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청이 있으면 삶의 질이 떨어지고 치매에 걸릴 위험도 커진다. 원인을 찾아 치료해야 하는 게 당연하지만 난청이 왜 생기는지, 어떤 부분의 문제를 해결해야 치료되는지, 진행을 늦출 수는 있는지조차 완벽히 밝혀지지 않은 게 현실이다. 아주대병원 아주난청센터는 난청이라는 병을 근본적으로 밝히고, 증상 완화 정도의 치료만 하더라도 환자가 일상생활에 복귀할 때까지 충실히 관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난청, 삶을 좀먹고 치매 위험도 높인다
난청이 있으면 그저 소리가 잘 안 들리는 정도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난청은 원만한 의사소통이나 상황대처까지 어렵게 만들고, 심리적으로 위축시킨다. 68세 주부 김모 씨는 최근 교통사고를 당했다. 손자가 길에서 넘어지는 것을 보고 일으키기 위해 쫓아가다가 차가 다가오면서 빵빵거리는 소리를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70세 유모 씨는 길을 걷다 갈치장수와 싸우기도 했다. 갈치장수가 뒤에서 "같이 가, 처녀!"라고 소리쳐 기분이 나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갈치장수는 "갈치가 1000원!"이라고 외쳤던 것뿐이었다.
난청은 모든 연령대에서 선천적, 후천적 영향으로 생길 수 있지만 그중에서도 노인에게 특히 잘 생긴다. 나이가 들면서 귓속 기관이 퇴화해 소리가 점점 안 들리기 때문이다. 국내 65세 이상 4명 중 1명이 난청이며 75세 이상이 되면 절반이 난청으로 고생한다는 보고가 있다.
난청이 있으면 뇌의 인지기능이 떨어지면서 치매에 걸릴 위험도 높아진다. 소리는 대뇌에서 인지하고 처리한다. 밖에서 소리가 계속 들어와야 대뇌가 처리할 것이 생기므로 활발하게 활동하는데, 소리가 들어오지 않으면 대뇌의 활동량이 줄어 퇴화 속도가 빨라진다. 난청 정도가 심할수록 치매발병률이 높아진다는 미국 연구가 있다. 우울증도 위험하다. 잘 안 들리면 대화할 때 자꾸 "뭐라고?"라고 되묻게 되고 대화 자체를 두려워하게 된다. 의기소침해져 외출을 피하고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한다.
- ▲ 소리가 전달되는 과정과 난청
원래 청력 보존하며 인공달팽이관 이식
난청 치료는 쉽지 않다. 우선 귀의 어느 부분에 어느 정도로 문제가 생겼는지 정확히 알아봐야 한다. 고막이나 소리뼈에 문제가 생겼다면 이를 보완하는 수술이 필요하다. 외부 소리를 크게 증폭시켜주는 보청기를 착용해볼 수도 있다. 달팽이관에 문제가 생겼다면 회복이 불가능하니 아예 달팽이관 역할을 대신하는 인공달팽이관(와우) 수술이 필요할 수도 있다.
아주난청센터는 좀더 정확하고 효과적으로 치료하기 위해 이비인후과 전문의 4명, 청각검사 및 인공달팽이관조율(맵핑) 전문사 3명, 언어치료사 2명, 평형기능검사 전문사 2명 등이 협력하고 있다.
우선 환자가 난청을 호소하면 정확한 청력 진단을 위해 순음청력검사, 중이검사, 이음향방사검사, 청성뇌관유발반응검사 등을 한다. 상태를 파악한 뒤 보청기를 추천하기도 한다. 이때도 그냥 보청기를 처방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환자가 잘 들을 수 있는 주파수를 찾아서 조율해주고, 정기적으로 성능검사 등을 해서 소리가 적당히 증폭돼 귓속으로 들어가는지를 확인해준다.
- ▲ 인공달팽이관 수술과 작동 방식
인공달팽이관 수술(일러스트 참조)은 더욱 집중적으로 관리한다. 이 수술은 보청기가 아무 소용이 없을 정도로 근본적인 소리 기능이 망가졌을 때 시행된다.
그런데 귓속에 전극을 삽입하는 수술 중에 달팽이관이 기계에 닿으면서 뼈를 갈아낼 때 굉음이 크게 들리면서 약간이나마 남아 있던 청각세포까지 전부 파괴된다는 게 문제다. 웬만한 소리는 모두 안 들려도 거대한 폭파음은 희미하게나마 들리던 사람도 이 수술을 받으면 귀가 완전히 망가진다.
그래서 인공달팽이관이 사고로 인해 떨어지거나 비를 맞아 고장나거나 배터리가 다 되면 그대로 전농 상태가 된다. 아주난청센터 정연훈 센터장은 "전농 상태가 되는 것보다는 약간이나마 남아 있는 청력을 최대한 살리는 게 좋으니, 우리 센터에서는 수술 과정 중 생기는 달팽이관 상처를 최대한 줄이고 수술을 천천히 진행해서 잔존청력을 보존한다"고 말했다.
센터에서 주로 취하는 잔존청력보존 수술법은 정원창(달팽이관과 바깥이 이어져 있는 통로 중 하나)을 통한 인공달팽이관 이식술이다. 보통 인공달팽이관 수술을 할 때 달팽이관 밑 부분에 구멍을 내고 이를 통해 전극을 넣는다. 그런데 원래 존재하는 정원창를 이용하면 구멍을 덜 내도 되고, 구멍 뚫는 시간도 짧아진다. 정원창 주변의 일부를 제거해서 그 구멍으로 전극을 최대한 천천히 넣는 것이다.
정연훈 센터장은 "2009년 국내 최초로 이 수술법을 시작했다"며 "이 수술법으로 그동안 수술받은 환자 중 83% 정도는 원래 남아 있던 청력을 보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전체 인공달팽이관 이식술의 성공률은 98%에 이른다.
- ▲ 수술장면
잘 듣고 잘 대답할 때까지 수년간 지속 관리
인공달팽이관 수술이 잘 되는 것만큼 중요한 게 수술 후 재활이다. 인공달팽이관을 통해 들리는 소리는 자연 귀와 보청기를 통해 들리는 소리와 다르다. 이제껏 들리지 않던 소리의 높낮이와 크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수술 초기에는 소리가 들리긴 하는데 이게 말소리인지 주변 소음인지 구별조차 안 된다. 소리가 구별된다 해도 무슨 뜻인지 알아듣기 어렵다. 아주난청센터에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재활시스템을 체계적으로 갖췄다.
수술 후 3~4주가 지나 수술 부위가 아물면 인공달팽이관의 외부 이식기인 어음처리기를 착용하고 조율(맵핑)을 시작한다. 우선 전류를 얼마나 흘려 넣어야 소리를 인식하기 시작하는지 파악하고, 환자가 편안하게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범위 중 가장 큰 소리가 어느 정도인지를 확인한다.
이후 두 달 정도에 걸쳐 일상생활에서 소리를 잘 들을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한다. 입 모양이나 얼굴 표정에 의존하지 않고 소리를 들어서 의사소통할 수 있게 듣기 연습을 하고, 전화나 TV 같은 기계에서 나오는 소리를 인식하는 방법 등을 배우는 것이다.
조율 과정이 끝나면 언어재활치료도 시행한다. 언어재활은 개인의 의사소통 능력에서 부족한 점을 보완해서 의사소통에 도움을 주는 실용적인 방향으로 이뤄진다. 말을 배우기 전에 수술받은 아동은 인공달팽이관을 이용해 말소리를 정상적으로 배우는 과정을 거친다. 정 센터장은 "이 과정이 인공달팽이관 적응과 일상생활 복귀에 매우 중요한데, 보통의 대학병원은 보유 인력이 적고 수용 가능 사정도 좋지 않아서 1~2개월 정도만 관리해준다"며, "우리 센터는 전문 언어치료사만 2명이고, 장기 관리가 필요할 경우 병원과 연계된 근처 언어치료실에 보내 꾸준히 재활할 수 있도록 한다"고 말했다.
근처 언어치료실에서 재활을 받으면 치료 과정과 성과 데이터가 병원으로 연계된다. 이후 정기적으로 병원에서 검사해서 재활 정도를 체크해준다. 정연훈 센터장은 "자칫 소홀히 여겨질 수 있는 사후 관리도 체계적으로 관리 가능하다"고 말했다.
- ▲ 아주난청센터 치료 순서
중이염, 이석증, 어지럼증도 치료
아주난청센터는 이명, 이석증, 어지럼증 등도 치료한다.
이석증은 특정 자세를 취할 때 짧고 강하게 세상이 빙빙 도는 것 같은 증상이 나타나는 병이다. 귓속 조직이 돌조각처럼 떨어져 귓속을 돌아다니기 때문인데, 이 조직이 어디에서 돌아다니는지만 찾아내면 쉽게 치료된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진단법이 복잡해서 위치를 제대로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아주난청센터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진단법을 개발해 논문으로 발표, 현재 국제적으로 상용되는 일반적 진단법이 됐다. 센터가 개발한 진단법은 몸을 숙여보고, 머리를 이리저리 회전해봄으로써 어떤 자세일 때 어지럼증을 느끼고 돌이 어디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다.
- ▲ 치료장면
난청 원인 밝혀내고 근본 치료약 개발 중
아주난청센터는 난청의 기본 원리를 이해하고 근본적인 치료를 위해 기초연구를 시행 중이다. 정연훈 센터장은 "동물 실험을 통해 밝혀지지 않은 난청의 원인을 파악 중"이라며, "지금까지 알려진 것은 활성산소가 청각세포를 손상시키는 것 정도였는데, 세포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세포 간 신호전달체계가 망가지는 문제도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고 말했다.
약제도 개발한다. 녹차나 홍삼 등의 약재가 난청 완화와 청력 회복에 효과 있는지를 파악하고, 난청을 일으키는 신체 부위를 찾아 표적치료제를 만든다. 줄기세포를 이용해 청각세포를 회복하는 방법도 연구 중이다.
고막에 구멍이 뚫렸을 때 쓸 수 있는 인공 고막패치, 사고 등으로 귀가 사라졌을 때 필요한 진짜 귀와 똑같이 생긴 실리콘 인공 귀 등도 개발 및 사용 중이다. 정 센터장은 "연구를 통해 획득한 특허가 여러 개 있다"며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보건복지부가 연구 중심 센터로 지정했으며, 국내에서 난청 관련 연구비를 최대로 지원받고 있다"고 말했다.
- ▲ 아주난청센터 정연훈 센터장
잘한다는 칭찬보다 믿을 수 있다는 신뢰를 추구합니다
아주난청센터 정연훈 센터장
오랫동안 귀 연구에 매진한 걸로 압니다. 기억에 나는 환자가 있으신가요?
벌써 9년째 함께하고 있는 환자가 있어요. 소아환자인 데 다섯 살 때 인공달팽이관 수술을 했지요. 수술도 잘 됐고 수년에 걸친 재활치료도 끈기 있게 받았어요. 지 금은 말을 듣고 이해하고 다시 대답하는 데 아무 문제 가 없죠. 그 이후로 제가 의과대학에서 강의할 때 종종 찾아와요. 학생들 앞에 서서 "언니 오빠들이 의사라는 직업을 선택한 게 존경스럽다. 희망을 줄 수 있는 의사, 존경과 사랑받는 의사가 됐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죠. 제가 도움을 준 환자가 다시 제자들에게 동기를 부여한 다는 게 뜻깊습니다.
아주난청센터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HEAR'입니다. Human, Excellent, Accessible, Reliable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들어봤어요. 따뜻하고 쉽 게 접근할 수 있는 의료진이 있어 환자들이 자신을 믿 고 맡길 수 있는 곳이 됐으면 좋겠어요. 저는 최고가 되 는 것만을 추구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기술적 측면 에서 최고가 되는 것은 기본이죠. 의료진은 환자에게 늘 신뢰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뢰받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으신가요?
센터 의료진이 인격적으로 성숙하기 바라고 있습니다. 늘 강조하는 부분입니다. 재활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 는 게 이런 부분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겠네요. 수 술이나 치료만 해놓고 환자를 방치하면 사후관리가 안 돼 결국 완벽하게 일상으로 돌아가기 어려울 수 있잖아 요. 재활관리에 힘써서 환자가 진정으로 편안하게 일상 생활할 수 있도록 끝까지 함께할 겁니다.
<일러스트 1> 소리가 전달되는 과정과 난청
①소리가 나면 귓바퀴는 음을 모으고, 귓구멍은 음을 증폭해 귓속으로 보낸다 ②소리가 고막을 진동시키고, 이 진동은 고막에 연결된 소리뼈를 통해 내이로 들어간다 ③진동이 달팽이관 속 청각세포를 자극하면 세포가 전기 신호를 만든다 ④전기 신호를 청신경이 받아서 중추신경을 통해 대뇌로 전달, 뇌가 '소리 난다'고 인지하게 만든다.
고막에 구멍이 나거나 소리뼈가 망가지면 소리를 내이까지 전달하지 못하는 '전음성 난청'이 된다. 달팽이관 속 청각세포나 청신경이 망가져서 소리를 아예 인지하지 못하면 '감각신경성 난청'이다.
<일러스트2>인공달팽이관 수술과 작동 방식
달팽이관 속 청각세포나 청신경이 망가지면 수술이 필요하다. 인공달팽이관은 망가진 청각세포를 대신해 소리를 전기 신호로 바꾸고, 청신경을 자극해 뇌가 소리를 인지하게 만든다. 인공달팽이관은 체외기와 체내기로 돼 있으며, 체외기가 받아들인 소리를 체내기가 전기신호로 바꿔서 백금 성분의 전선을 통해 청신경까지 도달하게 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①외부 소리가 송화기에 들어온다 ②송화기에 들어온 소리가 어음처리기에 들어온다 ③어음처리기가 필요한 소리를 선택해서 코드화해 발신기로 전달한다 ④발신기가 받은 코드는 피부를 통해 몸속 수화기로 전달된다 ⑤수화기가 받은 코드를 전기신호로 바꾼다 ⑥전기신호가 달팽이관에 삽입된 전극으로 전달돼 청신경을 자극한다.
/ 에디터 김하윤 khy@chosun.com
/ 포토그래퍼 김지아 jkim@chosun.com
/ 일러스트레이터 신은영
월간헬스조선 5월호에 실린 기사
'일반 건강상식 > 건강정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폐를 좋아지게 하는 방법 7가지.. (0) | 2015.05.20 |
---|---|
[스크랩] 섹스리스 부부들의 속 타는 이야기 (0) | 2015.05.18 |
[스크랩] 호르몬만 조절해도 감정 다스릴 수 있다 (0) | 2015.05.17 |
[스크랩] ‘맨도롱 또똣’, 달콤한 술자리 공개… 올바른 음주 방법은? (0) | 2015.05.17 |
[스크랩] [제약계 소식] 한미약품, 여성청결제 선보여 외 (0) | 2015.05.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