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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류의 장/쉬어가기

스크랩 우울증, 불면증, 공황장애… 왜 의사마다 진단이 다른 거죠?

by 크리에이터 정관진 2024. 9. 10.


김병수의 우울증클리닉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내가 진료했지만 지금은 다른 정신과 의사에게 치료받고 있는 환자가 분명 있을 것이다. 반대로 다른 의사가 보던 환자를 지금은 내가 진료하기도 한다. 그 의사도 그랬겠지만 나도 환자에게 묻는다. “다른 정신과 선생님은 뭐라고 진단하시던가요?” 다양한 대답이 나온다. 우울증, 공황장애, 양극성장애 등의 진단명이 나오기도 하고 “의사가 진단에 대해서 뭐라고 딱 부러지게 말하지 않던데요”라는 답이 돌아올 때도 있다.

복수의 정신과 의사에게 진료받았는데 진단이 의사마다 달랐다고 말하는 환자도 있다. 같은 환자를 두고 의사마다 진단이 다른 이유 중 하나는 공존 질환 때문이다. 우울증에는 공황장애, 식이장애, 알콜 및 약물 남용, 주의집중력장애, 성격 장애처럼 다양한 문제가 겹친다. 우울 증상이 주된 호소라면 우울증이라고 진단하겠지만 어떤 상황에서는 알코올 문제가 두드러질 수 있다. 그러면 알코올 의존증이 주진단이 된다. 우울증을 앓고 있던 환자가 차를 타고 가다가 갑자기 공황발작이 생겨서 응급실에 갔다면 공황장애라는 진단이 추가된다. 우울증 때문에 잠을 못 자는 것인데도 ‘내 진단명은 불면증’이라고 알고 있는 환자도 있다. 우울증은 잘 치료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대인관계에서 계속 갈등이 생긴다면 성격장애가 내재돼 있을 수도 있다.

우울증 진단이 혼란에 빠지는 가장 중요한 원인은 우울증이 단극성 우울증이 아니라 양극성 우울증 (양극성장애에서 우울증이 발생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양극성장애 (조울증) 환자의 처음 증상이 조증인 경우보다 우울증인 경우가 훨씬 많다. 여성 양극성장애 환자 중에서 처음 나타나는 증상은 조증이 아니라 우울증인 경우가 거의 80%에 이른다. 이 경우 우울 증상이 발생해서 정신과를 찾아갔을 때는 우울증으로 진단받았다가 나중에 조증이 발생하면 진단이 양극성장애로 바뀐다. 

중증 우울증에 망상이나 환청이 동반되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 조현병과 감별이 필요하다. 처음에는 조현병이라고 진단했는데 우울 증상이 사라지면서 망상과 환청도 말끔하게 없어지고 환자의 사회, 직업, 대인관계 기능도 정상으로 회복됐다면 조현병적 증상이 동반된 주요우울장애라고 진단하는 게 맞다. 그런데 조현병과 주요우울장애, 그리고 이 두 질환의 특징을 모두 나타내는 조현정동장애와의 감별 진단이 쉽지 않은 사례가 많다. 우울증도 심한데다 조현병적인 증상까지 겹쳐 있는 상태에서는 그 환자의 진단이 우울장애인지 아니면 조현병인지 확진하기 어렵다. 이런 경우에도 진단이 의사마다 다를 수 있다. 

같은 정신 질환이라도 연령대에 따라 표현되는 양상이 다르므로 진단이 계속 바뀔 수 있다. 아동기에 잠을 잘 안 자고 칭얼대는 게 심했지만 우울증이나 양극성장애 때문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가 청소년기가 되어서야 현저한 우울증이 나타나기도 한다. 학교 적응 문제, 감정 기복, 짜증, 예민성 등이 사춘기에 나타났다가 10대 후반이나 20대 초에 이르러서야 주요우울장애라고 진단 내려지기도 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조증이 발생하면 양극성장애로 진단이 또 바뀐다.

정신과 진단은 의사의 판단에 의해 최종적으로 내려진다. MRI 검사나 조직 검사처럼 객관인 검사 결과로 확진에 이르는 것이 아니다. 심리검사도 진단의 보조 도구일 뿐이다. 의사가 최종 진단을 내리는 데 정보를 제공해줄 수는 있어도 심리검사 결과가 의사의 진단을 대신할 수 없다.

다시 말하지만 최종 진단은 정신과 전문의의 판단에 의해 내려진다. 그리고 이 판단의 근거는 환자가 보고하는 증상과 환자가 나타내는 징후다. 증상과 징후가 정신질환 진단분류 목록에서 가장 잘 부합하는 것이 환자의 진단이 된다. 여러 가지 증상을 개념화하고 분류하고 체계화해서 만든 것이 진단분류 목록이다. 진단 기준을 구성하는 증상이 다양하고 의사가 포착하는 징후도 다를 수밖에 없고 그것이 어떤 기준에 부합하는지 판단하는 것은 기계 아닌 인간 의사가 하는 일이니 진단에는 어느 정도의 오차가 생길 수밖에 없다. 의사를 만날 때마다 환자가 주관적으로 느끼는 증상을 다르게 말할 수도 있고, 의사를 만날 때마다 조금씩 다른 객관적 징후가 나타날 수도 있다. 진단의 근거가 되는 증상과 징후가 상황에 따라 달라지면 진단이 바뀔 수 있다.

정신과 진단이 어려운 근원적인 이유는 정신의학의 한계 때문이다. 과학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뇌과학에 대해서는 아직 모르는 게 너무 많다. 물리적인 뇌에 대한 지식이 쌓인다 해도 영혼까지 파악할 수 있는 없다.

IT 기술이 발전해서 AI가 정신과 진단을 대신해줄 수 있을까?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인간 의사보다 더 정확하게 진단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내게 우울증이 생긴다면 나는 AI에게 내 문제를 상담하고 진단받을까?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다소 오류가 있더라도 기계가 아닌 인간 의사를 찾아갈 것이다. 컴퓨터가 내 영혼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하는 걸 듣고 싶지는 않다. 


출처 : https://health.chosun.com/site/data/html_dir/2024/09/05/2024090501943.html
 

출처: 크리에이터 정관진 제1군단 원문보기 글쓴이: 니르바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