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선생님`으로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배우 조경환 씨(67)가 간암으로 투병하다가 지난 13일 별세했다. 간암을 바롯한 간 질환은 조경환 씨처럼 남성들의 주요 사망 원인이다. 이 때문에 대한간학회는 10월 20일을 `간의 날`로 지정해 간 질환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우리나라 간암 발생은 한 해 1만5936명(남자 1만1913명ㆍ2009년 기준)으로 10만명당 23.9명이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로 일본의 11.2명, 미국의 4.5명보다 비율이 훨씬 높다. 특히 35~64세 남성의 간암 발생은 인구 10만명당 68.1명에 달한다. 간암이 40ㆍ50대를 잡는 주요 암이라는 얘기다.
현재 국내 간암에 걸린 유병자(10년 이하)는 3만8920명에 달한다. 간암의 5년 생존율은 25.1%로 폐암, 췌장암과 함께 맨 꼴찌를 달리고 있지만 최근 들어 표적항암제 개발과 새로운 치료법 등장으로 생존율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간암으로 인한 사망자는 전체 암 사망자의 16.1%로 폐암에 이어 2위에 올라 있다. 국내 암 사망자는 한 해 약 7만명(2009년 기준)으로 전체 사망자 중 28.3%를 차지하고 있다. 간암은 증상이 나타날 때쯤이면 대부분 3~4기여서 다른 암과 달리 사망자가 많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안상훈 교수는 "간은 내부에 통증세포가 없어 웬만큼 아프기 전에는 신호를 보내지 않는 침묵의 장기"라며 "간암 예방뿐만 아니라 간 건강을 지키려면 증상이 없더라도 꾸준히 내 몸에 관심을 갖고 돌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40대 이후에는 정기적으로 간염 검사, 간기능 검사, 간초음파 검사로 간 질환 유무를 확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BㆍC형 간염이 간 질환 80~90% 차지
보통 간 질환이 발생하면 쉽게 피로하고 기운이 없으며 구역질이 자주 나고 입맛이 없어진다. 또 오른쪽 윗배에 통증이 느껴지거나 덩어리 같은 것이 만져질 수 있다. 눈동자와 피부가 노래지고 소변이 짙어지는 황달이 나타날 수도 있다. 배에 물이 차서 배가 부풀어 오를 수 있고 피가 쉽게 나고 잘 멈추지 않는 경향이 있다. 온 종합병원 소화기내과 김봉진 과장은 "이런 증상들이 나타나면 간 질환이 상당히 진행된 것으로 볼 수 있으므로 즉시 병원을 찾아 정확한 원인을 찾고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간 질환은 병이 생기는 근본 원인에 따라 바이러스로 인한 간 질환, 약물로 인한 독성 간 질환, 인체 면역계통의 이상으로 인한 자가 면역성 간 질환, 독성물질이 과다하게 쌓여서 생기는 대사성 간 질환, 기타 원인이 불분명한 간 질환으로 구분된다. 우리나라 만성 간 질환ㆍ간암 환자는 60~70%가 B형간염과 관련이 있고 약 15~20%는 C형간염과 관련이 있다. 나머지 10~20%는 알코올성 간염과 자가 면역성 간염이 원인이며 우리나라 만성 간 질환과 간암의 대부분이 B형간염, C형간염에 의한 것이다.
◆ 간 망가지면 입ㆍ몸에서 암모니아 냄새
간은 무게가 1200~1600g으로 우리 몸에서 가장 큰 장기다. 간은 우리 몸을 순환하는 전체 혈류량의 33%가 통과하며 간경화와 같이 간 질환이 있으면 피가 간에 들어가지 못해 주변 혈압이 높아지면서 팽창해 식도나 위에 정맥류가 생긴다. 이 정맥류들이 풍선처럼 늘어나 벽이 얇아 터지기 쉽고 출혈까지 일으킨다.
간은 우엽(右葉)과 좌엽(左葉)으로 나뉘고, 우엽이 3분의 2가량의 용적을 차지한다. 간은 더 세밀하게는 혈관과 담관의 분포에 따라 8개의 분절로 나눌 수 있다. 이 같은 해부학적인 특성 때문에 간 절제와 생체 간 이식이 가능하다.
복부의 오른쪽 윗부분과 오른쪽 젖가슴 아래에 위치해 있는 `간`은 사고와 행동을 관장하는 `뇌`와 순환계 중심인 `심장`과 함께 가장 많은 일을 한다. 간은 `인체의 화학공장`이라고 할 정도로 소화액인 담즙을 비롯해 수천 가지의 물질과 효소를 만들어낸다. 간에서 생산된 담즙은 십이지장으로 이동해 섭취한 음식물을 더 작은 입자로 분해해 소화를 돕는다.
우리가 매일 먹는 지질과 당분, 단백질을 비롯해 각종 비타민, 호르몬이 대사되는 곳도 바로 간이다. 만약 간이 좋지 않으면 간에서 만들어지는 알부민과 같은 단백질이 부족하게 돼 복수에 물이 찬다. 특히 간은 혈액응고에 관여하는 단백질을 합성하는 장기로, 망가지면 피가 잘 나고 잘 멈추지도 않는다.
간은 세균ㆍ색소ㆍ독소를 걸러주는 여과장치 역할도 한다. 서울아산병원 이승규 교수는 "장에서 단백질이 소화되면서 많은 양의 암모니아 가스가 발생하는데, 그대로 두면 뇌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힌다"며 "이를 인체에 무해한 물질로 바꿔 소변으로 배출시키는 역할을 하는 곳이 바로 간"이라고 설명한다.
간질환은 간염, 지방간, 간경화, 간암 등과 같은 다양한 형태로 발병한다. 중증질환인 간경화나 간암은 사망에까지 이른다. 바이러스 간염에는 A, B, C, D, E형이 있다. 흔히 우리 주변에서 보는 간염 종류는 A, B, C형이다.
◆ 간 수치 정상이라도 안심 말고 정밀검사를
간 질환은 진찰과 혈액검사, 영상검사로 진단한다. 필요에 따라 간 조직 검사를 하기도 한다. 혈액검사는 간 기능이 얼마나 나쁜지를 알 수 있으며 간염이나 간 질환 원인을 밝힐 수 있다. 흔히 우리가 `간 수치`라고 부르는 간 효소검사 수치는 간 세포 내에 존재하는 효소가 간 손상으로 인해 세포가 깨지면서 혈액으로 흘러 들어가면 상승하기 때문에 수치가 높을수록 간 질환을 의심할 수 있다.
급성간염처럼 짧은 시간에 간 세포가 갑자기 많이 파괴되면 간 수치(IU/ℓ)가 수백에서 수천까지 상승할 수 있다. 만성간염은 보통 40에서 300 정도다. 급성간염은 치료를 시작해 3~4개월여 만에 다 낫지만 만성간염은 4~6개월이 지나도 치료가 잘되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간혹 간 질환이 있어도 간 수치가 정상인 경우도 있기 때문에 단순히 혈액검사만으로 간 질환 진단이 완벽하다고 할 수 없다. 따라서 보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 간초음파 검사를 시행한다. 초음파 검사는 간의 형태를 확인하고 간 질환 정도를 진단한다. 상황에 따라 보다 정확한 진단과 간 질환 진행을 판단하기 위해 컴퓨터 단층촬영(CT)이나 자기공명영상(MRI) 등을 시행하는 경우도 있다.
◆ 민간요법 의존했다간 황달ㆍ복수 부작용도
간질환은 증상의 경중이나 간 기능의 악화 정도, 환자 상태에 따라 치료 기간이나 약물 종류가 결정된다.
간 질환자들은 대부분 일상생활을 중단하고 무조건 푹 쉬는 것이 치료와 회복의 지름길이라고 믿고 있지만 이는 잘못된 것이다. 전문의들은 적당한 활동 및 피로감을 느끼지 않을 정도의 운동은 오히려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조언한다. 하지만 분노, 슬픔 등의 급격한 감정기복은 건강을 악화시킬 수 있어 되도록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관리하고 유연한 감정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
최근 서울성모병원 암병원 간담췌암센터는 생존기간이 평균 7개월 길어지고 사망률이 3배 낮아지는 신항암치료법을 개발했다. 이 치료법은 약물 방출성 미세구슬을 이용해 항암약물을 암부위에 투입시켜 암세포를 사멸시키는 간동맥화학색전술로 소위 미세구 색전술로 불린다.
윤승규 간담췌암센터장은 "신치료법은 항암제의 전신노출을 최소화한 상태에서 암세포에 대한 항암 효과를 지속시킬 수 있어 항암 요법의 전신독성으로 인한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며 "연구 결과 비교적 안전하고 좋은 치료 반응을 보여 간암의 새로운 국소 항암 치료방법으로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병문 의료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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