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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에이터 정관진 제2군단/암정보

[아미랑] 말이 갖는 힘… 암에 걸리면 그 힘은 더 커집니다

by 크리에이터 정관진 2024. 1. 15.

이병욱 박사의 27.3X27.3cm Acrylic on canvas 2023​

환자와 보호자는 가치관이 달라집니다. 환자는 어떻게 하든 낫기를 바라지만 처해 있는 상황 자체가 건강한 언어를 사용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아이고 아파서 죽겠다”라는 말을 했다고 칩시다. 환자의 입장에서 이 말은 ‘안 아팠으면 좋겠다. 위로를 해달라’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보호자들에게 “아파서 죽겠다” 같은 말을 자꾸 들으면 짜증이 날 겁니다. 따라서 환자는 “아파서 죽겠다”는 말 대신 “좀 덜 아팠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는 습관을 들이는 게 좋겠지요.

보호자들도 짜증을 내기 보다는 환자의 마음을 감안하고 듣는 게 좋겠습니다. “난 언제 죽을까?”라는 말은 ‘언제까지 치료를 받아야 할까?’라는 의미가 될 수 있습니다. “수술한다고 뭐가 달라질까?”라는 말도 ‘수술하고 정말 좋아졌으면 좋겠다’는 속뜻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보호자들은 “치료가 잘 되고 있으니 용기를 내세요”나 “수술을 잘 하는 분이 하신다고 하니 너무 걱정마세요”라는 식으로 위로하고 용기를 주면 됩니다.

환자가 부정적인 말을 내뱉는 것은 사라지지 않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그런데 말이라는 것이 부정적으로 하면 할수록 걱정이 늘어나는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환자가 긍정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옆에서 보호자들부터 좋은 말을 해주는 노력을 기울이세요. 같은 말이라도 표현을 긍정적으로 하는 겁니다. 말을 내뱉기 전에 같은 말이라도 달리 표현할 수 없을까 한 번쯤 고민해보고 말을 하십시오. 즉흥적으로 내뱉다보면 알게 모르게 실수할 수 있습니다.

특히 알게 모르게 공포를 줄 수 있는 말, 고통을 줄 수 있는 말을 피해야 합니다. 만약 주변에 말실수가 잦은 사람, 평소에 눈치가 없는 사람이 있다면 보호자는 미리 환자와 만나지 못하도록 차단하거나 단단히 교육시켜놔야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암 환자의 가족은 ‘포옹의 언어’를 더 적극적으로 사용하면 좋겠습니다. 진료실에서 저는 가족들에게 환자를 많이 안아주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어색하더라도 한 번 안기 시작하면 그 다음엔 더 잘 안을 수 있고, 곧 포옹에 익숙해집니다. 스킨십은 강한 위로가 됩니다. 어루만져준다는 것 자체가 안정감을 줍니다. 손을 잡고, 쓰다듬어주고, 어깨를 두드려주고, 안아주고, 팔짱을 끼는 등의 친밀한 행동이 거듭될수록 더욱 가까이 다가가게 됩니다. 같은 말이라도 안아주면서 하거나 말을 한 뒤에 포옹하면 그 호소력이 더 짙어집니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 상황에서도 포옹은 큰 힘을 갖습니다. ‘사랑한다, 용기를 내라, 너와 함께 하겠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보디랭귀지도 중요합니다. 대화할 때는 반드시 환자의 얼굴을 바라보세요. 환자의 눈을 피하면 환자는 가족이 자신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환자가 보호자의 눈을 피할 때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무서워서, 불편해서, 서운해서, 보호자가 자신을 싫어하는 것 같아서 등의 마음일 수 있습니다.

환자가 눈길을 피하면 환자의 눈길을 바로 돌려놓으려는 노력을 먼저 기울이십시오. 환자의 말에 귀 기울이고, 동의한다는 표정을 지어주세요. 대화할 때는 우선적으로 환자가 말을 해야 합니다. 이때 가족은 환자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는 게 좋습니다. 그래야 환자는 점점 더 많은 말을 하게 됩니다. 말을 함으로써 털어버려야 하는 것이 있게 마련입니다. 꼭꼭 쌓아놓는 것보다 환자는 우선 모든 것을 털어내야 합니다.

사랑을 담은 대화를 많이 하는 가족을 이루십시오. 그것은 여러분 한 사람의 노력부터 시작합니다. 옆에 있는 가족에게 사랑하고 축복한다고 말해주세요. 저도 여러분을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출처 : https://health.chosun.com/site/data/html_dir/2024/01/10/202401100224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