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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그밖의 중요 질병

감기로 착각하다 큰병되는 `뇌수막염`

by 크리에이터 정관진 2013. 5. 8.

얼마 전 한 방송프로그램에 나와 인터뷰를 하는 한 청년의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그 청년은 마치 화상을 입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는 10년 전 고열, 두통 등 초기 감기 증상이 나타나 감기약을 먹고 잠자리에 들었고, 정신이 들었을 땐 손가락과 다리를 잃은 뒤였다고 했다. 그의 병명은 수막구균성 뇌수막염이었다.

한때 ’유행성 뇌척수막염’이라고 불리기도 했던 수막구균성 뇌수막염은 뇌와 척수를 둘러싼 막이 수막구균성이라는 세균에 감염되어 발생하는 질환으로 고열, 두통과 같은 첫 증상이 나타난 후 24~48시간 안에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1919년 W W 헤릭은 ’Extrameningeal meningococcal infections’에서 수막구균 감염을 "어떤 감염성 질환보다 빨리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No other infection so quickly slays)"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이는 1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유효하다. 청년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수막구균성 뇌수막염은 생존하더라도 5명 중 1명은 사지절단, 청각소실 및 뇌손상 등의 중증 영구장애를 남기는 무서운 질환이다.

우리가 흔히 뇌수막염이라고 부르는 질환은 그 종류와 원인, 증상이 매우 다양하다. 감기 기운을 호소하며 내원하는 아이들 가운데 뇌수막염 진단을 받은 경우 80%는 바이러스성 뇌수막염이다.

나머지 20%는 세균성, 결핵성 뇌수막염 등이 포함된다. 바이러스성 뇌수막염은 대부분 감기처럼 앓고 지나가지만 폐렴구균, B형 헤모필루스 인플루엔자, 수막구균 감염에 의해 발생하는 세균성 뇌수막염과 결핵균에 의한 결핵성 뇌수막염은 앞에서 언급한 청년의 경우처럼 치명적인 후유증을 남길 수 있고 심하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하지만 뇌수막염은 대부분 두통, 고열 등의 증상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의사들도 문진만으로는 바이러스성인지, 세균성인지 진단하기 힘들다.

따라서 뇌수막염이 의심되면 요추천자를 통해 뇌척수액 검사를 한다.

척추에 구멍을 뚫어 척수액을 빼내는 과정은 그것을 견뎌내는 아이도, 바라보는 부모도, 실행하는 의사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러한 까닭에 필자는 의사로서 엄마들에게 늘 뇌수막염 사전 예방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게 된다. 예방의 첫걸음은 질환에 대한 올바른 정보 습득이다. 하지만 최근 진료를 하다가 많은 엄마들이 뇌수막염 질환과 예방법에 대해 큰 오해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바로 지난 3월 영유아 필수예방접종에 포함된 뇌수막염 백신으로 모든 뇌수막염을 예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지난 3월 필수예방접종에 포함된 뇌수막염 백신은 영유아에게 주로 발생하는 B형 헤모필루스 인플루엔자 감염에 의한 뇌수막염만을 예방하는 백신이다. 폐렴구균과 수막구균 예방을 위해서는 별도 예방접종이 필요하다.

폐렴구균 감염에 의한 뇌수막염 역시 영유아에게 특히 많이 발생하므로 생후 12개월까지 네 차례의 폐렴구균 백신접종을 통해 예방한다.

수막구균 감염에 의한 뇌수막염은 청소년, 군인, 유학생처럼 다양한 환경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단체생활을 하는 환경에 처할 경우 특히 위험하다.

하지만 요즘은 맞벌이 부모가 늘면서 많은 아이들이 영유아기부터 어린이집이나 놀이방 등을 통해 단체생활을 시작하기 때문에 만 2세 이상이라면 예방접종을 통한 사전예방이 필요하다. 반면 감기처럼 지나가는 바이러스성 뇌수막염은 예방백신이 없어 개인 위생을 철저히 하는 것이 최선이다.

[김동수 연세대 세브란스 어린이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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