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 재발 줄이려면 저녁은 일찍, 아침은 늦게 먹어라
안녕하세요! 여러분은 ‘핑크 리본’을 보면 무슨 생각이 떠오르시나요? 누구는 어릴 적 핑크 리본을 하고 다녔던 짝꿍이 생각날 수도 있고, 누구는 딸에게 사주고 싶은 예쁜 선물이 생각날 수도 있겠지요. 이렇듯 핑크 리본은 개개인에게 다양한 달콤한 상상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의미도 있답니다. 바로 여성 암 발생률 1위인 유방암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한 캠페인을 상징하는데요.
전 세계적으로 10월은 ‘유방암 의식 향상의 달’로 지정되어, 유방암에 대한 건강강좌도 많이 제공되고, 유방암 연구 및 유방암 환우 지원을 위한 모금행사도 곳곳에서 진행됩니다. 따라서 10월에는 유독 핑크 리본이 눈에 자주 뜨이는데요. 저도 핑크리본 캠페인에 동참하는 의미로 이번 칼럼은 유방암에 대해 써볼까 합니다.
유방암은 한국인 여성에게 두 번째로 많이 발생하는 암이지만, 다행히도 다른 암들에 비해 예후가 좋은 암입니다. 0기에서 2기 사이의 유방암의 경우 5년 생존율이 90% 이상이 되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방암 선고는 삶의 많은 변화를 가지고 옵니다.
유방암 환자분들은 늘 재발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고, 먹는 것 하나하나도 조심스러워집니다. 최근 연구 결과에 의하면 ‘무엇’을 먹는가 뿐만이 아니라 ‘언제’ 음식을 먹는지에 따라서도 유방암 예후가 달라진다고 하는데요. 올해 3월 미국 의학협회 자매지(Jama oncology)에 소개된 논문입니다.
이 연구는 1995~2007년 사이 1~3기에 해당하는 유방암 환자 중 당뇨병이 없는 여성 2413명을 추적했는데요. 참가자들 대부분은 백인 여성으로서 평균 연령은 약 52세였답니다. 연구자는 크게 다음 세 가지에 관심이 있었답니다.
첫째, 마지막 식사 후 다음날 첫 식사 사이의 공복 시간에 따른 유방암 예후
둘째, 저녁 8시 이후 야식을 하느냐 마느냐에 따른 유방암 예후
셋째, 하루에 음식을 먹는 횟수에 따른 유방암 예후
과연 위 세 가지 행동들 중 어떤 것이 유방암 예후에 영향을 미쳤을까요? 오직 공복 시간만이 유방암 예후에 영향을 미쳤는데요. 나머지 두 요인인 음식을 먹는 횟수와 야식 여부는 유방암 재발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습니다. 공복 시간이 13시간 미만(평균 11.6 시간)인 유방암 환자들은 공복 시간이 13시간 이상(평균 14.2 시간)인 유방암 환자들에 비해 유방암 재발률이 약 1.4배 더 높았습니다.
이는 공복 시간 13시간을 확보하라는 의미입니다. 예컨대, 저녁 8시에 식사를 하면 다음 날 아침 9시에 식사를 하라는 이야기입니다. 왜 일정 공복 시간을 확보하면 유방암 환자들의 재발 위험도가 낮아질까요? 연구자는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고혈당증(hyperglycemia)과의 연관성을 제시했답니다.
암을 연구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이론 한 가지가 있는데요. 워버그 효과(Warburg effect)입니다. 1931년 노벨 의학상을 받았던 오토 와버그(Otto Warburg) 박사가 발견한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암세포는 정상 세포가 변형되어 생긴 것입니다.
따라서 암세포와 정상 세포 사이에는 많은 차이점이 있는데요. 그 중 하나가 세포의 주 에너지원인 포도당(glucose)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입니다. 정상 세포의 경우, 세포 내 발전소 역할을 하는 미토콘드리아에서 산소를 이용해 포도당을 태워 에너지를 생성하는데요. 포도당에서 아주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뽑아내는 경로입니다.
하지만 암세포의 경우, 산소가 충분할 때도 산소를 이용하지 않는 경로를 통해 포도당에서 에너지를 뽑아냅니다. 이를 워버그 효과라고 하는데요. 이 과정은 정상 세포가 포도당에서 뽑아내는 에너지양에 비해 훨씬 더 적은 양의 에너지(1/19배)를 뽑아내는 비효율적인 방법입니다.
왕성하게 번식하는 암세포는 더 많은 에너지를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비효율적인 방법으로 포도당을 사용하는 것일까요? 세포가 증식하기 위해서는 에너지 외에도 세포를 구성하는 기관들을 만들기 위한 물자들이 필요한데요. 위와 같은 경로를 선택하면, 포도당에서 에너지는 적게 뽑아내더라도 세포 증식에 필요한 구성 물자들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 낮은 에너지 생산성을 보충하기 위해 암세포는 정상 세포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포도당을 마구마구 소비하게 된답니다. 여러분들도 “암세포는 당을 먹고 자란다”라는 말을 한 번쯤은 들어보신 적 있으실 것입니다.
따라서 고혈당증은 암세포 증식에 유리한 당이 풍부한 환경을 제공함으로써 암의 예후를 나쁘게 할 것이라고 추측되고 있습니다. 실제로도 몇몇 연구에서 고혈당증이 있는 유방암 암 환자의 경우 고혈당증이 없는 유방암 환자에 비해 사망률이 높다는 것이 관찰되었답니다.
고혈당증의 정도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혈액 검사 중에 ‘당화혈색소(HbA1c) 검사’를 할 수 있습니다. 적혈구를 붉게 보이게 하는 헤모글로빈이라는 혈색소에 포도당이 어느 정도 붙어있는가(즉 당화가 어느 정도 되었는가)를 살펴보는 검사인데요. 혈액 내 포도당 농도가 높을수록 혈관을 이동해 다니는 적혈구의 헤모글로빈에도 포도당이 많이 붙게 된다는 원리를 이용하는 것이지요.
위 논문의 연구자는 참가자들의 당화혈색소 검사 결과도 분석했습니다. 유방암 환자들의 공복 시간이 길어질수록 당화혈색소 수치도 낮아졌답니다. 따라서 공복 시간이 길어질수록 혈액 내 포도당 농도가 낮게 유지되기 때문에, 암세포가 일종의 영양 결핍 상태가 됨으로써 암세포 증식이 억제될 것이라고 연구자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때 ‘간헐적 단식’이나 ‘1일 1식’이 화제가 되면서 공복 상태가 체중 감량 및 다른 건강 상태에 미칠 수 있는 긍정적인 효과들에 대해 언론에서 많이 소개되었는데요. 대부분의 연구 결과들은 주로 동물 실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고,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들은 아직 초기 단계에 있답니다.
따라서 유방암 환자들을 바탕으로 공복 상태가 건강에 미칠 수 있다는 긍정적인 효과를 찾아낸 이 논문은 상당히 의미가 있지만, 공식적인 가이드라인으로 선정되기까지는 후속 연구가 더 필요합니다. 다만 치료가 끝난 유방암 환자의 경우 13시간 정도의 공복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크게 어렵지 않고 약물과 같은 부작용이 있지 않으니 한 번 실천해 볼 만 합니다. 유방암 환우 분들, 암과의 전투에서 건승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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