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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류의 장/여행을 떠나요

[아무튼, 북한산] 그해 여름, 추사의 비봉 클라이밍

by 크리에이터 정관진 2021. 3. 28.

진흥왕 순수비가 있는 비봉에 오르는 길은 천년의 세월만큼이나 험하다. 200년 전 추사는 승가사를 경유해 비봉에 올랐고, 긴 세월 방치됐던 비석의 비밀을 밝혀냈다. /사진=헬스조선DB

십여 년 전 미술 담당 기자로 일하면서 추사(秋史)를 존경하게 됐다. 전시장에서 만난 글씨는 가을처럼 엄정하고, 역사처럼 다단했다. 정갈하고 현란한 타이포그라피는 불변의 현대성 같은 걸 뿜었다. 작품도, 예술혼도 떨어지기 직전의 동백꽃처럼 선명했다, 낭자했다.

김정희(1786-1856)에 대한 존경이 최근 북한산 비봉에서 깊어졌다. 비봉은 오르기 쉽지 않다. 릿지 등반, 암벽 등반을 하는 이들에게야 스르륵 지나가고 말 곳이지만 계곡과 능선을 찬찬히 걷는 평균적 등산객들에겐 난코스다. 그러니 봉우리 위, 진흥왕 순수비가 천 년 동안 잊힐 수 있었고, 내가 추사의 클라이밍 능력을 존경도 하는 거다. 신라 진흥왕이 세운 비(碑)가 있어 비봉이고, 그 정체를 밝혀낸 게 추사다. 지금 산 위에 있는 비석은 모조품이다.

◇비봉 남쪽 비탈의 크랙 암반은 난감하다

다른 봉우리들처럼 비봉도 한쪽으로만 오르지 않는다. 봉우리의 남쪽과 북쪽 사면이 그나마 사람들이 다닐 만한 곳이다. 족두리봉, 향로봉에서 오다 보면 남쪽으로 오르게 되고, 문수봉, 사모바위, 승가봉을 거쳐 오게 되면 북쪽을 타게 된다. 그런데 남쪽으로 오를 때 난관이 하나 있다.

비봉 정상을 오르는 남쪽 사면은 거리로 치면 60m 정도다. 가파른 암릉이라곤 해도 수직의 절벽이 아닌 이상, 작심하면 못 오를 것도 없어 보인다. 하지만 한 40m 올라가면 질색을 하게 된다. 크랙(crack, 갈라진 틈)이 있는 4-5m 높이의 암반이 수직에 가깝게 선다. 크랙과 함께, 아마도 인위적으로 판 듯한 얕고 조그만 홈이 두어 개 있어서 그나마 도전해볼 만 하지만 누구나 가능한 건 아니다. 북쪽 사면도 험한 암릉인 건 마찬가지인데, 남쪽 사면의 크랙 부분처럼 아예 곤두서버린 곳은 없다. 애쓰고, 바둥거리면 등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곳이다.

자, 그럼 추사는 어느 쪽 사면으로 비봉을 올랐을까. 추사는 비봉의 남·북 사면 중 어느 비탈을 타고 올라 천 년 세월에 묻혔던 신라 영웅의 순수비를 만났을까. 어느 길로 비봉을 올라, 세월과 풍파와 이끼에 닳고 퇴색해 정체성을 잃었던 비석의 존재를 세상에 밝히고 알렸을까. 추사는 금석학(金石學)의 대가였다. 쇠와 돌에 새겨진 문자 연구의 당대 일인자, 최고봉이었다.

◇추사는 남과 북, 어느 비탈로 비봉을 올랐을까

추사는 비봉의 북쪽 암릉을 타고 올라가 진흥왕 순수비를 만났을 게다. 곤두선 크랙 암반이 있는 남쪽 사면을 일부러 피했다거나 그런 이유는 아니다.

추사는 서른을 즈음해 두 차례 북한산 비봉을 오르고 진흥왕 순수비를 고증했다. 이때 산행 루트에 승가사가 언급된다. 북한산성으로 통하는 비봉능선은 향로봉에서 시작해 비봉, 승가봉을 거쳐 문수봉에 이른다. 향로봉이 남쪽, 문수봉이 북쪽이다. 승가사를 지나 능선으로 올라가면 비봉과 승가봉 중간 지점에 서게 된다. 그곳에서 비봉의 북쪽 비탈은 지척이다. 굳이 남쪽 비탈로 돌아갈 이유가 없다.

◇예술적 천재의 강인한 산행, 그리고 어떤 추측

북쪽이든 남쪽이든 요즘 나오는 값비싼 등산화를 신고도 오르기 힘든 곳이 비봉이다. 게다가 추사가 비봉을 오른 건 6월과 7월, 이미 여름 들어서였다. 추사에 대한 존경의 정도를 높여가는 건 그렇게 험난한 산행을 마다 않던 고증의 열정 때문이다. 당대의 예술적 천재가 푹푹 찌는 여름, 지치지 않는 체력으로 암반의 꼭대기에 오르는 모습을 상상하는 일, 멋지지 않나. 간결하고 강인한 추사 필체의 요체는 어쩌면, 북한산 암반을 툭툭 치고 오르던 그의 건강한 몸에 담겨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추론 하나 더. 지난 주말, 북한산 비봉을 남사면으로 올라 북사면으로 내려오면서 나는 험한 바위들에 새겨진 홈들을 언제, 누가 팠을까 궁금했다. 때론 보일 듯 말 듯, 희미한 홈들이지만 그 홈들이 있어 별다른 장비 없이 비봉을 오르내릴 수 있다. 고마운 일인지(어쨌든 올라갈 수 있게 해주니까), 나무랄 일인지(많은 이들이 올라 좋을 게 뭐 있겠나 싶어서) 모르지만 아무튼 누가 홈을 냈을까 궁금했다.

그런데 비봉 위 허름한 비석의 정체를 알아낸 추사가, 비석의 측면에 고증의 사연을 새겨 넣었다는 얘기를 들으며 뭔가 떠올랐다. 추사였든, 추사의 동료든 돌에 글을 새기자면 끌과 정을 가졌어야 하지 않나. 그렇다면 혹시 비봉의 암반 등산로에 새겨진 홈들 중 몇 개쯤은 200년 전 추사나 추사의 동료들이 판 게 아닐까. 아니겠지.


출처 : https://health.chosun.com/site/data/html_dir/2021/03/26/202103260238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