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박상철 화백
세간의 화제가 될 만한 사건이 발생하면 어김없이 ‘음모론’이 등장한다. 누군가 배후에 있고, 다른 목적이 있어 의도적으로 사건을 일으켰다는 식의 주장이다. 근거 없는 이야기지만 많은 사람들이 믿고, 또 퍼 나른다. 그렇게 퍼진 말들이 때로는 사실처럼 둔갑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런 음모론들이 사건 당사자는 물론,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정치인·연예인 관련 사건 발생하면 어김없이 등장
음모론자들은 특정 사건의 원인, 배후에 알려지지 않은 다른 인물 또는 조직·단체가 있다고 주장한다. 정치인, 연예인 등 유명인과 관련된 사건들을 타깃으로 하는가 하면, 사회현상, 자연재해 등에 음모론을 갖다 붙이기도 한다. 특히 사회적으로 많은 관심이 집중된 사건, 많은 사람이 관련된 사건일수록 음모론이 자주 나온다. 코로나19 백신 개발 당시만 봐도 그렇다. 유례없이 빠르게 백신이 개발된 탓(그들에게는 탓)에 전세계적으로 수많은 음모론이 돌았다. 개중에는 사실관계를 따져봐야 하는 주장도 있었지만, 대다수가 근거 없는 허위 정보였다.
그들은 대부분 강한 확신을 갖고 있으며, 상세하고 방대한 양의 근거를 제시한다. 대부분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사건, 원인이 불명확한 사건을 다루고, 귀가 솔깃해질 만큼 자극적이고 그럴싸하게 자기주장을 펼친다. 많은 사람들이 음모론을 절대 믿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한 번씩 관심을 갖는 것 역시 이 같은 이유다. 최근에는 SNS로 인해 정보 접근성이 높아지면서 누구나 쉽게 음모론을 접할 수 있게 됐고, 음모론이 퍼지는 속도와 영역 또한 빠르고 광범위해졌다.
◇종결욕구·불안 때문… 빨리 확인되고 그럴듯하면 사실처럼 여겨
음모론은 인간의 여러 본능·심리와 얽혀있다. 특정 사건 또는 현상이 발생하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의미나 원인을 찾으려 한다. 단순히 찾는 것을 넘어 빨리 알길 원하고 빨리 판단하길 원한다. 일종의 ‘종결욕구’다. 복잡하고 불확실한 일들을 서둘러 종결하고자 하는 것으로, 사건·현상의 규모가 클수록 이 같은 습성이 잘 나타난다. 음모론은 이런 본능과 심리를 교묘하게 파고든다. 그럴듯한 의견을 제시함으로써 무언가 빨리 결론내리길 바라는 이들을 혹하게 만드는 것이다.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음모론이 주목받는 이유는 모든 사람이 ‘왜 그랬을까’ 생각하던 참에 그럴듯한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이라며 “서둘러 원인을 찾고 판단하고 싶은 본성으로 인해 과학적·합리적 근거를 찾는 과정을 생략하고, 가장 그럴듯한 근거, 가장 빨리 확인되는 정보를 사실처럼 여겨버린다”고 말했다.
음모론에는 불안 심리도 작용한다. 종결 욕구가 해소되지 않으면서 발생하는 불안, 내가 모르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생각에서 오는 불안, 이로 인해 언젠가 불이익을 볼지도 모른다는 불안 등이다. 이 같은 불안에 휩싸인 상황에서 음모론에 기댐으로써 불안함은 걷어내고 편안함을 느끼고자 하는 것이다. 단국대 심리학과 임명호 교수는 “음모론을 믿으면 잘못이 다른 무언가에 있다고 생각해 편안해질 수 있다”며 “자신 외에 믿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될 경우 편안함, 안도감 역시 커진다”고 말했다.
◇정보 과시욕 강할수록 음모론 빠지기 쉬워
음모론자는 인간의 이 같은 심리·본능을 이용한다. 말투와 표현은 항상 자극적이고 확신에 차있으며, 자기 주관 또한 뚜렷하다. 사람이나 집단을 다루는 일에도 능숙하다. 이들 곁에 선동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면 한결 수월하게 음모론을 퍼뜨리고 지지 세력을 모을 수 있다. 남의 말을 쉽게 믿는 사람, 정보를 알고 있다는 것에 대해 과시욕이 있는 사람, 호기심이 많은 사람, 규칙이나 의미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사람일수록 표적이 되기 쉽다. 곽금주 교수는 “음모론을 퍼뜨리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모르는 정보를 알고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인정받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음모론의 순기능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한다. 의심을 통해 진실을 밝혀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의심과 음모론은 다르다. 의심이 생각하고 추측하는 수준이라면, 음모론은 명확한 근거도 없이 기정사실화하고 확신해버린다. 이미 생각이 굳어져 합리적인 반박을 거부하고 반대 의견을 공격으로 여기기도 한다. 대부분 부정적이고 자극적이며, 의심과 달리 조직적·집단적으로 형성·확산되는 것도 특징이다.
◇음모론, 사회 전체에 영향… 근거 없는 판단·확신 자제해야
음모론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음모론이 곳곳에 퍼진 사회는 불안정해지고, 사회에 소속된 개인 역시 불확실함으로 인한 불안·불신에 사로잡힌다. 임명호 교수는 “부정확한 음모론을 계속 따라가면 그 끝은 결국 파국”이라며 “개인적·사회적으로 피해를 입고 후유증이 남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음모론에 빠지지 않으려면 관심조차 갖지 않는 게 좋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다가도 한 번 믿기 시작하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게 되는 게 음모론이다. 종국에는 어떤 사건·현상에도 음모론을 갖다 붙이는 지경에 이른다. 음모론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는 불확실할 때 조급한 마음에 동요하지 말고, 무언가 또는 누군가를 맹목적으로 따르고 있진 않은지 돌아볼 필요도 있다. 곽금주 교수는 “판단이 필요하면 명확한 원인을 따지고, 섣부른 확신은 자제해야 한다”며 “개인이 퍼뜨린 음모론이 사회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출처 : https://health.chosun.com/site/data/html_dir/2023/02/23/2023022301033.html
'교류의 장 > 쉬어가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면 습관 '이렇게' 바꾸면, 5년 더 오래 산다 (0) | 2023.02.27 |
---|---|
술 냄새 오래 나는 사람, ‘이곳’ 망가졌다는 신호 (0) | 2023.02.27 |
변덕스러운 지구… 체온 36.5도의 이유 (0) | 2023.02.26 |
담배는 늘 해롭지만… ‘이때’ 피우는 건 특히 위험 (0) | 2023.02.26 |
주 4일제 도입 후 6개월… ‘이런 변화’ 생기더라 (0) | 2023.02.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