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노보시내에서 예쁜 레나를 만나 일을 보고 저녁에는 오페라를 볼 겁니다.
내일은 다시 멀리 톰스크로 가야하고, 가면 일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으므로 이렇게 노보에 있을 때 시간이 나는 대로 공연 스케쥴을 챙겨서 볼 수 있는 건 얼른 봐야 합니다. 안 그러면 나중에 후회할 지도 모릅니다^^. "미스터 차가버섯"님 또한 음악에 관심이 많습니다.
(오브강변 가는 길. 시베리아가 원래 밀림지역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세요. 차가버섯도 이런 환경에서 자랍니다)
시내로 나가는 길에 오브강변을 잠깐 들릅니다. 맑은 물에 백사장까지 갖춘 아름다운 휴식처로 오브강변은 백만 노보시민들에게 보물과도 같은 곳입니다.
(오브강변. 그 아름다움이 어느 해변 휴양지 못지 않습니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이 오브강의 종점은 북극해입니다. 여기서 영구 결빙지역까지(약 3000km) 가는 유람선이 있다고 합니다. 정기선은 아니고 여름에만 임대형식으로 운항이 된다고 하는데....
왕복에 소요되는 기간은 약 1개월. 비용은 배 한 척 전세에 1만 달러쯤 한다고 하네요.
(저 하늘을 날으는 새...갈매기입니다)
식사가 제공되는 유람선을 타고 아름다운 원시 밀림지역과 마을을 방문하고, 원한다면 좋은 곳에서 얼마든지 머물며 유유자적 할 수 있는 여행, 시간이 사라져버린 것 같은 환상적인 여행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행을 다녀 온 사람들의 말로는 영원히 잊지 못할 감동을 받는다고 합니다.
저도 한 번쯤 북극해로의 여행을 떠나보고 싶어집니다. 돈 많이 벌어야겠습니다^^.
(하늘에 있는 전선줄을 따라서 달리는 버스형 전차)
저것이 바로 버스형 전차입니다. 레일이 없으므로 천정에 매달린 전선과의 접촉이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그래도 떨어지면 어떻게 하느냐구요?
그런 일이 가끔씩 일어난다고 합니다. 그러면 운전사가 내려서 저 버스 뒤에 보이는 사다리를 타고 지붕으로 올라가서 작대기 같은 것으로 죽 밀어서 척~ 붙이면 된다는군요. 상상만 해도 재미있습니다.
(시 중심가 입구. 삼성의 위력은 이제 의심할 바 없는, 성장형 태풍이 된 것 같습니다)
모스크바가 정치와 역사를 대표하는 도시이고 상트페테르브르그가 문화와 예술을 대표하는 도시라면 노보시비르스키는 과학과 교육을 대표하는 도시입니다.
시베리아의 수도라고 불리우는 노보시비르스키는 러시아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는 ‘아가젬 고르독 프로젝트’ 즉, 과학과 교육이 결합된 과학아카데미를 실현하고 있는 학문형 도시인 겁니다.
(노보시 중심가. 백년 남짓의, 고전과 현대가 혼합된 차분한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노보는 러시아 최고의 엘리트들이 모여 있는 도시이고 당연히 이에 걸맞는 문화도 갖추고 있는, 우리의 기준으로 볼 때에는 비록 화려해 보이지는 않지만 살펴볼수록 그 내공이 만만치 않은 세련된 도시가 되겠습니다.
(오페라하우스의 장중한 뒷모습이 보입니다)
레나의 사무실에 가기 전에 저녁 공연표를 예매하기 위해 오페라 하우스에 먼저 들릅니다. 늦으면 표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노보시립오페라단은 작년 10월 ‘프린스 이고르’를 가지고 한국 공연을 성황리에 마친 적이 있을 만큼 실력이 뛰어난 오페라단입니다. 오늘 공연 작품은 ‘카르멘’.
(오페라하우스 전경. 한 달 간의 공연 계획이 걸려 있습니다. 연주회부터 발레공연까지 거의 쉬는 날이 없습니다)
도심 한복판에서 넓은 레닌광장을 앞에 거느리고 있는 오페라하우스는 장중함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갖고 있습니다. 경박한 데가 없는 겁니다.
저는 오페라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어떻게 ‘카르멘’을 싫어할 수가 있겠습니다. 당연히 가야 됩니다 ^^.
(갑자기 나타난 신혼부부 일행)
표를 예매하고 나오는데 막 결혼식을 끝내고 기념사진을 찍으러 오는 신랑신부를 만났습니다. 저 환한 표정. 보기만 해도 마음이 다 밝아지는 것 같습니다.
(신랑 신부의 친구들. 붉은 어깨띠는 혼인신고시 증인이라는 표시랍니다.)
여기에는 극히 일부의 상류계층을 제외하고는 신혼여행이라는 개념이 없다고 하네요. 결혼식 끝나면 친구들과 이렇게 놀러 나와 하루를 노는 것이 일반적인 풍습이랍니다.
그러니까 이 신혼부부도 막 결혼식을 마치고, 시청에 가서 혼인 신고를 하고, 그리고는 여기에 와서 사랑하는 신부 앞에서 사랑의 퍼포먼스를 하는 겁니다.
(사랑 서약의 벽. 오페라하우스 오른쪽 벽면에 있습니다)
붉은 글씨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나스쨔, 나는 당신을 사랑해”
나스쨔는 러시아의 마지막 공주랍니다. 그러므로 신부를 앞에 놓고 벌이는 저 신랑의 포즈는 이렇게 해석됩니다.
“나는 목숨바쳐 당신을 사랑해. 평생 공주로 모실께. 내 사랑 받아줘...”
이 신부...얼마나 행복할까요.
“그~으래? 정말이지. 좋아, 접수. 넌 이제 주거써” ^^.
(이 신부 친구들, 질투가 난걸까요. 아침부터 계속 샴페인을 마십니다^^)
오랜 사회주의 시절을 통해 남녀평등이 몸에 익었고, 결혼과 출산의 과정을 거치면서 급격히 변해가는 여성의 몸매 등을 생각할 때 러시아 남성들이 결혼을 통해 치러내야 할 대가가 있어 보이는 것도 사실이긴 합니다.
그런 사정 탓인지, 결혼을 빗대어 하는 야유들은 세상 어디에나 있고 그 내용 또한 대동소이 하건만, 그걸 러시아처럼 유머러스하게 표현하는 곳도 드믄 것 같습니다.
(이 신부측 결혼 증인, 인형처럼 예쁩니다. 여자들은 자기보다 이쁜 여자 안 부른다는데...)
러시아에서는 최근에 결혼한 친구를 만나면 하는 의례적인 인사가 있다고 합니다.
“어이.. 그래, 어떻게 지내? 재미 좋은가?”
“응... 스까스까”
“스까스까”는 동화랍니다. 그러니까 동화처럼 산다는 말입니다. 신혼이니 당연하겠죠?
(이 두 사람은 하객이 아니고 먼저 이곳에서 데이트를 즐기고 있던 커플임당)
그런데 그 “스까스까”라는 동화의 내용이 그렇다네요.
황혼의 하늘에 숲에서는 마귀할멈이 빗자루를 타고 막 날아다니고.....
(신부와 그 어머니...인듯...)
여자가 기가 세다면 장모가 된 여자는 어떻겠습니까^^. 러시아에서 남자들에게 장모에 대한 유머는 아주 좋은 안주감인 것 같습니다.
(열심히 사진을 찍다가 보니 또 다른 신혼부부가 왔습니다. 아이 예뻐라... 오늘 신혼부부 복 터졌습니당 ^^)
어떤 남자가 길을 가다가 보니 높은 아파트 베란다에 여자 하나가 매달려 있고 남자는 그 여자의 손을 막 때리고 있습니다.
“이봐 뭐 하는 거야. 왜 여자를 그렇게 때리나...”
“응? 아니 이거 여자 아니야, 장모야 장모”
“어, 그런가. 계속 수고해 그럼....”
(서로가 서로에게 다정히 기댄 모습...음...'사람 인'이란 글자가 그렇게 해서 나왔느니...)
물론 다 웃자고 하는 애기들이지만, 러시아 국민들의 인문학적 소양이 이야기를 더 재미있게 만들었다고 보아야 하는 측면이 더 많을 겁니다.
지금은 아마 많이 달라지고 있는 중일 겁니다. 스스로를 그렇게 유머화 하는 러시아 국민들의 감각이 그들의 정신 수준을 대변해 주고 있으니까요.
(하객은 하객인데 신랑 친구인지 신부 친구인지 영 분간을 못하겠는...둘 다 친군가...)
사실 지금 형편으로 말하자면, 러시아 남성들을 걱정하기 보다는 요즘 무섭게 변해가고 있는 우리 대한민국 여성들의 배우자 즉, 미래의 남편들에 대한 걱정을 하는 것이 우리에게 더 적절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하기는...어디를 가거나 어느 세월을 만나거나 다 자기 할 나름이긴 하겠습니다....
(이 포스 가득한 사나이, 레닌)
러시아의 도시에는 대부분 레닌광장이라는 것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여기도 바로 레닌광장입니다. 왜냐? 레닌이 서 있으므로.
좌,우를 떠나서 인류 역사상 가장 큰 혁명을 이끌어 냈고, 그 꿈을 완성시키기 위해 잠을 줄여가며 일하다가 과로로 생을 마감한 그의 이력은 인간적인 측면에서 흥미롭지 않을 수 없습니다.
(레닌광장에 같이 서 있는 혁명과 전승 기념 동상들)
트로츠키와의 마찰이 어땠었던지 간에, 일국 사회주의가 모순이었던지 아니었던지 간에, 과거 지도자들에 대한 가혹한 비판과 사회적 체제의 급속한 변동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적어도 이 나라에서 레닌의 동상을 끌어내리자는 소리는 없습니다.
레닌은 지금도 그렇게 광장에 우뚝, 당당히 서 있습니다.
(레닌광장과 붙어 있는 오페라하우스 앞 광장의 모습)
러시아 국민들은 말없이 지금의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말이 없다는 것은 아마도 할 말이 너무도 많다는 것과 같은 뜻일 겁니다.
전 인류를 대신해 거대한 사회적 이념의 실험장에 서야 했던 러시아 국민들의 소회를, 반공교육으로 점철된 우리의 이력으로는 영원히 짐작조차도 할 수 없을지 모릅니다.
(광장은 곧 공원.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부족함이 없어보입니다)
부정도 긍정도 할 수 없는 현실.... 구호가 지배하던, 그러나 소시민적 만족이 등을 토닥여 주던 검열과 질서의 시대를 지나 이제는 자본과 능력이 지배하는 폭풍의 사회 속으로 들어가는 그들.... 그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저 홀로 굴러가는 거대한 힘.... 그리고 거역할 수 없는 변화의 물결들....
그러나 어쩌면 시대는 관념에 불과한 건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다만 이렇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들을 견뎌내고 있을 뿐이고.....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광장 한편에 앉아 있는 저 러시아 사람들은 이곳이 오페라 하우스 앞인지 레닌광장 뒤인지를 묻지 않는 것 같습니다. 광장에 속하지 못한 지나가는 여행객만이 지금 그걸 따지려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새 세대는 자라납니다. 이렇게 아름답고 싱싱하게 말입니다)
굳이 여기가 어딘지 따져 묻는다면 아마도 그들은 특유의 유머감각으로 이렇게 말할 것 같습니다.
“어이, 똑똑한 당신. 그런 건 중앙당에 맡기구 이리 와 앉어. 거기 햇볕 속에서 당신은 덥지도 않아?”
그렇군...지금 나는 내 앞가림도 못하고 있는 거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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