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자하거에는 단백질·펩타이드는 물론 아미노산·미네랄 등이 풍부해서 피로회복이나 갱년기 장애 등에 효과가 있다고 전해진다. 사진은 자하거의 다양한 모습.(사진=헬스조선DB)
태반은 태아의 성장과 발육에 필요한 조직이다. 수정란이 착상된 곳을 중심으로 자리 잡아서 임신 13주쯤이면 융모 조직으로 완성된다. 산모의 산소를 태아에게 공급하고, 태반은 태아의 노폐물을 산모의 혈액으로 보내 배설시키는 작용은 물론 각종 호르몬을 생성시키는 중요한 조직이다. 그러다 보니 사실상 태반은 영양의 보고다. 성선자극호르몬, 프로락틴, 성장호르몬, 갑상선자극 호르몬, 부신피질자극호르몬 등 각종 호르몬은 물론 면역에 관여하는 각종 알부민 및 세포 증식 인자 등이 풍부하다.
- ▲ 태반성분(펩타이드)으로 만든 주사제(약침)로 치료하는 장면. 피로가 쌓여 통증을 일으키는 관절·척추 통증이나 노화예방, 미용을 위해 태반을 활용한다.(사진=헬스조선DB)
태반을 이용한 치료법은 이미 수천 년 전부터 한의학에서 여러 질환을 치료할 목적으로 활용돼 왔다. 기원전 3세 기경 중국에서 상처 치유를 위해 태반을 피부도포제로 사용했다는 기록을 시작으로 《본초강목》에서는 특히 사람의 태반을 ‘자하거(紫河車)’라는 독립적 명칭으로 사용하면서 부인과 질환 치료에 사용했다.
특히 자하거에는 한의학적으로 간(肝).폐(肺).신(腎)의 기운을 보호해 주는 효능이 있다. 그래서 피로, 기침, 성기능 장애 등에도 널리 쓰였다. 이런 기록은 서양에도 있다. 히포크라테스가 저서에서 태반의 약효에 대해 기술했고, 아름다움의 상징이던 클레오파트라와 마리 앙투아네트도 미용 목적으로 태반을 복용했다고 한다.
최근에는 인간 태반에서 추출한 성분의 의약품들이 개발되면서 사용이 더욱 확대됐다. 일본은 일찌감치 1940년대부터 경구 및 주사용 인태반 유래 의약품이 허가를 받아 갱년기 장애, 유즙분비부전, 간경화 치료 등에 사용됐다.
스위스에서는 주사제로 개발해 피로회복과 미용 목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자하거 추출물, 자하거 가수분해물, 자하거엑스 복합제 등 다양한 형태로 40여 가지 의약품과 식품 등으로 개발돼 있다.
초기에는 거부감이 컸다. ‘인간의 태반을 어떻게 먹느냐’라는 불편한 마음에서 시작된 거부감은 돼지나 양, 소 등의 동물 태반까지 유통되면서 확산됐다. 이는 시중에 유통되는 태반 유래 의약품들이 과연 임상적으로 효능 있는지에 대한 의혹까지 제기하게 했다.
- ▲ 태반성분(펩타이드)으로 만든 주사제(약침)로 치료하는 장면. 피로가 쌓여 통증을 일으키는 관절·척추 통증이나 노화예방, 미용을 위해 태반을 활용한다.(사진=헬스조선DB)
그러던 중 대만에서 동물 태반을 주사한 후 인간 광우병 증상을 보인 사례가 발생해 더욱 불신을 키웠다. 이러한 의혹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태반신고 제도를 만들어 이를 통과하지 못한 태반은 퇴출시키고, 수차례 검증을 거듭하는 임상평가를 내놓은 후에도 쉽게 가시지 않았다.
이 시기에 한의학계 역시 태반의 안전성을 입증하기 위해 애를 썼다. 임상적 유효성을 밝히기 위해 경구 투여, 약침 시술 등 여러 임상 연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월경통과 출산 후 관리, 갱년기 장애 등 부인과 질환뿐 아니라 신경계 질환, 근골격계 질환 및 정신과 질환에 자하거가 효과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과정을 통해 최근 다시 ‘자하거’라는 이름으로 태반 유래 약품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논란을 거듭한 끝에 소비자의 신뢰를 얻고, 성공한 사례다. 한의학계에서는 최근 여드름 흉터 등에 롤러침을 놓기도 하는데 이때 자하거를 이용해 피부미백과 재생 효과를 높인다. 자하거에 함유된 에스트로겐 등 여러 호르몬과 콜라겐 성분이 진피층까지 흡수돼 혈행을 촉진하고 조직을 재생시키기 때문이다.
또한 태반에 함유된 다양한 펩타이드 성분을 활용해 관절염이나 통증을 치료하는 약침도 시행되고 있다. 그 밖에 태반 속 풍부한 감마글로불린이나 인터페론 등 면역 관련 물질과 항산화 물질이 저항력을 높여 줘 아토피피부염이나 바이러스 감염 등에 유용하다는 보고도 이어지고 있다.
옛것을 새것으로 가져오는 과정에는 항상 진통이 따른다. 그 과정에서 오해만 증폭시킨 채 사라진 경우가 있는 반면, 자하거처럼 현대적 재해석으로 새롭게 전통적인 효능을 이어 가는 사례도 있다.
치료에 있어 진정한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정신을 이루게 하는 역할은 독자의 몫이다. 끊임없이 의문을 갖고, 끊임없이 질문하자. 이 과정을 통해 얻는 온고지신 치료만큼 우리에게 안전한, 우리에게 잘 맞는 것이 또 있을까 싶다.
- ▲ 이재동
경희대 한의대 교수. 침구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경희대 한방병원 척추관절센터장으로 있다.
대한침구학회 회장 등을 지냈다. ‘이재동 교수의 경희한방 이야기’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한의학에 대한 올바른 지식전파에 힘쓰고 있다.
월간헬스조선 8월호(132페이지)에 실린 기사임
/ 기고자 이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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