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순해 발견 더딘 갑상샘암 | |
[건강2.0] 이재호 가톨릭의대 가정의학과 교수 | |
‘암’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이 ‘죽음’을 생각한다. 그러나 암 중에는 ‘순한’ 암도 있다. 대표적인 게 갑상샘(갑상선)암이다. 특히 갑상샘암 가운데 90% 이상을 차지하는 유두암은 매우 천천히 자라며 예후가 좋아 ‘10년 생존율’이 약 95%이다. 이미 50여년 전부터 병리학자들은 갑상샘암은 다른 이유로 죽어서 부검할 때 흔히 관찰되는 소견으로 보고했다. 101명의 갑상샘 조직절편을 2~3㎜ 간격으로 잘랐을 때, 살아있는 동안 갑상샘암을 몰랐던 사람들 중 36%에서 이 암이 발견됐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이렇게 ‘순한’ 암이 최근 우리나라에서 급속도로 늘어났다. 2005년 인구 10만명당 19.5(남 6.8, 여 40.8)명이 발생해, 최근 6년 사이에 3.3배 늘어난 것이다. 특히 여성 암 발생률 순위에서는 유방암과 1~2위를 다툴 만큼 크게 증가했다. 증가 속도가 세계 최고다.
갑상샘암 발생률의 증가는 전 지구적 현상이다. 미국은 1973~2002년에 인구 10만명당 3.6명에서 8.7명으로 2.4배 늘었다. 대부분은 크기가 작은 유두암이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기간에 갑상샘암 사망률은 높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초음파 등을 이용한 과다진단이 이 암이 증가한 주된 이유라고 했다.
국가의 보건의료체계 특징을 고려해 보면 이런 주장들은 한층 설득력이 있다. 주치의 제도가 잘 발달한 유럽은 갑상샘암 발생률이 낮고 증가율도 완만하다. 영국은 최근 30년 동안 갑상샘암 발생률은 인구 10만명당 1.4명에서 2.6명으로 1.9배 늘어나는 데 그쳤다. 최근에서야 주치의 제도를 시작한 프랑스는 5.8명으로 다소 높다. 국민건강보장체계가 없는 미국은 최근 그 진단이 더욱 늘어 인구 10만명당 9.6명을 유지하고 있다. 즉 의료기관의 공공성이 유지되고, 합리적인 의료이용을 권장하는 주치의가 있는 나라에서는 사망률에 거의 영향을 끼치지 않는 ‘순한 암’을 조기 발견해 ‘수술’하는 경우는 많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민간의료기관 비율이 90% 가까이 되는 우리나라의 갑상샘암 진단 빈도는 당분간 세계 1위 자리를 유지할 게 뻔하다. 우리나라 국민을 ‘갑상샘 절제술’의 합병증으로부터, 그리고 수술 뒤 평생 갑상샘 호르몬을 먹어야 하는 ‘삶의 질 저하’에서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주치의 제도는 더 미룰 수 없는 국가적 과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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