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쉬켁 행 비행기에 오릅니다.
비행기를 타자 스베타가 러시아를 떠날 때는 “다스삐따니아 러시아, 스파시바”라고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 “안녕 러시아, 고마웠다”
(비쉬켁 행 키르키즈스탄 항공기. 프로펠러 비행기가 걸리면 4시간을 가야 합니다)
두 시간을 날아 비쉬켁 마나스 공항에 도착합니다.
키르키즈스탄은 중앙아시아의 가난한 국가에 불과하지만 전략적으로는 중요한 곳인 듯합니다.
아래에 보시는 것처럼 마나스 공항에는 미군 비행단이 주둔해 있고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러시아 공군기지가 있다고 합니다. 미군과 러시아군이 이렇게 가까이 붙어 있는 곳도 드믈 듯 합니다.
이 와중에 키르키즈스탄 정부는 미,러 양국에 기지를 임대해 주는 댓가로 연간 수십억 불을 챙기고 있고요.
아마도 키르키즈스탄의 가장 큰 산업이 아닐까 합니다 ^-^.
(마나스 공항에 주둔한 미군기)
여담입니다만 키르키즈스탄에는 바다가 없지만 해군이 있고, 전투기가 없지만 공군이 있으며 해군, 공군 장군들도 있다고 합니다. 병력은 육,해,공군을 합쳐서 약 3천 명쯤 된다고 하네요^^.
(공항에 있는 입국 환영 간판. 키르키즈가 천산산맥의 국가라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밖으로 나오니 기온 35도. 더운 바람이 훅, 숨을 막습니다.
그러나 눈을 들면 저 앞에 만년설을 머리에 인 천산산맥이 보입니다. 눈앞에 설산을 두고 숨막히는 더위를 느끼는 기분이 참 묘합니다.
(시내로 들어가는 길. 키르키즈는 포플러나무가 특히 많습니다. 그런데 생긴 모양은 꼭 미류나무 같습니다)
비쉬켁은 키르키즈스탄의 수도이름. 비쉬켁은 말 젖을 통에 넣고 젓는 기다란 국자의 이름이라 합니다.
수도의 이름도 그렇지만, “유르타”라고 부르는(몽고식으로는 “파오”라고 부르는) 이동식 천막의 상부 얼개가 키르키즈스탄의 국기인 점을 생각하면 키르키즈스탄인들이 유목민족이라는 점에 대해 얼마나 자부심이 강한지 알 수 있겠습니다.
(공항 주변에 펼쳐진 키르키즈 평원. 고선지 장군도 이곳을 지나간 적이 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한반도와 비슷한 면적을 가지고 있는 키르키즈스탄은 국토의 40%가 해발 3천 미터가 넘는 고산지대입니다.
그러니 이 나라는 나라의 일부가 천산산맥이 아니고 나라가 천산산맥의 일부라고 해야 정확한 표현이겠습니다.
그러나 해발이 높다고 해서 반드시 가파른 산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천산산맥의 특징입니다. 천산산맥에서 살아간다는 것,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앞으로 보시게 될 겁니다.
(시내에서 바라다 보이는 천산산맥. 만년설을 머리에 인 장엄하고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천산산맥에서 목축과 농업 같은 1차 산업으로 연명하는 가난한 국가.
한혈마라고 불리우던 명마의 고향이고 흉노, 돌궐, 몽고와 같은 계열이지만 자주 그들의 힘에 굴복해야 했던,
그리고 7세기 이후에는 ‘스탄’이라는 덧붙인 정체성을 가져야만 했던, 고된 역사를 가진 나라.
(비쉬켁에서 보는 천산의 또다른 모습. 앞으로 보시겠지만 천산산맥은 천의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스탄’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역사적 사건의 중심에는 고려인 고선지 장군이 있다는 사실. 고선지 장군은 유럽의 역사적 변화에도 관련되는 세계사적 인물이라는 건 여러 분도 잘 아실 겁니다.
이번 기회에 고선지 장군의 중앙아시아의 마지막 여로, 탈라스 전투를 위해 고선지 장군이 걸었던 천산산맥 속의 길도 가보려고 합니다.
(키르키즈족 청년들. 서울 한 복판에 갖다 놓아도 구별이 어려울 정도로 우리와 흡사합니다)
이들이 바로 키르키즈인들입니다.
그런데 키르기즈스탄의 주인은 키르키즈인입니다. 뭔 소리냐구요?
어렵게 키르키즈스탄까지 오셨으니^^.... 키르키즈스탄 얘기를 잠시 들어보시겠습니까?
(몽골족의 특징을 잘 간직한 비쉬켁의 아가씨들)
키르키즈스탄은 키르키즈인 65%에 우즈벡인 15%, 나머지는 터키계, 러시아계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러시아 연방시절에는 주인이 러시아인이니(?) 문제가 없었는데 1991년 독립을 하자 문제가 발생합니다.
물론 숫자가 많은 키르키즈인이 집권은 했지만.....
(길 가에서 '쑈로'- 밀의 싹으로 만든 전통음료로 발효 안 된 막걸리 맛입니다- 를 팔던 아가씨)
문제는 이 나라의 주인인 키르키즈인들 보다 우즈벡인들이(러시아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더 똑똑하고 문화적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주인보다 종이 더 똑똑한 난감한 상황이 벌어진 겁니다.
이런 사태만으로도 상황은 심각한데, 집권한 키르키즈인들은 틈만 나면 자기들끼리 정권쟁탈전을 벌입니다. 원래 키르키즈가 수십 개의 부족이 연합한 형태이고 유목민족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해는 갑니다만....
어쨌든 정치 상황만을 놓고 보자면 아프리카적 상황이 지속되는 겁니다.
(우즈벡계 여인들. 몽골족과는 전혀 다른 중앙아시아인의 모습입니다)
내전이 일어나고 쿠데타가 빈발하고.... 정권이 불안하니 있을 때 한 탕 하자는 부정부패가 만연하고.....참 대책이 없는 상황....
키르키즈인들끼리 그들만의 더티 리그를 벌이는 동안 더 똑똑한 우즈벡인들(키르키즈인 외에는 누구도 국가 공무원이나 기간산업에 -그런 게 있다면- 취업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합니다)은 상업에 뛰어들어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상류층의 저택. 별도의 구역에 몰려 있고, 서민의 주택과는 많은 차이를 보입니다)
문제는 키르키즈 민중입니다. 국민소득 800불(2008년).
정권쟁탈전을 하는 사람들이야 문제가 없지만 민중들은 가난합니다. 잠시의 가난은 견딜 수 있겠지만 미래에 대해서 조차 어떤 기대도 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겪어야 할 민중들의 좌절감을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겠습니다.
그럴 때 키르키즈 민중들의 눈에 띄는 건 자신들보다 부유한 우즈벡인들 일 겁니다.
사태의 원인이야 무능하고 부패한 권력자들이건만, 권력에 도전하기보다는 만만한 대상에 화풀이 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고 안전한 법.
(대통령궁 정문. 하도 임자가 자주 바뀌어 이제는 집 주인이 누군지 국민들도 헷갈려 한다는 슬픈 전설의 고향)
키르키즈의 주인은 우리인데 우리는 못 살고 저들이 잘 살다니!
작년 6월 오쉬에서부터 시작된 키르키즈인과 우즈벡인 간의 충돌이 대규모 폭동으로 발전하여 전국을 휩쓸게 되고... 결국 대통령이 하야하는 사태가 벌어지게 됩니다.
(비쉬켁 시내의 모습)
당연히 이 사태의 최대 피해자는 우즈벡인들입니다. 우즈벡인들의 죄는 똑똑하고 부지런하게 일한 것.
정부의 공식 발표는 없지만 1만 명의 사상자와 30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고, 10만 명이 우즈벡으로 영구 이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앞으로 그 참혹한 현장을 오쉬에서 확인하시겠습니다)
(비쉬켁의 한 공원에 서 있던 조각상. 이 하루방 사촌의 모습만으로도 키르키즈인들이 우리와 얼마나 가까운 관계인지 알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렇듯 큰 참사가 발생했음에도 아직 사태의 근원적 해결에는 어떤 희망도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키르키즈인도 우즈벡인도 표면적으로 이뤄진 지금의 평화는 더 큰 불행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상류층의 키르키즈인. 저 사람이 쓰고 있는 것이 바로 키르키즈를 상징하는 전통모자. 고급제품이군요)
다음과 같은,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이야기가 결코 문제가 사라지지 않고 있으며 가까운 장래에 해소될 가능성도 적다는 하나의 증거가 될 듯합니다.
오쉬 참사 후 새로운 집권당이 발표한 사태 수습책에 이런 내용이 있었답니다.
“모든 국민은 국기에 대한 경례 시에 손을 가슴에 얹고 모자를 벗어야 한다.”
반론이 나옵니다.
“아픈 사람은 어떻게 하나?”
“써라”
“전통모자는 국기와도 같은 키르키즈의 상징인데 자랑은 못할지언정 왜 벗나!”
“아, 그것은 안 벗어도 된다.”
그리하여 결국 아무나 모자를 써도 상관없게 될 정책을, 설혹 원안대로 실천한다 하더라도 사태 해결에는 아무런 도움도 안 될 것이 명백한 정책을 사태 수습책으로 제시하는 이 나라의 정치가들......
(비쉬켁 시내에 있는 부자들 만을 위한 스포츠 클럽)
이런 상황들을 종합해 보면, 우리에게는 지극히 당연해 보이는 ‘국가’라는 단위의 정치체제는 유목민족들에게는 매우 낯설고 어색한, 몸에 맞지 않는 제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까 결국 지금의 국가라는 정치형태는 평원의 농경문화로부터 시작된 정착적 의식을 기반으로 할 때에만 제대로 기능하는 일종의 관습적 체제임이 확실해 보인 다는 점입니다.
(키르키즈가 비록 '스탄'의 국가이지만 이슬람교 모자를 쓴 사람들은 거의 우즈벡인이라고 보아도 무리가 없을 겁니다. 저의 생각으로는 키르키즈인에게서 진정한 회교도를 발견하기란 어려운 일일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몽고를 비롯한 많은 유목민족 국가들과 중동, 아프리카, 남미 안데스 산맥의 국가들이 오늘날 왜 그런 어려움에 처해 있는지 이해할 것도 같습니다.
그러므로 키르키즈스탄을 포함한 모든 유목민족과 부족 중심의 산악국가 들에게는 지금이 불공평한 시대이고 불운한 시기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고단하고 모순에 가득 찬 현실. 그래도 살아야 합니다. 그 삶의 생생한 현장, 비쉬켁의 '오쉬 바자르')
그러나 어찌하겠습니까. 힘들어도 적응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니 말입니다.
어찌됐든 키르키즈스탄이 가야할 길은 아직 멀고 험해 보입니다.
(우크라이나의 발로제. 내일부터 우리의 목숨을 책임질 겁니다)
이야기가 좀 길어졌습니다.
키르키즈스탄은 키르키즈스탄이고^*^... 우리의 목적은 천산산맥에 가는 겁니다.
말만 들어도 가슴이 뛰는 천산산맥. 이제 내일이면 천산산맥의 품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러기 위해서 꼭 필요한 인물이 바로 ‘우크라이나의 발로제’라고 불리우는 이 사나이입니다.
미스터 차가버섯님을 따라 십여 년 간을 천산산맥 속에서 살았던 사람. 전직 러시아 직업군인으로 강건하고, 영민하며, 충실하고, 유머감각 풍부한 이 사람. 이 매력적인 사나이의 효능은 천산산맥 속에서 충분히 증명이 될 겁니다.
출발시간은 내일 새벽 5시. 일찍 자야되겠습니다.
좋은 밤 되시고.....
내일 새벽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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