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팡이는 두 얼굴을 갖고 있다. 한국인의 대표음식인 된장, 동동주나 청주 같은 전통 주류는 모두 곰팡이의 재주 덕분에 제맛을 낼 수 있다. 또 송이버섯 양송이 등 몸에 좋은 버섯류는 바로 곰팡이 자체다. 하지만 흔히 곰팡이 하면 장마철 눅눅해진 집안 구석구석을 찾아드는 불청객쯤으로 여겨지는 것도 사실. 또 오래 보관해둔 땅콩 끄트머리에 파랗게 자라나 간암을 일으키는 무서운 병균으로 인식된다. 이른바 ‘병 주는’ 곰팡이다.》
흥미롭게도 과학자들은 인간에게 ‘병 주는’ 곰팡이에게서 신약물질을 개발하고 있다. 제약업계를 들뜨게 만드는 ‘산업 곰팡이’의 일종이다.
종근당 신약연구소의 안순길 박사팀은 22일 대구 인터불고호텔에서 열린 한국미생물생명공학회에서 ‘병 주는’ 곰팡이를 이용해 새로운 항암물질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힌트는 우연히 주어졌다. 1990년대 초 미국 하버드대 의대의 주다 포크먼 박사팀은 실험실에서 생체조직을 키우다 이상한 현상을 발견했다. 조직 주변에 혈관이 생겨 잘 자라야 했는데 금세 죽어버리기 일쑤였다. 자세히 살펴보니 곰팡이(Aspergillus fumigatus)가 피어있었다. 이 곰팡이가 푸마질린이라는 물질을 분비해 혈관 생성을 막은 것.
포크먼 박사팀은 푸마질린이 암세포를 무력화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 생각했다.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하는 혈액의 흐름을 차단해 암세포를 ‘굶겨 죽이는’ 전략을 구사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지만 푸마질린은 주변 정상세포까지 파괴하는 독성이 강했다. 종근당 연구팀은 바로 푸마질린의 구조를 일부 변형시켜 독성을 최소화한 물질(CKD-732)을 개발했다.
안순길 박사는 “생쥐실험 결과 부작용이 거의 없이 70∼90%의 암억제율을 보여 지난 수년간 미국 암학회로부터 주목을 받아 왔다”며 “현재 연세대 의대 정현철 교수팀과 암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 1단계 시험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임상 1단계는 신약물질의 독성 정도를 파악해 환자에게 최대로 투여할 수 있는 양을 결정하는 단계다.
안 박사는 “2007년경 CKD-732를 신약으로 승인받는 게 목표”라며 “혈관 생성을 억제하는 항암제는 올해 초 미국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아바스틴이 유일하기 때문에 한국이 세계적으로 앞선 수준”이라고 말했다.
사실 산업 곰팡이의 ‘원조’는 인류의 평균수명을 20년 정도 늘였다고 평가받는 페니실린이다. 1929년 영국의 알렉산더 플레밍이 빵이나 떡에 피어 못 먹게 만드는 푸른곰팡이로부터 병균을 무력화시키는 항생제(페니실린)를 발견한 것. 또 장기를 이식할 때 면역거부반응을 줄이는 사이클로스포린, 동맥경화를 치료하는 각종 약제들도 곰팡이 덕에 탄생했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소 뒷걸음치다’ 우연히 발견된 것이 사실. 아예 곰팡이가 만드는 모든 물질을 데이터로 만들면 향후 연구원들이 산업적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이충환 박사는 “그동안 곰팡이에 대한 연구는 유전자와 단백질의 구조와 기능을 알아내는 데 치중했다”며 “이와 함께 곰팡이의 대사산물을 총정리하는 새로운 학문(대사체학)이 세계적으로 시작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과학기술부가 지원하는 21세기프런티어사업단의 하나인 미생물유전체활용개발사업단 주도로 2년째 진행되고 있는 사업이다. 1000여종의 곰팡이를 포함한 미생물 3000여종의 대사산물이 분류돼 있다.
김훈기 동아사이언스기자 3Dwolfkim@donga.com">wolfkim@donga.com
동아일보
출처;유방암 Success Ca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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