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크리에이터 정관진 제2군단/크리에이터 정관진 저작권 글

스크랩 갑과을 병의 이야기 27.

by 크리에이터 정관진 2025. 3. 17.

우리나라에 지하 방(떴다방)이 처음 생겼을 무렵


철수의 어머니 장예쁜 여사는 경기도 한 마을에 살고 있었다.
이름 그대로 누가 보아도 곱게 늙으셨다 16살에 시집와서 6.25 때 남편 읽고 홀로 그 많은 농사 일구시며 3남 2녀를 키우신 분이다. 농사를 지어서인지 얼굴은 주름으로 가득하셨다.


하루는 장날 시내에 나갔는데 시내라고 해 보았자 옛날엔 읍, 면 소재지로 웬만한 사람은 서로 다 알 정도 작은 도시였다.
여기저기 할머니들이 큰 화장지 묶음을 들고 다녔다. 철수 어머니가 물어보니 장이 서는 곳 맨 끝에서 할머니들한테만 공짜로 나누어 준다고 하였다. 철수 어머니도 만사를 제쳐놓고 그곳으로 갔다.


인수는 떴다방 사장이다. 중국에서 아주 값싼 나일론 수의를 들여와 안동포라고 속이고 서울에서 팔았는데 별로 팔리지를 않아 남은 물건 싸서 내려와 농한기인 시골에서 팔 심산으로 떴다방을 처음 해 보는 것이다.


영수는 인수의 친구로 영수는 주로 시외버스에 올라타 물건을 팔아 생계를 꾸렸던 아주 말 잘하는 장사꾼이었다.


둘이 의기투합하여 이곳으로 내려왔다. 안 팔리던 중국산 수의와 화장지를 두 대의 큰 차에 싣고 장터 끝에 천막을 치고 홍보하는 중에 이쁘장한 할머니가 기웃기웃한다.


얼른 두루마리 화장지 묶음을 드리고 내일 이곳에서 안동포 수의를 싸게 파는데 할머니 10분 모시고 오면 공짜로 하나 준다고 한다. 철수 어머니가 되물어 보니 10분 모시고만 와도 준다고 한다. 철수 어머니는 장보기를 중단하고 마을로 갔다.


또래 할머니가 많았다. 6.25때 이북 괴뢰군에 남자들은 끌려가고 혹은 죽고 철수 어머니와 비슷한 사정으로 고생만 하시다 늙으신 분들이 대다수였다. 철수 어머니가 이야기하니 한 스무 분은 내일 간다고 한다.


철수 어머니는 속으로 흐믓하였다 20명이 넘으면 두벌 공짜로 얻으려나~


다음날 그곳으로 동내 할머니 20명 정도가 갔다. 가보니 200백 명 정도 할머니가 있었다.


영수가 나섰다. 화려한 말솜씨에 청중을 웃겼다 울렸다.
그리곤 본론으로 들어가서 수의를 선전하였다. 한 손에는 진짜 안동포를 들고 한 손엔 중국산 수의를 들었다. 보기엔 그게 그거였다. 영수는 차이점을 보여 주었다. 한 올씩 뽑아 성냥불을 대었다. 중국산은 나일론이라 호로록 탔다. 타는 냄새도 고약하고 안동포는 반대였다.


당시에도 안동포는 꽤 비쌌는데 그 가격에 반값으로 판다고 하였다. 사실 그 가격도 비싸다.


인수가 영수에게 소리친다. “여기 오신 분들이 무슨 돈이 있나? 힘들게 사신 분들한테 그냥 본전만 받고 팔자! 거기에 반값만 받고 부자 동네에 가서 비싸게 받자!”


여기저기 환호가 나오고 박수가 터졌다. 사실 분 명단만 작성하고 내일 돈을 받고 수의를 드리자, 하고는 명단 작성하신 분에겐 고급 화장지 한 묶음을 주었다.


행사가 끝이 나고 인수는 조용히 철수 어머니를 불렀다. “수의가 모자라서 그러는데 돈으로 쳐서 드릴까요? 아니면 그냥 수의로 드릴까요?” 철수 어머니는 잠시 생각하더니 가급적 수의로 달라고 하였다. 속으로 약속을 철저히 지키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인수가 다시 말했다. 특별히 그 동네 사람 들것은 미리 빼놓을 터니 되도록 일찍 오시라고 하였다.


철수 어머니는 마을로 가서 물건이 딸린다고 하니 내일 일찍 서두르자고 하였다.


다음날 일찍 가보니 벌써 판매하는데 난리가 난 지경이다. 각자 손에는 수십만 원이 들려있다. 농번기라 논밭에서 나는 농작물을 팔고 현찰들이 많이 있었다.


금세 물건이 동이 났다. 행사가 끝나고 기다리니 인수가 잘 포장된 수의를 철수 어머니에게 드렸다. 감사의 인사와 함께


며칠이 지나고 설이 되었다.


명절이라 철수가 고향에 왔다. 어머니가 수의 자랑부터 하였다.


자초지종 설명과 함께 철수가 자세히 여쭈어보니 얼마 전 뉴스에서 본 중국산 수의 사기 판매였다.


철수는 자수성가 한 사람이었기에 마을에서도 인정받는 사장님이다.


조용히 마을을 다니면 중국산 수의를 20만 원씩 더 주고 회수하였다. 어머니에겐 비밀로 하자고 하고~


며칠 뒤에 소문이 났다. 철수 어머닌 가지고 있던 수의를 태웠다. 고약한 냄새와 그을림이 엄청났다.


또 며칠 뒤 철수는 진짜 안동포를 구해드렸다. 진작 사서 드릴 걸 후회하였다.


그리고 몇 년 뒤에 철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소원대로 안동포를 입고 가셨다.




이젠 철수가 돌아가신 어머니 나이가 되었다.


요즘은 수의를 입고 가는 분이 별로 없고 평소 입었던 옷 입고 가는 것이 풍토다.


철수도 이미 자식들에게 말했다. 깨끗이 빨아 둔 양복 두벌 중에 맞는 옷 입혀달라고~


양복 하나는 20대 때 사회초년병일 때 처음 산 양복이고 한 벌은 30대 결혼할 때 입었던 양복이다.


좋은 기억 속 양복인데 다행히 치수 크기가 다르다.
 

출처: 크리에이터 정관진 제1군단 원문보기 글쓴이: 청천고부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