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장난이 심한 친구가 있었다.
앞에 가는 친구 딴죽걸기가 일수였고 앞자리 친구가 잠시 일어나 앉으려 하면 의자를 빼서 엉덩방아 찧게 만들고 온통 장난칠 궁리만 하였다. 언제나 그랬기 때문에 당해도 기분이 나쁘거나 그렇지 않았다. 55년 전 일이니까? 그때는 왕따라는 용어 자체도 없었고, 얄개 짓을 해도 웃음으로 넘어갔다. 대부분 학교가 수학여행을 보통 경주로 가서 경주 관광하고 부산으로 가서 구경하고 야간열차를 타고 오는 일정이었다. 수학여행 기간이 대부분 비슷하였기 때문에~ 경주 부산은 학생들이 차고 넘쳤다. 이 친구와 몇 명이 함께 부산에서 영화 구경을 하기로 했다. 그 당시에는 학생들이 영화 구경하기가 힘들었던 시절이라 극장에 갔다. 청소년 관람 불가도 많았고, 아무튼 규제가 심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라는 명화인데 이 친구 영화 중간에 슬며시 일어서더니 큰 선풍기에 뭐를 날렸다. 우린 당시에 머리를 짧게 깎은 까까머리라 어디를 가든 맨 뒤에 앉았다. 잠시 후에, 앞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목뒤 얼굴, 팔뚝을 끓기 시작하는데 가관이었다. 이 친구 대형선풍기에 복숭아털을 날린 것이었다. 당시엔 에어컨이 없던 시절이라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는 대형선풍기를 켰다. 아예 장난을 치려고 복숭아털을 모아와서 장난을 친 것이다. 지금 같으면 큰일 난다. 영화 내용은 하나도 생각 안 나고 숨죽여 웃던 생각이 난다. 나중에 그 영화 다시 보니 4시간 넘는 영화고 대작이었다. 부산에서 밤 기차를 타고 아침에 서울에 도착하는데 한 10시간 이상 걸린 것 같다. 대전쯤 오면 새벽인데 빵을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졸린 눈을 비비고 빵을 받으려 하는데 옆 친구와 신발 끈이 서로 묶여 풀어야 하는데 자다가 일어나서 손에 힘이 없어 겨우 풀었다. 그 친구 장난이다. 그 당시에 교련이라는 과목이 있어 대부분 운동화보다 교련 화나 군화를 신고 다니던 시절인데 둘 다 끈이 아주 길었다. 이 친구 잠도 안 자고 친구들 신발 끈을 풀어서 여기저기 묵고 심지어 위에 손잡이나 짐 놓는 곳까지 묶어 놓았다. 아주 풀기도 어렵게 빵을 안 받고 그냥 자면 되는데 그때의 빵은 어찌나 맛있는지 모른다! 단팥빵! 크림빵! 3월이 되면 그 친구가 생각이 난다. 3.1 절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던 날”이 생일날이라고 하였다. 그 친구는 환갑도 안 돼서 위암으로 저세상 갔다. 우리 친구 모두 카톡으로 그때를 회상하며 명복을 빌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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