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자 인터뷰]
마약 관련 사건은 자극적인 키워드로 점철돼 있다. 그러나 실제로 마약에 중독되는 사람들은 우리 주변의 매우 평범한 사람들이다. 스스로 마약을 구해 시작하는 이들도 있지만 소수다. 대부분은 친구나 연인, 직장 동료가 무심코 건넨 약물로 시작한다. 이런 식으로 약에 빠진 사람들 중 절반은 평생 벗어 나오지 못하는 반면, 나머지 절반가량은 약을 끊으려고 발버둥 친다. ‘단약’ 의지가 있는 중독자들에겐 마약으로부터 벗어난 ‘선배’들의 이야기가 큰 힘이 될 수 있다. [편집자주] “‘직장 생활을 잘 하는데 뭐가 문제야?’라고 끊임없이 합리화 했었다. 마약에 취한 상태에서 거래처 미팅도 나가 봤다.”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에서 만난 30대 중반 김종훈(가명)씨는 단약 2년 차다. 그는 이른바 ‘원나잇’으로 만난 여성이 건넨 필로폰을 투약했다가 마약에 중독됐다. 이후 6년 간 마약에 중독된 채 직장 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다가 수사기관에 적발되면서 법적 절차를 밟았고, 현재는 NA 모임(자조모임)에서 다른 중독자들의 회복을 돕고 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처음 본 여성이 건넨 주사기… 6개월 뒤엔 스스로 구매 2015년 경, 이촌동에 거주했던 종훈씨는 근처 이태원의 클럽을 자주 다녔다. 종종 처음 보는 여성과 하룻밤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여성이 난데없이 주사기를 꺼냈다. 종훈씨는 “그게 뭐냐” 물었고, 여성은 다짜고짜 자신의 정맥에 주사 바늘을 꽂아 넣더니 “해보라”며 권했다. 종훈씨는 “주사기를 보고 불법적인 일이라는 걸 몰랐다고 하면 거짓말”이라며 “술도 취했겠다, 분위기도 거절하면 안 될 것만 같아서 그렇게 필로폰을 접하게 됐다”고 말했다. 처음에 종훈씨는 필로폰의 중독성이 과장됐다고 느꼈다. ‘다시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고 그날의 일을 하룻밤 해프닝 정도로 여기고 일상을 이어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판이었다. 업무 스트레스로 과음한 날 불현듯 필로폰이 떠올랐다. 인터넷으로 구매처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두 시간만에 필로폰을 받아볼 수 있었다. 첫 투약 후 6개월가량 흐른 뒤였다. 그 뒤 마약 투약 주기가 빠른 속도로 짧아져만 갔다. IT업계에서 일하던 그는 정해진 출퇴근 시간이 없었다. 재택근무를 하는 날도 잦았다. 때문에 마약은 주로 집에서 혼자 투여했다. 종훈씨는 “처음에는 6개월에 한 번씩 하니까 스스로 조절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며 “그러나 주기는 곧 2~3개월로 짧아졌고, 긴 연휴나 연차 전날에는 무조건 마약을 구비해놓을 정도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한 번 투약할 때 많은 양을 사용했다. 통상 필로폰은 1g씩 유통되고 0.03g을 한 칸, 즉 1회분으로 치는데 한 번에 세 네 칸을 사용했다. 그 여파로 1주일간 잠을 못 잤다. 생체리듬이 깨지는 걸 막기 위해 수면제를 복용했더니 판단 능력이 떨어져 업무를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가장 큰 문제는 죄책감이었다. 필로폰을 투약할 때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 다짐했지만 매번 어기니 죄책감이 그를 좀먹었다. 종훈씨는 “안 해야지, 안 해야지 하면서도 결국 스스로를 배신한 나를 마주하는 게 정신적으로 타격이 컸다”며 “죄책감과 더불어 불안감도 심했는데 누가 날 잡으러 오지 않을까 하는 망상 때문에 밖에 나가기도 어려웠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상태에서 회복되기까지는 마약 투약 후 꼬박 한 달씩 걸렸다”고 말했다. ◇친구 응원에 끊었지만 금단증상에 알코올 중독까지 그러던 어느 날, 초인종이 울려서 나가보니 경찰이 서류철을 들고 서 있었다. 경찰은 마약 판매상이 검거됐는데 종훈씨 이름으로 된 입금 내역이 발견됐고, 주고받은 메시지를 기반으로 CCTV 영상을 추적하다가 그가 ‘던지기 수법’으로 필로폰을 건네받는 장면을 포착했다고 말했다. 종훈씨는 잡아뗄 것도 없어서 그 자리에서 집에 있던 주사기를 전부 제출했다. 경찰이 돌아가자마자 직장생활이 걱정됐다. 그는 “직장에서 잘리면 마이너스 통장 연장이 안 되니까, 그 돈을 한꺼번에 상환해야 할 수도 있다는 게 가장 두려웠다”고 말했다. 종훈씨는 변호사의 조언대로 일단 마약부터 끊으려고 했다. 스스로를 믿을 수 없어 주변 사람들에게 범행 사실을 고백했다. 친누나, 사촌 동생, 고향 및 대학교 친구들은 물론 회사의 몇몇 지인과 매니저에게도 마약을 했다는 사실을 전했다. 마약을 또 하면 주변 사람들까지도 배신한다고 생각해야 단약이 가능할 것 같았다는 게 종훈씨의 설명이다. 그는 “일련의 상황을 들은 고향 친구가 휴대폰을 달라고 하더니 SNS 어플을 제한시키는 기능을 설치했고, 그걸 해제하는 비밀번호는 자기만 알고 있겠다고 말했다”라며 “덕분에 큰 힘이 됐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마약을 끊는 과정은 지난했다. 금단 증상으로 손이 떨려 수 시간 업무를 할 수 없을 때도 있었고 운전을 하는데 잠깐 동안 필름이 끊긴 적도 있었다. 대체 중독으로 알코올에 빠지기도 했다. 회식이 있어도 11시만 되면 집에 갈 정도로 술을 즐기지 않던 그가 마약을 끊고 나서는 회식이 끝난 뒤 집에 가서 혼자 양주병을 비웠다. 초범이고 투약 횟수가 많지 않았던 종훈씨는 조건부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그 뒤로 약 2년 간 단약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는 마약퇴치운동본부의 NA 모임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다른 중독자들에게 조언하고 있다. ◇김종훈씨와의 인터뷰 -혼자 마약 투약 후 무엇을 했나? “한 가지에 꽂혀서 그것만 했다. 예컨대 집 안 먼지에 집중하면 열 몇 시간 동안 청소만 하는 식이다. 성행위도 마찬가진데 대부분 혼자 투약했기 때문에 주로 자위행위를 했다. 머리로는 하면 안 되는 걸 아는데 몸이 그렇지가 않았다. 스스로를 보는 게 힘들었다.” -마약 투약으로 인해 무엇을 잃었나? "나에 대한 신뢰가 깨졌다. 죄책감 때문인지는 모르겠는데 자신감이 사라진 느낌이다. 이전부터 업무 스트레스 때문에 정신건강의학과에 다니고 있었는데, 마약 투약 후 지능검사 점수가 낮게 나오더라. 담당 의사는 스트레스 탓일 거라고, 다음에 다시 해보면 정상으로 나올 거라고 격려해줬지만 그럴 것 같지 않았다. 감정 기복도 심해져 일상생활이 어렵다. 현재는 조울증 약을 복용하고 있기도 하다." -마약 투약 사실을 고백했을 때 회사 매니저는 어떤 반응을 보였나? “면담에서 우선 가만히 있고, 법적 절차가 끝나면 그때 다시 얘기해보자는 답변을 했다. 인사팀에는 보고가 안 된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 돌이켜보면 마약을 하면서도 직장을 다니고 있다는 게 오히려 문제를 키웠다. ‘어차피 직장생활 잘하고 있는데’라는 식으로 스스로 합리화 한 적이 많다. 마약에 취해서 미팅에 나간 적도 있다. 이런 상황을 끝내고 싶어서 회사 측에 말한 측면도 있다.” -단약을 이어가는 원동력이 있다면? “그동안 사람들과의 관계나 업무에 있어 즐거워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삶을 대하는 태도를 ‘돌탑’ 같은 상태로 유지하려고 한다. 너무 많이 쌓아도 안 되고 몇 개 덜 쌓아도 안 되는 그런 상태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데 단약은 필수다. 친구들, 회사 지인들, 그리고 NA 모임 같이 하는 선생님들한테 배신감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다. 마지막 끈을 놓아버리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이걸 붙잡고 끝없이 나 자신을 일깨울 것이다.” -단약 의지가 흔들린 적은 없었나? “기소유예 선고를 받은 직후가 가장 위험했다. 사람이 참 간사한 게, 재판을 앞두고 있을 때는 약 생각이 하나도 안 난다. 그런데 법적인 문제가 해결되니까 바로 흔들리더라. NA 모임에서 중독자들의 얘기를 들어봐도 그렇다. 결국 구속될 것 같으면 자포자기하는 심정에, 기소유예나 집행유예가 나올 것 같으면 안도하는 심정에 넘어가는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전문 기관의 도움을 받아야 하지만 현실은, NA 모임에 참여했다가도 재판 끝나면 두 번 다시 안 나오는 사람들이 많다.” -NA 모임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이유는? “변호사의 권유로 처음 NA 모임에 참여한 뒤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선생님들로부터 권유를 받았다. 스스로도 도움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중독자도 비슷하게 느끼고 있을 때 보람을 느낀다. 모임에 빠지지 않고 참여할 수 있어 단약에도 큰 도움이 된다. NA 모임 참여를 위해 목요일 오후는 아예 일정을 비우고 지낸지 오래 됐다.” -목표가 있다면? “큰 목표는 없다. 단지 지금 상태를 유지하려고 한다. 담배는 끊는 게 아니라 평생 참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마약은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다. 그래서 아주 힘이 든다. 20년 단약을 했다가 ‘넘어진’ 중독자도 봤다. 그런 분들이 갈망을 못 이겨서 다시 약을 했을까? 삶을 살면서 어떤 실패로 인해 우울감이 높아졌을 때 의존 수단으로 약이 떠오른 것이라 생각한다. 앞으로 살면서 많은 일들이 있을 텐데, 지금의 안정적인 상태를 최대한 오랫동안 유지하고 싶다.” 출처 : https://health.chosun.com/site/data/html_dir/2024/12/20/2024122000760.html |
출처: 크리에이터 정관진 제1군단 원문보기 글쓴이: 니르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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