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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에이터 정관진 제2군단/크리에이터 정관진 저작권 글

스크랩 갑과을 병의 이야기 20.

by 크리에이터 정관진 2024. 11. 19.

0수, 0호, 0철 은 중고등학교 동창이다. 0수와, 0호는 공직에 있었고 0철은 일반기업에 근무하였었다
셋의 공통점은 담배와 술을 즐겼다.


동창생 여러 명이 만났을 때도 이 세 명은 유독 술을 많이 마셨다 마치 내기라도 하는 것 같이 이 셋의 공통점 하나가 더 있는데 운동도 잘하고 열심히 한다는 것이다.


운동을 왜 그렇게 열심히 하냐고 누군가 물었는데 좋아하는 술을 죽을 때 까지 마시고 싶다고 어이없는 답변을 하였다.


술값 계산도 이 셋이 가장 많이 했다. 다른 친구와 1:1로 만났을 때도 계산은 항상 이들이 했다.


0호는 얌전하였다. 그리고 과묵하였다. 과거의 선비처럼 10여 년 전에 그의 직장 동료들과 회식하고 이차 노래방에서 심장에 문제가 생겨 저세상으로 갔다. 심장 마비나 심근 경색이 아닌가 생각한다.


위로 차 집에 가보니 집이 썰렁하다. 그 흔한 소파 장식장 기타 가구가 하나도 없다 냉장고와 TV 하나가 만 덜렁 있다. 누가 보아도 청렴하게 살았구나! 느껴질 정도로
공직에 있을 때 아주 큰 프로젝트도 맡았었는데~


0철 이는 젊어서 노동운동을 많이 하였다. 회사 다니면서도 노조에 가입하여 저항운동을 하였고 조그만 불의도 참지 못하는 정의파였다. 주변에 억울한 일이 생기면 자기 일처럼 나섰다.


그 어느 회사에서도 좋아 할이 없다. 결국 잘렸고 노쇠한 맹수처럼 살다가 5년 전 위암으로 별세하였다.


0수는 흔히 말하는 호인이었다. 대부분 그랬지만 학창 시절에 거의 전부 못살았는데 집에 놀러 가면 큰 양동이에 국수를 삶아 세숫대야 그릇에 국수를 담아 내놓았다. 원 없이 먹으라고
친구들은 그 친구 집에 아주 자주 갔었다.
키도 엄청나게 컸다. 우리 때 180cm 정도면 큰 키라고 생각했는데 187cm였다.


한 30대부터 살이 붙어서인지 우리가 보기엔 거구였다. 소위 말하는 말술을 마셨다. 주종도 가리지 않고 술값은 무조건 이 친구 몫이었다. 공직에 있다가 회사를 차렸는데 직원들도 술을 자주 마시고 10 여명 직원들과 축구 국가대표 경기가 있으면 꼭 단체 관람을 하였다.


그의 사무실 대표실에는 항상 손님이 붐볐다. 업무상 손님도 있었겠지만 대부분 술 좋아하는 지인이나 친구들이다.
모두 술 담배를 좋아한 사람들이다.


15년 전쯤 방광암이 생겼다. 침윤성이 아니고, 표제성이기 때문에~ 1년에 한 번 병원에서 요도로 올가미를 넣어 종양을 띄어 낸다고 했다. 담배를 끊었다고 했다. 아주 잘했다고 했다. 술은 업무상 못 끊는다고 했다.


동창회에서 만났는데 술 몇 잔 먹더니 전자담배를 꺼내 피운다. 담배 끊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가끔 술좌석에서 피운다고 한다.
이 친구 일년내내 술 마시는 것은, 주변 사람은 누구도, 안다.


2년 전쯤 방광을 절제하고 소장을 잘라 이어 붙이는 큰 수술을 하였다.
그래도 마치 삼국지에 관운장처럼 의연하였다.
일반인보단 훨씬 많이 암 환우를 보았지만 이렇게 초연한 친구는 처음이다.
작년에 저세상 갔다. 가서 마음을 다해 명복을 빌었다.
술좌석에선 취중 진담이라고 나에겐 미주알고주알 고민 상담을 하던 친구다.
이젠 술 마실 일이 거의 없지만 그래도 술좌석에선 0수가 제일 먼저 떠 오른다.


그의 가족이 행복하기를 바란다.
 

출처: 크리에이터 정관진 제1군단 원문보기 글쓴이: 청천고부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