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혈병을 이겨낸 박예은양(왼쪽)과 그의 심리상담사인 솔솔바람팀 임유진 음악치료사./사진=서울성모병원 제공
백혈병 신호, 체력 저하되고 멍 쉽게 생겨
박예은양이 처음 백혈병 진단을 받은 건 2021년 6월입니다. 진단 전 몇 주간 체력이 저하되고 몸살이 심했다고 합니다. 평소 5분이면 오르던 오르막길을 숨이 차 다섯 번 넘게 쉬며 올라가야 했습니다. 양쪽 팔다리에 멍도 쉽게 생기며 사라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감기약을 먹어도 증상이 호전되지 않는 예은양의 모습을 이상하게 여긴 부모님은 ‘뭔가 잘못됐다’는 예감에 대학병원을 방문했습니다. 검사 결과, 급성 골수성 백혈병이었습니다. 예은양의 혈소판 수치(정상 수치 15만~40만)는 13000으로, 현저히 저하된 상태였습니다.
백혈병은 크게 림프모구성과 골수성으로 나뉩니다. 암세포가 림프구에서 발견되면 림프모구성, 골수에서 발견되면 골수성입니다. 소아 백혈병의 97%가 급성이고, 그중 70%가 림프모구성입니다. 박예은양이 겪은 암 역시 급성 골수성 백혈병입니다. 흔히 백혈병을 난치병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신속하게 치료하면 완치가 가능합니다. 급성 백혈병의 생존율은 1960년대 20%에서 2005년 이후 95%로 크게 올랐습니다.
박예은양은 백혈병이라는 말을 듣고는 ‘나한테 왜 하필 이런 일이 지금 일어나지’라는 생각이 들며 괴로웠다고 합니다. 아직 어린 나이였기에 상상도 해본 적 없는 일이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괜찮을거야’라는 위로의 말을 들어도 ‘암’이라는 단어는 무서웠습니다. 가족이 있어 견뎠습니다.
두 번의 재발… 대상포진 겪기도
2021년 7월, 박예은양은 항암 치료를 4회 받았습니다. 항암제로 인한 울렁거림과 턱 관절 통증이 심해 식사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단단한 식감의 음식을 먹지 못하는 예은양을 위해, 어머니는 매 끼니마다 음식을 작게 잘라주며, 모든 음식을 국에 말아 먹여줬습니다. 평소 싫어하던 채소까지 챙겨 먹으며 예은양은 열심히 재활 운동을 하며 치료에 전념했습니다. 2022년 1월, 재발 위험을 낮추고자 타인 100% 조혈모세포 이식 수술을 받았습니다. 이식 후유증으로 구내염이 심해지고 목이 칼칼해 침을 삼킬 때마다 통증이 있었습니다.
이식한 지 5개월이 지난 2022년 6월, 불행이 또 한 번 찾아왔습니다. 백혈병이 재발한 겁니다. 두 번의 항암 치료를 진행했습니다. 항암 치료가 체력적으로 많은 부담이 됐던 걸까요. 항암 치료가 끝나자마자, 호중구 수치가 0으로 떨어지며 면역력에 이상이 생겼습니다. 이로 인해 이마와 머리에 대상포진이 생겼습니다. 대상포진을 치료하는 한 달간 음압실에 격리되기도 했습니다. 항바이러스제 연고와 약을 복용했지만, 면역력이 너무 약해 발진의 크기가 커지며 오른쪽 눈을 짓누르기도 했습니다. 이로 인해 예은양은 1년간 오른쪽 눈을 감고 다녀야만 했습니다. 그 당시를 떠올리며 대상포진으로 인한 신체적 통증도 컸지만, 얼굴에 흉터가 영원히 사라지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과 망가진 외모로 인한 심리적 고통 또한 견디기 힘들었다고 합니다. 한 달간의 치료가 끝난 뒤, 다행히 일상으로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2023년 6월, 이번에는 어머니로부터 골수를 기증받아 조혈모세포 이식 수술을 받았습니다. 이식 후 바이러스뇨증으로 출혈성 방광염이 나타났습니다. 조혈모세포 이식 부작용으로 폐렴, 장염, 패혈증 등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다행히 심각한 손상이 나타나지 않은 예은양은 비뇨기과 협진으로 출혈을 막는 수술을 받아 출혈성 방광염을 치료할 수 있었습니다. 건강해지기 위해, 입맛이 없어도 열심히 음식을 챙겨 먹었습니다. ‘지속적 관해’ 상태인 박양은 현재까지 재발 없이 안정적으로 건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극심한 감정변화 이기게 해준 건 ‘음악’
박예은양은 암 투병 과정 중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게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는 감정기복’이었다고 합니다. 몸에 생기는 크고 작은 변화들과 부작용 탓에 신체적·정신적으로 약해졌습니다. 학창시절 추억을 만들고 있는 학교 친구들과 달리, 병실에 누워만 있는 자신을 보며 ‘포기하고 싶다’는 부정적인 생각도 했습니다.
불안정한 심리를 붙잡아준 것은 서울성모병원 소아청소년 완화의료팀 솔솔바람에서 진행한 음악치료였습니다. 솔솔바람은 중증질환 소아청소년 환자와 가족들의 신체, 심리, 사회적 어려움 완화를 위해 국내에서 시행되고 있는 지원사업으로 서울성모병원 완화의료팀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음악, 미술, 만들기 등의 프로그램 중 음악을 선택한 박예은양은 임유진 음악치료사와 함께 1주일에 두세 번씩 음악 수업을 통한 심리치료를 받았습니다. 음악 감상, 피아노 연주, 작곡 등의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예은양은 심리적인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었습니다. 예은양은 “평소 느낀 감정이나 생각을 음악으로 표현하며 스스로 감정을 건강하게 표출할 수 있게 됐다”며 “음악을 통해 대회에서 상도 타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자존감도 올라가 자연스레 역경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특히 음악치료를 하는 그 당시 순간에 집중하다보면 부정적인 생각은 사라지며 마음이 안정화됐다고 합니다. 덕분에 예은양은 불안한 마음을 덜고 암 치료에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음악치료사인 임유진씨도 그 당시를 떠올리며 “음악 치료가 예은양이 암 치료를 버티는 원동력이 돼줬다”며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접하며 자신의 감정 조절하는 방법을 찾으려 노력하는 게 기특했다”고 말했습니다.
“유튜브 통해 선한 영향력 전파하고파”
투병 생활은 박예은양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예은양은 ‘맘스TV채널’을 운영하는 3년 차 유튜버입니다. 백혈병 투병기, 작곡한 곡, 병원 소개, 여행기 등을 비롯한 일상의 다양한 모습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암을 이겨내는 과정을 보여주며 암 투병 과정도 즐겁게 보낼 수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유튜브 채널을 시작하게 됐다고 합니다. 평범한 일상을 영상으로 남기며 일상의 소중함도 되새길 수 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영상 속 자신의 모습을 보고 많은 백혈병 환자들이 치료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길 바란다고 예은양은 말합니다.
<박예은양>
박예은양./사진=서울성모병원 제공
-어떻게 지내세요?
“지극히 평범한 일상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 항생제인 셉트린정을 복용하고 있고, 한 달 주기로 정기검진을 받고 있습니다. 체력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학업도 온라인 수업으로 이어가고 있습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병원에서 알게 된 친구들을 만나며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재미있는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제가 병을 극복하고 지금 건강하게 지낼 수 있는 건 모든 게 다 부모님 덕분입니다. 입원할 때마다 제 곁을 지켜주고 극진하게 보살펴준 어머니에게 너무 감사드려요. 치료 과정과 부작용으로 너무 힘들어서 투정을 부리며 죄송한 순간도 있었던 만큼, 부모님께 효도하며 더 열심히 하루 하루를 보내려 합니다.”
-어린 나이에, 마음을 다잡는 게 힘들었을 법도 한데?
“삶을 대하는 태도는 암 진단 전에도 긍정적인 편이었습니다. 걱정이나 고민으로 힘든 적이 없다고 자부할 정도였습니다. 암을 진단 받고 충격의 단계가 지나고 나니, ‘암은 죽을병이다’ ‘암을 못 이겨내면 어떡하지’와 같은 부정적인 생각은 최대한 안 하게 됐습니다. 오히려 좋은 인연을 만들며 쉴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며 행복하게 지냈습니다. 심심할 때마다 같은 병동에 있는 친구들과 놀며 평범한 일상생활을 보내려고 했고요. 솔솔바람 선생님들의 영향도 굉장히 컸습니다. 매일 웃으시며 ‘오늘 하루 어떻게 보냈니?’ 안부를 물어봐주시고, 늘 제 편이 되어 주셔서 마음 편하게 투병할 수 있었습니다.”
-솔솔바람과는 어떤 작업을 했나요?
“백혈병 치료와 부작용을 이겨낼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말할 만큼 솔솔바람팀은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어린 나이에 백혈병을 진단받고 나서 감정 변화도 많이 겪으며 마음을 달랠 곳이 필요했습니다. 임유진 음악치료사님과 함께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감상하고 직접 노래를 작사·작곡해보기도 하고 피아노도 연주했습니다. 음악을 배울 때마다 제 자신에 대해서도 더 잘 알게 되는 기분이었습니다. 제 감정을 이해하고 조절하는 방법을 깨달으며 암을 이겨내는 데 큰 힘이 됐습니다. 제 이야기와 취향이 담긴 뮤직비디오도 만들었는데요. ‘솔솔바람팀 작곡 발표회’에서 상을 받은 기억이 자존감을 올리는 데 큰 힘이 됐습니다.”
-투병 중인 암 환자분들께 한 마디.
“암은 이겨낼 수 있습니다. 암 진단을 받으면 불안하고 두려워집니다. 저 역시도 암 진단을 받고 주변에서 들은 이야기나 여러 상황에 흔들렸지만, 돌이켜보니 좋을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내 자신을 믿고 ‘할 수 있다’ 외치며 긍정적으로 생각하세요. 옆에서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의료진, 가족을 믿고 의지하다 보면 암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힘든 순간이 올 때마다 음악이나 그림과 같은 취미생활을 하며 ‘나’에게만 오롯이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그러면서 열심히 먹고 치료받으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임유진 서울성모병원 솔솔바람팀 음악치료사>
임유진 음악치료사./사진=서울성모병원 제공
-음악치료사에게 박예은양은 어떤 환자였나요?
“예은양은 성격이 매우 밝고 쾌활한 친구였습니다. 음악을 매우 사랑하는 친구다 보니, 음악치료의 거의 모든 방법(음악 감상, 노래 부르기, 악기 연주, 작곡, 가사 토의, 치료적 음악 레슨 등)을 함께 나눌 수 있었는데요. 초반에는 음악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는 방법이 서툴렀지만, 다양한 방법의 음악 시간을 통해 예은양이 가지고 있는 자신의 삶의 가치와 생각, 감정 등을 음악으로 자유롭게 표현하게 됐습니다. 잠시나마 환자의 역할에서 벗어나 그저 ‘아이’라는 존재로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볼 때 가장 기뻤습니다. 음악 활동을 통해 예은양이 마음을 건강하게 가져 백혈병을 무탈하게 이겨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솔솔바람팀에 대한 소개.
“솔솔바람팀은 환아와 가족들에게 따뜻한 봄바람처럼 힘든 일상 가운데 희망의 향기를 전해주는 조직입니다. 소아청소년 전문의, 간호사, 사회복지사, 미술·음악치료사, 원목자 등 각 분야의 다양한 전문가로 구성된 다학제팀으로, 중증질환 치료 과정 동안 아이와 가족들이 겪는 다양한 고통과 어려움을 나누고 소통하며 폭넓은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음악치료사로서 음악을 전담하고 있는 저는, 소아암 환우의 심리적인 고통을 음악으로 치료해주고 있습니다. 지친 마음에 활력을 주고 머릿속을 괴롭히는 많은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게 음악과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솔솔바람팀./사진=서울성모병원 제공
-소아암 환자에게 심리 상담과 치료가 필요한 이유는?
“소아암 환우는 치료로 인한 통증과 두려움으로 우울·불안·무기력을 느끼기 쉽습니다. 특히 학교나 친구 관계에서 느끼는 문제들, 사회적 고립이나 소외감, 본인이 가족을 힘들게 하고 있다는 죄책감, 죽음에 대한 나름대로 많은 생각들이 뒤섞여 다양한 심리적인 문제를 겪습니다. 아이들이 외상 경험과 부정적 사고를 극복하고 건강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긍정적인 자아상을 형성할 수 있도록 우리가 도와야 합니다. 다양한 심리 상담과 정서적 지원이 필요합니다. 솔솔바람팀과 같은 소아청소년 완화의료팀이 소아암 환우에게 미술과 음악 등을 통해 심리·사회적 어려움을 해소해주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앞으로의 계획도 궁금합니다.
“병동에서 많은 아이들을 만나면서 순수함과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더없이 행복합니다. 음악치료사로서 환아와 가족들이 고된 치료 과정에서도 일상의 즐거움을 찾고, 긍정적인 정서를 경험하며 심리적 어려움을 잘 대처해 나갈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출처 : https://health.chosun.com/site/data/html_dir/2024/10/21/202410210179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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