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암 4기를 극복한 조천형(오른쪽)씨와 그의 주치의인 연세암병원 종양내과 김혜련 교수./사진=연세암병원 제공
느닷없이 암 환자가 됐다
조천형씨가 처음 암 진단을 받은 건 2016년 1월입니다. 암 진단 받기 10개월 전부터 가래가 들끓고 숨 쉬는 게 힘들었습니다. 비염 증세가 심해졌다는 생각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러던 중, 일상에서 움직임이 힘들 정도로 숨이 차 동네병원에 갔더니 “큰 병원에 가보라”는 소견을 들었습니다. 곧바로 연세암병원 종양내과 진료를 받았습니다. 조직검사 결과, 폐암 4기였습니다.
조씨는 암이라는 말을 처음 듣자마자 온몸이 다 떨렸다고 합니다. 마라톤을 풀코스 완주할 정도로 뛰는 걸 즐겼고 그 덕에 건강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 자부했습니다. 역시나, 담배가 문제였습니다. 40년갑(40년 동안 하루 1갑) 흡연자이다 보니 암을 피하기가 어려웠던 겁니다. 주치의인 김혜련 교수는 당황하는 조씨와 그의 가족을 잘 이끌어주었습니다. “몸에 있는 암 표적을 끝까지 추적해 치료할 테니, 믿고 따라와 달라”는 김 교수의 말에 치료 의지가 생겼습니다.
잘 듣던 항암제에 내성 생겨
2016년 2월, 조천형씨는 ‘알림타’와 ‘시스플라틴’ 약물 치료를 진행했습니다. 2회 치료만으로도 종양이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항암 치료를 시작한 지 2년이 돼가던 2018년 4월, 약에 내성이 생겨 암이 다시 커지기 시작한 겁니다. 내성이 생겼다는 건 암이 약에 적응해 더 이상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걸 의미합니다. 일단 내성이 생긴 약은 더는 사용할 수 없기에 효과가 있는 약을 다시 찾아야만 합니다. 김혜련 교수와 조천형씨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약을 찾기 위한 다양한 검사를 시행했습니다. 검사 결과, 조씨는 ROS1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있었습니다. ROS1 돌연변이 폐암은 전체 폐암의 2%를 차지합니다.
6월부터 임상 치료제 ‘엔트렉티닙’으로 ROS1 유전자 표적을 쫓는 항암약물접합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항암약물접합 치료는 암세포에만 항암제가 집중적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항체에 암 표적과 항암제를 결합시킨 차세대 항암제입니다. 알파벳 Y 모양으로 생긴 항체의 양쪽 머리에는 폐암의 표적을 붙이고 항체의 꼬리에는 항암제를 달아서, 마치 미사일처럼 암세포만 선택적으로 공격하게 하는 원리입니다. 김혜련 교수는 “그 당시 허가된 약제는 모두 사용했지만, 종양 크기가 더 이상 줄어들지 않았다”며 “표준 치료와 임상시험을 적극 활용해 새 길을 찾아내야만 했다”고 말했습니다.
약물 부작용으로 치료 중단키도
치료를 받던 조천형씨에게 큰 고비가 한 번 더 찾아왔습니다. 2019년 3월, 약의 부작용으로 심장 기능이 떨어지며 심부전이 생겼습니다. 항암제 부작용으로 인해 몸에 충분한 혈액이 공급되지 않아 호흡곤란과 심장 내 울혈(피 고임)과 같은 증상이 지속됐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 당시 미국으로 연수를 가 있던 김혜련 교수는 다른 의사를 통해 조씨를 치료해야 했습니다. 교수진과 가족들 간의 수차례 논의 끝에, 조씨는 해당 약 사용을 중단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후 6월부터는 표적항암제 ‘크리조티닙’으로 치료를 이어갔습니다. 다행히 심부전 증상이 사라졌습니다.
고통 속 위안이 된 건 ‘가족’
항암 치료 부작용으로 식욕이 떨어지고 부정적인 생각이 자꾸 들어 고통스러웠습니다. 머리가 빠지는 모습을 보며 존재감이 훼손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체력이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는 겁니다. 암 진단 전 꾸준한 운동과 마라톤으로 다져왔던 덕분입니다. 빨리 회복하고 싶어 매일 아침 조깅을 했습니다. 김 교수는 그 당시를 떠올리며 “체력이 암 치료를 버티는 원동력이 됐다”며 “스스로 본인의 삶을 찾으려는 노력이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가족은 힘든 순간을 이겨내는 데 큰 힘이 됐습니다. 항암 부작용으로 입맛이 없을 때마다 아내는 매번 제철 재료를 이용한 따뜻한 국과 입맛을 돋우는 맛있는 반찬을 만들었습니다. 해산물을 좋아하는 조씨를 위해, 신선한 해산물을 구해다가 요리도 했습니다. 조씨는 “입맛이 없어도 아내가 정성껏 만들었다는 걸 알아서, 안 먹을 수가 없었다”고 말합니다. 딸들은 “불안해할 필요 없다” “언제나 변함없이 사랑한다”며 아빠에게 힘을 주었고, 외출하고 돌아오는 길이면 항상 맛있는 디저트를 사와서 기분을 전환해주었습니다.
2022년 7월부터는 임상치료제인 ‘다토포타맙 데룩스테칸’을 3주 주기로 투여하고 있습니다. 진단 당시 양쪽 폐를 완전히 뒤덮고 다른 장기로까지 전이됐던 암세포는 이제 폐 한쪽에만 작게 남았습니다. 김혜련 교수는 “4기에 암이 발견된 조씨의 경우, 완치가 아닌 관해 상태를 유지할 목적으로 항암 치료를 지속적으로 시행할 것”이라며 “약효가 떨어지거나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는 한 항암 치료를 이어갈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조천형씨>
조천형씨./사진=연세암병원 제공
-어떻게 지내시나요?
“아무런 어려움 없이 지극히 평범한 일상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매일 오전 5시에 일어나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하고 출근합니다. 암 진단을 받고 단 한 번도 생업을 놓은 적이 없습니다. 주변에서는 직장을 그만두고 건강을 돌보라고 많이 권유했지만, 오히려 출근하면서 삶의 활력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다만 개인적인 삶과 일의 균형을 잘 맞추려는 노력은 했습니다. 매일 규칙적으로 밥 먹고 운동도 열심히 합니다. 주말에는 가족들과 근교로 나들이를 다니며 행복한 추억을 만들고 있습니다.”
-암 진단 전후로 달라진 점이 있나요?
“당연한 얘기지만 담배를 끊었습니다. 삶을 대하는 태도는 암 진단 전이나 후나 여전히 긍정적입니다. 다만 이전보다 몸과 마음이 더 건강해진 느낌입니다. 매일 규칙적으로 밥 먹고, 운동을 열심히 합니다. 삶에 더 충실해지는 계기가 됐습니다. 오늘 이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가족을 향한 고마움과 사랑을 매 순간 되새기려 합니다.”
-계속 항암 치료 중이신 걸로 아는데, 심경은?
“만성질환이 있으면 그에 해당하는 약을 먹으며 살 듯, 저도 그런 상황이라고 생각하며 지내는 중입니다. 암이라는 병 자체를 두려워하면 힘들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저 평소처럼 먹고 일하고 즐기며 살다 보면 언젠가는 암과 작별하는 날이 있겠지요. 암은 저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치료는 교수님께 맡기고, 저는 제 인생 건강하게 영위하며 산다는 생각으로 지냅니다. 매일 ‘잘 될 거야’라고 말하며 그 말에 동화되는 중입니다.”
-암과 싸우고 계신 분들께 한 마디.
“내가 암을 이길 것이라는 믿음, 의료진이 최적의 치료를 해줄 것이라는 믿음, 내가 잘 견뎌줄 것이라는 가족의 믿음 이 세 가지가 모이면 분명 암을 극복할 수 있을 겁니다. 저처럼 잘 먹고 움직이고 치료 받으셔서 우리 모두 좋은 결과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연세암병원 종양내과 김혜련 교수>
김혜련 교수./사진=연세암병원 제공
-현재 조천형씨의 정확한 건강 상태를 알려주세요.
“폐 속 종양의 크기는 2cm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2016년 1월에 비교하면 80%가 사라진 상황으로, 치료 효과가 아주 좋습니다. 항암 치료를 3주에 한 번씩 받고 계시며, ‘부분 관해’ 상태입니다. 지금처럼 꾸준히 병원에 오셔서 검사받고 건강한 생활을 영위하시기만 한다면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입니다. 그래도 이해되지 않는 분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종양은 있지만 치료를 계속 받으면서 종양의 크기를 유지하기만 한다면, 남들만큼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는 상태’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폐암 4기에서 관해까지 도달한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암을 이겨내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셨습니다. 치료 과정이 힘들었을 텐데 내색 없이 열심히 따라오셨습니다. 음식도 영양 균형을 맞춰 잘 챙겨 드시고 운동을 꾸준히 하시면서 건강에 무척 신경을 쓰셨습니다. 암 진단 전에 운동을 꾸준히 하셨던 게 치료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 같습니다.”
-폐암 치료제가 놀랍게 발전하는 것 같습니다.
“폐암 치료의 가이드라인이 1년에 10번은 업데이트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치료법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20년 전만 해도 수술이 불가능한 진행성 전이성 폐암 환자의 기대 여명은 6개월 수준이었습니다. 약제 부작용도 심해 항암 치료 중에는 일상생활이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조씨처럼 부작용은 최소화하고 항암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여러 치료를 시도해볼 수 있을 만큼 치료제가 꾸준히 개발되고 있습니다. 비록 폐암이 예후가 나쁜 암 중의 하나이긴 해도, 빠르게 발전하는 약제를 적기에 활용하면 최적의 치료 효과를 끌어내 반드시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 봅니다.”
-암 환자들에게 한 말씀.
“의료진, 환자, 가족은 한 팀입니다. 암 완치라는 목표를 향해 함께 걸어가는 한 팀이라는 걸 강조하고 싶습니다. 의료진은 늘 환자에게 알맞은 치료법을 고심합니다. 저희를 전적으로 믿고 따라주시면 좋겠습니다. 환자의 적극적인 태도도 중요한데요. 꼭 낫겠다는 의지를 갖고 열심히 치료를 받으세요. 이를 위해선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운동을 하는 등 체력을 끌어올리는 게 중요합니다. 반드시 이겨낼 겁니다!”
출처 : https://health.chosun.com/site/data/html_dir/2024/06/14/202406140081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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