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점점 아열대기후로 바뀌면서 여름은 길어지고 더위도 기승을 부립니다. 여름철 중에서도 가장 더운 기간은 초복, 중복, 말복이라 ‘삼복더위’라 부릅니다. 날씨가 더워지면 더워질수록 뱃속은 냉해집니다.
그래서 일년 중 가장 더운 복날에는 개를 잡아 개장국을 먹습니다. 땀을 많이 흘리고 기력도 약해지므로 몸보신을 해야 하는데, 여러 종류의 몸보신용 중에 개를 선택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개의 성질이 뜨겁기 때문입니다.
동의보감에 개고기(狗肉)는 성질이 따뜻하고 허리와 무릎을 데워주며 기력을 도와준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열이 많아 눈이 충혈되고 코가 마르는 사람은 먹어서는 안 된다고 하여 개고기의 뜨거운 성질을 조심하고 있습니다.
원래 한자문화권에서는 개를 견(犬)과 구(狗)로 구별해서 길렀습니다. 즉 견은 친구처럼 기르는 가족이고, 구는 식용으로 기르는 가축입니다. 그래서 ‘애완견’이라 부르지 ‘애완구’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황구’라고 부르지 ‘황견’이라 하지 않습니다.
비위가 조금 상하는 이야기지만, 똥은 성질이 음성적(陰性的)이고 차갑습니다. 성질이 찬 똥을 즐겨 먹는 똥개는 다른 개들에 비해 더 뜨거운 몸을 가지고 있다 할 수 있습니다. 개를 약으로 쓴다면 당연히 그 성질이 뜨거울수록 좋습니다. 똥개를 최고로 치는 이유입니다.
여름에는 뱃속이 냉해집니다. 그 이유는 사람이 항온동물(恒溫動物)이기 때문입니다. 항온동물은 자신의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계절의 변화에 따라 전신의 온도분포를 조절하는데, 겨울에는 차가운 날씨에 의해 손발이나 체표의 혈관이 수축하고 겉의 온도가 떨어지면 오히려 뱃속은 혈액 공급이 용이해져 따뜻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름에는 더운 날씨에 의해 손발과 체표의 혈관이 팽창하고 겉이 뜨거워지는 반면, 뱃속은 상대적으로 공허해집니다.
한의학에서는 인체의 겉과 속을 표리(表裏)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소박한 의미의 겉은 체표(體表)를, 속은 위장관(胃腸管)을 뜻합니다. 인체는 항상성(homeostasis)을 유지하기 위해 표리한열(表裏寒熱)을 조절하는데, 겉이 차가워지면 속이 뜨거워지고, 겉이 뜨거워지면 속이 차가워집니다. 겉이 뜨거워지는 여름에 속이 냉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생리현상이지요.
그래서 여름이 다가오면 배탈과 설사가 걱정입니다. 위나 장이 약한 사람들이 여름에는 속이 냉해진다는 생리현상을 잘 이해한다면 배탈 설사를 줄일 수 있습니다. 냉면을 먹고 장염에 걸리면, 의사들은 먼저 냉면 국물의 대장균을, 다음으로 냉면 국물에 둥둥 떠 있는 얼음, 찬 음료수, 시원한 맥주, 아이스크림을 의심합니다. 냉한 뱃속을 더 차갑게 하는 음식은 모두 배탈, 설사의 주범입니다. 전통적으로 냉면은 겨울 음식이었습니다.
한겨울에 따끈한 아랫목에 이불을 덮고 앉아, 얼음이 둥둥 떠 있는 동치미 국물에 성질이 차가운 메밀국수를 말아 드셨답니다. 또, 여름에는 시원한 나무그늘이나 정자에 앉아 성질이 뜨거운 개장국을 먹었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계절에 따른 인체의 표리한열 변화를 이해하고 있었다는 거지요. 개고기가 꺼림칙한 분은 삼계탕이 어떨까요. 닭과 인삼은 개고기 못지않게 뜨거운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원하게 땀을 흘리면서 먹는 뜨거운 삼계탕도 여름에 냉해진 속을 데울 수 있는 대표적인 음식입니다.
위나 장이 약한 분들은 빙과류나 얼음 등 차가운 성질의 음식은 반드시 피해야 합니다. 꼭 드시고 싶으면 가을까지 기다려 낙엽이 지면서 날씨가 쌀쌀해지면 드세요. 그때가 되면 뱃속은 점차 따뜻하게 바뀌면서 웬만한 찬 성질의 음식도 견뎌낼 수 있을 겁니다. 그밖에도 냉해진 속을 보호하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잘 때 더워서 이불을 걷어차더라도 반드시 수건이나 모포 등으로 배만은 덮어주어야 합니다.
또 더운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평소 상식(常食)하는 음식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은 항상 속이 냉할 가능성이 큰 기후에서 삽니다. 그래서 그들의 평상식에는 속을 데워주는 음식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인도의 카레 같은 식품입니다. 카레는 강황(薑黃)이라는 식물로 만드는데, 강황은 동의보감에도 수록된 상용 한약으로 성질이 뜨겁고 매운 약입니다.
더운 나라에서는 후추와 천초, 회향 등 향신료의 사용도 많은데, 이들 향신료는 음식의 찬 성질을 없애고 뱃속을 데워주는 역할을 합니다. 여름에는 적당량의 향신료 섭취가 속을 데워줄 수 있습니다. 따뜻한 성질을 가진 약차(藥茶)를 자주 마시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여러 가지 권할 만한 것들이 많지만, 한 가지만 말씀드린다면 ‘차조기’입니다. 차조기는 꿀풀과 한해살이풀로 집 근처의 밭 등에서 저절로 잘 자랍니다.
차조기는 깻잎처럼 생긴 식물인데, 깻잎과의 차이점은 그 색깔이 짙은 보라색이라는 것입니다. 보라색 깻잎이 달린 풀이 집 근처에서 자라면 차조기라고 보면 됩니다. 날씨가 더워지며 사람들의 뱃속이 점점 차가워질 때가 되면 차조기의 잎은 무성해지는데, 그 잎을 따서 그늘에 말렸다가 차로 다려서 마시면 됩니다.
그냥 찬물에 넣어 잘 흔들어 마셔도 효과가 있는데, 말린 차조기 잎을 생수통에 넣어 흔들면 아름다운 보라색 물로 바뀝니다. 여름 식탁에 흰 테이블보를 깔고 맑은 유리잔에 차조기 잎으로 만든 보라색 생수를 준비하면 배탈과 설사의 예방은 물론이고, 세련되고 낭만적이면서 고급스러운 분위기도 연출할 수 있답니다.
전창선 튼튼마디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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