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와 관련된 이야기는 가능한 안 하기로 이 여행기의 서두에서 약속드렸던 터이므로 톰스크 등 여타 일정은 모두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러시아에서의 일은 이제 다 끝났습니다. 출장의 결과를 총평하자면 대체로 무난함 되겠습니다.
그렇다면 좋은 겁니다. 아무 문제가 없었다는 것. 비즈니스는 문제로 시작해서 문제로 끝나는 경우가 허다하므로 말입니다.
(우리의 아침 식탁. 요리는 모두 차가버섯님이 책임집니다. 음식을 모두 맵게 하는 것만 고치면 요리사로 나가도 될건데....)
그럼 이제 이야기 끝인가? 아닙니다.
저는 이번 출장을 떠날 때부터 내심 천산산맥을 머리속에 그리고 있었습니다. 천산북로를 따라 ‘오쉬’와 ‘쏭쿨’에 가는 것이 저의 오랜 꿈이었고 이번이 그 기회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말입니다.
거기에다가 우리 “미스터 차가버섯”님이 가진 최대의 약점은 남의 부탁을 거절하는 방법을 아직도 터득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아직이 아니라 아마도 평생 불가능할겁니다. 불쌍한 “차가버섯”님.
“형.....우리 일두 열씨미 했는데 천산산맥 한 번 가야지.....”
“응? 천산? 서울가서 할 일 많은데....”
“열씨미 일한 당신, 떠나라!... 그런 말도 몰라? 그리구 전에 술 먹다가 오쉬 가기루 한 거 기억 안 나?..... 약속 지키는 건 할 일 아닌가? ....”
(류바 아줌마가 요리해 준 러시아식 버섯요리...버섯은 전 번에 길가에서 산 것)
“.......”
옆에 있던 스베타는 물론 좋아라 합니다. 왜냐? 키르키즈스탄이 자기 집인데다가 “미스터 차가버섯”님이 없으면 천산은 옆에 두고도 갈 엄두를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스베타 : 비행기표 알아바조요?
나 : 얼릉 알아바바요. 아마 낼 표가 있을거야...
차가버섯님 : 안 되는데.....
스베타는 벌써 전화기 누르고 있습니다.
북경 행 비행기표가 전화 한 통에 비쉬켁 행으로 바뀝니다. 문명이란 참 놀랍습니다^^.
그리하여 내일은 키르키즈스탄으로 갑니다. 이야흐....
이제 마지막 남은 일들을 마무리하고, 저녁에 조촐한 송별식을 하면 러시아의 일정은 끝을 맺게 됩니다. 남는 오후 시간은 중앙시장에 들러보려고 합니다. 사람 사는 냄새는 역시 시장에 가야 제대로 맡을 수 있습니다.
(노보시 중앙시장 상징 조형물)
세계화라는 미명하에 벌어지고 있는 거대 자본의 시장 독점은 소련이라고 예외가 아닙니다.
예외는커녕 사회주의 해체과정에서 벌어진 권력과 자본의 유착 현상으로 소수의 거대 자본이 탄생되었고, 그로 인한 시장 독점화 현상은 서방의 그 어느 나라 보다 더 심각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여담이지만, 중국과 러시아 모두 독점적 재벌체제와 부의 불균형 문제가 시간이 가면 갈수록 국가의 발목을 잡아매는 위협적인 요인이 될 것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시장 벽면을 새로이 장식한 디자인)
대형 할인마트의 등장 이후 재래시장의 생존이 위협받고 있는 건 러시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번에 왔을 때만 해도 보이지 않던 시장 상징 조형물이나 벽면의 디자인도 대형 자본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보아야 할 겁니다.
(고려인 2세 현은순 아주머님)
시장에서 현은순이라는 이름의 아주머님 가게를 갑니다. 반찬가게를 하고 있는 64세의 이 아주머님은 우리를 잘 기억하고 있어 만날 때마다 반갑게 인사를 합니다.
경기도와 전라도를 고향으로 두고 있다는(구체적인 지명은 모른답니다) 한국인 아버님과 어머님 사이에서 태어 난 이 아주머님은 90년대에 서울과 인천에도 와 본 적이 있답니다.
어땠었느냐고 물으니 아주 좋았었다고 하시네요. 그냥 하는 말인지 진심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주머님이 파는 반찬들. 까레이스키 샐러드는 물론이고 콩나물 무침부터 김치, 고사리 나물, 감자줄기 무침, 각종 버섯 무침, 무 나물, 장아찌류 등등....한국식 반찬이 없는 것이 없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아주머님의 말투가 북한식이라는 것입니다. 사회주의 체제끼리 뭉쳐 있을 때 러시아 고려인들의 정신적인 고향은 북한이었던 겁니다. 남한은 미국의 식민지에 불과하구요.
처음 만났을 때 저는 아주머님의 이 한마디에 빵 터졌더랬습니다.
“무엇이 요구되오?”
(바로 옆 가게에 있던 예쁜 고려인 3세 아가씨들. 수줍음을 많이 타고 순수해 보였습니다. 아쉬운 점은 한국말을 거의 못 한다는 점)
솜씨 좋아 보이는 이 아주머님, 장사도 제법 잘 되어 살만하다고 합니다.
늘 그렇듯이 몇 가지 반찬을 사고 건강하시길 빌어드립니다. 그런데 아주머님의 말이 이제는 조금씩 서울화 되시는 것 같습니다.
“또 오세요”
아마 예전이라면 “잘 가기요”나 “또 오기요”였을 겁니다 ^.^
이제 시장을 둘러보시지요....
(옛 러시아 연방에서 온 각종 과일들. 여기서 한 통에 만 원하던 수박이 비쉬켁에서는 천오백 원 이었습니다)
(호롱박과 바람을 피운 것이 틀림없는...배들)
(말린 과일들. 지금은 저렇게 그 종류가 많지만....가난한 남쪽 나라들에 거대 자본들이 들어가 냉장시설을 하면 앞으로는 말린 과일 보기도 어려워 질 듯)
(담배가게에 있던 에쎄. 가격이 천사백 원. 잉...어찌된 거야. 담배 수입이나 해보까....)
(양고기 가게 아저씨. 저기 보이는 게 양의 몸통. beauty is but skin deep. 맞다, 맞어...)
(뭔 고긴가를 즉석에서 난도질 해 팔던 아저씨. 뭔 고긴가는 무서워서 못 물어봤음)
(이것이 그 유명한 캐비어. 백그램에 130불. 최고급 캐비어는 모두 러시아산이라는데. 윤기가 흐르는 것이 역시 좋아보이긴 합니다)
(이 아주머님. 캐비어 사진을 좀 찍자고 하니까 사면 찍게 해준답니다. 웃고 일단 찍었는데... 안 산다니까 심통이 났네요^^)
(각종 향신료, 양념류들)
(시장 한켠에 꽃가게들이 있었습니다. 러시아 꽃들 감상해 보시죠)
(중앙시장에서 사온 반찬 몇 가지에 "미스터 차가버섯"님이 직접 요리해 차린 송별연 음식들. 훌륭합니다)
저녁에 조촐한 송별연이 벌어집니다. 오랜 파트너에서 이젠 친구로 변한 발로제 부부와 예쁜 레나가 선물을 가지고 자리를 함께 합니다.
두 달 뒤면 또 볼 거지만 매번 이렇게 아쉬워하고 석별의 건배를 하게 되는 건 그놈의 정 때문입니다^^.
(발로제 부부와 늦둥이 아들. 9살이라는 이 아드님. '너 오늘 수영가야지'하니, 수영은 매일 갈 수 있지만 손님들은 매일 오는 게 아니니 오늘은 손님들한테 가야된다구 그러구 따라왔답니다. 적성이 정치가쪽 인 것 같습니다^^)
전 번에는 레나가 우리를 집으로 초대해서 딸의 애인까지 초대한 파티를 열어 주었었습니다. 이번은 그 답례가 되는 거기도 하겠습니다.
러시아에서는 술 한 잔 할 때마다 돌아가면서 건배를 하고 잔을 부딪힙니다. 술 먹는 이유를 다는 건데 ....내가 술 좋아해서 먹는 것이 아니고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남을 위해서 할 수 없이 먹는다...뭐 그런 겁니다^^.
(다음에 건강히 다시 만나기를 바라며 건배...)
건배사는 흔히 “누구누구의 건강을 위하여”를 시작으로 하기 마련인데 계속 돌아가면서 건배사를 하다가 보면 더 이상 할 말도 없어질 건 불문가지. 그러면 외치는 말이 바로 “다바이”
아무데나 다 통하는 말이 바로 “다바이”입니다. 원래는 ‘000를 하자’ 라는 말인데 000는 아무것이나 해당될 수 있으므로, 이런 경우에는 좋아 계속해, 그래그래, 하던 거 계속 하자 뭐 이런 뜻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도 계속 “다바이”...........
“다바이” 계속 외치다 보면 금세 창밖이 훤해진다는 사실....
창밖 훤해지면 천산산맥 만나러 간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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