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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류의 장/게시판

[스크랩] `세월호 잠수사` 유계열 씨 "많은 생명 구하고 싶어"

by 크리에이터 정관진 2014. 7. 7.

나눔을 통해 행복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 있다.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봉사를 통해 마음속의 기쁨을 두 배로, 세 배로 나누어 가는 사람들이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나눔을 실천한 유공자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해 포상, 격려하여 나눔 문화 확산에 이바지하고자 ‘행복 나눔人’ 시상식을 30일 오전 세종호텔에서 개최했다. 이날 복지부 장관상을 받은 세월호 잠수사 유계열(56)씨는 대한민국 특수임무유공자회 소속 민간잠수사로, 국제구호단체인 ‘휴먼인러브’의 긴급구조단장을 맡고 있다. 또한, 이번 세월호 재난긴급대응단장으로 활동하며 ‘재난안전에는 대충이나 적당히는 없어야 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사고해역에서 가이드라인 설치, 에어포켓 공기 주입, 실종자 수색 등에 참여한 그.

 

1990년부터 본격적인 봉사활동을 시작한 그는 93년 위도 페리호 침몰사고를 시작으로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강원도 폭설 피해, 아이티 대지진 사고 현장 등에서 실종자 수색 및 구조 봉사활동을 꾸준히 이어왔다. 해군 특수부대 출신으로 물과 누구보다 가까웠던 그는 1990년, 봉사를 이어가기로 마음먹게 된 그 날로 기억을 더듬었다. “물놀이하던 어린이가 익사사고를 당했죠. 현장에서 시신을 수습하는데 그 마음은 말로 다 표현 못 해요. 그때부터 남들을 돕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잘할 수 있는 ‘물’이라는 분야에서요.” 군에서 익힌 잠수 경험이 그에게는 봉사의 문을 여는 열쇠였다. 그렇게 유 씨는 장소를 불문하고 세계 곳곳을 누비며 나눔의 기쁨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무슨 일 생겼다는 얘기 들으면 그 자리에서 기름 넣고 곧바로 출발하는 거예요. 잠은 텐트에서 자고, 컵라면으로 끼니 때우고. 이번 세월호 현장에서도 그랬죠. 하지만 실종자들 생각하면 그것도 정말 호강인 거예요.” 인터뷰 중에도 그는 세월호 실종자 11명을 생각하며 안타까움에 말끝을 흐렸다. “봉사가 즐거워요. 현장에 가서 사람들을 돕고, 그곳에서 제가 드릴 수 있는 도움을 다 드리면 그것만큼 행복한 일이 없어요. 그래서 계속 봉사를 하게 되는 것 같아요.” 25년 동안 꾸준히 현장을 찾아 봉사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과 함께 낯선 기분까지 든다. 하지만 유 씨는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다’라고 손사래 친다. “일종의 재능기부예요. 제가 잘할 수 있는 분야니까요. 기부에 크고 작은 게 있겠습니까? 벽화 봉사하시는 분, 집 앞 노인정에서 봉사하시는 분, 모든 분이 다 저처럼 나눔을 즐기는 사람들이죠.” 이렇게 자신의 재능을 기부하기 위해 그는 항상 노력하고 있다.

 

그가 긴급구조단장으로 활동 중인 구호단체인 ‘휴먼인러브’에서는 정기적으로 산악훈련과 해상훈련을 진행 중이다. 소속된 사람들은 자영업을 하거나 회사에 다니는, 그야말로 ‘보통’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언제라도 현장에 투입될 수 있는 실력을 보유하고 있다. 유 씨 또한 평소 다리 보수, 항만 건설, 수중 용접, 인양 등의 ‘산업 잠수’일을 생업으로 하고 있지만 사고 현장, 훈련 참여가 언제나 그에겐 1순위다. 주말 동안 시간을 내어 시화호, 바다, 산 가릴 것 없이 훈련을 떠난다. 인명을 구조하기 위해서는 여러 기술이 다양해야 한다고 유 씨는 강조한다. 그에게 있어 가장 기억에 남는 현장은 아이티 대지진 사고현장이다. 72시간의 ‘골든타임’을 놓쳐 시신 수습 위주로 해야 했던 그때의 기억은 유 씨에게 아쉬움으로 남았다.

 

 

모든 것이 폐허가 된 상황에서도 현지인들은 봉사자들에게 물을 떠다 주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고 한다. “말이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진심은 서로 통한다는 걸 그때 느꼈어요. ‘이 일을 내가 잘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죠. 재난을 당한 분들의 순수한 마음을 볼 때 마다 죄송한 마음이 들죠. 제 삶을 돌아보는 계기도 되고요." 가끔 꼬깃꼬깃한 돈을 한 손에 쥐여주는 피해자들도 만난다고 했다. 한사코 거절해 봐도 고마움의 표현이라며 돈을 쥐여주면, 그들은 그 돈을 받아 두었다가 장례식 때 다시 돌려주곤 했다고. 유 씨는 그런 기억들을 봉사를 통해 자신이 ‘얻은 것’이라고 말했다. 봉사라고 하면 ‘주는 것’, ‘베푸는 것’이라는 생각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그는 봉사를 통해 자신이 얻고 있다고 강조했다.

 

“마음가짐이 달라져요. 과거에 했던 잘못된 생각들을 버리고, 조그마한 이익에 아등바등하던 모습을 버렸죠. 힘든 고난 속에서도 따뜻한 마음을 표현하는 여유를 가진 분들이 정말 많아요. 그분들을 통해 항상 교훈을 얻고 와요.” 그것이 그 어떤 경제적 가치보다도 더 큰 선물이고 경험이라는 그. 봉사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내내 그의 얼굴에는 사명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런 자신을 보며 주변 사람들도 묻는다고 한다. 왜 그렇게까지 하냐고. “잣대의 차이죠. 저는 제 작은 재능이나마 힘든 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걸 보면 정말 행복해요. 다른 곳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행복이죠. 그래서 그만둘 수가 없어요.” 유 씨의 아내도 처음에는 위험한 구조 일에 그가 뛰어드는 것을 좋아한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그의 따뜻한 마음과 열정을 보며 마음을 많이 바꾸었다고. “같이 TV 보다가 자막으로 무슨 사고가 났다고 뜨면 저한테 물어요. ‘저기는 안 가도 돼?’이렇게요.” 

 

지난 활동을 떠올리다가도 ‘내가 받을 상이 아닌데’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할 정도로 그는 이런 자리에 익숙지 않아 보였다. 시상식 진행자가 “지금껏 봉사는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주의였지만 이제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널리 퍼뜨려 봉사를 전염시켜야 한다” 고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유계열 씨도 지금껏 그렇게 남모르게 봉사하는 사람이었다. “지금껏 그래 왔죠.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다른 사람들한테 굳이 알리고 싶지도 않고, 저 자신은 뒤로 물러나 있길 좋아했으니까요.” 하지만 이제는 더 적극적으로 이야기하고, 봉사의 즐거움을 모두에게 퍼뜨리고 싶다는 생각이다. 이번 세월호 사건 현장에 몰려온 수많은 자원봉사자를 보며 대한민국이 점점 따뜻하게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 그.

 

“이 일을 하다 보면 좋은 사람들을 참 많이 만나게 되잖아요. 그러다 보니 주위를 따뜻한 시선으로 보게 되고, 나 자신을 성숙시킬 수 있어요. 이번에도 그런 감정이 많이 들었죠.” “봉사에 취해서 하고 있어요.” 그는 인터뷰 내내 지나가듯이 이 말을 자주 했다. 정말 그렇게 보였다. 봉사에 취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즐거움과 마음 깊은 행복감이 온통 그에게서 느껴졌다. 앞으로의 목표를 묻는 말에 그는 ‘열심히 하는 거죠’ 라며 미소 지었다. 꾸밈없고 진실 된 마음으로 봉사를 대해온 유 씨 다운 대답이었다. “나이가 들면 계속 이 일을 할 수는 없으니, 뜻이 같은 후배들을 앞으로 많이 모으고 싶어요. 매뉴얼도 더욱 체계적으로 마련하고, 그렇게 멋진 구조단을 만들어서 사고 현장에서 많은 생명을 구하고, 또 예방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그의 아름다운 행보는 앞으로 더욱더 거침없을 예정이다.

 

최영진 따스아리 기자
dudwls40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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