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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고혈압, 중풍

스크랩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 의사여도 입원할 병원 찾기 어려워…”

by 크리에이터 정관진 2024. 8. 19.

 
박진식 이사장이 14일, ‘환자 보호자로서 의사가 바라보는 바람직한 의료전달체계’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사진=오상훈 기자
“의사면서 병원장인데 인맥을 다 동원해도 아버지가 내원할 응급실을 찾을 수 없었다. 우리나라가 자랑하던 세계 최고의 의료 수준이 이제는 없다는 걸 체감한 순간이었다.”

박진식 혜원의료재단 부천세종병원·인천세종병원 이사장(심장내과 전문의)이 지난 2022년의 일을 떠올리며 한 말이다. 그의 아버지는 서초동의 한 마트에서 쓰러졌다. 119를 타고 상급종합병원을 돌았지만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인맥을 동원해 아버지를 받아줄 수 있는 병원을 찾았지만 강남 인근에는 머리를 다쳤을 때 갈만한 2차 병원이 없었다. 다행히 119를 타고 1시간 30분가량을 더 돌았을 때 받아주는 병원이 나타나 그의 아버지는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뇌출혈이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비가역적인 손상이 발생했을 터였다. 안도의 한숨도 잠시, 박 이사장은 별것도 아닌 질환으로 딸을 데리고 상급종합병원을 방문했던 과거가 떠올랐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의료체계에서 최근 자주 발생하고 있는 일인데 의사라고 다르지 않았다”며 “많은 환자가 3차 병원을 방문하면서 정작 3차 병원이 절실한 환자들이 갈 곳이 없는 상황이 오랫동안 지속돼 왔다”고 말했다. 이어 “이러는 사이 필수의료 분야와 2차 병원들은 급격히 쪼그라들어 이제는 필요해도 이용할 수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박 이사장은 14일,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 미디어 아카데미에서 대형병원 쏠림 현상이 어떻게 한국의 의료전달체계를 망가뜨렸는지 진단했다.

대형병원 쏠림 현상은 1978년부터 제기된 문제다. 다만 그 때는 인구의 절반이 30대 이하였다. 의료의 질, 접근성, 비용 등 모든 부분에서 부족했고 아픈 사람들도 많지 않아서 대형병원 쏠림 현상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던 1980년대 후반, 국민의료보험이 생기면서 비용 부담이 줄었다.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정부가 의료법인 설립을 지원하면서 민간병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의료의 질을 높이기 위해선 의과대학을 많이 신설했고 대학병원이 중증진료를 시작했다. 박 이사장은 “이때까지만 해도 올바른 방향이라고 판단할 수 있었다”며 “2000년에 이르러 이미 우리나라 암 생존율은 전세계 최고 수준이었고 국내 총생산 대비 총 의료비는 4%대에 그쳤다”고 말했다.

한국 의료가 현재 상황에 이르게 된 데에는 의료전달체계의 붕괴에 의한 대형병원 쏠림이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게 박 이사장의 설명이다. 우리나라 의료전달체계는 1차·2차·3차 병원으로 구분돼 있다. 1차 병원은 경증 환자, 2차 병원은 중등증 환자, 3차 병원은 중증·응급 질환 진료 기능을 담당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대다수 환자는 1차 병원에서 진료 의뢰서를 받아 3차 병원으로 건너뛴다. 3차 병원은 상급종합병원으로 종별 가산이 적용돼 수가에서 유리하다. 보상을 많이 받다 보니까 인력과 시설에 투자를 많이 하고, 환자도 많이 보기 때문에 의료기관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는다.

박 이사장은 “물론 상급종합병원도 커진 몸집을 유지하려면 박리다매로 환자를 봐야했던 측면이 있다”며 “그러나 2차 병원에서 봐야할 중등증 환자들도 빨아드리면서 필수·지역의료가 붕괴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현행 의료전달체계가 지속되면 의료비가 증가하고 의료의 질, 접근성 모두 떨어질 것이라는 게 박 이사장의 예측이다. 그는 “국민 총생산이 정체된 상황에서 의료비는 꾸준히 늘어 국민 총생산의 9%를 차지하기 시작했다”며 “부양 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의료비가 계속 늘게 되면 2050년 경에는 치명적인 질환이 생겨도 병원에 방문하지 못하는 상황이 도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1차, 2차 병원이 그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바뀌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지역·단계와 무관한 의뢰 회송에 대한 수가 보전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 박 이사장은 “의뢰서를 잘 써주면 환자를 1차 병원에서 3차 병원으로, 지방에서 서울로 이송시켜도 수가를 보전해준다”며 “이러는 대신 1차 병원이 지역 내의 2차, 3차 병원으로 환자를 이송했을 때 수가를 보전해주면 단계별 의료기관의 기능이 회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평가 체계 역시 손 볼 필요가 있다. 이미 종별 가산이 있는데 같은 잣대를 적용한 의료질 평가는 경쟁만 부추기는 측면이 있다. 박 이사장은 “병원 규모별로 보상 체계, 역할, 환자풀도 다른데 같은 잣대로 평가해선 안 된다”면서 “기능에 맞는 평가 체계가 잡혀야 환자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그나마 현재 지역에 남아있는 2차 병원의 역할을 인정하고 환자를 의뢰하기 시작하면서 차차 신뢰가 쌓여갈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 : https://health.chosun.com/site/data/html_dir/2024/08/14/2024081402333.html
 

출처: 크리에이터 정관진 제1군단 원문보기 글쓴이: 니르바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