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특별한 외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느껴지는 만성통증은 꾀병으로 오해받기도 하지만 치료하지 않으면 평생 고통에 시달릴 수 있다. 세브란스병원 제공 |
통증은 몸에 문제가 생겼으니 빨리 해결하라는 '조기경보'다. 통증이 생기면 우리는 몸의 이상을 알아채고 병원을 찾아 치료를 받는다. 그런데 몸에 별 이상이 없는데도 이 조기경보가 계속 울리면 문제가 된다. 나이 들어 퇴행성 질환을 앓으면 이런 문제가 번번히 발생한다. 몸을 보호하는 기능이 없는 통증이 끊이지 않고 지속되는 것을 만성통증이라고 한다.
국내에는 250만명이 이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다. 만성통증은 만성두통을 비롯, 섬유근통증후군, 3차 신경통, 근막통증증후군, 수술 및 외상 후 통증증후군, 만성요통, 좌골신경통, 반사성 교감신경계 위축증, 대상포진 후 신경통, 당뇨병성 신경병증 통증 등 다양하다. 이들 중 지나치기 쉬운 3대 만성통증인 섬유근통증후군과 복합부위통증증후군, 당뇨병성 신경병증 등에 대해 알아본다.
원인 모르는 '섬유근통증후군'강
섬유근통증후군은 외부 자극이 없는데도 어깨와 발목, 무릎, 팔목, 팔꿈치 등 온 몸 이곳 저곳 아프고, 크게 힘든 일을 하지 않아도 피곤해진다. 관절염처럼 후끈후끈 쑤시거나 근육이 뻣뻣해지고, 독감에 걸린 듯 만성 피로에 시달리기도 한다. 심지어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우울해지는 등 정서적인 장애도 나타난다.
섬유근통증후군은 50여가지 증상이 나타나는 전신성 통증질환이라 하나로 규정짓기가 쉽지 않다. 병원에서 검사를 받아도 아무런 이상이 발견되지 않아 특별한 질병으로 진단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며 꾀병으로 오해를 받기도 한다.
공식 통계는 없지만 전체 인구의 2% 정도가 이 질환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주로 30~55세 여성에게서 많이 나타난다. 섬유근통증후군 환자의 95% 이상이 온 몸이 쑤시고 아픈 증상을 느낀다. 섬유근통증후군 환자는 몸의 18군데의 통점이 정상인에 비해 민감하다. 18군데의 통점을 4㎏ 정도의 힘으로 눌렀을 때 11군데 이상이 아프다면 이 질환을 의심해 볼 수 있다.
또 아침에 일어났을 때 온 몸이 뻣뻣해 잘 움직여지지 않는 경직상태가 30분 정도 지속되기도 한다. 이 질환의 주 증상인 전신통증과 만성피로가 나타나는 유사질환도 적지 않다. 오인되는 대표적 질환은 근막통증증후군, 만성피로증후군, 류마티스 관절염, 심인성 동통 등이다.
근막통증증후군은 근육이 딱딱해져 통증이 생기는 질환이다. 온 몸이 아닌 국소 부위만 아프며 만성피로나 수면장애가 나타나지 않는다. 만성피로증후군은 힘든 일을 하지 않아도 쉽게 지치고 피곤하며 몸이 나른해지며 피로증세가 6개월 이상 만성적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만성피로 외에도 37.5~38.6도 정도의 미열이 있으며 인후 통증, 임파선 비대 등이 자주 나타나고 전신통증과는 관련이 없다.
류마티스 관절염은 손가락, 팔꿈치, 무릎 등의 관절이 좌우대칭적으로 염증을 일으켜 붓고, 통증을 일으키고, 굳어진다. 특히 새벽에 아주 아프고 몸이 쇠약해지고 미열이 생기는데 관절에 주로 통증이 나타난다.
심인성 동통은 질환이 없거나 신체적 원인으로 설명할 수 없는 통증이 나타나는데 심리적 요인으로 발생한다. 환자가 느끼는 증상이 일정하지 않고 특정 압통 부위가 아닌 온 몸에 걸쳐 통각이 민감해져 통증이 생긴다.
섬유근통증후군 치료는 약물치료와 함께 운동요법과 심리요법을 병행한다. 그 동안 마땅한 치료제가 없어 통증을 일시적으로 멎게 하거나 수면을 도와주는 약물치료가 전부였다. 최근 섬유근통증후군 치료제인 한국화이자의 '리리카(성분명 프레가발린)'가 나와 통증을 근본적을 치료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과도하게 흥분된 신경세포의 알파3델타 단백질과 선택적으로 결합해 신경세포 활동을 진정함으로써 통증을 줄인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2008년 리리카를 '2007년 10대 의학혁신'으로 선정했다. 300만~600만명에 달하는 섬유근통증후군 환자의 삶의 질을 개선했다는 이유에서다.
참을 수 없는 통증 '복합부위통증증후군'강
복합부위통증증후군은 외상 후 특정 부위에 만성적으로 극심한 통증이 계속되는 것이다. 통증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의사조차 치료를 어려워한다. 원인 규명이 어려운데다 고통도 사람마다 달라 명확히 진단을 내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복합부위통증증후군은 여자가 남자보다 10배쯤 많이 발병하며 40~50대 여성이 많다.
주로 손과 손목, 무릎, 발목, 발 같은 팔다리 부분에 잘 생긴다. 팔에 44~61%, 다엔?9~51% 정도 생긴다. 사고로 인해 외상이 치유될 쯤부터 통증이 생긴다. 즉 손이나 발을 삐거나 절단한 뒤, 수술 받은 뒤, 동상이나 화상 후, 가벼운 외상을 입은 뒤에 종종 발생한다.
상처는 거의 아물지만 느끼는 통증이 휠씬 심각하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가끔 쥐어짜는 듯이 아프고, 옷깃이나 종이만 스쳐도 심하게 아프다. 게다가 통증을 조절하려면 마약성 진통제를 장기 복용해야 하므로 고질적인 부작용인 변비로 고생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발매된 패치형 마약성 진통제인 '듀로제식 디트랜스'(한국얀센)는 변비 부작용을 줄여준다.
마약성 진통제를 중심으로 한 약물요법, 교감신경, 척수신경근 차단 등 신경블록요법, 척수신경자극기 삽입술 등의 치료법이 있다. 진단이 되면 물리치료를 반드시 해야 한다. 김찬 아주대병원 통증의학과 교수는 "치료법이 많지만 환자의 상태가 각기 다르므로 안전과 효과를 고려해 단계적으로 치료법을 택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통증을 잘 느끼지 못하는 '당뇨병성 신경병증'강
당뇨병성 신경병증은 당뇨병 환자가 고질적으로 앓는 만성 합병증이다. 하지만 정작 당뇨병 환자들은 이 질환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낮은 편이다.
당뇨병성 신경병증은 말초신경, 특히 발과 발가락의 신경이 손상되는 과정에서 따끔거리거나 화끈거리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전기 충격이 오듯이 찌릿찌릿하게 아프기도 한다. 밤에 심해지는 것이 특징이다. 더 큰 문제는 통증을 잘 느끼지 못하는 환자도 25%나 된다는 점이다. 먹먹함, 무감각, 마비 증상으로 나타나기도 해 질환이라는 사실을 깨닫기가 쉽지 않다.
운동신경, 말초감각신경, 자율신경까지 손상될 수 있는 당뇨병성 신경병증은 혈당 관리에 자신이 있는 사람이나 다른 합병증이 없는 사람에게도 빈번히 생기는 합병증인만큼 주의해야 한다. 당뇨병 환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다리 절단 원인의 50~75%가 당뇨병성 신경병증이다. 한국릴리와 한국베링거인겔하임의 '심발타(성분명 둘록세틴)', 한국화이자제약의 '리리카' 등으로 통증을 완화할 수 있다. 심발타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최초로 승인한 당뇨병성 신경병증 치료제로 기존 치료제보다 비용이 절반밖에 되지 않고, 하루 1회만 복용하면 된다.
도움말=배상철 한양대 류마티스병원 원장, 윤덕미 세브란스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 신호철 강북삼성병원 만성피로클리닉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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