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이 예술을 만나면> 암 치료를 받고 계신 환자나 보호자 중, 심리적 도움이 필요한 분들을 만나 뵙기 위해 미술치료사인 저는 병원 또는 집으로 방문을 드립니다. 집으로 방문할 때에는 환자와 보호자의 일상생활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으며 저에게 좀 더 빠르게 마음을 열어주시기도 합니다. 어린 환자를 돌보는 어머니를 만나러 댁에 들리면, 어머니들은 환자에게 밥과 약을 먹인 뒤, 아이와 놀아주고 집을 청소하며 많은 일들을 감당하고 계십니다. 집에 환자가 있는 경우 거실은 입원실이 되며 식탁은 모든 약들과 많은 기록을 하는 준비대가 되곤 합니다. 이 공간은 집이기도 하지만 돌봄의 공간이 되기도 하는 것이지요. 아이가 잠들자, 보호자분은 드디어 자신의 마음을 돌보는 시간을 갖습니다. 지난주 아이가 어땠는지도 시작해서 자녀가 아프기 전 시간을 그리워하는 이야기들과 자신의 돌봄이 혹시 부족하지는 않은지에 대한 자신을 점검하는 이야기로 연결됩니다. 아픈 아이를 돌보는 엄마는 마음은 쉬는 것조차 어렵습니다. 하지만 저는 천천히 몸과 마음이 쏠려있는 환자를 향한 보호자의 마음을 자신을 향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기다려드립니다. 그러면 보호자들은 드디어 자신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습니다. 후회되는 것, 앞으로의 일들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정말 많이 말씀하시는 것들은 “자녀가 아프게 된 뒤에 삶의 모든 것이 조심스러워졌고 작은 일에도 자책하게 된다”입니다. 이렇게 자녀를 돌보는 보호자를 위한 미술치료에서의 핵심은 자녀를 향한 다양한 감정을 안전하게 표현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더불어 자신을 향한 감정 또한 표현할 수 있게 하는 겁니다. 이러한 감정은 말로 표현하는 것보다 다양한 매체와 색으로 표현하는 것이 통찰에 도움이 됩니다. 사람의 감정은 다양한 색과 방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니 나를 향한 감정, 환자인 자녀를 향한 감정, 때로는 환자가 아닌 또 다른 자녀를 향한 감정, 남편을 향한 감정 등 하나의 감정이어도 대상에 따라 그 감정의 빛깔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이렇게 감정을 펼쳐놓고 표현하고 이야기 나누다 보면 차마 말하지 못했던 깊은 속마음을 알아차리기도 하고 때로는 달라지는 상황이 없다 하더라도 시원한 해방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어느 날 자신이 정말 하고 싶었던 것이 뜨개질이라며, 재료를 사다 놨다고 합니다. 아이가 자는 동안에 무언가 만들어 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시며, 저 역시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에 대해 격려를 표했습니다. 잠시 방에 들어가서 뜨개질 재료를 찾아 나오신 보호자는 매우 당황스럽고 다소 짜증이 나는 표정이었는데요. 고급스럽고 사랑스러운 파스텔 톤의 모든 실이 꼬이고 엉켜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마도 아이를 돌보느라 급한 상황에 풀었다가 다시 넣기를 반복하면서 점점 더 엉켜버린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내 옆에 앉아서 실타래를 풀어 보려 하다가 곧장 눌러놨던 화를 터트리셨습니다. “이거 완전히 내 인생 같잖아. 진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내 인생 같아”라며“다시는 뜨개질하겠다는 말 안 하겠다”고 말하며 다시 봉지를 닫아버리려 했습니다. 자고 있던 아이가 깨니 보호자는 실을 거실에 둔 채 침대로 달려갔습니다. 제가 “혹시 괜찮으시면 이걸 좀 풀어도 될까요?”라고 물으니, 보호자는 매우 냉소적으로 “너무 애쓰지 마세요, 선생님. 그런다고 내 삶이 뭐가 달라지지는 않으니까요”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거실에서 환자가 아이를 돌보는 그 시간 동안 앉아서 실의 끝을 찾고 엉킨 부분은 잘라내어 20분 만에 실을 정리했습니다. 아이를 달래면서도 치료사가 앉아서 묵묵히 실타래를 푸는 것을 지켜보던 보호자도 나중에는 미소를 지어주며 응원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실이 각각 색별로 준비가 돼, 뜨개질을 시작할 수 있는 상태가 됐습니다. 보호자는 “와 선생님 짱이다”고 말씀해 주셨고 한참을 엉킨 실이 풀려 다시 무엇인가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상태가 된 실을 바라보았습니다. 지금 그 보호자는 아이를 위한 목도리를 뜨고 계십니다. “이미 입춘이다”고 말씀하시며 웃음을 지으셨지만, 내년 혹은 내 후년 아픈 자녀가 회복됐을 때, 눈사람을 만들 때, 목에 둘러줄 수 있는 솜사탕 같은 색의 보송한 목도리를 준비하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혼자 못 푸는 실타래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에는 도움을 요청하세요. 도움을 청하는 것도 능력입니다. 주변에 내 자신을 도울 자를 찾아보세요. 엉킨 실타래를 보면서 꼬여버린 내 인생 같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실타래가 풀리듯이 그 꼬였다고 생각했던 인생도 풀리는 날이 있습니다. 엉킨 것에 멈추지 말고 꼬였다고 생각되는 것에 멈추지 마세요. 인생에 길을 내고 속도를 내지 못한다고 해도 천천히 풀어낼 수 있습니다. 엉켰던 실타래로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들 수 있습니다. 지금은 엉키고 꼬여버린 실타래같이 느껴지는 나의 인생일지라도 “봄날에 입을 수 있는 카디건이 될 꺼야”라고 조용히 이야기해주세요. 지금의 모습이 끝이 아닙니다. 내일을 여는 희망을 스스로에게 선포해주세요. 찾아보면 옆에서 그 실타래를 같이 풀어줄 수 있는 전문가가 계실 수 있습니다. 출처 : https://health.chosun.com/site/data/html_dir/2025/02/04/2025020402405.html |
출처: 크리에이터 정관진 제1군단 원문보기 글쓴이: 니르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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