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혜(食醯)의 기원은 중국 주(周)나라 시대의 “예기(禮記)” 의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 귀족 계층이 즐겨 먹었다고 전해지는 감주(甘酒)의 윗물인 “예(醴; 단술)”가 그것이었다고 하는데, 이 달달한 감주(甘酒)는 소화 작용이 뛰어나 식후에 음청 하기도 좋고, 필시 과거엔 거나하게 술 마신 뒤 속 풀이가 필요한 젊은 선비들에게도, 처녀 귀신 등장하는 식겁한 꿈을 꾸고 악몽에서 깨었을 집 나간 서방님에게도 갈증을 푸는데 이만한 음료수가 없었을 것이다. 모 식품 회사에서 식혜를 캔 음료로 내 놓았을 때 필자는 무릎을 치며 “그래! 이 맛이야~” 라고 외쳤으나 의외로 인기는 부진했지만, 여전히 국적 불명의 명칭인 “한정식 집”에선 빠지지 않고 나오는 것이 바로 식혜이고, 잔치 상에 식혜가 빠지면 어쩐지 마무리가 부족한 상차림 같아서 늘 아쉬운 맘이 들었다.
알고 만들면 더욱 맛있는 식혜
어머니는 종종 보온밥통에 식혜를 만들곤 하셨는데 그 맛이 달거나, 싱겁거나, 어떤 날은 너무 곰삭은 익은 맛이 나서 참 기복이 많은 맛이었다. 식혜 밥알도 마찬가지였다. 어느날인가는 밥알로 배를 채워 주시려 했던지 식혜 국물 밑에 드러누운 밥알들이 하도 많아서 죽보다 배부르기도 했다. 그래서 식혜 공부를 했다. 절대로 실패할 리가 없는, 어머니의 식혜보다 더 맛있는 나만의 식혜를 만들겠다고 그 많은 밥알을 삼키며 맹세했다. 그러자면 먼저 식혜의 과학을 공부해야 한다.
▲ 엿기름 물의 단맛과 고슬고슬한 밥이 만나 발효가 진행된다
식혜의 주 재료는 밥(쌀), 엿기름(밀, 보리 등에 싹을 틔워 말린 것), 설탕이다. 그중 우리가 즐겨 먹는 식혜나 맥주 등은 바로 곡류가 싹이 틀 때 전분 분해물에서 전분이 가수분해 되면서 생성되는 맥아당(maltose)이다. 물론 식혜 만들면서 성분 분석에 영양학까지 배울 필요는 없다. 하지만 엿기름을 면 보에 받쳐 물을 받아서 굳이 보온밥통에 넣고 4~5시간을 기다리는 이유가 엿기름의 효소 반응을 위한 적정 제한 온도인 55~ 65도에 있다는 사실과 그렇게 활성화된 엿기름 물의 단 맛이 고슬고슬하게 지은 밥과 만나 탄수화물 효소에 의한 발효가 진행 되고, 거기에 발효의 먹이가 되는 설탕 한 큰술이 들어가 완벽한 식혜의 조건이 된다는 원리를 알고 있으면 식혜 만들기가 더욱 쉬워지고 더 맛있어 진다.
결국 식혜란 밥을 엿기름 물이 지닌 엿당을 이용해서 당화를 시키고, 그 맛을 고정 시키기 위해 열을 가해 끓여서 효소작용을 정지 시킨 음료이다. 최근에야 인공지능 전기밥솥이 있고, 즉석 밥과 엿기름도 마트에서 손쉽게 구입할 수 있음으로 들어가는 재료의 비율만 알고 있으면 만드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다. 수고스러움을 모두 감내해야 했던 과거 어머님들의 노고가 지금껏 이어져 왔기에 우린 식혜 맛을 기억하는 것이고, 그래서 더욱 다양한 식혜를 맛볼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옛 문헌을 통해 만나 보는 더 맛있는 식혜 이야기
이석만 선생님의 {간편 조선요리 제법}에 나온 식혜 만들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좋은 찹쌀로 밥을 되직하게 지어 가지고 항아리에 퍼 담은 후 엿기름 가루를 따뜻한 물에 풀어서 고은 체에 밭쳐 가라 앉혀 붓나니, 밥이 가령 한 주발이면 식혜 가루는 한 보시기 쯤을 끓는 물에 풀어 식기 전에 더운 밥에 붓고 숟가락으로 밥알이 상하지 않게 잘 섞어서 뚜껑을 꼭 봉해 두었다가 익은 후에 실백을 뿌려 먹나니라” 되어 있다.
식혜 만드는 법은 이전에 이미 1740년경에 편찬된 〈수문사설〉이나 1800년대의 〈규곤요람〉과 〈시의전서〉 등에도 식혜의 제조법이 실려 있다. 식혜를 동절 음식으로 분류하는 것은 엿기름 때문이다. 지금은 많이 사용하지 않지만 과거에 엿기름은 가을 보리의 것을 최고로 여겼다. 때문에 고 조리서중 하나인 [조선무쌍 신식요리 제법]에서도 “엿기름은 가을 보리가 제일이니 이삼월이나 구시월에 싹을 내어 볕에 말려 작말(作末 : 가루로 만듦)하여 쓴다. 비단 엿 고는 것뿐 아니라, 식혜도 하고 고추장에도 넣고 약에도 많이 쓴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찬 바람이 드는 가을 보리 엿기름은 귀한 식재료 중 하나였다. 또한 ‘찹쌀보다는 멥쌀 식혜가 맛은 더 좋다!’ 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유자채나 유자즙을 넣어 향을 가미하거나, 석류를 넣어 그 모습을 더욱 아름답게 만든 “절미”가 돋보이기도 했다.
▲ 잘 만든 식혜 한 그릇이 마음의 시를 불러 일으킨다.
궁중음식 이수자이자 시인이기도 하신 “한복선” 선생님의 시집 [밥하는 여자]의 시 중에 “모란꽃 식혜”라는 아름다운 시 한편이 있다. “고슬고슬 쌀밥에 엿질금 물 부어 따끈히 삭히면 뽀얗고 달큰한 밥알 동동 뜬 전통 음료 단술 식혜가 된다. 겉보리에 물주며 싹을 틔운 엿 질금, 가루 하여 엿이나 식혜 할 때 쓴다. 보리 싹은 서로 엉키며 열을 내며 자라고 보리보다 짧게 틔워야 단 맛이 난다. 집집마다 식혜는 검고, 맑고, 뿌옇고 다 각색이다. 생강 맛, 유자 맛, 호박 맛… 이 세상 만물이 영물들이라, 자식 낳아 키울 때처럼 정성 들여 지성으로 빌고 빌면 삭임 맛이 나온다. 음식과 몸은 물아일체! 잘 삭은 식혜를 먹고 끄으윽 소화 시키니 연년익수(延年益壽) 모란꽃을 피운다.”
잘 만든 식혜 한 그릇이 마음의 시를 불러 일으키고, 건강을 북돋우어 장수를 돕는다. 우리 음식에는 이처럼 남을 위한 정성이 들어 있고, 기원이 들어 있다. 식혜 한 그릇 허투루 만드는 일 없으니 참으로 배울 점이 많다
실패하지 않는 식혜 공식
식혜는 재료에 따라서, 계절에 따라서 비율이 조금씩 달라진다. 무엇보다 엿기름이 좋아야 좋은 맛을 낼 수가 있고, 온도가 적당해야 당화가 잘 이루어지고, 단맛이야 꿀이나 설탕을 이용해서 기호대로 넣는다고 하여도 과거의 입맛과 오늘날의 입맛에는 현저한 차이가 있어 기본 비율도 많은 차이를 보인다.
전통적인 식혜 재료의 비율은 종이컵 기준(쌀 1: 엿기름 가루 1: 설탕 1: 물 7.5)의 비율이었는데, 근래에는 단 맛을 줄이고 밥알의 양도 적게 잡고, 적은 양으로 맛을 진하게 내는 맛을 선호하는 편이다 보니 (쌀 1: 엿기름 1.5: 설탕 1: 물 10)의 비율로 담는 레시피가 많이 눈에 띄인다. 오늘 알려드릴 레시피는 단호박을 첨가하여 호박의 단 맛을 강조한 식혜이다. 더욱이 전통 음식이라면 먼저 어렵다는 편견을 지닌 요리 초보 분들을 위해 가장 손 쉬운 방법을 알려 드리니 꼭 한번 만들어 보신 후 주변 지인 분들께 선물로 나눠 드리면 톡톡히 이쁨받을 것이다.
정 셰프의 정말 간편한 단호박 식혜
재료) 엿기름 2컵(400ml), 엿기름 물 15컵(3리터), 단호박 1개, 밥 2공기(2컵), 설탕 1과 1/2컵(350ml), 생강 1톨, 소금 1작은술, 대추 꽃/ 잣(실백) 조금
준비물) 면 보자기, 고운 체, 블렌더, 전자렌지, 비닐장갑
만들기
1. 먼저 엿기름을 면 보자기에 넣고 3리터 분량의 미지근하게 데운 엿기름 물을 3번에 나누어 붓는다. 보자기가 잠기도록 1리터의 물을 넣고 그대로 30분간 두었다가 비닐 장갑을 끼고 보자기를 주물러 뽀얀 물이 나오면 큰 통에 옮겨 담는다, 같은 방법으로 2번 더 물을 받아 낸 후에 한데 모은 물을 냉장고에 21시간동안 두면 앙금이 가라앉는다. 고운 체를 준비하여 윗물만 불순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밥솥에 옮겨 담는다.
2. 밥은 씻어 30분간 불린 멥쌀(흰쌀)을 물과 1:1 비율로 잡아 약간 고두밥으로 지어 준비한다(없으면 즉석밥을 전자렌지에 데워 사용해도 된다) 1)의 밥솥 안의 엿기름 물에 설탕 한큰술과 밥을 풀고 보온 버튼을 눌러 5시간 동안 둔다. 뚜껑을 열어 밥알이 떠오르기 시작했으면 체로 밥알만 건져 밥알은 식용수로 깨끗이 씻어 물기를 빼고 별도로 냉장 보관한다. (밥알을 저을 땐 한 방향으로만 젓고, 별도로 음료를 낼 때 밥알을 담으면 식혜 물 위에 뜬다.)
3. 단호박은 반으로 잘라 속 씨를 모두 파내고 랩으로 감싼 뒤에 전자렌지에서 6분간 익혀 노란 속살만 파내어 준비한다. 2)의 삭힌 식혜 국물과 섞어 블렌더에 담고 곱게 갈아 준 뒤에 냄비에 옮겨 담고 남은 설탕과 소금을 넣어 15분간 더 끓여 준 뒤에 불을 끄고 슬라이스한 생강을 넣은 후 충분히 식혀 낸다. 완성된 식혜는 체에 받쳐 맑은 물만 냉장고에 차갑게 보관한다.
4. 3)의 완성된 식혜를 그릇에 옮겨 담고 기호에 따라 2)의 밥알과 고명을 얹어 낸다. 남은 식혜는 스탠딩 지퍼백에 옮겨 담아 밀봉하고 냉동 보관한다.
엿기름
재래시장 등에서 구입할 수 있으며 이물질이 없고 색이 너무 진하지 않으며 깨끗한 것을 고른다. 질금가루라고도 부른다.
엿기름 우린 물
엿기름은 열량이 낮아 다이어트에 좋다. 우린 물을 계속 고으면 조청이 된다
단호박
식이섬유소가 풍부하고 지방이 적어 다이어트와 변비예방에도 효과적이고 환절기 감기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식혜
소화불량, 복부창만, 식욕부진, 구토, 설사를 치료하는 맥아의 효능으로 식혜는 음식을 배불리 먹은 뒤에 마시면 소화가 잘되어
명절이나 생일, 잔칫날, 다과상 등에 잘 어울리는 음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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