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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치료/수술

흉터ㆍ후유증 없이 빠른회복…수술 名醫 `닥터로봇`

by 크리에이터 정관진 2010. 9. 9.

로봇으로 수술하는 장면공상과학영화에서 주인공의 '스카 페이스'(흉터 진 얼굴)를 감쪽같이 복원하고 죽은 혈관과 조직을 되살리던 로봇 수술이 드디어 우리 의료현장에도 뿌리를 내리고 있다.

한국은 로봇수술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미국 인튜이티브 서지컬사의 '다빈치'를 총 28대나 보유한 이 분야의 아시아 선도국가다. 2005년 7월 세브란스병원이 처음 도입해 현재 4대를 보유하고 있고 서울아산병원과 서울대병원이 각각 2대를 운영 중이다.

아시아 최다 보유국으로 아시아 의사의 로봇수술 트레이닝센터도 세브란스병원 안에 설치돼 있다. 이에 비해 아시아국가로는 일본이 7대,홍콩 5대,싱가포르 4대로 부진한 편이다. 일본이 자국산업 보호를 이유로 외국 로봇의 도입을 억제해온 데다 10회 이상 견학,1회 이상 실습한 의사에게만 로봇수술을 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는 등 까다롭게 규제해온 탓이다. 중국도 2007년 한국의 식품의약품안전청장격인 고위 관료가 인허가비리로 공개 사형당하면서 주춤하다가 최근에야 상하이를 중심으로 도입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다빈치 로봇은 엄밀히 말하면 '의사의 하인'(Master's slave machine)이다. 집도의가 손가락으로 수술 콘솔을 움직이면 그 동작이 7자 모양의 로봇팔을 통해 그대로 전달돼 절개하고 떼어내고 꿰맨다. 로봇팔의 관절은 4개로 사람 손가락과 비슷하게 작동한다. 인튜이티브 서지컬사는 현재 5개 관절로 가동되는 업그레이드 제품을 개발 중이다. 콘솔에는 4개의 발판이 있다. 이 발판을 조종해 전기소작으로 지혈하거나 복강경 카메라의 움직임을 제어한다. 양안렌즈는 수술부위를 최대 10~15배 확대해 3차원으로 볼 수 있다. 평면으로 보이는 복강경에 비해 수술하기에 훨씬 편하다.

이 로봇은 수술테크닉이 부족한 의사의 실력을 보완해주는 한편 사람의 실수를 최소화한다. 1㎜ 이하의 정교한 수술을 할 때 의사의 손이 떨리는 현상을 거의 제로에 가깝게 만든다. 또 의사가 부주의로 손을 10㎝가량 움직여도 로봇이 스스로 이상하다고 판단하면 실제로 1㎜만 반영한다. 이런 실수가 반복되면 마치 주가가 급락할 때 나타나는'사이드 카'처럼 경고음이 울린다.

복강경 수술보다 더 좁은 공간에 로봇팔이 들어가 훨씬 수월하게 수술하므로 공간과 시야의 제약을 극복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환자들은 신경이나 혈관을 다치지 않고 후유증 없이 더 빨리 회복할 수 있다.

지난달 30일 직장암 2기 말로 진단된 충남 보령의 이 모 교사(47)는 세브란스병원에서 로봇 수술을 받았다. 직장 주위에는 배뇨 · 배변 및 성기능 관련 신경이 모여 있어 수술 후 후유증으로 대 · 소변을 가리지 못하고 발기능력도 손상될 가능성이 있지만 이 환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또 같은 병실에 입원한 다른 직장암 환자는 회복에 1주일 이상 걸려 끙끙 앓았지만 이 환자는 하루 정도만 힘들었고 이후 빠르게 회복돼 엿새 만에 퇴원했다. 전립선암도 로봇수술을 받으면 기존 수술에서 나타나는 발기부전 부작용을 80~95%가량 줄이고,6~12개월 걸리는 배뇨회복기간을 1~3개월로 단축시킬 수 있다. 전립선암과 대장 · 직장암에 로봇 수술이 대거 활용되는 이유다.

외국에서는 다빈치가 주로 전립선암 수술에 이용되는 반면 도입한 지 5년도 채 안되는 한국에서는 대장 · 직장암은 물론 인두암 후두암 간암 담도 · 췌장암 난소암 갑상선암 등에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특히 김선한 고려대 안암병원 외과 교수의 대장 · 직장암 수술,연세대 김세헌 교수의 인두 · 후두암 수술은 섬세함과 속도면에서 독보적이다. 세계 의사들이 감탄할 정도다. 이는 한국 의사들의 미세한 손놀림과 창의성,도전정신 덕분이라는 평가다.

국내서는 또 목의 흉터를 줄이기 위한 갑상선암 로봇수술이 활발한 게 특색이다. 현재까지 약 600건 이상 시행된 것으로 추산된다. 일반 수술이면 200만원이면 충분하지만 무려 900만원이나 들여 비교적 간단한 갑상선암까지 로봇수술을 해야 하느냐는 지적도 제기되지만 여성들이 느끼는 흉터에 대한 거부감이나 수술 후 침 삼킴이 불편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감안하면 이해될 만한 측면도 있다는 반론이다.

로봇수술은 일반 개복수술의 4~5배,복강경 수술의 2~3배를 받는다. 다빈치의 대당 가격이 20억원을 넘는 데다 한번 수술할 때마다 최소 120만원의 소모품(로봇팔의 팁이나 파이버)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강영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외과 교수(대장암 직장암 로봇수술 담당)는 "로봇수술의 비용 대비 효용성에 대해서는 아직 의학적인 연구로 입증된 바 없고 의사들 사이에서도 공감대가 부족한 게 사실"이라며 "로봇수술 후 회복기간이 짧고 흉터가 적게 남으며 각종 후유증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계량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최초의 로봇수술 전문의인 이 병원 나군호 비뇨기과 교수는 "일반적으로 항암제 또는 방사선 치료보다 수술이 보다 확실한 치료법이고 표적항암제나 양성자치료가 보다 진보한 항암 · 방사선 치료법이라면 로봇수술도 업그레이드된 수술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사등록 : 2010-05-21 17:19
기사수정 : 2010-05-21 17:19
기사작성 :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
기사출처 : 한국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