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쉽지만 다싼즈와 작별을 하고 천단공원으로 향합니다.
북경은 환(環)으로 된 도시입니다. 자금성을 중심에 놓고 작은 원으로 도로가 형성되어 있고 그 바깥으로 다시 더 큰 원형 도로가 있고.....하는 식으로 여섯 개의 환형 도로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도로들을 1환, 2환..으로 부르고, 목적지가 몇 환에 해당하는지를 알면 위치가 어디쯤이라는 것도 알게 되는 구조인 것이죠. 북경이 철저히 황제와 권력을 중심으로 구성된 도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싼즈 거리는 4환에 있고 천단공원은 1환에 있습니다. 한참을 도시의 중앙 쪽으로 가야 한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마침 일요일이라 북경의 유명한 교통체증에 걸리지 않을 수 있어 다행입니다.
(30도를 넘는 무더위에 견디다 못해 모자를 하나씩 사서 썼습니다. 멋진 사나이 '미스터 차가버섯'님에 대해서는 차차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슴다. 근데 웬 호나우딩요?)
천단공원은 명나라 때부터 황제가 하늘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입니다. 그러므로 자금성 근처에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원구단을 떠올리면 되겠습니다. 명나라 때부터라.... 아니, 역대 어느 중국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지 않은 적이 있었던가?
맞습니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역대 어느 황제나 임금치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지 않았던 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왜 새삼스레 천단공원이냐...
(천단공원 정문)
천단공원이 특별한 것은 중국의 역사 그리고 도교의 성장과 관련이 있을 겁니다. 당나라가 불교의 국가였고 송나라와 원나라가 신유학의 국가였다면 명나라는 아마도 도교의 국가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겁니다. 황천상제를 모시는 제사가 바로 도교의 제사법이니까요.
그러한 상제를 모시기 위한, 역사상 가장 거대하고 화려한 천단이 조성됐다는 자체가 그동안 불교와 신유학에 눌려왔던 도교가 힘을 얻었다는 증거가 됩니다.
지극히 현세적인 종교인 도교가 이렇게 힘을 얻은 배경에는 명나라 시조인 주원장의 개인사적 이력이 있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후문쪽에서 기년전으로 가는 길)
부모가 굶어서 죽었을 정도로 가난한 천민 출신에서 대 제국의 황제가 된 주원장은 지극히 현실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문자나 나불대는 먹물들의 종교를 좋아할 리 없었을 것이고, 본인이 (어려서 단지 먹고 살기 위해) 절에서 생활하던 때에 당한 서러움들이 불교에 대한 불신으로 나타났으리라는 점은 짐작할 만합니다.
남은 것은 당연히 도교밖에는 없습니다. 도교가 드디어 때를 만난 겁니다.
(기년전. 천단공원의 핵심입니다)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원리에 따라 지어진 전체 천단의 핵심인 이 기년전은 황제가 정식으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곳입니다. 제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자금성의 그 어느 건물보다도, 이화원의 그 어느 누각보다도 화려하고 웅장한 중국 제일의 건물로 보입니다.
가까이 접근하면 압도당한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이 건물은 직경이 32m, 높이가 38m로 명 3대 영락제(자금성을 지은 사람입니다)가 1420년에 완공했는데, 1889년 낙뢰로 소실되었다가 1906년 복원됐다고 하네요.
(기년전의 전체 모습)
엄청난 크기의 기둥들로 둘러쌓인 건물의 위용과 외부의 화려한 단청, 청자로 구워 빛나는 기와들 그리고 화강암 포석이 깔린 주위의 넓은 광장이 함께 뿜어내는 카리스마에 강요당하게 되는 개인적 존재감의 왜소화는 강력한 것이었습니다.
무릎 꿇고 복종하라는 명령. 기년전은 그걸 말하고 있는 듯합니다.
단지 인간 세상에 내려와 있을 뿐 황제는 신의 일원이다. 이 웅장하고 화려한 곳에서 신을 만날 수 있는 것은 황제뿐이고 바로 이 건물이 황제의 신분을 말해준다. 그러니 무릎을 꿇고 복종하라.
(기년전 내부모습)
천단공원은 원구단, 황궁우, 기년전이 일직선상에, 하나의 대문을 열면 전각이 있고 그 뒤의 대문을 열면 또 전각이 있는 식으로(자금성을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배열되어 있는 형태로서 기년전은 그 맨 마지막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지금 천단공원을 거꾸로 감상하고 계신 것이 되겠습니다^^.
(황궁우 모습)
이건 황궁우라는 건물입니다. 이 건물의 기능이 매우 재미있습니다.
이 건물에는 모시는 천신들의 위패가 보관되어 있는데, 단순히 위패 몇 개를 보관하려고 이렇게 큰 건물을 지었는가? 아닙니다.
황제가 천단에 도착하면 제례용 의복으로 갈아입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제사를 지내기 전에 먼저 이 황궁우로 갑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황제는 천신들과 일족입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한 가족이니 당연히 개인적으로 만나 뵙고 인사도 드리고 회포도 풀면서 잘못한 일들을 집안 어르신들에게 고백하기도 하는 겁니다.
이렇게 집안일을 마치면 이제 황제는 인간의 대표로 천신은 신들의 대표로 각자 맡은 임무를 다하기 위해 아까 그 기년전으로 가는 겁니다. 재미있지 않습니까.
(이 친구들... 기와도 청자로 구웠슴다....)
사실 정치에 있어 제의라는 것은 하늘보다도 인간을 향해 있는 경우가 많은 것 아닌가요^^.
하늘의 권위를 빌리기 위한 장치인 셈인데 건물이 이렇게 웅장한 것도, 황궁우라는 신적 영역을 만드는 것도 모두 그런 의미로 보입니다.
(원구단의 정점. 기가 좀 느껴지시나요^^)
그리고 이건 원구단 중앙입니다.
천원지방.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이니 원구단의 형태도 그에 따랐으며 바로 이 둥근 자리가 하늘과 땅이 만나는 지점 되겠습니다. 하늘과 땅이 만나는, 음과 양이 만나서 일으키는 기가 느껴지시나요?
호... 그렇다면 당신도 천신의 일족, 황제의 일가라는 증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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