 치자. 그럼 목동은 저런 절벽에서 어떻게 사능거야... 가능한 거야 도대체....
정상에 도착하기 전, 해는 결국 지고야 말았습니다.
그래도 머...노을은 이쁘네...죽이는데...해발 3천5백 미터에서 노을 본 사람 있음 나와 보라 그래...어쩌구......
스베타가 한 마디 합니다.
“이따가 도착하믄 팬티 검사 할거얌”
이상한 건 이런 어둠속에서도 옆을 스쳐가는 절벽은 또렸이 느껴진다는 겁니다.
아니 훨씬 더 잘 느껴집니다.
눈이 안 보이면 온 몸의 감지 기능들이 더 확장되고 예민해진다는 것이 사실인가 봅니다.
차가버섯님이 자기 쪽으로 절벽이 진행되다가 내 쪽으로 바뀌자 환호합니다.
“살았다! 나는 이제 안전하당” ^*^
남명(南冥) 조식 선생이 젊어서 중병에 걸려 생사를 헤맸던 모양입니다.
부모님들이 애태우자 이런 말을 하셨다고 합니다.
“하늘이 저를 낼 때는 쓸 데가 있어서일 겁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도 그 말을 믿습니다.
다만, 하늘이 천산산맥에서 경솔히 행동하는 자의 말로를 보이시기 위해 저를 내신 것이 아니기를 바랄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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