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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류의 장/게시판

[스크랩] 버섯이 좋아 귀농하고, `농업용 리모콘`까지 만든 채한별 씨

by 크리에이터 정관진 2014. 6. 30.



다른 식물은 자랄 수 없는 어둡고 습한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스르륵 자라나 있는 버섯. 마치 마법에 걸린 것 같은 신비로운 생명체인 버섯은 서울에서 회사에 잘 다니고 있던 젊은이를 농업으로 초대했습니다. 버섯 농사를 지어보고 싶어 귀농을 결심했지만, 예민하고 까다로운 버섯이라는 작물의 비위를 맞추는 일이 여간 힘들지 않았죠. 그래서 젊은이 역시 마법을 부려보기로 했습니다! 바로 IT기술과 농업의 접목이라는 지금껏 누구도 시도해보지 않은 방법을 통해서 말이죠.



우연히 알게 된 버섯에 홀리다


▲ 폐배지를 활용한 굼벵이 사육


대학에서 전자전기공학을 전공한 채한별 씨. 졸업 후 무역회사들을 고객으로 하는 회사에 다녔습니다.


“인두를 들고 기판에다 납땜하며 설치는 일이 참 재밌다.”라고 표현할 정도로 전자기기의 회로를 만지는 일을 즐겼고 IT 기술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지만, 틈나는 대로 부품을 직접 조립해 가며 ‘IT 장난감’을 만드는 취미생활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신기하고 재미있는 것에 대한 흥미로움은 언제나 그를 사로잡았습니다. 버섯 역시 그랬죠. 손가락을 다쳐 병가를 내고 휴직하던 때, 회사 자료실에서 우연히 구한 버섯 관련 책은 그를 ‘균학’의 세계로 이끌었습니다.


“버섯종균기능사 자격증을 대비해 공부하긴 했지만, 균학에 대한 공부의 일환이었지, 귀농을 대비한 것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공부를 하면 할수록 흥미로웠어요. 종류도 많고 소비도 많이 되는 버섯이지만 표준재배법이 정립되어 있지 않았어요. 여전히 미개척 분야였던 것이죠. 내가 한번 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죠.”


버섯에 대한 흥미가 귀농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총각이었으면 훌쩍 떠났을지도 모르지만 아내가 있었죠. 휴직으로 인해 아내와 함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 설득할 수 있었습니다. 함께 먼 미래에 대해 상상하기 시작했고, 귀농을 결심했는데요, 다행히 부모님도 큰 반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젊은 자식의 전원생활을 부러워하는 눈치였죠.



버섯 동산에서 낭만적인 삶을 준비하다



▲ 버섯 재배를 연구하고 있는 채한별 씨


귀농을 결심한 후에 약 일 년의 준비과정을 거쳤습니다. 텃밭 교육, 귀농 투어, 버섯 전문가 과정, 집 짓기 등 귀농 관련 교육을 충실히 이수했습니다. 


“사실 귀농교육시간 채우려고 아내와 나들이 삼아 다니기 시작했죠. 그런데 정말 도움되는 교육이 많더라고요. 스스로 준비하기도 했지만, 체계적인 귀농을 계획할 수 있었습니다.”


농촌에 딱히 연고가 없었던 채씨. 버섯 때문에 결심한 귀농이었으니, 버섯 재배에 최대한 유리한 지역을 찾았습니다. 충북 옥천군 이원면. 묘목단지가 들어서 있을 정도로 기후가 표준인 지역이라 이원면에서 나온 나무는 북으로 가도, 남으로 가도 잘 자란다고 했습니다. 버섯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죠. 비나 눈 같은 자연재해 피해도 작았고, 버섯 재배에 필수적인 지하수가 비교적 흔한 지역이기도 했습니다. 단순히 재배만 편한 곳이 아니라 공판장이나 각종 협동매장과 급식처들이 모인 도시, 즉 대전 근교라는 점도 매력적이었죠. 


또 귀농은 결심했지만, 도시 때를 다 벗을 수 없었던 젊은 부부가 가끔 마트에서 쇼핑하거나 영화관을 가기에도 적절한 지역이기도 했습니다. 서울 세간살이 다 탈탈 털어서 들고 내려왔지만 대부분 통장에 잔고로 남아 있는 상태. 서울에서 월세방 낼 돈이면 앞마당에 채소 키워 먹을 정도로 넉넉한 집에서 살 수 있었고 버섯을 키우는 재배사도 아직 임대로 해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본격적인 농장을 차리기 위해 아직 준비하는 단계라 큰돈을 투자하는 것은 부담이 됐죠.



▲ 과학창의축전에 참가한 채한별 씨


“생활 자체는 어려울 것이 없었어요. 식비, 교통비, 관리비 등 도시에서 매월 고정적으로 지출되던 비용이 일단 없어졌으니까요. 농업인은 건강보험료도 큰 폭으로 할인이 되더라고요. 그래도 농사 초기부터 풍족하게 살기는 어렵겠죠. 월급이 안 나오니까요. 그래서 농사일과 함께 군청 홈페이지나 귀농귀촌협의회에 물어봐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일을 꽤 했어요. 집사람이 원래 제품디자인 일을 했었는데, 촌에 오면 그런 경력이 무슨 소용이랴 했지만 오히려 여기저기 쓸 데가 많더군요. 작년엔 귀농코디네이터 교육을 받기 시작하면서 집사람도 나름대로 바쁜 귀농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동네에서 나고 자란 학생들을 제외하고는 제일 어린 축에 속하는지라 이웃들은 귀여워해 주고 많이 도와주려 했습니다. 버섯 농사지으려 찾아온 예의 바른 젊은 부부에게 텃세를 부리는 동네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죠. 하지만 정작 버섯 농사가 문제였습니다.



버섯과의 한판 대결, 연장전에 돌입하다


비교적 고소득 작물이라고 소문난 버섯이지만 쉽게 손 댈 수 있는 작목은 아니었습니다. 소비가 가장 많은 느타리나 팽이 같은 농산 버섯은 시설 투자가 꽤 이루어져야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습니다. 그나마 표고버섯은 병재배 기술이나 기계화 등을 도입하기 곤란한 소농 규모에서도 재배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노지 재배나 다른 하우스 재배보다 시설투자가 좀 필요했지만 감당해 낼 수준이었죠.


또한 식물 재배법과는 확연히 다른 ‘균류’의 특성을 정확히 이해해야 하는 작물이기도 했습니다. “출하시기에 따라 가격 등락 폭이 심하고, 배양 단계부터 주기를 어떻게 끌고 가서 언제 집중적으로 수확할 것인가, 또 유통과정에서의 생장까지 염두에 두고 수확해야 하는 등, 마치 바둑을 한 수 한 수 두듯이 꼼꼼하게 키워나가야 합니다.”


이론적으론 완벽하게 준비했지만, 정작 버섯재배사 안에 들어가면, 아니 집에 돌아와서도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온습도, CO2 농도, 조도 등 환경인자를 정확히 맞춰야 하는 버섯의 재배 특성 때문이었죠.


“입상하고 온도계 쳐다보고, 배양하며 또 쳐다보고, 동력분무기 매고 왕복 후 돌아보면 또 말라 있고, 새벽에도 뛰쳐나와 온도계 보고 습도계 보고, 스프링클러 스위치를 내렸다 올렸다…. 수확 타이밍 맞추기도 참 어려웠죠. 일이 몰리는가 하면, 갑자기 시간이 붕 뜨기도 했어요. 일할 사람은 집사람과 저 둘뿐인데요. 앞으로 계속 할 일인데 너무나 비효율적이다 싶었죠. 이거 뭔가 방법이 없을까 궁리하기 시작했죠.”



▲ 과학창의축전 채한별 씨의 작품을 보고있는 관람객


사실 이러한 버섯재배 농가들의 애환은 그 동안 견학한 전국의 우수한 농가들에서도 흔히 겪는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단순 반복적인 행위를 위해 버섯 재배사에서 떠나지 못하고 맴돌아야 하는 현실이 안타까웠습니다. 불편한 것을 쉽고 편하게 만드는 것이 IT기술이 아니던가요? 은행 업무도, 관공서에서 서류 뗄 일도 요즘은 손바닥만한 스마트폰에서 다 해결하는 시대인데 농업이라고 이런 불편함을 감수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경비원이 순찰할 필요 없이 CCTV를 설치하는 것처럼 버섯 생육에 필요한 환경인자를 컴퓨터와 스마트폰 등에서 원격으로 모니터링 할 수 있게 만들고, 은행에 갈 일을 덜어주는 모바일 뱅킹처럼, 피막을 개폐하거나 관수시설 작동, 환풍기 가동을 원격으로 제어할 수 있게 만들면 생산성을 좀 더 올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른바 스마트 농업 솔루션! 현재 다른 분야에서 상용화되어 있는 기술을 응용하면 제작은 그리 어려울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 동안 취미 생활을 하며 전자기기 회로를 만지는 데는 이력이 나 있는 그였기 때문입니다. 본격적인 개발에 착수하기 시작하며 잠자고 있던 열정이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간편하고 똑똑한 농사용 리모컨, 미디어팜


‘미디어팜’이라 이름 붙여진 채 씨의 스마트 농업 솔루션. 테스트 삼아 설치하다 농장에 불을 낼 뻔한 적도 있었지만, 표고버섯 두 바트(버섯균 배양용 배지를 몇 개씩 담는 바구니)를 관리할 수 있는 샘플을 개발해 냈습니다. 농업 현장에서는 단순한 기능으로 이루어진 장치, 예컨대 CCTV나 기기제어 장치를 버섯 재배사에 설치하기만 하면 되었죠. 설치 비용도 부담되지 않는 편이었습니다. 설치된 장치들은 무선인터넷을 통해 미디어팜 서버에 연결되고, 농업인은 원하는 기기(스마트폰, PC 등)로 접속해 원하는 정보도 보고 설비 제어도 할 수 있는 시설이었습니다.



▲ 보급형 미디어팜


“처음에는 제가 농사지으며 불편한 부분을 보완하려 만들었죠. 아내와 저 둘밖에 노동력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재배 노하우가 부족하니까 영농 기록을 꼼꼼히 해서 주기마다 분석하고 개선하고 싶었는데, 재배사에서 일하고 돌아오면 곯아떨어지기 일쑤라 영농일지에는 빈 여백만 가득했죠. 그런데 미디어팜을 사용하면 그런 노력이 확 줄어들게 됩니다.”


멀리서 버섯 재배사 시설을 원격으로 모니터링하고 제어할 수 있다는 것도 획기적이지만 더 중요한 부분은 그러한 행위 하나하나가 미디어팜 서버에 고스란히 저장된다는 것. 온도와 습도, 물 공급량 등 버섯 생육에 필요한 환경인자가 정확한 시간 단위로 기록이 되죠.


지금껏 세상에 없었던 장치였기에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고, 개선점을 찾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과학창의축전이라는 전시회에 참가하기도 했는데요.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찾아와 호응을 해주고 호평을 받았습니다. 포럼을 만들고 세미나를 열어 농업인들에게 직접 제작하는 방법을 알려줬지만 버섯을 생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그런 작업을 하기에는 여의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업화를 결정하게 되었죠.


“파트너도 구하고 산림버섯연구센터에 시제품도 설치하고, 창조경제박람회에도 참가하면서 정신없게 일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버섯 농사보다 미디어팜 개발에 좀 더 주력하고 있어요. 하지만 표준형 미디어팜이 정립되고 안정화가 되고 나면 표고버섯쟁이로 얼른 돌아가고 싶습니다. 개발이 실용화 단계로 들어서며, 제 농장에 적용하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합니다. 솔루션 개발, 적용, 그리고 실재배하는 농장이 함께 묶인, 말 그대로의 미디어팜이 최종목표입니다. 일종의 ICT 농업회사를 꿈꾸고 있죠.”



다시 농업의 시대가 돌아온다



▲ 방송에 출연한 채한별 씨


“언제나 낭만적인 것은 아니지만, 땀 흘려 일하고 수확하다 보면 그런 순간이 올 때가 있습니다. 일하다 고개 들어 오디 한 움큼 따먹고, 집에 돌아가는 언덕에서 산나물 캐다가 반찬 해먹는, 내 밥상 앞에 자연이 펼쳐져 있는 이런 자잘한 행복은 도시에서 느끼기 힘들겠죠.”


귀농 생활의 최우선 순위에 ‘재미’를 꼽는 채씨. 별난 남편 덕에 고생이 많은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지만, 그럴수록 농업의 미래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투자자인 짐 로저스조차 다시 농업의 시대가 온다고 이야기했을 정도죠! 그 동안의 관행농법이나 농가경영으로는 더 이상 경쟁력을 가질 수 없는 시대. 대다수를 차지하는 가족농과 소농이 강소농이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IT 인프라를 농업과 융합하여 소농도 부담 없이 쓸 수 있는 스마트 농업 솔루션을 개발하는 일은 그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TIP


오픈소스를 기반으로 제작된 미디어팜

제품 개발 초기 오픈소스 하드웨어 커뮤니티를 들락거리며 DIY로 만들었습니다. 과학창의축전에 참가하며 알게 된 미디어아트 제작자와 의기투합해 오픈소스 포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누구나 쓸 수 있고 따라 할 수 있는 오픈소스 기반이므로 집단지성의 힘을 빌릴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 그 동안 기술의 소외를 가장 많이 받은 분야가 농업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특허나 지식재산권 위주의 기술 개발보다는 공공기관이 주체가 되어 오픈소스 기반의 R&D에 많은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죠. 구글의 안드로이드와 같은 역할을 맡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바둑을 두듯이 꼼꼼한 성격이 필요한 버섯

앞서 재배 특징은 설명했습니다. 높은 품질의 표고버섯은 가락시장에서 주로 유통되는데요. 중간 품질은 지역 공판장이나 표고 전문 유통업체를 통하기도 합니다. 근래에는 로컬푸드 문화에 힘입어 지역 식자재 공급처나 협동조합 등을 통해 유통경로를 대폭 줄이기도 하죠. 시장이 선호하는 품질과 직거래를 원하는 고객들이 바라는 품질에 미묘하게 차이가 있습니다. 어떤 유통경로를 타깃으로 삼느냐에 따라 생산 전략도 바뀌어야 합니다.


귀농계획서를 직접 작성하라

귀농계획서나 영농사업 계획서를 최대한 자세하게 써볼 것을 추천합니다.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휴식을 취하러 갈 때도 여행 계획을 짜서 가면 훨씬 효율적으로 쉬었다 올 수 있는 법. 자신이 무엇을 하고 왜 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나의 경우에는 농가 주택짓기 교육을 받으며 직접 모형을 만들어 보고 나서야 내가 원하는 집이 어떤 형태인지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머릿속으로 상상할 때하고 완전히 달라졌죠. 귀농 생활을 시뮬레이션 해보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사업계획서를 만들 때처럼 귀농계획서를 최대한 자세하게 쓰고, 주변 농업인에게 들려준 후 피드백을 받아보세요.

 


출처 : 새농이의 농축산식품 이야기
글쓴이 : 새농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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