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수의 우울증 클리닉]
“번아웃(Burnout)은 ‘일 중독 직장인을 위한 우울증의 사치스러운 버전’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영국 신문에서 읽은 적 있다. 사람들이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받으면 왠지 ‘패배자’가 된 것처럼 느끼지만, 번아웃이라고 하면 마치 일에 헌신한 직장인에게 주어진 훈장처럼 여긴다는 것이었다. 둘 다 극도로 심신이 무기력해진 상태인데, 단지 우울증이라는 사회적 낙인을 피하기 위해 번아웃이라고 부드럽게 이름 붙인 것에 불과하다는 말이었다. 번아웃 증후군은 단순 피로와 다르다. 일로 인한 스트레스가 오래 쌓여 극심한 피로 상태에 이른 것이다. 번아웃에 빠지면 예전에는 금방 끝내던 일도 질질 끌다 기한을 넘기는 일이 잦아진다. 기억력과 집중력이 떨어져서 평소에 하지 않던 실수가 반복된다. 지금껏 열심히 해왔던 일이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것처럼 여겨진다. 자기 자신과 일,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가 냉소적으로 바뀐다. 직장 동료와 상사, 회사 전체에 대한 불평 불만이 많아진다. 회피심리도 강해져서 ‘일만 그만 두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 같다’는 생각에 휩싸여 대책 없이 사표를 던지기도 한다. 번아웃과 우울증은 비슷한 부분이 많다. 둘 다 심신 피로와 무기력을 동반한다. 흥미와 호기심이 사라지고, 일과 생활에서 의미를 못 느끼는 점도 공통된다. 기억력과 집중력이 떨어지고, 의사결정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우울증의 전형적인 증상이다. 번아웃에 빠진 직장인도 비슷한 곤란을 호소한다. 하지만 번아웃과 우울증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우울증에서는 자존감의 저하와 자기 비난이 두드러진다. “내가 못나서 그런 거야. 모든 게 내 잘못이야!”라며 부적절한 죄책감에 휩싸인다. 번아웃은 이와 다르게 자아 이미지는 비교적 그대로 유지된다. 자기를 향한 비난이 아니라 회사와 고객, 동료와 상사를 향한 분노가 커진다. 사회-정치 시스템 전체까지 비난한다. 번아웃은 공식적 의학 진단이 아니다. 우울증은 치료가 필요한 정신과적 질환이다. 번아웃은 꼭 치료가 필요한 상태는 아니다. 하지만 만성적인 피로와 의욕저하뿐 아니라 불면증, 불안과 초조, 자살사고까지 나타난다면 번아웃이 아니라 우울증일 가능성이 크다. 사소한 실수가 아니라 직업적 기능이 크게 떨어졌거나, 근태 문제로 지적받을 정도면 번아웃이 아닌 우울증을 의심해야 한다. 번아웃에 빠진 사람들은 대개 일을 너무 열심히 하고,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타인을 배려한다. 대인관계에서 마찰이 생기는 걸 과도하게 두려워해서, 갈등을 회피하려는 경향을 강하게 나타낸다. 이런 태도는 긍정적으로 작용하면 직장 생활에 도움이 되지만, 과하면 문제가 된다. 직무 스트레스에 대한 연구 결과들을 종합해보면 사회적 화합, 규칙 준수, 책임감과 성실성, 목표를 이루려는 강한 열망은 번아웃을 유발하는 요소인 동시에 보호 인자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번아웃의 원인은 6가지다. ▲과도한 업무량 ▲불충분한 자율성 ▲부적절한 보상 ▲소속감-유대감의 결여 ▲가치 불일치 ▲불공정이다. 이중에서도 불공정은 직장인을 번아웃에 빠뜨리는 가장 큰 요소다. 성과를 인정받지 못하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 번아웃에 취약해진다. 일과 자기 정체성을 동일시하는 것도 번아웃의 원인이다. 일만으로 자기를 규정해버리면, 일이 잘못되거나 힘겨워질 때 쉽게 심리적 혼돈이 찾아온다. 여가가 생겨도 즐길 수 없고 불안해진다. 일이 없어지면 자신이 쓸모 없어진 것으로 여긴다. 쉬고 있으면 죄책감을 느낀다. 시간과 에너지를 전부 일에 쏟고 나면 “아, 행복해” 하며 충만감을 느끼는 게 아니라 “하…” 탄식하며 허무함에 빠진다. 비현실적으로 높은 기대 수준을 갖고, 그것에 도달하려고 스스로를 가혹하게 몰아가며 “더 잘 해야 돼. 더 성취해야 돼!”라며 자기를 채찍질하고, “일로서 인정받지 못하면 나는 무가치한 존재야!”라는 왜곡된 믿음에 사로잡혀 있다면 번아웃 고위험군이다. 근무를 끝내고 집에 돌아와 옷도 갈아입지 않고 소파에 누워서 초저녁부터 꾸벅 꾸벅 졸다가 정작 자야 할 시간에는 스마트폰만 보고 있으면 번아웃 상태가 악화된다. 피로를 푼다고 밤마다 술을 마시고, 낮에는 졸음을 떨치고 집중력을 높이겠다고 커피를 네다섯 잔씩 마셔대면 번아웃에서 못 벗어난다. 번아웃 때문에 쉴 필요가 있다고 느끼더라도, 이때의 휴식이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 번아웃 상태에서 자신을 그냥 멍하니 내버려 두면 오히려 더 불안해진다. 해야 할 일들이 떠오르고, 생각이 멈추지 않아서 쉬지 못한다. 퇴근 후 회사나 집 근처 공원에서 가볍게 산책하라. 새로 생긴 카페에서 카모마일차라도 한 잔 마시고 일터에서 쌓인 긴장을 풀고 집에 가라. 땀 나게 운동하면 좋은데, 이것도 퇴근하고 바로 해야 한다. 일단 집에 들어가면 백발백중 누워서 꼼짝하기 싫어지기 때문이다. 경험에 대한 개방성(openness to experience)은 번아웃의 예방과 치료에 아주 중요하다. 마음이 힘들다고 자기계발 유튜브만 주야장천 보지 말고, 감성을 채우는 음악을 듣는 게 훨씬 낫다. ‘스트레스에 찌들기 전 나는 무엇에 기쁨을 느꼈는가?’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자. 어떤 사람은 익스트림 스포츠의 자극이 에너지를 채워주지만, 어떤 사람은 혼자 독서하면서 활기를 되찾는다. 무작정 쉬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에너지를 채워주는 것이 무엇인가?’ ‘무엇을 할 때 기운이 솟아났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자기만의 답을 찾아 그것을 꾸준히 실천하는 것이 번아웃에서 벗어나는 핵심이다. 출처 : https://health.chosun.com/site/data/html_dir/2025/02/20/2025022002700.html |
출처: 크리에이터 정관진 제1군단 원문보기 글쓴이: 니르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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