췌장암 4기를 이겨낸 박선희(왼쪽)씨와 그의 주치의인 분당차병원 혈액종양내과 전홍재 교수./사진=신지호 기자
<아미랑 인터뷰>
박선희(68·충북 진천군)씨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췌장암 치료를 전부 이겨내고 ‘3도 4촌(1주일 중 3일은 도시에서, 4일은 자연에서 보내는 생활)’ 생활을 하며 제 2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의 주치의인 분당차병원 혈액종양내과 전홍재 교수도 함께 만나 이야기 나눴습니다.
‘수술 불가한’ 췌장암 진단
2018년 3월, 박선희씨는 속 쓰림 증상을 자주 겪었습니다. 오후가 되면 속 쓰림이 유난히 심해져 식사량을 조절하고 조미료 사용량을 줄이는 등 식습관을 개선했지만 증상이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동네 내과에 방문해 위 내시경을 했지만 이상이 없었고 위장약을 처방받아 복용하니 증상이 나아졌습니다. 그런데 한 달 뒤, 갑자기 명치 통증이 계속돼 잠들기가 어려웠습니다.
곧바로 분당차병원에 내원해 정밀검사를 받았고 췌장암 4기를 진단받았습니다. 진단 당시, 췌장의 몸통 부분에 3cm 크기의 종양이 있었으며 주변 혈관까지 침범한 상태였습니다. 췌장은 머리, 몸통, 꼬리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십이지장과 가까운 부분이 머리, 중간이 몸통, 가장 가느다란 부분이 꼬리입니다. 간 전이 소견이 있어 4기가 의심되는 상황이라 수술이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전홍재 교수는 “췌장암은 종양 크기뿐 아니라 주위 혈관 침범 정도에 따라 병기가 달라지는데 종양이 주요 혈관인 복강동맥을 침습해 당장 수술이 어려워 항암 치료 시행 후, 경과를 지켜봐야 했다”고 말합니다.
췌장암은 췌장의 해부학적 위치상 일반적인 건강검진이나 진찰로 인지하기 어렵습니다. 배 속 깊숙이 위치해 이상이 있어도 겉으로 만져지지 않고, 환자가 초기에 느끼는 자각 증상도 거의 없어 병이 어느 정도 진행돼서야 증상이 나타납니다. 주변에 혈관이 많아 암이 생기면 혈관을 침범해 다른 곳으로 전이될 위험이 높습니다. 따라서 처음 진단 당시 원격 전이가 된 환자들이 50%, 다른 곳으로 전이되지 않았지만 주변 혈관에 영향을 미친 환자들이 20~30%, 수술 가능한 초기 췌장암 환자들이 20% 정도입니다.
다학제 진료로 치료법 모색
박선희씨는 암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그야말로 ‘멘붕(멘탈 붕괴)’에 빠졌다고 했습니다. 머리가 하얘져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고, 암이라는 사실이 너무 기가 막혀 눈물조차 나지 않았습니다. 당장 수술할 수가 없다는 사실도 박씨를 불안하고 괴롭게 만들었습니다. 그때 든 생각이 ‘기도밖에 날 구해줄 것이 없다’였습니다. 췌장암을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으로 매일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곧 마음이 편안해졌고 치료에 열심히 임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전홍재 교수와 외과 최성훈 교수는 박씨에게 적합한 치료 방법을 찾기 위해 다학제 진료를 진행했습니다. 혈액종양내과, 외과, 영상의학과, 소화기내과 등 여러 진료과 의료진이 모여 최선의 치료법을 모색했습니다. 우선 종양의 크기를 줄이기 위해, 항암 치료를 진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박씨는 “분야별 전문가인 교수님들이 치료법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하고 의견을 모으는 모습에 믿음이 갔다”고 말합니다.
가족·의료진의 도움으로 이겨낸 항암 부작용
젬시타빈, 아브락산을 조합한 항암 치료를 4개월간 16회 시행했습니다. 췌장암은 항암 치료에 잘 반응하지 않는 암 종인데요. 그나마 젬시타빈·아브락산과 폴피리녹스가 반응률이 높아 주로 쓰입니다. 젬시타빈·아브락산의 치료 반응률은 23%지만 췌장암은 유전자 변이가 매우 다양해 어떤 환자에게는 항암제가 효과가 없습니다. 췌장암 4기의 경우, 항암 치료를 받는 동안 전신상태가 악화돼 남은 치료 횟수를 채우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다행히 박씨는 항암 치료 반응이 좋아 항암 치료를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당시 박씨는 항암 치료로 인한 부작용이 무척 힘들었습니다. 주변에서 항암 치료 부작용이 괴롭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지만 직접 경험하는 건 상상 이상의 고통이었습니다. 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고 입맛이 떨어져 물을 마시는 것조차 버거웠습니다. 게다가 짠맛은 전혀 느껴지지 않고 단맛만 맴돌아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했습니다. 머리카락이 하나둘씩 빠지기 시작해 미용실에 갔을 때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암 진단을 받았을 때보다 서러움이 컸습니다. 힘들어하는 박씨를 지켜보던 전교수가 식욕을 돋우는 약을 처방해준 덕분에 점차 음식을 잘 먹기 시작했습니다. 기운이 조금씩 돌아오자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람만 불어도 넘어질 것처럼 힘이 없었지만 매일 5분이라도 걸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당시 딸집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딸이 옆에서 함께 걸으며 의지를 북돋아 한 걸음이라도 더 걷고, 한 숟갈이라도 밥을 더 먹을 수 있었습니다.
치료 후 ‘3도 4촌’ 생활
항암 치료는 힘들었던 만큼 경과가 좋았습니다. 종양 크기가 1cm 정도로 줄어들었고 주변 혈관으로의 침범이 호전됐으며 간 전이 또한 사라졌습니다. 2018년 11월 두 번째 다학제 진료로 수술 여부를 논의한 결과, 남은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그 후, 재발 방지 및 미세한 전이를 없애기 위해 항암 치료를 16회 더 받았습니다.
치료가 끝난 뒤인 2020년에는 박씨의 삶에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충북 진천군으로 내려가 생활하기 시작했습니다. 치료 기간동안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매일 잡곡밥을 짓고 텃밭에서 직접 재배한 깨끗한 채소를 함께 곁들여 먹었습니다. 췌장암으로 당뇨병을 진단받은 상태였는데 식단을 건강하게 유지한 덕분에 혈당 관리 효과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췌장은 인슐린을 분비하는 기관이라 암이 생기면 기능이 저하돼 혈당이 상승하고 당뇨병이 생길 수 있습니다. 1주일에 3일은 동탄에 있는 딸의 집에서, 4일은 진천군 시골집에서 지내며 건강한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마침내 지난 6월, 그 어렵다는 췌장암 4기 완치 판정을 받았습니다. 현재까지도 재발, 전이 없이 건강한 상태입니다.
박선희씨가 가꾸고 있는 텃밭 사진./사진=헬스조선 DB
<박선희씨>
박선희씨./사진=신지호 기자
-췌장암을 처음 진단받았을 때 심정은?
“처음 췌장암을 진단 받았을 때는 너무 놀랐습니다. 췌장암인데다가 병기가 높아 수술이 어렵다는 사실이 충격이었어요. 그래도 죽음이 가까워졌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신앙심이 강한 사람이라 건강해질 거라는 믿음이 있었거든요. 만약 그렇지 않더라도 그 결과를 받아들이겠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97년도부터 딸과 둘이 살면서 가장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누구보다 열심히 삶을 살면서 고생을 많이 했는데 하나님께서 이제 고생 많이 했으니까 본인 곁으로 불러주시는구나 라고 편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습니다.”
-치료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항암 치료 부작용이 정말 괴로웠습니다. 항암 치료는 받아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고통입니다. 밥도 물도 넘어가지 않는데 잘 먹고 체력을 끌어올려야 다음 항암을 이어갈 수 있어서 정말 기를 쓰고 음식을 먹었습니다. 이때는 딸이 고생을 많이 했어요. 음식 냄새도 잘 못 맡는 저를 위해 요리를 해서 가져다주고 한 숟갈이라도 더 먹이려고 노력해줬습니다. 그 당시에는 음식을 넘기는 게 힘들어서 밥 먹으라는 딸의 말이 서운하게 느껴질 때도 많았는데 돌이켜보면 다 저를 위한 행동이었죠. 덕분에 항암 치료 날짜를 못 맞춘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힘든 항암 치료를 견딜 수 있었던 이유는?
“가족들의 지지와 응원의 힘이 컸습니다. 딸, 사위, 그리고 손자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어요. 가족들이 없었으면 제가 살기 위해서 이렇게까지 노력을 했을까 싶습니다. 사위가 이곳저곳 수소문해준 덕분에 좋은 병원에서 좋은 교수님을 만나 잘 치료받을 수 있었고요. 딸이 매일 함께 걸어주고 제 휴대폰에 만보기 기능을 설정해둬서 하루에 만보를 채우기 위해서 노력할 수 있었습니다. 항암 치료를 받을 당시에 손자가 다섯 살이었는데 제가 병원에 갈 때마다 악당을 꼭 물리치라며 응원해줬습니다. 교회의 많은 동역자분들이 저를 위해 기도해주신 것도 큰 힘이 됐습니다. 덕분에 암 치료 과정에서 많은 의지가 돼서 완치에 이를 수 있던 것 같습니다.
-의료진에 대한 애정도 큰 것 같은데요.
“췌장암으로 다학제 진료를 받는 동안 알게 된 모든 의료진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정말 큽니다. 전홍재 교수님, 최성훈 교수님 모두 다 너무 따뜻하신 분들이세요. 항암 치료를 하고 처음으로 결과를 보러 왔을 때가 아직도 생생한데요. 당시 전홍재 교수님께서 제가 문을 열고 들어가 자리에 앉기도 전에 결과가 너무 좋다고 말하면서 격려해주셨습니다. ‘치료 결과가 나오는 날이면 의료진도 궁금하고 걱정이 되는데, 환자는 얼마나 결과가 듣고 싶겠냐며 좋은 결과가 있을 때는 최대한 빨리 말씀을 드리려고 한다’고 해주시는데 정말 믿음이 갔습니다. 환자들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인데 그런 입장을 잘 이해해주셔서 편안한 마음으로 치료에 임할 수 있었습니다.”
-3도 4촌 생활은 어떠세요?
“너무 재밌고 행복합니다. 오늘 된장찌개를 먹어야겠다 싶으면 텃밭에서 파랑 고추를 따서 만들어 먹고, 심어놓은 상추로 쌈도 싸 먹으면서 건강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서울에 살 때는 채소 섭취량을 늘리려고 애를 많이 썼는데 여기서 지내면 자연스럽게 채소 위주의 식단을 유지할 수 있어요. 최근에는 새로운 취미로 게이트볼을 시작했어요. 시골에서 어르신들이 자주 하는 운동인데 단순한 것 같으면서도 잘하기 위해서 엄청 머리를 써야 하더라고요. 그래서 요즘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동네 사람들과 게이트볼을 즐기면서 살고 있습니다.”
-지금도 췌장암과 싸우고 있는 다른 환자들에게 한 마디.
“희망과 긍정적인 생각, 믿음을 잊지 마세요. 당시 교수님께서 해주셨던 말씀을 인용하자면, 의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의 마음가짐이고 두 번째는 치료를 이겨낼 수 있는 믿음과 의지입니다. 암 치료가 정말 힘이 들지만 포기하지 말고 힘들어도 조금이라도 운동하고, 입맛이 없어도 억지로라도 먹으면서 기력을 보충하세요! 그 어렵다는 췌장암 4기를 이겨낸 제가 있습니다. 저를 보고 나을 수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갖길 바랍니다. 모두들 얼른 건강해졌으면 좋겠습니다.”
<분당차병원 혈액종양내과 전홍재 교수>
전홍재 교수./사진=신지호 기자
-국내 췌장암 치료 현황은?
“췌장암은 대부분 3~4기에 확인돼 환자 중 20%만 수술이 가능합니다. 나머지 70~80%의 환자들은 전이가 됐거나 혈관을 침범한 상태라 수술이 가능할 수 있도록 항암 치료를 우선 진행합니다. 이전에는 췌장암 특성상 항암제가 잘 듣지 않았는데요. 최근에는 치료 반응률이 높은 젬시타빈·아브락산, 폴피리녹스 등이 개발돼 췌장암 예후가 많이 좋아졌습니다. 따라서 암이 혈관을 완전히 침범한 경우에도 항암 치료를 선행하면 60~70%는 수술이 가능해지는 등의 긍정적인 결과가 보고되는 추세입니다.”
-치료 중 어려움은 없었나요?
“박선희씨는 췌장암 4기로 수술이 어려워 항암 치료를 먼저 진행해 병의 경과가 좋아지면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 수술하는 것이 치료의 목표였습니다. 그런데 췌장암은 항암 치료에 좋은 반응을 보이는 환자가 30~40% 정도로 적습니다. 좋은 반응을 보였으면 하는 마음으로 젬시타빈·아브락산 항암 치료를 우선 진행했습니다. 두 달 후 결과를 확인하니 다행히 종양 크기가 줄어드는 등 좋은 반응을 보여 이어 2개월 더 항암 치료를 한 뒤 그 다음 치료로 넘어갈 수있었습니다.”
-다학제 진료가 진행된 이유는?
“각 진료과의 전문의들이 유기적으로 치료하는 것이 굉장히 치료 효과를 높이기 때문입니다. 박선희씨의 경우 항암제로 종양을 줄이는 등 병을 다듬고, 회복 후 이어서 수술을 진행해 성공적으로 췌장암 치료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특정 장기에 병이 발생했다고 해서 국소적인 진찰에 그치지 않고 전신에 걸쳐 파악을 해야 예후에 더 도움이 됩니다. 당시 박선희씨가 수술을 할 수 있는 몸 상태가 될 수 있도록 제 역할인 항암 치료에 적극적으로 임했습니다.”
-박선희씨가 암을 이겨낸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시는지?
“자발적으로 식사 관리며 운동이며 열심히 하고, 힘든 항암 치료와 수술 모두 잘 따라와 주신 덕분입니다. 수술이 어려운 상태였는데도 불구하고 그 조건을 모두 이겨내고 재발, 전이 없이 건강해진 모습을 보면서 의료진인 저도 역으로 힘을 얻었습니다.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불가능도 가능으로 바꿀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항상 하게 해주시는 환자분입니다.”
-췌장암 환자들에게 한 말씀.
“사실 췌장암이 사람들에게 너무 악명 높은 암으로만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췌장암 진단을 받고 나면 치료를 포기하겠다고 얘기하거나 치료 의지가 낮은 환자들이 종종 있는데요. 췌장암은 치료를 하지 않으면 합병증이 심해지는 질환입니다. 복부에 전이가 되고, 장이 들러붙어 식사를 못하게 되는 등 삶의 질이 굉장히 떨어지고 통증 또한 심해집니다. 이런 부작용들을 최대한 억제할 수 있는 것이 항암 치료입니다. 최근 췌장암에 반응을 보이는 좋은 항암제들이 많이 개발되고 있으니 포기하지 말고 꼭 치료를 받을 것을 권고합니다. 박선희씨 사례를 보면서 희망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출처 : https://health.chosun.com/site/data/html_dir/2023/08/07/202308070141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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