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이 분다. 이맘때 바다는 온통 먹거리의 천지다. 동해안 작은 항구를 가면 연탄 화덕에서 양미리와 도루묵 굽는 냄새가 진동한다. 구룡포에서는 과메기가 꾸덕꾸덕 말라간다. 자갈치 공판장에는 제철을 맞은 자연산 광어와 참돔이 도도한 자태를 뽐내며 드러누워 있다. 진해만을 둘러 싼 거제도와 가덕도에서는 대구 잡이가 시작된다.
제주 먼 바다를 휘젓고 다니는 방어 뱃살에는 고소한 기름이 오른다. 벌교 갯벌에는 꼬막이 지천이다. 서천항에서는 물메기 잡이가 한창이고 서해 작은 섬에서는 자연산 홍합을 채취하는 아낙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귀하디귀한 참복을 맛보는 사치 역시 이때부터 가능하다. 이처럼 다양한 겨울바다의 먹거리 중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굴이다. 남해와 서해에 걸쳐 두루 생산되지만 가장 대표적인 곳은 역시 경남 통영시다.
통영 시내를 걷다 재미있는 광고판을 발견했다. 근육질의 남성과 가녀린 여성이 각각 굴 하나씩을 들고 있다. 그리고 남성의 사진에는 ‘여자를 위하여 남자가 먹는다’. 여성의 사진에는 ‘남자를 위하여 여자가 먹는다’는 카피가 있다. 보는 순간 피식 웃음이 나왔지만 꽤 잘 만든 광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고로 광고는 단순하고 직관적이어야 한다. 굴의 단백질 함량이 우유의 3배에 달하고 각종 비타민과 무질의 보고이며 특히 아연은 남성의 정력에 철분과 구리는 여성의 빈혈에 좋다고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은 광고로서 매력이 없다. 카사노바나 클레오파트라가 즐겨 먹었다는 스토리 역시 흥미롭기는 하지만 나랑은 상관없는 얘기로 들릴 따름이다. 그에 비해 남자는 여자를 위해, 여자는 남자를 위해 먹는다는 카피는 필부필부(匹夫匹婦)들에게 ‘그럼 나도 혹시…’라는 기대를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굴 이미지(사진 셔터스톡)](http://health.chosun.com/site/data/img_dir/2015/12/15/2015121501179_0.jpg)
바다 속에서 키우는 통영굴, 식감 부드러워 일품
이처럼 흥미로운 광고를 제작한 곳은 ‘통영굴수협’ 정식 명칭은 ‘굴수하식수산업협동조합’이다. 통영 앞바다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굴의 80%가 생산되고 통영 인구의 20% 정도가 굴 관련 산업에 종사할 정도로 비중이 높다. 그래서 굴 생산자 조합인 ‘굴수협’이 따로 있을 정도다.
통영에서 생산되는 굴을 수하식(垂下式)이라고 한다. 바닷물 속에 늘어뜨려 키운다는 뜻이다. 수하식은 굴이나 가리비 껍질에 체외수정 한 굴의 유생을 붙여 바닷물 속에서 키우는 방식이다. 인간의 경험과 노동력이 개입되기는 하지만 생식과 성장은 온전히 바다의 몫이다.
자연 상태의 굴은 바위에 붙어살며 간조 때는 물 밖으로 노출되고 만조 때는 물속에 잠긴다. 간조와 만조를 겪으며 자란 굴은 성장이 더딘 대신 살이 단단하고 향이 짙다. 이에 반해 수하식 굴은 성장하는 내내 바닷물 속에서 자란다. 바닷물 속의 플랑크톤이나 각종 미생물을 먹고 자라기 때문에 성장이 빠르고 육질이 부드럽다.
통영이 수하식 굴 생산으로 유명한 것은 자연적인 조건 때문이다. 우선 미국 FDA가 청정 해역으로 인정할 정도로 바닷물이 깨끗하다. 단지 깨끗한 걸로는 부족하다. 굴의 성장에 필요한 영양분이 풍부해야 하는데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한려수도조망케이블카’를 타고 미륵산을 올라 볼 필요가 있다.
해발 461m의 미륵산 정상에 오르면 섬과 섬이 이어지고 겹쳐지기를 반복하며 마치 한 폭의 수묵화와 같은 풍경을 연출한다. 그 섬의 숫자가 무려 570여 개의 이른다. 이처럼 많은 섬은 바다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고 그 영양분은 곧 굴을 성장시키는 바탕이 된다.
이처럼 통영에서 맛있는 수하식 굴이 대량으로 생산되는 까닭에 우리는 겨울이면 굴을 저렴한 가격에 아낌없이 먹을 수 있다. 유럽, 일본, 중국 등에서는 반각굴(하프셀)을 개수를 세어가며 먹어야 하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깐 굴이 대세다. 통영 굴수협에서도 깐 굴을 10kg단위로 포장해 경매를 하고 있을 정도다. 카사노바나클레오파트라가 부럽지 않을 정도의 스케일이다.
굴은 12월 중순~2월에 단맛 짙어져
굴의 몸값이 가장 비싼 시기는 11월 말에서 12월 중순 사이의 김장철이다. 김치 담을 때도 굴을 아낌없이 넣어 수요가 급증하기 때문이다. 12월 중순이 지나면서 굴 값은 떨어지지만 맛은 오히려 이때부터 2월까지가 낫다. 알이 차고 단맛도 짙어진다.
어떻게 먹어도 맛있는 굴이지만 이 계절에 놓치지 말아야할 별미는 ‘굴밥’이다. 우선 햅쌀을 씻어 물에 불린다. 그리고 쌀의 양에 따라 다르지만 어쨌거나 굴을 듬뿍 올린다. 굴 자체의 수분 때문에 밥물은 평소보다 적게 잡는 것이 좋다. 다된 밥의 뚜껑을 열면 진한 바다 향과 햅쌀밥의 단내가 식욕을 마구 자극한다. 굴 자체의 단맛과 감칠맛이 밥에 배여 그 자체로도 충분하지만 비법 양념장을 곁들이면 단맛과 감칠맛이 상승한다.
비법 양념장은 정성이 좀 필요하다. 우선 양조간장에쇠고기, 표고버섯, 양파 등을 썰어 넣고 1시간 30분 정도 중탕으로 끓여내야 한다. 품은 좀 들지만 중탕으로 끓여야 짜지 않고 각각의 재료가 가진 맛이 충분히 우러난다. 양념장은 미리 만들어서 식히는 것이 좋고 식히기 전에는 참기름이나 들기름을 살짝 뿌려두는 것이 좋다.
갓 지은 굴밥에 양념장을 살짝 곁들여 슥슥 비벼먹으면 그 복잡하고 오묘하면서도 풍부한 맛은 자연이 인간에게 허락한 축복이라고 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그리고 굴은 남자가 여자를 위해서도 여자가 남자를 위해서도 먹는 음식이 아닌, 오로지 나의 행복을 위해서 먹는 음식임을 실감하게 된다. 물론, 한 번에 많은 양의 굴밥을 만들어 가족과 함께 먹으면 더욱 별미다.
/박상현 음식의 역사적 배경과 사회적 맥락을 탐구하고 추적하는 일에 관심이 많은 맛칼럼니스트. 현재 건국대 아시아콘텐츠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있으며, 페이스북에서 ‘여행자의 식탁’이라는 페이지를 통해 대중에게 맛깔 나는 맛 얘기를 들려주고 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일본의 맛, 규슈를 먹다>가 있다.
http://health.chosun.com/site/data/html_dir/2015/12/15/201512150124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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