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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류별 암/대장암

[유근영 박사의 암과 나](5) ‘수입병’ 대장암

by 크리에이터 정관진 2010. 4. 10.

[유근영 박사의 암과 나](5) ‘수입병’ 대장암

유근영 서울대의대 예방의학 교수·전 국립암센터 원장경향신문

 

 

채식은 멀리 육식은 가까이… 서구화된 식습관의 ‘저주’

생활습관이 서구화해 문제가 된 암은 유방암만 있는 것은 아니다. 원래 한국인을 포함한 아시아나 아프리카 민족에서는 대장암의 발생 수준이 서양인에 비해 현저히 낮았다. 미국이나 유럽 및 오세아니아 성인에서의 대장암 발생에 비해 3분의 1 내지 4분의 1 수준이었다. 그러던 것이 최근 들어 한국, 일본, 중국은 물론이고 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인도, 이란 등 아시아 각국에 대장암 비상이 걸렸다. 우리나라는 과거 5년 동안 대장암 발생이 1.5배 이상 증가하였으며, 대장암에 의한 사망이 그 이상 증가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이같이 과거에는 서구인에 비해 매우 낮았던 대장암이 근래 들어 동양인에서 증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를 학자들은 먹는 음식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서구인들의 주식은 육류인 데 비해 동양인이나 아프리카인들의 주식은 쌀과 야채로 대표되는 채식 위주의 식단을 가지고 있다.

우리 몸은 지방성분을 분해하기 위해 담즙 산을 분비하는데, 특히 육류를 섭취하게 되면 대장운동이 상대적으로 느려진다. 이차 담즙산이 과량 존재하는 장내 배설물이 대장 점막과 접촉하는 시간이 그만큼 길어지는 것이다. 발암물질을 포함하고 있는 장내 배설물이 대장을 얼마나 빨리 통과하느냐에 따라 대장암 발생 가능성은 달라진다.

그러면 채식을 하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야채나 과일은 장내에서 소화·흡수되지 않은 채 그대로 대변으로 배설되는 식이섬유(dietary fiber)가 대부분이다. 한국인이 주식으로 사용하는 쌀에도 식이섬유소가 다량 함유되어 있다. 이 식이섬유가 대장암을 예방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식이섬유는 장내에서 수분을 흡수하여 변의 양을 증가시킨다. 그 결과로 장내 독성 성분의 농도를 희석시키는 효과를 발휘한다. 뿐만 아니라 장내 발암물질을 흡착·배설하여 장외로 배출을 촉진시키는 기능이 있다. 따라서 식이섬유가 풍부한 음식을 상용하게 되면 대장의 운동도 촉진되고 결과적으로 변비도 완화될 뿐만 아니라, 장내 점막에 접촉시간을 줄이게 되어 대장암의 발생 가능성을 현저히 낮추게 되는 것이다.

현재 우리의 주변을 살펴보면 한국인의 식생활 문화가 상당히 서구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쌀 소비량은 1980년 이래 계속 감소하고 있다. 반면에 육류의 소비량은 증가하고 있다는 통계가 이런 사실을 잘 설명해 준다. 대장암은 분명 서구로부터 들어온 ‘수입된 질병’이라고 할 수 있다.

▶유근영 박사
서울대의대에 25년간 재직하면서 암의 원인과 예방, 그리고 암의 관리에 대해 연구해 왔다.

국립암센터 원장으로 재직할 때는 우리나라 국가암관리사업과 암의 연구를 국제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현재 아시아·태평양 암예방기구(APOCP) 사무총장으로서 각국의 암 관리 정책을 지도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이기도 하다.(http://blog.naver.com/bkkyy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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