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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류의 장/게시판

[스크랩] 청국장 달인을 꿈꾸는 22살 청년 박정기씨

by 크리에이터 정관진 2014. 6. 20.



‘이태백’이란 유행어가 있습니다. 중국 당나라 시인을 일컫는 말은 아니고, ‘이십 대 태반이 백수’란 말의 약자로 취업 적령기 20대 청춘의 고단한 현실을 담아낸 단어죠. 그런 청년들에게 농업과 농촌은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까요? 결코 쉬운 길도 아니고, 성공을 보장할 순 없지만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 군 제대 후 할머니가 계신 고향에서 함께 청국장을 만들고 있는 청년의 이야기는 그래서 주목할 만한 사연입니다. 20대 초반에 사회경험도 없던 그에게 귀농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할머니와 손자가 함께 만드는 청국장




▲ 청국장을 만드는 모습!

 

충북 청양에서 청국장으로 유명한 장희문 씨. 우리 옛 방식 그대로 맛있는 청국장 만들기로 소문이 났습니다. 지역 식당에 납품하거나 택배로도 판매하는 장씨 할머니의 청국장은 지역에선 꽤 유명세를 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올해 초 우연한 기회로 한 방송사에서 ‘청국장 달인’으로 소개되며 그 명성은 전국에 퍼지기에 이르렀죠. 가마솥에 삶아 짚을 깐 방에서 군불을 때고, 이불을 덮어 띄운 청국장 제조 비법이 가감 없이 전파를 타자 전국 각지에서 주문이 밀려 들어왔습니다. 밀려드는 택배 주문에 몸도 마음도 바쁘지만, 옆에서 묵묵히 일손을 돕는 손자 덕분에 수월하게 작업을 진행해 나가고 있습니다. 올해로 귀농 6년 차인 박정기 씨. 군 제대 후 할머니 곁에서 청국장 만드는 일을 돕는 중이죠.


“군 전역 후 하루 만에 짐을 싸서 내려왔어요. 입대 전에는 공무원 시험 준비를 했고요. 복무 중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제겐 물건을 팔거나 사람을 만나러 다니는 영업이 어울린다는 결론을 내렸죠.”


아버지와 작은아버지, 고모까지 모두 공직에서 근무 중인 공무원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난 박씨. 자연스럽게 고교졸업 전부터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잘 풀리지 않았죠. 네 다섯 번 시험에 떨어지고 나자 군대에 갈 나이가 되고 말았지만, 입대 전 3개월 동안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그는 주변에 즐거움을 선사하는 청년이었습니다. 입대 후에도 적극적이고 사교적인 성격 덕분인지 한 달에 한 번 꼴로 포상휴가를 나올 정도였죠. 군 간부들도 전역을 앞둔 그에게 “박 병장은 사람 만나는 직업을 택하면 성공하겠다”라는 조언을 해줄 정도였다고 하네요.



도시 청년의 시골 생활 적응기



▲ 정겨운 멋이 있는 '칠갑산 우리콩청국장' 간판!


 

제대한 박씨와 마주한 아버지는 고향에서 홀로 청국장 사업을 하는 할머니 곁으로 내려가 일을 배워볼 것을 제안했습니다. 


“아직 젊은 데 뭔 일을 못 하랴 싶었죠. 청국장 만드는 일을 배우고 돕는덴 큰 어려움은 없었어요. 할머니께서 가르쳐주시는 대로 콩을 씻고, 불을 때고, 나무를 하는 일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정말 외롭더라고요. 가끔씩 내려올 때 느끼던 안락함은 온데간데없고 답답하기만 할 뿐이었죠.” 


이야기 나눌 친구 한 명 없었던 게 결정적이었죠. 일할 때가 아니면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만 했지만, 부모님과의 약속 때문에 인천집으로 다시 올라갈 수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6개월이 넘는 시간이 흐르자 스스로 돌파구를 찾아내기 시작했습니다. 



▲ 새로운 취미로 항공사진을 시작하신 박정기 님


신문 광고를 통해 우연히 알게 된 ‘버블아트’는 무료한 일상의 한 줄기 빛과 같았습니다! 강의를 들으며 새로운 친구를 사귀게 되고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자 지역행사에 초청되어 공연도 하곤 했습니다.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그에게 딱 어울리는 취미였죠. 요즘은 자청해 아이들을 대상으로 무료로 공연을 하기도 하는데요. 취미생활을 갖기 시작하자 농촌 생활도 견딜만 했습니다. 또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매일 접하다 보니 자연스레 사진촬영에 관심이 생기기도 했죠. 현재 한국사진작가협회 공주지부 사진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전시회에도 참가하고 있다고 하네요. 최근에는 무선조종 헬리콥터를 이용한 항공촬영까지 손대고 있습니다.


“이젠 잘 적응하며 즐겁게 살고 있어요. 또래 친구는 없지만 좋은 형님들과 아저씨, 아주머니, 할머님들을 많이 알게 되었죠. 이웃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점이 시골 생활의 장점이죠.”


많은 취미를 가지고 있지만 박 씨가 할머니께 일을 맡겨두고 그저 놀러다니는 것만은 아닙니다. 박씨가 할머니 곁에 오기 전보다 청국장 생산량이 크게 늘었고 판로도 많이 확대됐죠. 할머니 혼자 청국장을 만들 때는 기존 거래처인 식당 납품이 주를 이루었지만, 박씨가 오고 난 뒤에는 개인 소비자도 부쩍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20대 청년의 시선으로 바라본 귀농 


“전 돈 벌러 왔어요. 사회 경험을 쌓기 위해 내려온 것이죠.” 


귀농의 목적을 묻는 질문에 단호하게 대답하는 박 씨. 청국장 사업의 뒤를 잇는 것이 가장 편한 길일지도 모르지만 자신의 미래를 굳이 작은 울타리 안에 가둬두고 싶지 않다는 것이 그의 솔직한 마음이라고 하네요. 


“취미생활로 항공촬영을 하고 있지만, 언젠가 제 본업이 될 수도 있는 일이지요. 최대한 많은 일을 경험하고 꿈꾸고 싶어요. 청국장 하나만 열심히 해도 먹고 사는 데 문제없지 않느냐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 꿈은 청국장에만 머물러 있지 않아요. 언젠간 해외를 오가며 사업을 할 수도 있겠죠. 청국장이 사업 아이템이 될 수도 있고 아직 제가 모르는 그 어떤 것을 다루고 있을 수도 있죠. 중요한 것은 제가 귀농하지 않았다면 이러한 경험을 못 해봤을 거라는 사실이죠.”



▲ 콩과 간장을 삶는 가마솥


청국장을 만들어 파는 일을 우습게 보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박 씨는 청국장을 만들어 파는 일을 도우며 인생을 배웠습니다. 그 과정 속엔 재무회계도 있었고, 그의 몇 년 전 희망 사항이던 판매사원의 스킬도 필요했죠. 마케팅과 홍보 없이 매출은 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감히 이십 대 청년들에게 조언한다”며 덧붙였습니다.


“지금 뭘 하든 두려워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농사를 짓든 물고기를 잡든 돈 한 푼 없이 배낭여행을 떠나든 일단 뭐라도 시도해 보세요. 아직 젊습니다. 귀농귀촌이 정답은 아니죠. 실패한 사례도 분명 존재합니다. 하지만 40~50대 인생의 황혼기에 실패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아요. 20대는 다시 도전할 수 있으니까요. 생각만 하지 말고 뭐든 부딪혀보세요. 부딪힌 만큼 얻는 것이 있을 겁니다. 귀농이란 단어를 떠올리면 뙤약볕에서 주저 앉아 고추 따는 이미지를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꼭 그런 일만 있는 것은 아니에요. 아이디어를 내기에 따라 다양한 사업이 가능하죠.”



귀농 6년차 선배의 조언


학생이고 군인이었기에 귀농 전의 생활 습관을 쉽게 버리고 농촌에서의 생활에 빠르게 익숙해질 수 있었다고 밝히는 박 씨. 군에서 통신병으로 근무했기에 제대 직후 동네에 간단한 전기 설비나 농기계 수리할 일이 생기면 자청해서 도맡아 하곤 했습니다. 이런 젊은 청년에게 텃세를 부리는 지역 주민은 없었죠.


“많이 예뻐해 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죠. 다만 남의 집 사정에 밝고 관심이 많다 보니 돈을 많이 끌어오면 좋지 않은 시선이 생기는 것 같긴 해요. 하지만 이웃에게 피해를 주지만 않는다면 굳이 눈치 보며 살 필요는 없겠죠.”


흔히 말하는 낭만적인 전원생활은 과연 가능한 것일까요? 젊은 그의 대답은 “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입니다.


“시골 생활을 하려면 자동차와 운전면허증은 필수 같아요. 교통카드 한 장이면 어디든 갈 수 있는 도시에서의 생활과는 너무 달라요. 차가 없으면 간단한 용무조차 복잡해지죠. 집 같은 경우에도 군청이든지 어디든 가서 버려진 집이라도 들어가고 싶다고 이야기하면 싸게 구할 수 있습니다. 낭만적인 전원생활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모르겠지만, 잔디 깔린 마당에서 바비큐를 굽는 마치 펜션에서의 하룻밤 같은 일상을 말씀하신다면 언제든 가능합니다. 드럼통 반으로 잘라서 숯불 넣으면 끝이니까요. 고양이나 강아지도 이웃눈치 안 보고 맘껏 기를 수 있습니다. 결국 마음가짐과 적성에 달려 있는 것 같아요.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도 답답하다고 다시 도시로 돌아가는 경우도 봤으니까요.”



일단은 제일가는 청국장 명인이 되는 것이 목표



▲ 메주 만들 콩을 고르는 장희문 할머니


하고 싶은 것 많아 숨 돌아갈 정도인 박 씨. 하지만 여전히 청국장은 그에게 주어진 목표와 일과 중 가장 앞자리를 차지합니다.


“이불 청국장이라는 차별화된 제조 방식이 ‘칠갑산 우리콩 청국장’을 특만들지 않았나 싶습니다. 제가 직접 시장 조사를 해봐도 흔치 않은 방식입니다. 가마솥에 콩을 삶는 사람은 많아도 기계로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지, 저희처럼 볏짚을 깔고 이불을 덮는 방식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옛맛이 나는 것이죠. 할머니께서 방송에 출연하시는 바람에 개인 주문이 많이 늘어 기분 좋기도 하지만 책임감도 많이 느껴요. 청국장이 맛있게 나올 때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을 때도 있거든요. 집에서 해먹는 거라면 다음에 맛있게 해먹으면 되지만, 고객을 상대로 하는 일은 맛의 수준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일이 가장 중요할 것 같아요. 그래야 옛 방식을 고수하는 일도 의미가 있겠죠. 청국장에 일종의 QC(품질관리) 개념을 도입했다고나 할까요? 하하.”



Tip!


칠갑산 우리콩 청국장 맛의 비결

질 좋은 국산콩을 선별해 화력 좋은 장작불로 가마솥에 푹 삶은 후, 뜸을 들입니다. 이때 껍질을 잘 다듬은 도라지 한 뭉텅이를 광목 천에 쌓아 콩 속에 파묻습니다. 뜸을 들이는 과정에서 삶은 콩에 도라지 향이 깊게 배는데, 이는 잡냄새를 없애기 위한 칠갑산 우리콩 청국장만의 비결. 볏짚을 바닥에 깔고 군불을 때 40도가 넘도록 황토방의 온도를 맞춘 후 이불을 세 겹 덥는데요, 이불을 덮기 전 청국장의 발효를 돕는 고초균의 생성을 돕기 위해 바구니 위에 짚방망이를 하나씩 올립니다. 그렇게 약 이틀의 시간이 흐르면 청국장 제조가 완료됩니다. 보통 절구로 빻아 먹기 좋게 만드는데, 이 과정에서 청양 지역의 질 좋은 고춧가루를 적당량 넣어 냄새를 억제하고 맛을 더 좋게 하는 것이 칠갑산 우리콩 청국장의 또 하나의 비법입니다. 청국장은 맛도 좋지만 몸에 좋은 성분이 많아, 당뇨 예방, 면역력 강화에 좋은 효능을 보입니다.


청년을 위한 농촌 창업 아이디어

칠갑산 우리콩 청국장의 인기 열풍을 분석해보면 방송 프로그램 출연에 따른 홍보 탓이 가장 크지만 ‘세이푸드슈머(Safety+food+Consumer)’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착한 먹을거리’를 원하는, 다시 말하면 음식 재료와 성분은 물론 제조과정까지 꼼꼼히 살피며 건강한 외식문화를 즐기려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는 말이죠. 발달한 이동 수단과 주 5일제의 정착은 농가 맛집이나 농가레스토랑의 성공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습니다. 1인 가구 증가로 반찬을 사 먹는 문화가 확산함에 따라 양은 적지만, 질 좋은 우리 농산물로 전통의 맛을 재현하는 반찬, 도시락 사업도 유망한 분야 중 하나입니다. 반료동물을 가족의 한 구성원으로 여기는 문화가 퍼지면서 사료의 질도 사람이 먹는 수준으로 높아질 것으로 보입니다. 일부 애호가들은 사료를 직접 만들어 먹일 정도이죠. 관련 시장의 추이를 잘 살펴봐도 좋을 것 같네요!

 


출처 : 새농이의 농축산식품 이야기
글쓴이 : 새농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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