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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류별 암/갑상선암

[스크랩]초기 갑상선암 치료 한(韓) "수술합시다" 일(日) "지켜봅시다"

by 크리에이터 정관진 2009. 8. 1.

초기 갑상선암 치료 한(韓) "수술합시다" 일(日) "지켜봅시다"

어느 여(女)교수의 황당 체험
한국 여성 갑상선암 사망률 10만명당 1.1명…
일(日)도 1.6명 비슷

서울대 Y(39) 교수는 갑상선암 진단을 받은 지 1년 반이 지났다. 하지만 그녀는 현재 아무런 치료를 받고 있지 않다.

말기(末期)라 치료를 포기한 것이 아니다. 병원측이 갑상선 암 덩어리가 작기 때문에 더 커지는지만 지켜보자고 했기 때문이다. 한국 여성이 많이 걸리는 암 1위인 갑상선암은 워낙 천천히 자라는 일명 '거북이 암'이기 때문에 설사 문제가 되면 나중에 치료해도 생명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녀에게 이런 '모험'을 자신 있게 권한 곳은 한국 병원이 아닌 일본 병원이다. 한국 병원은 당장 수술을 권했지만 그녀는 일본 의료진의 말을 믿고 그 방침에 따르고 있다.

Y 교수가 갑상선암 진단을 받은 것은 작년 2월. 건강검진의 갑상선 초음파에서 1㎝가 채 안 되는 작은 결절(동그란 혹)이 발견됐다. 이때부터 한국과 일본 병원을 오가는 그녀의 '의료 여행'이 시작됐다.

그녀가 처음 찾은 곳은 서울의 유명 대학병원이었다. 거기서 바늘로 세포를 떼어내 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갑상선암 종류 중 유두(乳頭·papillary)암이었다. 갑상선암의 80~90%가 유두암이다. 의료진은 그녀에게 갑상선 전체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수술 후에는 평생 갑상선 호르몬제를 먹어야 한다고 했다. 갑자기 닥친 불행을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그녀는 또 다른 유명 대학병원을 찾았다. 대답은 마찬가지. 세 번째로 찾아간 대학병원도 같은 의견이었다. 그녀가 국내에서 선택할 수 있는 치료법은 갑상선 제거술과 호르몬제 복용뿐이었다.

이후 Y 교수는 국제학술지 의학 논문을 뒤졌다. 그러자 일본 대학병원에서는 자신처럼 갑상선 유두암 크기가 1㎝ 이하인 경우는 수술하지 않고 그저 지켜본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녀는 이 논문을 들고 다시 국내 대학병원을 찾았다. 하지만 이 '당돌한' 환자에게 돌아온 것은 의사들의 역정뿐이었다.

결국 그녀는 일본으로 날아가 도쿄의 '일본 암재단 부속병원'을 찾았다. 그녀를 진찰한 일본 의료진은 대번에 수술은 시기상조라고 했다. 3~6개월에 한번 초음파 검사를 하면서 지켜보자고 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하는 이유가 자세히 담긴 3쪽짜리 설명문을 내줬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일본에서 건강검진으로 초음파 검사를 하면 100명 중 한 명에게서 1㎝ 이하 크기의 유두암이 발견된다. 처음에는 '초기 갑상선암'으로 간주하여 보이는 대로 수술했다. 하지만 다른 암과 달리 작은 갑상선 유두암은 시간이 흘러도 거의 자라지 않고 생명에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설명문은 이렇게 이어진다.

"그 근거로 일본에서 갑상선 외 다른 원인으로 사망한 사람을 조사해보니, 14~28%에서 1㎝ 이하 크기의 유두암이 발견됐다. 이는 곧 그분들이 생존한 동안 아무 증상 없이 모르고 지냈다는 뜻이다. 일본에서 갑상선암 때문에 돌아가신 사람은 전체 암 사망자 23만명 중 0.4%다. 1㎝ 이하 유두암의 99%는 인체에 어떠한 해를 끼치지 않고 잠복 상태로 있으므로 관찰만 해도 무방하며, (당장) 치료가 필요 없는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1㎝ 이하라도 암세포가 갑상선 주변 림프절로 퍼졌거나, 갑상선 밖으로 나와서 성대를 움직이는 신경 등을 침범했을 경우 등에서는 수술이 필요하다고 일본 의료진은 설명했다. Y 교수 케이스는 여기에 해당되지 않았다. 이런 치료 방침은 다른 일본 주요 병원에서도 공통적으로 쓰인다는 점도 알았다. 이에 그녀는 수술을 '과감히' 접는 데 동의했다. 현재는 3~6개월에 한번 초음파 검사만 받고 있다. Y 교수는 "수술로 근본적인 치료를 하는 것이 잘못됐다고 할 수 없지만, 절박한 이유 없이 후유증이 남을 수 있는 수술을 원하지 않았다"며 "한국 병원은 환자들에게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는 것이 아쉬웠다"고 말했다.

왜 한국 병원은 갑상선암을 무조건 수술하는 걸까. 지난 2007년 갑상선을 다루는 국내 내분비내과·외과·핵의학과 등의 교수들이 모여 갑상선암 진료 권고안을 만들었다. 권고안에 따르면, 갑상선암으로 진단되면 크기와 종류에 상관없이 수술하도록 하고 있다. 1㎝ 이하라도 세포 검사에서 암이 의심되면 수술을 권고한다.

서울아산병원 내분비내과 김원배 교수는 "암 치료 방침은 나라마다 다를 수 있다"며 "1㎝ 이하 유두암이라도 수술해보면 약 30%에서 암세포가 림프절로 전이된 케이스가 나오기 때문에 수술을 원칙으로 한다"고 말했다. 림프절 전이가 있으면 재발률이 높아진다고 김 교수는 덧붙였다.

국제의학계에서는 림프절 전이가 있더라도 갑상선암은 치료가 잘 되고, 천천히 자라기 때문에 환자의 장기 생존율에는 변화가 없다는 의견도 있다.

갑상선암은 남자보다 여자에게서 4~5배 많이 생기는데, 한국 여성의 갑상선암 사망률은 인구 10만명당 1.1명이다(2007년). 일본은 1.6명(2006년)으로, 두 나라 간 사망률에 통계학적인 차이는 없다. 갑상선암 환자의 생존율은 95~99%이다.

최근 한국 여성에게 갑상선암이 급증해 현재 여성 암 발생 1위다. 1999년 한 해 신규 환자가 2751명이던 것이 2007년에는 1만4724명으로 5.4배 뛰었다(국민건강보험공단). 갑상선암 발생 자체가 늘었다기보다, 초음파 검사가 보급되면서 갑상선암이 많이 발견된 탓이다. 이들 환자 거의 모두 갑상선 절제 수술을 받았다.

국립암센터 박은철 국가암관리사업단장은 "현재로서는 어떤 치료 방침이 옳다고 주장할 만한 장기적인 연구 데이터가 없다"며 "크기가 작은 갑상선암의 경우 수술로 인한 이득이 큰지 손실이 큰지를 비교하는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