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노성훈 신촌세브란스병원 외과 교수 |
|
|
불규칙한 식사 패턴, 과음, 과식, 스트레스 등으로 현대인의 위장은 하루도 편할 날이 없다. 도대체 위장병 한번 안 앓아본 사람이 누가 있을까? 주위를 돌아보면 아예 위장병을 달고 사는 사람도 수두룩하다.
어느 병원이나 소화기 내과엔 환자가 미어 터지고, 약국은 소화제와 제산제로 장사를 다 한다. 간이나 심장 등 다른 장기들처럼 힘들어도 좀 무던히 참아주면 좋으련만, 위는 조금만 괴로워도 끙끙 앓으면서 “죽겠다”고 아우성을 치니, ‘밥통’ 하나 건사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다. 맵고 짠 음식과 폭탄주를 먹고 마셔야 하는 우리나라 사람에겐 특히 그렇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어젯밤 마신 폭탄주 때문인지, 점심 때 먹은 매운 김치찌개 때문인지 속이 따끔따끔하다.
위에 생기는 병은 크게 위염, 위궤양, 위암으로 대별할 수 있다.
위 점막에 염증 반응이 나타나는 위염에는 급성 위염과 만성 위염이 있다. 흔히 염증이라면 고름이 생기는 것만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 몸에 맞지 않은 물질에 대한 인체의 다양한 반응, 예를 들어 충혈, 부종, 발열(發熱), 통증 등을 모두 염증이라 부른다.
급성 위염은 대체로 아스피린 등 약물, 독주(毒酒), 맵고 짠 음식, 스트레스, 커피, 담배 등에 의해 상복부 통증 또는 소화장애 증상이 갑자기 나타났다 갑자기 사라지는 것으로, 원인이 분명하다. 누구나 폭음한 다음 날이나 진통소염제 등을 복용한 뒤 속이 쓰리고 아픈 것을 경험했을 텐데 이것이 급성 위염이다.
위스키 같은 독주는 위 점막의 모세혈관을 손상시켜 출혈성 급성 위염을 일으키며, 심지어는 커피를 진하게 마셔도 위 점막 출혈이 유발될 수 있다. 또 관절염, 근육통, 심장병 예방 등을 위해 복용하는 아스피린 등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제(NSAID)도 급성 위염을 유발한다. 급성 위염은 위염을 일으킨 원인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음식 등으로 속을 달래주면 길어도 2~3일 내에 낫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맵고 짠 음식이나 독주, 스트레스, 담배 등으로 계속 ‘원인 제공’을 하면 만성 위염으로 진행하게 된다.
만성 위염은 글자 그래도 위 점막의 염증 현상이 사라지지 않고 만성적으로 지속되는 경우다. 급성 위염을 일으키는 독주, 흡연, 맵고 짠 음식, 스트레스 등이 만성 위염의 원인이 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원인은 헬리코박터 파일로리라는 세균이다. 전체 만성 위염의 70~80%가 헬리코박터 파일로리란 세균이 원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위 속에는 위산 때문에 세균이 살 수 없다는 게 통념이었으나, 1983년 호주의 마샬과 워렌 박사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란 세균이 위 점막에 기생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세균은 각종 독소를 내 뿜어 수년 또는 수십년동안에 걸쳐 지속적으로 위 점막 세포를 파괴한다.
당장은 아무런 증상이 없지만 세월이 흐르면 감염자 거의 모두에게서 만성 위염이 생기며, 그 중 일부에게서 궤양이, 또 그 중 일부에게서 위암이 생긴다. 1994년 미국 국립보건원은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가 만성 위염은 물론이고 위-십이지장궤양과 위암 등을 일으키는 원인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따라서 헬리코박터 파일로리를 없애 버리면 이론상 만성 위염과 위궤양, 위암 등에 걸릴 가능성이 크게 낮아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제균(除菌) 치료에 관해선 학자들 사이에 이견이 있다.
제균치료에 적극적인 의사들은 이 세균으로 인한 증상이 있든 없든 무조건 없애 버리는 게 상책이라고 말한다. 물론 제균(除菌) 치료를 받는다고 100% 위염 증상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위 점막의 염증은 없어지거나 약해지므로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암을 예방하려면 음식을 싱겁게 먹고, 스트레스를 잘 관리하며, 술-담배를 줄이는 것보다 제균치료를 받는 게 훨씬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그들은 강조한다.
그러나 보다 많은 수의 의사들은 신중한 치료를 권고한다. 소화성 궤양이 있거나 궤양을 앓았던 사람은 물론 제균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단순한 만성 위염이나 기능성 소화불량증이 있다고 해서 제균치료를 받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인류는 원래부터 이 세균과 공존해 왔으며, 설혹 제균치료를 해도 절반 정도만 위염 증상이 사라지며, 특히 우리나라 사람은 재감염률이 10% 정도로 높으며, 감염자 모두를 치료하려면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간다는 것 등이 그렇게 주장하는 이유다.
우리나라 성인의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감염율은 약 70~80% 정도로, 40~50% 수준인 미국인보다 훨씬 높다. 이 균은 대부분 유아기에 엄마가 음식을 씹어 아기 입에 넣어 주거나, 키스를 하면서 침이 묻어 감염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밖에 술잔을 돌리거나, 여러 사람이 함께 찌개 등을 숟가락으로 떠 먹어도 감염이 될 순 있지만, 확률이 그리 높지는 않은 편이다.
한편 만성 위염은 특별한 증상이 없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자신에게 만성 위염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지내는 환자도 많다. 이들의 위 점막을 내시경으로 살펴보면 위 점막이 빨갛게 부풀어 오른 발적(發赤)이 불규칙하게 분포돼 있거나(표재성 위염), 위 점막의 주름이 1cm 이상으로 굵어져서 마치 융단모양으로 보이거나(비후성 비염), 위 점막이 얇아져서 위 벽의 혈관이 비쳐 보이거나(위축성 위염), 위 점막이 오톨도톨해 져 있으면서 회백색으로 변해있다.
(화생성 위염) 만성위염 환자는 의사의 지시에 따라 금연-절주-저염식-스트레스관리 등 생활습관을 교정해야 하며, 약물치료는 경우에 따라 할 수도 안 할 수도 있다. 위축성 위염이나 화생성 위염이 있는 경우엔 암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정기적으로 내시경 검사를 받는 등 특별히 주의해야 한다.
만성 위염과 비슷한 질환으로 기능성(또는 비궤양성) 소화불량증이 있다. 현대인에게 가장 흔한 위장 장애 중 하나로, 종합병원을 찾는 환자의 절반 이상, 많게는 2/3 정도가 기능성 소화불량증 환자다. 소화불량 증세로 병원에 가면 ‘신경성 위염’이란 얘길 많이 듣는데, 이것이 기능성 소화불량증이다. 궤양과 같은 뚜렷한 원인도 없는데 증상이 나타나며, 특히 사회적으로 스트레스가 많은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많기 때문에, 알아듣기 쉽게 ‘신경성’이라고 설명하지만 반드시 스트레스 때문만은 아니다.
또 이런 환자를 내시경 검사해 보면 만성 위염이 발견되는 경우가 많아 만성 위염이라고 설명하는 의사들도 있는데, 만성 위염이 있다고 이런 증상이 반드시 생기는 것은 아니며, 반대로 만성 위염 없이도 이런 증상이 생길 수 있으므로 만성 위염과는 완전히 다른 병이다. 일반적으로 만성 위염,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 감염, 스트레스, 흡연, 과음, 자극적 음식 등이 기능성 소화불량증을 유발 또는 악화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능성 소화불량증이 있으면 환자들은 밥을 먹지 않았는데도 헛배가 부르거나, 조금만 먹어도 속이 더부룩하면서 상복부가 불쾌하거나, 체한 듯이 소화가 되지 않는 등의 상복부 증상을 겪게 된다. 공복시 속쓰림, 가슴의 통증 등과 같은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지난 1년간 이와 같은 증상이 적어도 12주 이상 진행된 사람 중 혈액검사, 소변검사, 대변검사, 위내시경검사, 초음파검사에서 위, 간, 담낭, 췌장 등에 다른 병이 없는 것으로 밝혀지면 기능성 소화불량증으로 진단한다.
일단 기능성 소화불량증으로 진단되면 적절한 약물 치료와 함께 생활습관을 개선해야 한다. 의사들은 제산제나 위장운동촉진제를, 경우에 따라 신경안정제나 항우울제를 처방하기도 한다. 항우울제 등을 처방하는 이유는 이 병 치료를 위해선 “아무 병도 아니다”는 믿음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 반드시 담배를 끊어야 하며, 술과 커피는 가능한 줄여야 한다. 맵고 짠 음식이나 지나치게 기름진 음식도 삼가야 하며, 과식도 피해야 한다. 의사에게 물어서 아스피린 등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제 사용도 삼가는 게 좋다.
이 병은 쉽게 낫지 않고, 낫는듯 하다가도 자주 재발하는 게 특징이다. 때문에 환자들은 “혹시 암이 아닐까” 걱정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기능성 소화불량증이 암으로 발전하는 일은 결코 없으므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의사가 “암이 아니다”고 하는데도 “의사가 거짓말했거나 오진한 게 아닐까”라고 의심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은데, 이런 사람에겐 증상이 더 심하게 나타나며, 그 때문에 보다 유명한 의사를 찾아 자꾸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게 된다. 사서 고생을 하는 셈이다. 따라서 기능성 소화불량증으로 진단되면 쓸데없는 걱정은 접어 두고, 의사의 지시에 따라 약을 복용하고 생활습관을 개선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소화성 궤양이란 위나 십이지장의 점막층이 둥그렇게 또는 선 모양으로 근육층에 까지 패여 있는 상태를 말한다. “위가 헐었다”고 말하면 이를 궤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궤양은 단순히 위 점막이 헐은 게 아니라 제법 깊은 구멍이 나 있는 상태다. 의사들은 대부분 ‘미란성 위염’인 경우 위가 헐었다고 표현하는데, ‘미란’이란 위 점막이 깊게 패이지 않고 살짝 벗겨져서 출혈이 있는 상태를 말한다.
미란이 심해지면 위 점막이 마치 문어발의 빨판과 같은 모양으로 변하다 궤양으로 발전할 수 있다. 따라서 의사가 “위가 헐었다” 또는 “위에 구멍이 났다”고 대충대충 말할 때는 미란성 위염인지 소화성 궤양인지 정확하게 알려달라고 요청해야 한다. 무슨 병인지 분명이 알아야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앞서 설명했듯 위-십이지장궤양을 소화성 궤양이라 부르는 이유는 위산 등이 위 점막까지 녹여 버리기 때문이다. 흔히 “술을 많이 마셨더니 위에 구멍이 났다”고 말하는데, 위에 구멍을 내는 것은 술과 같은 외부의 공격 인자가 아니라 위산, 펩신, 담즙산, 췌장효소 등과 같은 우리 몸에서 정상적으로 분비되는 것 들이다.
평상시엔 위 점액이나 위 점막에서 분비되는 프로스타글란딘 등이 위산 등으로부터 위벽을 방어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 위산 등의 공격력이 점액 등의 방어력보다 훨씬 강해질 때, 또는 공격력은 그대로인데 방어력이 약해졌을 때 궤양이 초래된다.
이처럼 공격 대 방어의 균형을 깨뜨려 궤양을 일으키는 요인으로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 아스피린 등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제, 담배나 커피 등 기호품, 스트레스, 유전적 소인 등이다.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은 궤양의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전체 궤양 환자의 80% 정도가 이 세균 감염자다. 이 세균은 위산이 분비되는 위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암모니아를 분비함으로써 주변을 알칼리성으로 중화(中和)시키는데, 이 때문에 위 점막의 방어력이 약해져 궤양이 생기게 된다.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제나 흡연, 스트레스 등도 위나 십이지장 점막의 방어력을 떨어뜨려 궤양을 일으키게 된다. 소화성 궤양 중 특히 십이지장 궤양은 유전적 소인이 있으므로 가족 중 환자가 많은 사람은 조심해야 한다.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술보다 담배가 궤양 발병에 더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다. 흡연은 소화성 궤양을 유발하며, 지속시키며, 재발케 하는 중요한 원인이다. 치료를 해서 궤양이 없어졌다 하더라도 담배를 계속 피우면 대부분 1년 이내에 궤양이 재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궤양 환자는 반드시 금연해야 한다.
그러나 일반인의 생각과 달리 음주는 궤양과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다. 물론 술을 많이 마시면 위산 분비가 촉진되고 급성 위염이 생기지만, 그것이 궤양으로 연결되는 일은 거의 없다. 알콜중독자라고 해서 정상인보다 궤양이 많지 않다는 게 그 증거다. 따라서 “술을 많이 마셔 위가 ‘빵꾸’ 났다”고 말하기 보단 “담배를 많이 펴서 위에 구멍이 났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다.
소화성 궤양 환자는 공복(空腹)시 가슴 정중앙 부위나 우상복부가 마치 칼로 베거나 찌르는 것처럼 아프지만, 물이나 음식을 섭취하면 통증이 가라앉는 게 특징이다. 이 때문에 새벽에 복통이 심해 잠에서 깨는 경우도 흔하다. 이같은 궤양이 심해지면 위의 근육층까지 완전히 구멍이 뚤리는 천공(穿孔), 위 혈관이 터져서 하혈(下血)이나 토혈(吐血)을 하는 위 출혈, 십이지장 등이 막히는 장폐색(腸閉塞) 등의 합병증이 생길 수 있다. 또 위궤양이 낫지 않고 오래 지속되면 위암이 생길 수도 있다.
따라서 소화성 궤양 진단을 받으면 당장 담배를 끊고 치료를 받아야 한다.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이 발견됐다면 1주일 정도 항생제를 복용하는 제균치료를 받아야 하며, 의사 처방에 따라 궤양 치료제와 제산제 등도 복용해야 한다. 심장병 예방 등을 위해 아스피린 등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제를 복용하는 환자들은 의사와 상의하고,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치료기간 동안이라도 복용을 중단하는 게 좋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반드시 담배를 끊어야 하며, 커피나 술도 가급적 자제하는 게 좋다.
맵고 짠 음식은 삼가는 게 좋으나, 그렇다고 죽을 먹을 필요는 없다. 딱딱한 음식을 먹어도 위 속에 들어가면 죽처럼 변하기 때문이다. 우유와 관련해선, 제산제 역할을 하므로 마시는 게 좋다는 의견도 있고, 오히려 위산 분비를 자극하므로 마시지 않는 게 좋다는 의견도 있다.
한편 소화성 궤양 중 위궤양은 비교적 나이가 들어서, 십이지장 궤양은 비교적 젊은 나이에 발병한다는 점이 다르다. 십이지장 궤양은 거의 100%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 때문이지만, 위 궤양은 약 80% 정도만 이 세균 때문이다. 또 위 궤양은 암으로 변할 수 있지만 십이지장 궤양은 암으로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공복시 통증 등은 십이지장 궤양일 경우 더 심하다.
다음은 위암에 대해 알아보자.
위암은 일반적으로 위 점막 세포가 끊임없이 자극-손상을 받아 위 점막이 위축되거나(만성 위축성 위염), 위 점막 세포가 소장이나 대장의 점막 세포와 비슷한 모양으로 바뀌거나(장상피화생-腸上皮化生), 위에 생긴 양성 종양 세포가 점점 암 세포를 닮아가는(이형성-異形性) 단계를 거쳐 위암으로 발전한다. 따라서 만성위축성 위염 등을 위암의 ‘전암병변(前癌病變)’이라 한다.
‘병변’이란 병이 원인이 되어 일어나는 생체의 변화를 뜻하는 말로, 따라서 전암병변이란 위암이 되기 직전의 단계라는 것이다. 그러나 위-십이지장 궤양은 전암 병변이 아니다. 앞서 설명한 대로 십이지장 궤양은 암으로 변하지 않고, 위 궤양도 암이 되는 경우가 흔치 않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만성 위축성 위염이나 장상피화생 등의 전암 병변이 있다고 모두 위암으로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만성 위축성 위염 환자의 10% 정도가 위암에 걸리는데, 위축성 위염이 암이 되는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16~24년 정도다. 이것이 암으로 되는 속도와 가능성은 젊을 수록 크므로 젊은 사람에게서 위축성 위염이 발견되면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그러나 60세 이상 노인에게서 발견된 위축성 위염은 위암이 될 가능성도 낮은데다, 설혹 위암이 된다고 해도 20년 이상 걸리므로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장상피화생은 위 점막의 분비선이 없어지고, 위 점막에 작은 돌기같은 것이 무수히 생기며, 붉은 점막이 회백색으로 바뀌는 현상으로 노인에게서 비교적 많이 관찰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위 내시경 검사를 할 때 조직검사를 해 보면 약 20~30%에게 장상피화생이 발견된다. 이들은 1~2년에 한번씩 내시경 검사를 해서 같은 부위의 조직 검사를 시행해야 한다.
위 속의 작은 혹, 즉 위 용종은 양성 종양이다. 때문에 크기가 작은 경우엔 제거하지 않고 내버려 두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현재는 양성이지만 어느 순간 암세포로 변화할 지 모르므로, 가능한 제거해서 용종 세포가 암 세포를 닮아가고 있는지 조직검사를 해 봐야 한다. 특히 크기가 2cm 이상인 경우엔 반드시 제거해서 조직검사를 해야 한다. 만약 조직검사 결과 암 세포를 닮아가는 과정에 있다면, 즉 이형성으로 밝혀진다면 위암에 준해서 치료를 받는 게 좋다.
정상적인 위가 위축성 위염 등의 단계를 거쳐 위암으로 발전하는 데는 여러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첫째는 개인의 생활습관이다. 특히 식생활 습관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 짜고 매운 음식, 불에 탄 음식, 뜨거운 음식을 좋아하면 위암에 걸릴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진다. 잦은 회식이나 폭음, 흡연, 심한 스트레스도 위암 발병과 관계가 있다.
둘째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으로, 감염자의 1~2%는 만성 위염을 거쳐 위암으로 발전한다.
셋째는 가족력이다. 전체 위암 환자의 10% 정도는 가족력(家族歷)이 있다. 가족력이 있다는 말은 유난히 위암에 잘 걸리는 집안이 있다는 것으로, 직계 가족 중 2명 이상의 환자가 있을때 가족력이 있다고 말한다. 가족은 식성이 거의 비슷하고, 심지어 헬리코박터균도 공유하는 등 생활환경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넷째는 유전성으로, 전체 환자의 1% 정도는 유전성 위암 환자다. 이들은 부모로 부터 위암 유전자를 물려받기 때문에 자신의 생활습관 등과 무관하게 위암이 발병한다.
따라서 위암 예방을 위해선 먼저 입맛을 바꾸고, 건전한 생활습관을 갖도록 노력하고, 필요한 경우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제균치료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엄격하게 말하면 이같은 노력은 위암 가능성을 다소 줄일 뿐 예방하지는 못한다. 위암은 수 십년 동안 수 많은 발암인자들이 어우러져 발병하므로, 위암에 걸리고 말고는 인간의 노력으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모든 암이 그렇지만 위암은 특히 ‘2차 예방’이 훨씬 중요하다. 어짜피 암 발병 자체를 예방할 순 없다면 내시경 검사 등을 정기적으로 받아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암이 악화된 상태로 발견되는 것만이라도 예방하게 암을 조기에 발견하자는 것이다. 그것이 2차 예방이다.
위암은 1기에 발견되면 95% 이상, 3기 초에만 발견되도 60% 정도 완치되지만 암세포가 온 몸에 전이된 상태로 발견되면 수술도 못하고 목숨을 잃는 경우가 많다. 정기검진만 철저히 받으면 대부분 조기 위암 상태로 발견되기 때문에 목숨을 잃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사망하는 사람은 대부분 정기검진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다. TV 드라마 등에선 이런 사람만 주인공으로 등장시킴으로써 위암에 대한 그릇된 인식의 확산을 부채질 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속쓰림, 소화불량, 구토, 통증 등을 위암의 증상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이 애매모호한 증상을 판단 근거로 삼아서는 안된다. 노성훈 교수가 위암 환자 1000명을 조사한 결과 7%는 증상이 전혀 없었고, 22%는 속 더부룩함 등 애매모호한 증상이 있었고, 51%는 명치 부위의 통증이 있었고, 15% 정도는 체중이 감소했다.
그러나 무증상이나 애매모호한 증상은 물론이고 통증이 나타나는 경우라도 위-십이지장 궤양으로 인한 통증과 구분이 안되기 때문에 위암으로 의심될 만한 뚜렷한 증상이 나타나 병원을 찾은 경우엔 십중팔구 늦게 된다. 따라서 30대에 접어들면 정기검진을 시작하는 게 좋다. 위암은 나이가 들수록 발병률이 높아지므로 과거엔 40대 이후 정기검진을 권고했지만, 요즘은 30대 환자도 10% 정도나 된다.
현재 우리나라의 조기 위암 발견율은 30~40% 정도. “위암에 걸리면 죽는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아직도 위암 환자의 60~70%가 전이된 상태로 발견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은 1960년대부터 국가 차원에서 정기검진 사업을 시행해 현재 조기 위암 발견율이 60~70%를 웃돌고 있다. 수년전부터 국가가 저소득층에 대해 위암 등 5대 암 무료 검진 사업을 시작한 것은 만시지탄이나마 다행이다.
일단 암 진단을 받은 경우엔 당황하지 말고 의사를 전적으로 신뢰해야 한다. 암 세포가 온 몸에 전이된 경우라도 적절히 치료받으면 완치를 기대할 수 있으므로 지레 포기하지 말고 의사의 치료방침에 따라야 한다. 수술, 항암제 치료, 방사선 치료 등을 통해 전이된 위암도 완치할 수 있으며, 설혹 완치가 불가능하더라도 환자의 생존기간을 크게 늘릴 수 있다. 그런데도 지레 포기하고 민간요법 등에 의지하다 ‘희망대로’ 사망하는 환자들이 무수히 많다. 환자들은 제발 고집을 피우지 말고 의사를 믿어야 한다.
노성훈 교수는
노성훈 교수는 외과의사가 ‘체질’이다. 약간 벗겨진 머리와 부리부리한 눈 등 외모에서부터 외과가 아닌 다른 의사를 상상하기 힘들다. ‘외과의사’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술. 지금은 건강을 위해 자제한다지만 과거 그의 주량은 그야말로 ‘두주불사(斗酒不辭)’였다. 기자도 수년전 그의 ‘젊은 제자’와 셋이서 소주병을 열 개 이상 넘어뜨린 기억이 있다.
그러나 그가 ‘체질’인 진짜 이유는 수술실에 있을 때 제일 행복하고 평화롭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노 교수는 외래 진료, 회진 등을 하면서도 한번에 두세시간씩 걸리는 위암 수술을 매주 14~16건씩 한다. 하루 3~4건의 수술을 소화해 내는 그에게 “체력에 부치지 않냐”고 묻자 “은은한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수술방에만 들어서면 오히려 힘이 솟는다”고 말했다. 그는 매년 600건 정도 위암을 수술하는 ‘초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의 수술법은 좀 독특하다. 그는 수술 때 칼 대신 전기소작기를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전기소작기는 출혈 부위를 지져 지혈하는 목적으로 사용하는게 보통이지만 노 교수는 자르고 지지는 수술의 전 과정을 전기소작기 만으로 해결한다. 그 바람에 4시간 이상 걸리는 수술시간이 2시간 정도로 단축됐고, 출혈이 적기 때문에 수혈을 받는 환자도 5% 미만에 불과하다. 회복이 빨라 수술 뒤 1주일이면 퇴원이 가능하다.
한때 노 교수의 스승이었던 일본 국립 암센터 요네무라 부원장은 전기소작기를 사용해 노 교수가 하루에 4명을 연속해 수술하는 것을 보고 “믿을 수 없는 손 놀림”이라고 감탄하며 제자들을 보내 수술법을 배우게 했고, 지금도 많은 일본인 의사가 그에게 배움을 청하고 있다. 위암 수술 선진국인 일본에 기술을 ‘역수출’하는 셈이다.
노 교수는 또 환자들의 편의를 위해 수술 뒤 환자에게 달아야 하는 콧줄과 배액관도 없앴다. 수술 후 분비액과 가스 등을 빼 내기 위해 코에 줄을 넣어 수술 부위까지 연결시키는 콧줄이나 수술 부위에서 생긴 고름을 빼 내기 위해 환자의 배에 심는 배액관 등은 환자에겐 고통을 주고 입원 기간을 연장시키는 주범이었다. 노 교수는 수술 뒤 환자들이 무엇을 불편해 하는지를 묻고, 궁리한 끝에 이같이 ‘독특한’ 수술법을 개발해 냈다.
수 많은 환자를 수술한 그의 임상경험은 논문을 통해 학계의 정설로 굳혀져 간다. 2001년 뉴욕에서 열린 4회 국제위암학회에서 13편의 논문을, 2003년 로마에서 열린 제5회 학회에선 무려 18편의 논문을 발표하는 ‘괴력’을 보였다. 로마 학회에선 ‘위암 적정 수술법 마련을 위한 8개국 대표 심포지움’에 한국 대표로 참가하기도 했다.
1954년생인 노 교수는 경동고등학교와 연세의대를 졸업했으며, 1986년부터 연세의대 외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미국 국립암연구소와 일본 가나자와대학 방문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대한암학회 이사, 대한위암학회 학술위원장 등을 맡고 있다. 연대의대 올해의 교수상(2000년), 세브란스병원 최우수 교수상(2000년), 유한학술상(2002년) 등을 수상했다. 학계 원로인 이우주 전 연세대 총장이 그의 장인이며, 연세의대 신경과 이병인, 산부인과 이병석 교수가 그의 처남이다. |
|
|
위는 어떻게 생겼나
먼저 위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자. 사람이 먹은 음식은 입-인두-식도-위-소장-대장-항문으로 이어지는 약 7m의 관을 통과하면서 분해되고 흡수되고 배출되는데 이중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게 위다. 위는 먹은 음식을 맷돌처럼 잘게 분쇄하고, 위산으로 녹여 죽처럼 묽게 만드는 역할을 담당한다.
위산은 매끼 식사때마다 1리터 정도씩, 하루 최대 5리터까지 분비된다. 위산의 산도는 1.5~2 pH 정도로 마치 무쇠라도 녹일 만큼 강력해서 음식에 섞여 들어온 각종 세균과 이물질들로부터 인체를 막아내는 역할을 한다. 구토한 찌꺼기가 더럽고 지저분해 보이지만 사실은 거의 무균 상태로 깨끗한 것이다.
위는 점막층, 점막하층, 근육층, 장막층 등 네개의 층(層)으로 이뤄져 있는 매우 두꺼운 장기다. 제일 안쪽 점막층에선 위산, 점액, 펩신(소화효소) 등을 분비한다. 위산이 무쇠도 녹일 만큼 강력한데도 위가 녹지 않는 이유는 점액이 위벽을 미끈미끈하게 감싸고 있기 때문이다.
위염이나 위궤양은 물론 대부분의 위암도 점막층에서 생기므로 내시경 검사를 정기적으로 받아 점막에 병이 있는지를 잘 관찰해야 한다. 위에는 5개 이상의 큰 동맥이 연결돼 있어 풍부한 혈액을 공급받는데, 이 때문에 염증이나 궤양이 생기더라도 신속하게 치료가 되며, 위 수술 뒤에도 신속하게 아문다.
위의 입구와 출구에는 각각 ‘분문부’와 ‘유문부’라는 일종의 밸브가 있어서 위 속의 내용물이 윗쪽 식도나 아랫쪽 십이지장으로 넘어가는 것을 방지하게 된다. 만약 분문부가 고장이 나 위산이 식도로 거슬러 올라가면 타는 듯한 통증을 느끼는데, 이를 ‘위 식도 역류(逆流)’라 한다.
한편 위는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지배를 아주 강하게 받는다. 온 몸을 긴장시키는 교감신경이 강하게 작용하면 위가 잔뜩 움추려 들어 잘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소화가 힘들어 진다. 잔뜩 긴장했을 때 음식이 먹히지 않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때로는 정신적 스트레스만으로 위 출혈을 일으킬 정도로 위는 스트레스에 민감하다. 반대로 맛 있는 음식을 보거나, 음식 냄새를 맡으면 부교감신경 중 미주신경이 강하게 작용해서 위산이 다량 분비되면서 위의 수축운동이 촉진되고, 십이지장과 연결된 유문부가 열려 소화 작용이 활발하게 일어난다.
그러나 미주신경이 너무 강하게 발달하면 위산이 지나치게 분비돼 위벽이 상처를 입게 되는데, 이를 ‘소화성 궤양’이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