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에 위치한 공씨책방은 많은 이들이 즐겨 찾고 있는 중고책방입니다. 1972년 경희대 앞에 처음 문을 열었다가 1995년부터 서대문구 신촌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지난 2014년에는 서울시로부터 미래문화유산으로 지정받기도 했죠. 하지만 이런 공씨책방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지난해 8월 옛 건물주가 건물매각을 이유로 임대차계약 해지를 통보하면서 공씨책방의 위기는 시작되었습니다. 공씨책방은 건물주를 설득하려고 했으나 돌아온 대답은 책방을 계속 운영하고 싶으면 월 임대료를 두배로 올려달라는 요구였습니다. 지난 해 9월에 새로 바뀐 건물주 역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새 건물주는 기존 월 임대료 130만원의 두 배 이상인 300만원으로 임대료를 올려주거나 퇴거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신촌에 위치한 공씨책방 / ⓒ 정책공감
공씨책방처럼 도심 노후 지역이 재개발돼 활기를 띠면 주거비나 임차료도 오르기 마련인데요. 이때 오른 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거주민이나 상인들이 반강제적으로 해당 지역을 떠나게 되는 현상을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말합니다. 홍대, 삼청동, 가로수길, 그리고 최근 젊은이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경주의 카페 밀집지역인 ‘황리단길’까지,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는 지역의 소상공인들과 거주민들은 젠트리피케이션으로 감당하기 힘든 변화의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서울 마포구 망원동 주민들이 '망리단길 부르지 않기' 운동을 펼치고 있는 것도 젠프리피케이션에 대한 불안감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도시 문제에 맞선 출판사 ‘문학중심 유음’의 이야기
젠트리피케이션 문제와 관련, 공씨책방 문제 해결을 위해 책방 단골들인 김보민씨와 정현석씨, 지하나씨, 최창근씨 등이 출판사 ‘문학중심 유음’을 설립한 것도 주목할 만한 움직임입니다. 문학중심 유음 출판사의 발행인 정현석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더 이상 공씨책방만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 모두가 도시 문제의 당사자라고 생각했습니다.
- 정현석 대표 -
문학중심 유음 발행인 정현석씨 / ⓒ 정책공감
Q.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유음 출판사에서 발행인을 맡고 있는 정현석입니다. 원래는 소설을 계속 써오다가 ‘문학이나 출판으로도 제가 느끼고 있는 여러 사회적 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고 올해 3월 뜻이 맞는 동료들과 함께 유음이라는 출판사를 만들어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Q. 출판사 ‘문학중심 유음’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문학중심 유음’은 문학을 하는 동료들이 모여 올해 3월에 세워진 출판사인데요. 저희가 관심을 두고 들여다보는 사회적 문제가 젠트리피케이션 등 도시문제입니다. 개인으로도, 출판사로서도 도시문제의 당사자라는 생각을 하게 되어 관심 갖게 되었죠. 가령 매년 출판 불황이라는 말과 함께 ‘독자들이 책을 안 산다.’ ‘책을 읽지 않는다’라는 말이 자주 들려오는데 저희는 젠트리피케이션이나 부동산 문제도 그 이유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했어요. 자주 이주를 하게 될 경우, 이삿짐 중 난처한 짐 중 하나가 ‘책’이잖아요. 부피도 크고, 무겁고, 그렇다고 버리기도 곤란하니까요. 특히 도시에 사는 청년들은 주거 상태가 불안정해 1, 2년에 한 번씩 이사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상황에서 책을 보관하는 공간을 확보하는 일도 더욱 부담스럽죠. 때문에 출판사로서도 도시 문제를 꾸준히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왼쪽부터 지하나 디자이너, 최창근 편집인, 정현석 발행인, 김보민 편집인 / ⓒ 시사 IN
Q. 출판사 ‘문학중심 유음’이 세워진 계기가 어떻게 되나요?
공씨책방이 퇴거명령을 받은 이후 동료들을 만나게 됐어요. 현재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홍대, 이태원, 가로수길 등 지역을 중심으로 해 다루고 있는데요. 지역이 활성화되지 않은 곳에서도 분명 발생할 수 있는 문제거든요. 저희는 공씨책방 사태를 통해 내가 사는 지역에서도 발생할 수 있는 문제라 생각했죠. 또, 젠트리피케이션의 당사자는 임차 상인뿐만 아니라 그 공간을 자주 찾던 이용자들까지 포함된다고 생각합니다. 언론에서는 임차 상인들의 이야기에 집중하지만, 그 이면에는 이 공간에서 추억을 쌓고, 이 공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숨어있어요. 때문에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이야기할까 고민하다 ‘문학중심 유음’ 출판사를 세우게 됐습니다.
신촌에 위치한 공씨책방 내부 모습 / ⓒ 정책공감
Q. 대표님에게 있어서 공씨책방은 어떤 의미인가요?
저는 공씨책방이 퇴거명령을 받았을 때 신촌에 거주하고 있었어요. 공씨책방과 5분 정도의 거리였는데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상가 젠트리피케이션, 주거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나누기는 하지만 저희 동네에서 벌어지다 보니 앞으로 내가 마주할 문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죠. 또, 공씨책방을 통해 말없이 쫓겨나는 가게들을 대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내쫓기지 않아도 될 임차인, 권리금을 빼앗길 이유 없는 임차인 등 젠트리피케이션으로부터 임차인을 보호하기 위해 ‘문학중심 유음’은 ‘젠트리피케이션 대응 매뉴얼’을 제작했습니다. 젠트리피케이션 대응 매뉴얼은 임차인이 쉽게 꺼내볼 수 있도록 7단 양면 접지 형태로 제작되었는데요. 매뉴얼에는 ‘다음 번 계약 갱신은 없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월세를 억 소리 나게 올려달라고 했을 때’ 등 구체적인 상황의 대응 법과, 이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지침 등이 담겨있죠.
Q. 대응 방안으로 젠트리피케이션 매뉴얼을 제작한 이유가 있나요?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임차인들이 쫓겨나는 일들이 빈번합니다. 건물주들은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을 근거로 이야기하는데요. 하지만 생계에 쫓겨 바쁜 임차인이 시간을 내 법률 공부를 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또,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에 대한 책이나 칼럼을 찾아 읽는 것도 시간이 부족하죠. 그래서 임차인이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매뉴얼을 제작하게 됐습니다.
젠트리피케이션 대응 매뉴얼 / ⓒ 정책공감
Q. 젠트리피케이션 대응 매뉴얼 제작 과정이 어떻게 되나요?
젠트리피케이션 대응 매뉴얼은 저희 ‘유음’과 ‘구본기생활경제연구소’, ‘디자인 스튜디오 둘셋’의 합작품이에요. 원고는 '구본기생활경제연구소'의 구본기 소장님이 작성해주셨어요. 저희는 원고를 받아 딱딱한 법률용어를 쉬운 말로 고치고 글도 최대한 줄였죠. 또 매뉴얼 한켠에는 상가법 근거조항을 적고, 다른 한켠에는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관련 기관의 연락처를 넣었어요. 편집이 완료된 원고를 ‘디자인 스튜디오 둘셋’에서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쉽도록 디자인했습니다. 순수 제작기간으로 45일 정도 소요됐던 것 같아요.
Q. 대응 매뉴얼에는 구체적인 상황과 대응 방법이 담겨있는데요. 임차인이 겪는 상황들을 어떻게 구성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매뉴얼에 담긴 상황은 구본기 소장님이 상담을 하며 자주 겪은 사례들로 구성했어요. 예를 들면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에서 임차인이 월세를 3개월 이상 연체하면, 임대인은 남아 있는 계약기간과 상관없이 임대차계약을 해지할 수 있어요. 이를 노리고 임대인이 월세 받는 계좌를 막는 경우가 있죠. 또, 건물을 새로 매입하며 새로운 건물주가 계약기간이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계약을 요구하거나, 월세를 비상식적으로 높게 올려달라고 할 때 등 임차인들이 주로 겪는 상황들로 구성했습니다.
앞서 말한 계좌를 막아 연체를 유도하는 사례는 디자인 스튜디오 둘셋이 겪었던 상황이기도 해요. 채권자가 채무변제를 받지 않을 경우, 그러니까 집주인이 월세 수령을 거부할 경우, 공탁소에 공탁해 채무를 면하는 변제공탁 제도로 월세 연체를 막았죠.
Q. 매뉴얼을 받아 본 사람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쉽게 설명되어 있는 매뉴얼 덕분에 몰랐던 부분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많이들 말씀해주세요. 최근에 계약만료 당일 건물주로부터 계약 갱신을 하지 않겠다고 통보받은 임차인이 구본기생활경제연구소에 상담하러 오셨는데요. 사실 계약 갱신 거절의 통지는 임대차 계약만료일 6개월 전부터 1개월 전 사이에 해야 해요. 이때 거절 통지를 하지 않았다면 묵시적인 계약 갱신으로 1년이 연장됩니다. 이런 이야기를 대응 매뉴얼과 함께 소개해드리니 쉽게 이해하시고 안심하고 돌아가셨다고 해요.
Q. ‘젤리와 만년필’이라는 문예지도 발행하고 있는데요, 고양이의 시선으로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를 다루는 게 특이해요.
도시문제를 좀 더 부드럽게 풀어내려는 목적으로 '젤리와 만년필'을 발행하고 있어요. ‘젤리와 만년필’에는 4마리의 고양이가 등장해요. 주거 문제로 스트레스받는 주인에게 학대를 당하는 고양이, 반복적으로 유기를 당하는 고양이, 도시가 발전하며 새로운 영역을 찾아가야 하는 고양이 등 고양이들 자신의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최대한 고양이의 입장에서 이야기하려고 했어요. ‘젠트리피케이션이 나쁘다’, ‘도시 문제가 나쁘다’라는 직설적인 메시지보다는 도시에서 고양이의 힘든 삶을 표현하며 독자들이 한번 더 생각해볼 수 있게끔 구성했습니다.
문학중심 유음의 반려묘 유음이, 화음이 / ⓒ 문학중심 유음
고양이도 도시에서 함께 살아가지만,
도시가 구성되는 과정에서 고양이의 입장은 완전히 배제되잖아요.
이 점에서 고양이도 도시 문제의 당사자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 정현석 대표 -
Q. 앞으로 ‘유음’의 행보는 어떻게 될까요?
일단 9월에 발행한 젠트리피케이션 대응 매뉴얼을 더욱 많은 임차인들이 받아볼 수 있게끔 하는 것이 목표고요. 이태원, 해방촌 등에는 외국인 임차인들이 많아요. 그들은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에 대해 더 모르고 계시거든요. 그래서 외국인 임차인을 위한 영문판 매뉴얼을 제작할 계획입니다. 또, 도움 받을 수 있는 단체나 기관에 통역이 가능한 분이 없다고 알고 있는데 통역사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이후에는 주거 젠트리피케이션 관련해서 집주인에게 어떤 의무가 있는지, 계약할 때 유의 사항 등을 알기 쉽게 정리해 매뉴얼을 제작하려고 합니다.
Q. 정부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을 막기 위해 가장 우선적으로 실행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개인적으로 국회는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을 개정하고 정부에서는 시행령을 고쳐줬으면 좋겠습니다. 환산보증금을 초과하는 임차인은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중 일부만 보호받을 수 있는데요. 환산보증금의 계산방법은 (월세 X 100) + 보증금입니다. 현재 월세가 조금만 높아도 초과할 수 있는 기준이죠. 이러한 환상보증금의 기준은 대통령령으로 고칠 수 있습니다. 정부의 의지만 있다면 가능하죠. 저는 환산보증금 기준을 상향해서 임차인들이 보호받을 수 있는 범위를 늘리는 것이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Q. 마지막으로 정책공감 독자분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먼저 임차인분들이 이 글을 보고 있다면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에 대해 숙지했으면 좋겠습니다. 만약 숙지하기 어렵다면 젠트리피케이션 대응 매뉴얼을 구입해 자신의 상황을 대입해보고 관련 단체나 기관에게 도움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또, 이외의 많은 분들이 젠트리피케이션을 지켜보며 ‘자연적 현상이다’, ‘어쩔 수 없다’, ‘피치 못할 일이다’와 같이 이야기하시는데 임차인 개개인이 쫓겨나는 문제는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의 허점을 통해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또, 만약 그 법이 미진하다면 자신의 위치에서 같이 목소리 내주시길 바라겠습니다.
젠트리피케이션 안전장치를 추진합니다.
정부에서도 도시재생 뉴딜사업 지역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하지 않도록 ‘3중 안전장치 도입’을 추진합니다. 도시재생 뉴딜사업은 정부가 5년간 매년 전국 110개 이상의 지역에 예산을 투입해 주민들이 원하는 마을 도서관, 주차장 등 생활 편의시설을 확충하는 사업인데요. 도시재생 뉴딜사업으로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발생할 우려가 있어 ‘3중 안전장치 도입’을 추진하게 되었죠. 3중 안전장치는 ▲상가임대차보호법 강화, ▲공공임대상가 의무화, ▲상생협약 제도 신설 등이 포함됐는데요. 자세한 내용을 살펴볼까요?
도시재생 뉴딜사업 지역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하지 않도록 ‘3중 안정장치 도입’을 추진합니다.
상가임대차보호법을 개정해 세입자의 지위를 강화하고 임대로 인상을 억제합니다. 이는 정부의 100대 과제에도 포함됐는데요. 현재 5년으로 규정돼 있는 건물주의 계약 갱신 요구권 행사기간을 10년으로 연장하는 방안과 9%로 규정된 임대료 상한 한도를 낮추는 방안, 환산보증금 한도를 조정하거나 폐지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또한, 현재 일부 지자체가 시범사업으로 진행 중인 공공임대상가를 의무화하는 방안도 추진합니다. 공공임대상가는 임대료 인상으로 쫓겨나는 영세 상인 등을 위한 공간으로 공공임대상가 등 상생 거점공간 설치를 의무화하고 국비를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죠.
지자체와 함께 상생협약 제도 신설을 추진합니다.
마지막으로 지자체와 함께 상생협약 제도 신설을 추진합니다. 상생협약 제도는 임대인과 임차인, 지자체가 자발적인 협력을 강화하고 정부가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식인데요. 구체적으로 임대인은 임대료 인상 자제, 임차인은 지역 활성화 노력, 지자체는 협약 참여자 지원을 상생협약에 담는 방식이죠. 협약의 성실한 이행을 조건으로 임대인에게 상가 리모델링 자금 융자, 보증 등의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지자체를 위해서는 공모 평가 시 가점 부여, 우수지역 포상 등의 유인책을 마련합니다. 이를 위해 지자체가 표준약정서를 만들도록 하고, 임대인이 약정을 위반할 경우 지원금을 반납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방안도 추진할 계획입니다.
지금까지 도시 문제에 맞선 출판사 ‘문학중심 유음’의 정현석 대표 이야기와 정부의 젠트리피케이션 3중 안전장치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임차인의 삶의 터전을 보호하는 상생의 도시개발을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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