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국민 네 명 중 한 명이 앓는 병으로 암, 당뇨병, 고혈압, 통풍, 심뇌혈관질환, 담석증 같은 온갖 성인병을 한꺼번에 유발한다. 그럼에도 당장 느껴지는 증상은 없어서 딱히 위협적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대사증후군 얘기다.
- ▲ 대사증후군 환자 수 그래프
심장병, 당뇨병, 암, 고혈압, 통풍, 담석증은 각각 별개의 질환처럼 보인다. 발병하는 부위도, 증상도 제각각이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대사증후군이라는 하나의 병에서 비롯된 결과물이다. 실제로 대사증후군 환자는 대사증후군이 없는 사람에 비해 암 발생 위험이 1.5~2배, 심뇌혈관질환에 걸릴 위험이 2~4배, 당뇨병 발병 위험이 3~5배 높다고 알려져 있다. 이런 증상을 쉽게 이해하려면 대사증후군을 사과나무로 생각하면 된다. 대사증후군이라는 사과나무가 심장병, 암 같은 사과를 만들어내는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정확한 원인 밝혀지지 않은 의뭉스러운 병
성인병을 쓰나미처럼 몰고오는 대사증후군은 말 그대로 몸의 각종 신진대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상태를 일컫는다.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몸속 콜레스테롤이나 지방 등이 건강하게 처리되지 않는 것이다. 명확히 알려진 게 없이 베일에 싸여 있는 이 상태를 두고 의학자들은 한동안 ‘X증후군(Syndrome X)’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현재는 대사증후군이 인슐린 저항성 탓에 생긴다는 주장이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5년 사이 환자 16.5% 증가
대사증후군 환자는 날로 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0년 대사증후군 진단을 받은 환자는 850만4867명이었는데, 2014년 991만1256명으로 늘었다. 1년에 평균 3.9%씩 꾸준히 늘어난 셈이다. 전체 환자 중 70세 이상이 29.9%, 50대가 27.5%, 60대가 25.6%로 가장 많았다. 이는 우리나라 70세 이상의 70%, 60대의 60% 정도가 대사증후군 진단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사증후군이 유발하는 질병
- ▲ 대사증후군이 유발하는 질병 그림
지방간
간에 지방이 지나치게 많아진 상태. 피곤하고, 오른쪽 배가 좀 아픈 정도의 증상만 나타나지만 방치하면 만성 간염이나 간경변이 된다. 간경변은 간이 점차 딱딱하게 굳고 작아지는 것으로, 간이 원활히 기능하지 않는 병이다.
담석증
간 밑의 쓸개에서 나오는 쓸개즙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은 상태. 명치나 배에 중압감과 심한 통증이 느껴진다. 쓸개에 염증을 유발할 수 있으며 쓸개를 잘라야 할 수도 있다.
암
우리나라 사망 원인 1위를 차지하는 병이다. 몸속 조직이나 세포가 성장 질서를 무시하고 과도하게 증식해 덩어리진 종양이 주변의 정상 조직을 파괴한다. 한 군데서 생겼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여기저기 퍼지기도 한다.
뇌졸중
뇌혈관이 막히거나 터지는 병. 뇌에는 말을 하고 몸을 움직이게 하며 감각을 느끼는 등 생명 유지에 필요한 영역이 세밀하게 나눠져 있다. 어느 부분의 혈관에 문제가 생기느냐에 따라 주변 뇌 조직이 담당하던 신체 기능이 망가진다.
심근경색
심장혈관이 갑자기 막혀서 심장근육이나 세포가 죽는 병. 당장 생명이 위험한 응급질환이다. 아무런 증상이 없다 갑자기 쓰러지기도 하고,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통증이 느껴지기도 한다.
만성콩팥병
콩팥이 망가지는 병. 처음에는 피곤하고 몸이 가려운 정도의 증상만 나타나지만 심해지면서 몸속 노폐물이 쌓여 자율신경계, 피부, 소화기, 면역계 등 온몸에 문제가 생긴다. 혈액 투석이 필요할 수 있다.
통풍
혈액 속 요산(음식을 먹을 때 몸에 들어오는 퓨린이라는 물질이 대사되고 남은 찌꺼기)이 무릎, 귀, 발목, 손 등의 관절에 쌓이는 병. 관절이 광범위하게 파괴되고, 울퉁불퉁한 덩어리가 생겨서 몸의 모양이 기괴하게 변형된다.
대사증후군의 원인과 병을 낳는 과정
- ▲ 대사증후군의 원인과 병을 낳는 과정 그림
1. 비만, 유전, 노화, 스트레스 등은 인슐린 저항성을 일으키는 주된 요인이다. 그중 배에 쌓인 내장지방은 인슐린 호르몬의 역할을 방해하는 물질(지방분비물질)을 만들어낸다.
2. 위 뒤에 있는 췌장의 랑게르한스섬에서는 인슐린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된다. 인슐린은 혈액 속에 떠다니는 에너지원인 포도당이 몸속 세포에 잘 들어갈 수 있게 만든다. 세포는 포도당을 받아야만 힘차게 기능할 수 있다.
3. 인슐린이 혈관을 타고 돌아다닌다.
4. 혈액 속에는 인슐린과 포도당이 있다.
5. 인슐린이 세포를 만나면 열쇠구멍에 열쇠가 꽂히듯 완벽히 결합하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인슐린 저항성이 있으면 인슐린이 세포를 만나도 제대로 결합하지 못한다. 인슐린과 세포가 결합해야 포도당이 세포 속으로 원활히 들어가는데, 그렇지 못하니 포도당도 세포 속으로 잘 들어가지 못한다. 마치 방문에 문제가 생겨서 방 안에 제대로 들어가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다.
동맥경화
포도당이 부족한 세포가 인슐린이 부족한 탓인 줄 알고 췌장에게 신호를 보내면 췌장이 인슐린을 더 많이 분비하다가 지쳐서 당뇨병이 생긴다. 피 속에 과도해진 인슐린은 혈관벽 세포를 키워 동맥경화를 일으킨다. 몸속 조직을 과증식시켜 암도 낳는다. 콩팥 기능을 방해해 통풍과 고혈압도 유발한다.
담석증
세포가 포도당이 부족해 정상적으로 일을 못한다. 콜레스테롤이 만들어지는 것을 막는 세포 기능이 떨어지고 간에 콜레스테롤이 쌓여 담석증이 생긴다.
LDL 콜레스테롤 증가
세포로 들어가지 못한 포도당이 혈액 속에 많아지면 몸은 이를 간으로 보내 지방 형태로 만들어 몸에 축적한다. 살이 찌고, 나쁜 콜레스테롤(LDL 콜레스테롤)의 수치가 증가해 혈관이 두꺼워진다.
- ▲ 줄넘기 사진
대사증후군 예방 및 관리법
대사증후군 치료법은 예방법, 관리법과 같다. 바로 생활습관 개선이다. 대사증후군 환자가 3년 정도 생활습관을 잘 관리했더니 병이 40% 정도 완화됐다는 미국 연구가 있다. 대사증후군이 없는 성인 중 건강한 생활습관을 지킨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대사증후군 발병 위험이 40% 낮았다는 연구도 있다.
point1. 몸 상태에 맞춰 땀 흘리기
대사증후군을 유발하는 중요 요인 중 하나는 복부비만이다. 따라서 꾸준하고 적당한 운동을 통해 지방량을 줄이는 게 좋다. 유산소 운동을 주 3~5회, 30분~1시간씩 하고 근력운동도 주 2회 이상 하는 게 좋다. 땀을 뻘뻘 흘리며 무리하지 말고, 땀이 배어나와서 등이 약간 젖을 정도로만 운동하자. 단, 심혈관질환이 있거나 관절에 문제가 있는 경우 병원 내 운동처방사 등 전문가와 상담한 후 운동량을 결정하는 게 좋다.
point2. 식단 짤 때 GI지수 체크하기
혈액 속 포도당(혈당) 수치를 낮추고 지방을 빼려면 운동만큼 식이요법이 중요하다. 우선 포화지방, 트랜스지방 및 콜레스테롤 함량이 높은 음식은 자제해야 한다. 갈비, 삼겹살, 닭 껍질 같은 기름진 육류와 인스턴트식품, 설렁탕이나 곰탕 같은 탕류, 유제품류, 장어, 생선 알, 새우, 오징어, 메추리알, 달걀이 대표적이다.
혈당 조절을 위해 GI(Glycemic Index)지수가 낮은 식품 위주로 식단을 구성하자. GI지수는 혈당지수를 일컫는 말로, 탄수화물을 섭취한 후 2시간 동안 발생하는 혈당치 상승률을 숫자로 나타낸 것이다. 음식을 먹자마자 혈당을 최고로 올리는 포도당의 당지수는 100이고 당질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은 식이섬유는 0이다. 결국 GI지수가 낮은 식품일수록 혈당을 천천히, 적게 올린다는 얘기가 된다.
대사증후군 진단 기준
다음 5가지 항목 중 3가지 이상이 해당되면 대사증후군이다.
➊ 허리둘레가 남성은 90㎝, 여성은 80㎝ 이상인 경우
➋ 혈중 중성지방이 150㎎/㎗ 이상이거나 약을 먹고 있는 경우
➌ 고밀도 지단백 콜레스테롤(HDL)이 남성은 40㎎/㎗, 여성은 50㎎/㎗ 이하이거나 약을 먹는 경우
➍ 혈압이 130/85㎜Hg 이상인 경우
➎ 공복혈당이 100㎎/㎗ 이상인 경우
- ▲ GI지수가 낮은 대표적인 음식 그림
/ 김하윤 헬스조선 기자 khy@chosun.com
/ 일러스트레이터 박인선
/ 도움말 임수(분당서울대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김홍규(서울아산병원 건강의학과 교수)
월간헬스조선 6월호에 실린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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