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 북한산 보현봉과 그 뒤 서울의 풍경. 눈 뒤집어쓰고도 말 없는 산을 볼 때마다 떠오른다. 조용히 참치캔을 따던 그 옛날, 벽안의 젊은이가. /사진=헬스조선DB
산 위에서 조용히 참치캔을 따던 젊은이를 본 적이 있다. 그 모습이 왜 그리 아름다웠는지, 서러웠는지 이제부터 설명해 보려 한다. 그 전에 주말이면 북한산 주능선을 활보하는 내 식사 스타일에 대한 간략 스케치부터.
◇홍예 위 문루에서 나도 참치캔을 땄다
북한산을 오르내리며 대개 4시간 안팎을 걷는다. 나름 힘들지만 등산 애호가들의 평균 산행 시간을 감안하면 대단한 수준은 아니다. 그러니 먹는 걸 거하게 싸지 않는다. 등산로 입구에서 김밥 한 줄 사고 만다. 집에서 채워 온 물통 하나, 새벽 인사 차 들른 어머니 집에서 받은 두유 하나가 작은 배낭을 채운 식료(食料)의 전부다. 기분 따라 귤을 한두 개 추가하기도 한다.
탕춘대 능선으로 올라 향로봉을 우회하고, 비봉을 넘어 문수봉을 기어오르는 걸 워낙 좋아한다. 지난주에도 같은 코스를 걸었다. 비봉의 크랙(crack)들을 비집은 뒤, 철제 구조물을 붙잡고 문수봉의 가파른 남쪽 능선을 넘었다. 대남문을 지나 대성문의 문루 위에 안착했다.
잠깐 건축 얘기를 하자면…. 대남문, 대성문 같은 북한산성의 주요 관문들은 홍예(虹蜺) 양식으로 이뤄져 있다. 무지개를 한자로 쓰면 ‘홍예’다. 서양에서 ‘아치’라 부르는 건축 양식을 한자 문화권에선 홍예라 부른다. 무지개와 아치의 곡선이 겹쳐지시는지…. 아치건 무지개건, 문 위쪽은 유려하고 날랜 곡선으로 깊어간다. 심미와 과학을 두루 갖춘 동서양 공통의 건축 양식이다. 그리고 홍예 위의 다락 공간을 문루라 부른다. 그렇게 주말이면, 나는 비봉과 문수봉을 넘어 대남문, 대성문의 문루 위에 안착한다.
그런데 아름다운 곡선의 홍예 위 문루에는 언제부터인가 널찍한 평상이 마련 돼 있다. 그곳에서 늦은 아침을 먹는다. 이번 산행엔 김밥을 사지 않았다. 대신 배낭에 박혀 있던 캔 하나를 꺼낸다. 손바닥에 앉힐 크기의 조그마한 참치캔이다. 뚜껑을 따니 황금빛 카놀라유에 잠긴 참치살이 맑은 모습을 드러낸다. 아침 공기 사이로 담백한 향이 스민다. 주말이면 그렇게 북한산 주능선에서 참치캔을 따는 내 모습이 서럽게 아름다워요…, 라고 말하면 안 되겠고.
◇십년 전 지리산 종주, 그리고 충격
십여 년 전 후배들과 지리산을 종주했다. 일박 째의 밤이었나, 이박 째의 새벽이었나. 나와 후배들은 산장에서 기어 나와, 미리 준비해온 김치와 라면 등속으로 찌개를 끓였다. 김치를 내고, 한두 가지 밑반찬도 가세시켰다. 지친 심신, 살얼음 같은 추위를 밥으로, 찌개로 녹였다. 그리고…, 짬밥이라고 이르기도 하는 잔반(殘飯)이 남았다. 식사 공간 뒤쪽으로 돌아가 잔반 처리통을 찾았다. 아, 잔반통을 맞닥뜨렸을 때의 그 불편함, 불쾌함. 잔반통은 갖가지 국물과 음식으로 흐르고 넘쳐 지저분하기 이를 데 없다.
그보다 더 추한 광경이 잔반통에서 멀지 않았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화장실의 변기 주변까지 잔반으로 흥건했다. 잔반을 짊어진 채로 종주 루트로 진입할 순 없었으니, 우리도 버렸다. 추한 풍경에 추한 마음을 보탰다. 잔반의 사태(沙汰) 주위로 술병까지 뒹굴었다.
참담한 마음으로 산장에 들어갔을 때, 우리의 등산문화를 준엄히 꾸짖는 풍경 하나가 오롯했다. 20대 후반인 듯, 서양 젊은이 한 명이 산장의 마룻바닥 구석에 다소곳이 앉아 참치캔 하나를 냠냠, 먹고 있었다. 조그만 포크로 캔 안을 찬찬히 훑더니, 나중엔 준비해온 휴지로 캔 안의 기름을 깨끗이 닦았다. 비닐로 정갈히 묶은 캔과 휴지를 배낭에 도로 넣었다. 그게 산행 후 저녁 식사, 또는 산행 전 새벽 식사의 전부였다. 젊은 외국인의 단아한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그를 바라보는 내 모습은 왜 그리 처연하던지.
◇숭고한 산에서 조금은 거룩하게
날과 밤을 넘기는 종주를 한지 오래다. 설악산을 가도 한계령에서 시작해 빠른 걸음으로 중청, 대청을 거쳐 오색약수로 내려오는 한나절 코스일 뿐이다. 그래서 지리산을 포함한 전국의 일, 이박 종주 코스에서 벌어지는 요즘 일을 알지 못한다. 산장의 풍경과 식사 관행에 대해서도 모른다. 그저 사람들의 식문화도, 산행의 마인드도 달라졌으니 십년 전 지리산 산장의 그 난처했던 풍경은 사라졌겠거니 짐작만 한다. 기대만 한다.
가끔씩 참치캔 하나 달랑 들고 북한산을 찾는 건 그 때 그 기억 때문이다. 먼 타국의 산에 올라서도, 자신의 흔적을 자연에 남기지 않으려 애쓰던, 눈 파란 젊은이의 기억이 얼마나 강렬했는지 모른다. 참치캔을 따고, 먹고, 감추던 그의 은근한 동작들. 그날 진흙탕에서 연꽃이 피었다.
산처럼 숭고한 곳이 없다. 1억 년, 2억 년 전 만들어진 화강의 거석(巨石)들이 하늘로 치솟으며 만들어 놓은 북한산에 대해서야 무얼 더 말할까. 성스러운 곳에서, 조금은 성스러운 마음이었으면 한다. 서울·경기의 동북과 남서를 길게 가로지르며 하늘과 자신을 견주는 봉우리들을, 고딕 교회의 첨탑들에 비하겠나.
첨언하건대 북한산을 포함한 국립공원에서 막걸리 좀 먹지 말았으면 한다. 국립공원에서 음주가 금지된 지 3년이 지났지만 탐방로, 대피소, 바위, 계곡은 여태 잠재적 ‘우범지대’라 한다. 북한산이든 어디든 국립공원에서 술 먹다 걸리면 누구든 과태료 문다. 최고 20만 원이다.
출처 : https://health.chosun.com/site/data/html_dir/2021/03/23/202103230277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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