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도현씨와 그의 주치의인 서울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 이재욱 교수./사진=신지호 기자
‘관해 유도’ 치료로 높아진 백혈병 생존율
우리나라에선 매해 1500여명의 소아암 환자가 발생합니다. 그 중 백혈병은 전체 소아암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흔한 암입니다. 백혈병은 혈액 세포에서 발생한 암으로, 비정상적인 혈액세포가 과도하게 증식해 정상적인 백혈구, 적혈구, 혈소판 생성이 억제됩니다.
백혈병은 크게 림프모구성과 골수성으로 나뉩니다. 암세포가 림프구에서 발견되면 림프모구성, 골수에서 발견되면 골수성입니다. 소아 백혈병의 97%가 급성이고, 그중 70%가 림프모구성으로 많습니다. 임도현씨가 겪은 암 역시 급성 림프모구성 백혈병입니다. 흔히 백혈병을 난치병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신속하게 치료하면 완치가 가능합니다. 급성 백혈병의 생존율은 1960년대 20%에서 2005년 이후 95%로 증가했습니다.
5년 간 재발이 없으면 완치 판정을 받는 다른 암들과 달리, 백혈병은 10년 간 재발이 없어야 완치 판정을 받습니다. 암세포를 5% 이하로 감소시켜 백혈병 세포가 완전히 소멸된 ‘완전 관해’ 상태를 만들기 위한 치료가 먼저 시작됩니다. 두세 가지 항암제를 혼합해 암 세포를 소멸시키는 ‘관해 유도’ 치료를 4~6주, 잔존하는 암세포를 제거하는 ‘관해 후 치료’를 2년 정도 순차적으로 시행합니다. 암이 재발하면 조혈모세포 이식을 진행합니다. 과거에는 꼭 맞는 기증자를 찾지 못하면 조혈모세포 이식이 어려웠는데, 조직적합항원(면역 반응에서 같은 종류로 인식하는 항원)이 반만 일치하는 ‘반일치 조혈모세포’ 이식도 최근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식 후 10년 내 재발이 없을 경우 완치 판정을 받게 됩니다.
두 번의 재발
임도현씨는 13세가 되던 2014년 2월에 백혈병 진단을 받았습니다. 양쪽 다리에 보라색 피멍이 들고 극심한 두통이 생겨 부모님과 동네 병원에 갔습니다. “혈액검사 결과가 좋지 않으니 큰 병원을 가보라”는 동네 병원 의사의 조언을 듣고, 서울성모병원에서 정밀검사를 실시했습니다. 급성 림프모구성 백혈병이었습니다. 임씨의 혈소판 수치(정상 수치 15만~40만)는 8000으로, 현저히 저하된 상태였습니다. 곧바로 치료에 들어갔습니다. 항암제로 인한 울렁거림이 심해 식사가 어려워져 수액과 영양제에 의존해야 했습니다. 평소 싫어하던 채소까지 챙겨 먹으며 재활 운동을 하루도 빠짐없이 받았다고 합니다. 관해 판정을 받았고, 관해 후 치료까지 모두 시행했습니다.
소아에서 백혈병이 발병하면 이런 항암 치료만으로도 90% 완치가 가능합니다. 재발률은 20%입니다. 그런데 임씨는 불행히도 2020년 3월, 백혈병이 재발했습니다. 임씨의 주치의인 서울성모병원 이재욱 교수는 “지금까지 두 번의 재발을 겪고, 조혈모세포 이식 부작용으로 간정맥폐쇄증까지 발병했다”며 “유독 치료 중 재발이 잦고 약물 부작용이 일어난 어려운 케이스였지만, 환자와 가족이 끝까지 위축되지 않고 치료에 열심히 임했고, 우리 의료진이 임씨의 상태에 맞는 치료를 적기에, 적절히 시행해 지금은 건강을 되찾은 상태”라고 말합니다.
임씨는 성인도 견디기 힘들어하는 치료를 연속으로 받았습니다. 처음 재발했을 당시, 식욕부진으로 체중이 4kg 줄었고 다리에 점상출혈(모세혈관 내 출혈에 의해 생긴 멍)이 나타났습니다. 항암 치료를 다시 시작해야 했습니다. 항암 치료를 한 지 90일 만에 골수의 암세포를 5% 미만으로 줄이는 관해 유도에 다시 성공했습니다. 재발한 케이스였기 때문에, 주치의인 이재욱 교수는 조혈모세포 이식을 진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2020년 9월 제대혈 이식을 진행했습니다. 제대혈 이식 환자의 생존율은 93%으로 높은 편이지만, 이식 후유증으로 온몸에 빨간 점이 생겼고, 목이 항상 칼칼해 물이나 침을 삼킬 때마다 통증이 있었습니다.
이식한 지 1년이 지난 2021년 11월에 백혈병이 또 다시 재발했습니다. 이때는 조금 더 공격적인 치료를 시행했습니다. 신약 항암제를 사용했습니다. 2022년 1월, 이번에는 아버지로부터 골수를 기증받아 조혈모세포 이식 수술을 받았습니다. 이로써 백혈병 치료는 모두 끝난 상태이며, 현재까지 재발 없이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아버지 덕분에 되찾은 삶
그런데 문제는 간이었습니다. 이식 한 달 뒤 복수가 차서 배가 부어오르고 황달이 나타났습니다. 거듭된 항암 치료로 망가져 가던 간이 급격히 악화돼 간정맥폐쇄증이 발병한 것입니다. 조혈모세포 이식 후에는 부작용으로 피부 발진이나 장기 손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임씨의 경우 간이 심하게 손상됐습니다. 집중치료실에서 홀로 약물 치료를 버텨내야만 했습니다. 황달 수치는 32mg/dL(정상 수치 0.2~1.2)까지 올랐고 환자복 상의가 다 젖을 정도로 토를 하는 위급 상황도 있었습니다.
급하게 간 이식이 결정됐습니다. 아버지의 간을 이식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임씨와 아버지의 체구가 달랐습니다. 임도현씨의 당시 체중은 50kg. 74kg이던 아버지의 간은 임씨에게 이식하기에 너무 컸습니다. 이때부터 아버지의 피나는 노력이 시작됐습니다. 아들에게 건강한 간을 주기 위해 이를 악 물고 살을 뺐습니다. 식단을 엄격히 제한하고 운동해서 한 달 만에 68kg이 됐습니다. 무사히 간을 이식할 수 있었습니다.
가족들에게 지옥 같던 이식 전 1주일, 임도현씨는 이 기간의 기억이 없습니다. 증세가 악화돼 의식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아버지의 희생 덕에 다시 삶을 되찾은 임씨는 이때부터 삶을 대하는 태도가 180도 달라졌습니다. 건강해지기 위해, 입맛이 없어도 열심히 음식을 먹었고 수술 직후 50kg도 안 되던 몸무게가 55kg까지 늘었습니다. 이식 후 1년 골수 검사 결과에서도 미세잔존암 수치 0%로 좋은 결과를 보이며 ‘1년의 벽’을 무사히 넘겼습니다.
의지할 친구 되어준 ‘솔솔바람’
어린 나이부터 투병 생활을 시작해 또래와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해, 임씨는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습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가족이 곁에 있어도 큰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았습니다. 골수 이식을 받고 중환자실에 누워 수십 개의 바늘과 관이 꽂혀 있는 자신을 보며 삶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습니다. 매일 한 시간 넘게 몸 곳곳을 소독했고, 눈만 감으면 세상이 빙빙 도는 상태보다는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거란 생각에 “엄마 그만하자”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때 그를 잡아준 것이 서울성모병원 소아청소년 완화의료팀 솔솔바람입니다. 솔솔바람은 중증질환 소아청소년 환자와 가족들의 신체, 심리, 사회적 어려움 완화를 위해 국내에서 최초로 시작된 서울성모병원 병동형 호스피스입니다. 외부인 출입이 전면 금지됐던 집중치료실에 누워있을 때 솔솔바람 선생님들은 임씨의 말동무가 돼줬습니다. 가족들이 쓴 편지와 찍은 사진들을 전달하며 응원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계속 인지시켜줬습니다. 일반 병실로 돌아왔을 땐 친구 없이 혼자 지내던 임씨를 위해 다른 병동에 있는 친구들을 소개해주기도 했습니다. 소아암 환자를 대상으로 열리는 공모전과 자선 활동에 참가하도록 해, 삶의 원동력을 제공했습니다.
유튜브 통해 세상과 소통
이런 투병생활은 임도현씨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임씨는 ‘현스 다이어리’ 채널을 운영하는 1년 차 유튜버입니다. 투병기, 기타 연주곡, 여행을 비롯한 일상의 다양한 모습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백혈병이 완치되면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 묻던 간호사의 질문에, 불현 듯 “활기찬 일상을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떠올라 시작한 일입니다. 구독자들로부터 받는 응원은 임씨에게 큰 힘이 됐습니다. 그제야 자신이 세상의 일원이 된 것 같았다고 합니다. 같은 백혈병이나 암을 투병 중인 환우들이 자신을 보며 희망을 보며 힘을 내기 시작했다고 하는 댓글들을 보면 선한 영향력을 선사한 것 같아 행복했습니다.
<임도현씨>
임도현씨./사진=신지호 기자
-투병 일기를 담은 유튜브를 운영하는 이유는?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계속 영상을 올리다 보니 제 소식을 궁금해 하는 분들이 생겨서 놀랐습니다. 누군가에게 힘이 된다는 생각을 하자,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습니다. 앞으로도 투병 일기와 일상을 계속 공유할 예정입니다. 영상을 업로드하는 것과는 별개로, 저녁마다 하루를 돌아보며 일기를 쓰고 있기도 합니다. 일상의 소중함을 매일매일 되새기려고요. 어릴 때부터 아팠기 때문에 행복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제게 주어진 모든 것들이 행복이란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남들과 다른 학창 시절을 보내는 것이 그저 싫고 불행하게 여겨져 제 자신을 미워할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스스로를 많이 사랑해주려고 합니다. 일상을 기록하다 보면 행복이 먼 미래가 아닌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정말 행복한 사람입니다.”
-극복까지 정말 힘들었을 것 같다.
“제가 병을 극복하고 지금 살아있는 건 모든 게 다 부모님 덕분입니다. 당신들의 전부를 다 바쳐 저 하나를 살리기 위해 애써주신 것에 감사해서라도, 저는 더 열심히 살 것입니다. 치료 과정이 너무너무 힘들어서 삶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지만, 부모님께 효도하라고 누군가가 저를 살려주신 것 같아요. 더 건강해질 것이고 오래오래 효도할 생각입니다.”
-투병 중인 암 환자분들께 한 마디.
“걱정을 미리 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습니다. 많은 암 환자들이 치료와 예후에 대한 걱정과 불안을 가지고 계십니다. 스스로 걱정을 많이 해왔던 제가 이런 말을 드리는 것은 모순적이긴 하지만, 돌이켜보니 좋을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오늘, 지금, 바로 이 순간만 생각하는 것이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 큰 도움이 됩니다. 암 치료에 있어서는 최대한 단순하게 생각하시고 치료에만 전념하시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재욱 서울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이재욱 교수./사진=신지호 기자
-임도현씨의 현재 상태와 예후는?
“현재 임씨는 면역억제제와 폐렴 예방약을 복용 중입니다. 폐렴 예방약은 곧 끊을 예정입니다. 간 이식 후 면역력이 매우 낮아져 있는 만큼, 면역억제제는 계속 복용해야 합니다. 간 이식 후 1년이 지날 때까지는 추적 관찰을 계속 해야 합니다. 지금처럼 꾸준히 검사받고 건강한 생활을 영위하면 건강하게 오래 사실 겁니다.”
-임도현씨를 각별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임씨를 비롯한 모든 소아암 환자는 저에게 각별합니다. 특히 임씨는 간정맥폐쇄증으로 위중한 상태였다 보니, 밤새 임씨의 상태를 챙겨봐야 했습니다. 혹여나 제가 없는 사이에 위급한 상황이 생길까봐 집에도 갈 수 없었습니다. 그런 제 마음을 알아준 것인지, 위급한 고비도 잘 넘기며 지금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임씨를 보면 너무나도 대견하고 뿌듯합니다.”
-소아암 완치의 개념은?
“항암 치료는 암의 종류에 따라 다르기지만, 1~3년 걸립니다. 치료가 종료된 시점부터 3년간 재발이 안 되면 완치라고 판단합니다. 소아암 완치율은 20~30년 전만 하더라도 약 50%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70% 이상입니다. 특히, 급성 림프모구성 백혈병 완치율은 80~90%에 달합니다.”
-투병 중이신 혈액암 환자분들께 한 마디.
“치료 성적과 예후가 매우 좋습니다. 날이 갈수록 발전하고 있습니다. 특히 소아암의 경우 환아뿐 아니라 가족들이 아이의 회복을 위해 온 마음을 쏟아 헌신합니다. 긴 치료 기간 동안 환자, 보호자, 의료진이 합심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게 아주 중요합니다. 재발이나 후유증에 대해 미리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 이 순간 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하다 보면 다 같이 웃을 수 있는 날이 분명히 올 것입니다.”
출처 : https://health.chosun.com/site/data/html_dir/2023/02/27/202302270159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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