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우역에서 청년들 한 무리가 상자에 소주 맥주만 가득 담아 어깨에 메고 가는 것을 보았다.
고등학교를 막 졸업 한 신입생 같아 보이기도 하고 대부분 앳되다. 경춘선을 타면 놀기 좋은 곳이 많다. 안주 없이 술만 보이는데 걱정이 된다. 50여 년 전 딱 이맘때 입대를 앞두고 외가 동내 냇가 다리 위에서 죽마고우 만진이와 소주를 먹던 기억이 새롭다. 그때는 소주가 대병에도 담아 팔던 시절이었다. 안주라고 해봐야 고추에 된장 찍어 먹던 시절이니까? 얼마나 빨리 취하겠나 젊은 혈기에 잔 아니라 밥그릇에 따라 마셨다. 술을 그렇게 빨리 많이 마셔보는 처음이라 금방 정신을 잃었다. 깨어보니 다음 날 아침이었는데 외할머니께서 걱정스럽게 보시더니 귀한 꿀물을 타다 주셨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만진이 한데 들으니,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갑자기 뒤로 넘어지더란다. 둘이 다리 난간에 걸터앉아 먹고 있었는데 발라당 뒤로 넘어지니 그도 얼마나 놀랐겠나. 다행히 다리 밑에는 무릎에서 허리 정도 차는 냇물이 흐르고 있어 하나도 다치지 않았다. 마을 이름이 고부내로 냇물이 휘어져 있어서 유속도 빠르지 않아 떠내려가지도 않았다. 만진이가 업어서 외갓집 방에 뉘었는데 마침 외할머니가 손자 온다고 이불 홑청을 깨끗하게 빨아 바느질해서 해놓은 이불 요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할머니는 초저녁에 주무시고 새벽에 깨셨는데 새벽에 일어나셔서 보니 마루에 큰 발자국이 보여서 놀라셨다가 내가 자는 방을 보니 술 냄새가 진동하여서 유추해 보니 마을에서 저렇게 큰 발자국은 만진이 밖에 없어 아침에 만진이 집에 가서 자초지종을 듣고 만진이를 혼내셨다고 한다. 술도 못 먹는 애를 술을 많이 먹였다고 사실은 아닌데 만진이 한데 미안했다. 사실 평소에 만진 이보다 술을 더 마셨다. 단지 가늠이 안 돼서 실수한 것일 뿐 할머니는 정작 내게는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나중에도 우리 어머니한테도 함구하셨다. 외할아버지께서는 일찍 돌아가셔서 얼굴도 못 뵈었는데 할머니 혼자 큰 농사를 일구셨다. 당시 머슴이라고 일하는 분이 한 분 계셨지만, 농사를 지었어도 아주 곱게 늙으셨다. 내가 할머니 나이가 어느새 되었다. 난 그 일이 있던 후로 단 한 번도 소위 필름이 끊긴 적이 없다. 아니 그렇게 먹어보질 않았다. 천천히 즐겼다. 몸에 반응이 오면 세상없이 멈추었다. 지금은 아예 즐기지를 않는다. 젊어서 너무 많이 먹어서, 만진이 만난 지 오래되었는데 만진이 만나면 예외일 것 같다. 그러고 보니까? 만진이한테 미안하다 고맙다! 라고 한 적이 없다. 만나면 고맙다! 라고 인사 해야겠다. 그러면 “뭘 새삼스럽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친구지만~ |
'크리에이터 정관진 제2군단 > 크리에이터 정관진 저작권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천일염(天日鹽), 토판염(土版鹽) (0) | 2024.03.13 |
---|---|
스크랩 기브미 쪼코렛 (0) | 2024.03.11 |
스크랩 양생법과 기허증 (0) | 2024.03.08 |
스크랩 황당한 이야기 당황한 이야기 1. (0) | 2024.03.06 |
스크랩 얄개 친구 (0) | 2024.03.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