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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에이터 정관진 제2군단/암정보

암! 이겨낼 수 있다

by 크리에이터 정관진 2008. 8. 24.

암! 이겨낼 수 있다

 

사형선고와도 같은 암 진단을 받은 환자들은 의사에게 어떤 질문을 해야 할까? 암과 싸워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되는 지침을 소개한다 - 주혜경

김상태 목사에게 암은 결코 낯선 병이 아니었다. 부친이 1967년 폐암에 걸려 몇 해동안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다 별세했고, 3살 위의 형 역시 1974년 간암으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1991년 6월에는 부인도 암에 걸려 갑상선을 둘 다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정작 김목사 본인이 그 이듬해 암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되니 너무 무섭고 막막했다.


암이 곧 죽음을 뜻했던 그에게 “안됐지만 암입니다”라는 의사의 진단은 온몸의 기운을 쭉 빼버려,아무런 사고나 판단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러나 종교인답게 그는 생사를 하느님께 맡겼다. 위암은 최악의 상태여서 이미 췌장과 비장까지 전이되어


있었다. 수술로 암이 번진 부위들을 성공적으로 모두 떼어내더라도 예상되는 잔여 수명은 석 달 미만이었다. 그러나 김목사와 가족들은 수술을 받게 해달라고 서울백병원 한국위암센터 원장인 김진복 박사를 설득했고, 결국 위, 췌장, 비장까지 모두 제거하고 식도와 십이지장을 루프식으로 직접 연결하는 전대미문의 대수술이 단행되었다.
그것이 벌써 13년 전의 일이다.


그후 김목사는 몇 차례의 재수술과 담석 제거 수술을 받았다. 2000년 4월에는 자동차를 폐차할 정도의 대형 교통사고까지 겪었지만 김목사는 건재하다. 날마다 새벽 4시부터 빈틈없이 꽉 찬 일과를 보내는데, 담임목사로 봉직하고 있는 교회에서 주일 설교를 빼놓은 적도 없고, 해외출장과 인터뷰도 자주 한다.

 직접 만나거나 또는 전화로 암 환자와 상담도 한다. 대수술을 받은 후 누우면 담즙이 식도로 역류하기 때문에 밤새 앉은 자세로 잠을 자야 했다. 그러나 그에게서는 그러한 고통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다. 학처럼 고고하면서도 밝은 인상이다.

 

 “병을 피하기보다 제대로 알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가족의 사랑과 보살핌, 무엇보다 하느님을 믿고 그분께 모든 것을 맡기며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것이 저를 살게 했죠.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안된다’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그는 “암을 이기는 이들의 모임”을 만들어 회장직을 맡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매년 10만여 명씩 새로운 암환자가 발생한다. 날마다 평균 274명이 새로 암 진단을 받는 셈이다. 전국에 등록된 환자는 8만 명이 넘는데 이중 4만 4000명이 남성, 3만 6000명이 여성이다. 국립암센터의 박재갑 원장은 강조한다.

 

“500여 명의 고귀한 인명이 희생된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에 견주어본다면, 암에 의한 희생은 3~4일에 한번씩 그런 참사가 일어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암 사망 건수를 10%만 줄여도 연간 5000명의 고귀한 생명을 구할 수 있습니다.” 암 등록 환자는 계속 증가추세여서 1982년 2만 2567명이던 것이 1999년에는 8만 5551명으로 3.5배에 달했다. 그리고 지난해 암환자는 약 29만 명에 달했다.


암 사망비율 역시 증가추세를 보인다. 1990년 인구 10만 명당 110명이던 것이 1999년에는 114명꼴로 늘었다. 위암만 예외여서 1983년의 29.7명에서 1999년에는 24명으로 줄었다. 나머지는 모두 증가하여 간암은 15.6명에서 20.7명, 폐암은 5.8명에서 22.1명, 직장암은 1.6명에서 7.9명으로 대폭 늘었다. 국내 암 사망자수는 어림잡아 연간 5만 명으로 보는데, 병원을 찾기보다 민간요법 등에 의지함으로써 숫자가 파악되지 않는 환자가 많은 현실을 감안하면 4~5배에 달할 수도 있다.


“다양한 암 치료법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으니 결코 포기하지 말라고 환자분들에게 말합니다. 생명을 포기하지 않고 암과 싸워 이기겠다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전문가들의 도움으로 본인에게 맞는 치료법을 찾아 잘 대처하면 완치도 가능해요. 비록더 오래 살지는 못 하더라도 편안한 마음가짐에 따라 사는 동안 얼마든지 즐겁고 보람있게 지내면서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습니다.” 국립암센터 박영석 박사의 말이다.


많은 사람이 “암”을 “죽음”과 동일시한다. 1988년부터 일년간 한국호스피스협회가 접해본 환자 100명 중 스스로 삶을 포기하려고 한 경우가 22%를 상회했다. 전문가들은 “암을 이기겠다는 굳은 마음가짐”이 그 어떤 치료법보다 더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알 권리
최근에는 점점 더 많은 의사들이 암환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주고는 있지만, 아직도 여전히 위암 환자에게 위궤양이나 위염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의사나 가족들은 환자가 사실을 알게 되면 충격받을까봐 종종 애매하게 얼버무린다.
나쁜 소식인 암 진단결과를 어떤 방식으로 환자에게 전달하느냐에 따라 큰 도움을 줄 수도, 크나큰 충격을 줄 수도 있다. 다음은 국립암센터의 전문가들이 암 전문의들에게 권하는 지침이다.


“가능하면 임상경험이 풍부한 의사가 알리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각종 검사 결과를 미리 준비해 놓고 가급적 조용한 장소에서 면담할 것을 권합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환자의 수준에 맞춰서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말로 차분하게 설명해주는 것이죠. 심리적인 충격으로 인해 알아 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여러 번 만나 설명을 해줘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박영석 박사는 말한다.


“반드시 암 전문의를 만나야 합니다. 좋은 의사를 만나는 것이 암을 이기는 필수요소입니다. 빠뜨리는 것이 없도록 미리 질문 목록을 작성하세요. 친구나 가족과 함께 의사를 만나보는 것이 좋죠. 환자는 당황한 상태라서 기억을 못할 수도 있으니까요.” “암을 이겨내는 사람들의 모임”의 이정갑 회장은 말한다.

 

 자신이 방광암에 걸린 사실을 알았을 때 그는 암에 지기보다 암이 뭔지 알아보겠다며 전세계 암센터의 자료를 검색하고 A4용지로 3000매 이상 출력해서 “공부한” 사람이다. 6개월을 넘기지 못하리라는 청천벽력 같은 시한부 판정을 받은 지 9년이 지난 지금, 60대의 이정갑 회장은 매우 건강하게 살고 있다.


암 전문의에게 다음과 같은 것들을 물어보아야 한다.
●● 무슨 암인가? 암이 어느 정도 진척되었는가? 다른 부위로 전이되지는 않았는가?
●● 가능한 치료법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 어디서, 누구에게 그 치료를 받을 수 있는가?
●● 치료에 따르는 부작용은 무엇인가?
●● 그 암의 완치 가능성은? 만약 완치가 불가능하다면 대략 얼마나 더 살 수 있는가?


한국호스피스협회 회장을 역임한 최화숙 박사는 사람들이 “암”이라는 소리를 들으면 죽음을 연상하지만 암환자가 5년 이상 생존할 확률이 50%에 달한다고 말한다. 전문가들은 환자가 병에 대해 실질적인 지식을 갖추고 능동적으로 치료에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한다. 새로운 치료법이 나날이 개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암을 이겨내는 방법�을 쓴 이정갑 회장은 책 속에서 이렇게 조언한다. “서둘지 말고 침착해야 한다. 두 사람 이상의 의사에게 진료를 받아보라. 주변이나 의료인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맹신하지 말라. 암에 대해 철저히 알아보라. 자신의 검사기록과 촬영한 필름 등을 달라고 해서 본인이 갖고 있으라. 가능한 치료 현실을 인식한 뒤 의사들의 조언을 바탕으로 본인에게 가장 적합한 최선의 것을 선택하라. 남들의 경험담을 들어보라. 살아온 삶을 뒤돌아보라. 스트레스는 인간을 암에 지게 만드는 주범이므로 마음을 대범하게 비우고 울분이나 적개심을 떨쳐버려라.”

 

더 많은 정보를 알아내자
대부분의 환자는 화학요법이니 종양세포의 전이, 컴퓨터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촬영(MRI) 따위의 어머어마하고 압도적인 전문용어에 질려버리기 마련이므로 암 전문의에게 또박또박 질문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 질문이 성생활, 탈모, 유방절제와 복원수술처럼 예민한 사안에 관한 것일 때는 더욱 그렇다. 암에 관한 정보 제공과 카운슬링을 하는 단체가 늘고 있는 것도 이같은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국내에는 다급한 암환자나 가족, 친지들이 쉽게 상의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전화 상담기관, 핫라인 서비스, 온라인 상담센터 등이 별로 많지 않다. 전화는 통화가 어렵고 온라인 상담은 2~3일이나 지난 뒤에 형식적이고 간단한 응답을 얻는 정도가 고작이다.
국내에서도 사이버 상담을 제공하는 곳이 꽤 있는 듯하지만, 직접 확인해본 결과 전혀 만족스럽지 못하다.

 

 제공되는 정보도 적고, 구할 수 있는 자료도 미미하며, 의료진이나 운영자의 답변도 대부분 형식적인 수준이다. “원격진료상담”을 하는 곳 중에서는 고려대학교 의료원 종양혈액내과의 “원격진료상담”센터가 가장 활발하고 구체적인 도움을 제공하고 있다. 인제대학교 상계백병원 방사선 종양학과의 홈페이지도 암진료 무료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서울원자력병원 방사선종양학과에서도 “질병상담”이라는 게시판을 통해 암관련 상담을 해준다.


각당(覺堂)복지재단의 김양자 호스피스 연구실장은 요즘은 인터넷으로 호스피스를 신청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고 전한다. 질문 내용은 주로 암환자가 구토 증세가 있는데 무엇을 먹여야 할지, 민간요법이 있는지, 환자가 혼자 있는데 와서 도와줄 수 있는지 등이라고 한다. 환자들이 가장 알고 싶어하는 사항은 완치 가능성, 생존기간, 수술이 잘될 경우의 재발방지법, 합병증, 사회복귀 가능성, 직장문제, 운동방법, 식사방법, 성생활, 한방치료법 등이다.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
암환자들은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듯 어지럽게 여러가지 격심한 정서를 경험한다. 두려움과 공포, 죄책감, 분노, 혼란, 패배감은 그중 몇 가지일 따름이다. 뿐만 아니라 환자는 가족에게도 말 못할 사정이나 비밀이 많다.

 

 이런 경우는 말을 들어줄 카운슬러가 절실히 필요하다. 현재 대개의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들이 단기 교육과정에서 경청이나 상담 기법을 간략히 배우지만 이들에게서 전문적인 카운슬링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상담 전문가가 절대 부족한 실정이다.


김양자 실장에 의하면 암환자들의 걱정은 첫번째가 죽음과 사후 심판에 대한 공포, 그 다음이 뒤에 남는 가족들에 대한 걱정이라고 한다. 어린 자녀가 있을 경우는 특히 그렇다. 종교가 있는 경우엔 성직자를 만나도록 주선해준다.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들은 환자의 불안한 심정을 이해하고 본인 사망 후에도 자녀나 배우자를 구체적으로 돕겠다는 약속을 해서 환자들을 안심시킨다. 죽음이라는 어마어마한 공포에 직면한 말기 암환자들이 대개 말을 안 하려 들기 때문에 발 마사지 같은 신체적 접촉을 통해 고통을 완화하고 마음을 여는 방법을 사용함으로써 아주 좋은 효과를 보고 있다고 김양자 실장은 말한다.


무지개호스피스회에서는 매년 2회 10주 기간의 자원봉사자 교육프로그램을 실시한다. 이곳에서만 15년에 걸쳐 3000명 이상의 자원봉사자를 육성하고 심화교육도 해왔다. 하지만 아직도 호스피스 시설이 부족해서 주로 환자의 가정으로 파견된다.

 

국내에는 샘물호스피스(hospice.or.kr)와 수원기독호스피스(hospice.ne.kr) 등 현재 70여 개의 호스피스 단체가 존재하는데 의료보험 등 제도적 지원이 빈약한 실정이어서 조직적인 활동을 하는 기관은 소수일 뿐이라고 최화숙 박사는 지적한다.

 

또한 호스피스 교육을 받더라도 실제로 죽음을 대면하는 충격을 이겨내기란 어려운 일이어서 호스피스 봉사활동을 지속하는 사람은 전체 교육 수료 인원의 10~20%에 불과하다. 죽음의 공포에 직면한 말기 암환자들이 속마음을 털어놓고 하소연도 하고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카운슬러나 호스피스가 매우 부족한 현실이다.


가톨릭대학교 강남성모병원이 1982년에 처음으로 호스피스 병동을 갖추었다. 1988년에는 세브란스 암센터에서도 가정간호 호스피스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1992년에는 이화여대와 고려대 의료원이 호스피스 사업을 개시했다. 이외에도 일부 대학병원들이 호스피스 병동을 갖추고 있다.

 

그나마 경영 측면에서 보면 채산성이 맞지 않으므로 소규모에 그칠 뿐이다. 하지만 이 적은 숫자의 호스피스 병동들이 말기 암환자들에게는 이 세상에서 마지막 위로와 힘을 주는 빛과 소금 같은 존재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박현운 주부는 1994년 근육종으로 말기암 진단을 받은 뒤 종양이 림프, 대장, 간, 폐 등 몸 전체에 퍼진 전신암 환자였다. 의사들이 얼마 살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던 박씨는 9년이나 암과 투쟁하다 2003년에 세상을 떠났다.

 

박씨는 어떻게 예상보다 오래 살 수 있었을까? 생전에 박씨는 대체의학의 도움을 받고 마음을 비움으로써 하루하루 화해의 삶을 살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씨는 서울대병원 종양내과의 한 간호사를 특히 고마워했다. 이미 혈관이 딱딱하게 굳어서 혈관을 찾기도 힘들고 주사를 놓기도 힘들었는데, 목순옥 간호사는 시종 친절했고 주사도 매우 능숙하게 놓아주었다고 한다.


“생의 마지막 과정에 있는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사람과 함께 희망하는 방식으로 살다가 원하는 장소에서 죽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호스피스의 철학”이라고 한국호스피스협회의 최화숙 박사는 말한다.


강남성모병원 이경식 교수는 말기 암환자들이 직면하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참을 수 없는 통증이라고 한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통증완화가 가장 시급하고 마약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국내에서는 마약규제가 심해서 말기 암환자들이 극심한 동통을 겪는데도 약을 자유로이 쓰지 못한다.

 

이박사는 두번째 심각한 문제로 변비를 꼽는다. 관장을 해도 돌덩이처럼 딱딱하게 굳어진 대변 덩어리가 나오지 않는데 이럴 때는 의사가 직접 손을 집어넣어 끄집어내는 수밖에 없다. 이렇듯 호스피스 병동의 의사들과 간호사, 자원봉사자들은 남다른 애정과 관심으로 말기 암환자들을 돌보는 특별한 사람들이다.

 

싸워 나갈 힘
대한암환우협회의 배강수 회장은 7년 전 오른쪽 폐에 생긴 종양을 몇 개 떼어 내는 수술을 받았다. 1기 혹은 2기라는 진단이었다. 그러나 수술 후 불과 일주일 후 극심한 통증과 함께 열이 나면서 종양이 다른 부위로 전이되었다. 의사는 2~3개월을 넘길 수 없다고 진단했다. 그는 어차피 죽을 거라면 일이나 정리하고 죽자는 생각으로 기어 다니면서도 일을 계속했다.

이제껏 키워 온 회사이니 끝까지 지키겠다면서 그는 아직도 회사에 출근하고 있다. 절망 속에서도 기도했고, 모르핀주사를 맞으면서도 등산을 다녔다. 병 덕분에 성격도 많이 부드러워졌다.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늘면서 가족에 대한 애정과 고마움이 커갔다. 한방치료를 받으면서 이렇게 하면 살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고, 같이 치료를 받던 암환자 9명이 주축이 되어 대한암환우협회를 결성했다.

 

 현재 수십 명으로 늘어난 회원들은 모두 암환자다. 이들은 교대로 홈페이지(cleancancer.com)에서 암정복에 대한 자신들의 경험을 나누며 전화상담과 온라인 상담 등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은 하나같이 죽을 때 죽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암과 싸워 이기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