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후군이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다. 1900년대 초반 의학사전에는 증후군이 30여 개 등록됐는데 현재는 어림잡아 수천 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국립의학도서관의 의학주제표목에 등록된 증후군은 현재 2700여 개다. 의학 외 분야의 증후군까지 포함하면 대략 수만 종류일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신뢰할 만한 증후군일까? 증후군의 범위에 상관없이, 어느 정도 의학적 근거가 있는 대표적 증후군을 소개한다.
- ▲ (사진출처=새로운 현재, 큰나무, 비채, 와이엠북스, 마담드디키)
Part 1. 다양한 증후군
유래·증상이 명확하지 않지만 질병 증상으로 볼 수 있는 증후군
◇리스트컷증후군
증상 칼 등을 이용해 자신의 손목을 반복적으로 긋는다. 자신의 존재를 무가치하게 느끼거나, 살아 있는지 여부가 의심되거나, 극도의 분노감이 느껴져 참을 수 없을 때마다 손목을 긋는다. 손목의 흐르는 피를 보며 고통을 느끼고, 갈라진 상처 속을 들여다보면서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낀다. 타인의 관심을 끌기 위해 자해하는 것과는 다르다. 정신 질환인 ‘경계성 인격장애’의 수많은 증상 중 하나일 수 있다. 10~30대 여성에게서 많이 볼 수 있다.
유래 및 기원 ‘손목’을 뜻하는 영어 ‘리스트(Wrist)’와 ‘자르다(Cut)’의 의미가 합쳐진 것이다.
원인 어린 시절 부모에게서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했거나, 성장하면서 여러 가지 사건으로 인해 심리적 상처를 받은 경우 자신의 존재 자체에 대해 불안감을 느껴서 이런 증상을 나타낼 수 있다.
◇피노키오증후군
증상 사람이 많은 곳에서 비웃음을 당하거나 비난을 받으면 온몸이 나무 인형처럼 뻣뻣하게 굳는다. 여러 사람이 웃으면 '혹시 나를 조롱하는 게 아닐까' 하고 눈치를 본다. 자신이 재미없거나 친절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오해받을까 봐 걱정한다. 사회공포증의 일종일 수 있다. SBS TV 드라마 〈피노키오〉에서 소개된 '거짓말을 하면 자율신경계 이상으로 딸꾹질을 한다'는 증상과 다르다.
유래 및 기원 슬로베니아 의사 마이클 티제 박사가 환자의 증상을 살핀 뒤 1996년 명명했다. 몸이 굳는 증상이 동화 속 나무 인형인 피노키오와 비슷하다고 해서 이름 붙였을 가능성이 크다
원인 어렸을 때 따돌림을 당한 경험이 있거나, 1~6세 때 부모·친척 등과 유대감을 형성하는 과정을 잘못 배운 경우 생길 수 있다.
- ▲ ‘피노키오증후군’은 사람들에게 조롱당할 때 몸이 나무 인형처럼 뻣뻣하게 굳는 증상을 일컫는 말이다.
- ▲ "과거의 좋았던 떄로 돌아가고 싶어. 슬픈 기억을 아예 지우거나 왜곡해버린다. '무드셀라증후군'이다.
◇무드셀라증후군
증상 아름다운 추억, 기쁘고 좋은 시절만 기억하려고 한다. 이를 위해 좋지 않은 기억은 완전히 지우거나,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방향으로 왜곡해버린다. 항상 자신이 가장 행복했다고 여기는 때, 즐거웠다고 생각되는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60대 이상 노년층에게 잘 생긴다.
유래 및 기원 성경 속 최고령 인물인 ‘므두셀라(Methuselah)’의 이름을 땄다. 왜 이 이름이 붙었는지는 명확히 밝혀진 게 없다.
원인 가족이나 간병인에 의해 보살핌을 받는 경우 잘 생긴다. 지금 자신의 상태가 불만족스럽기 때문에 과거의 좋았던 기억에 의존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의학 교과서에 명명된 의학적 증후군
◇ 카그라증후군
증상 도플갱어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친구, 배우자, 가족 등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뒤바뀌었거나, 겉모습만 똑같이 생긴 다른 사람이라고 믿는다. 20대 남성에게서 잘 생긴다.
유래 및 기원 1923년 프랑스 정신병학자 조제프 카그라 박사가 처음 이런 증상을 보고했다. 카그라 박사의 이름이 붙은 것이다.
원인 주로 조현병이 있을 때 나타날 수 있다. 교통사고 등으로 뇌에서 안면 인식을 담당하는 측두엽 피질이 손상되거나, 치매가 있어도 생길 수 있다. 가족처럼 가까운 사람과 있을 때 뇌에서 분비되는 옥시토신호르몬 등이 제대로 분비되지 않아서 완전히 이질적인 느낌이 들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
◇ 코타르증후군
증상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죽었거나 몸속 혈액·장기 등 신체 일부가 없다고 믿는다. 자기 자신에 대한 절망감, 혐오감이 깊다. 한 논문에 의하면, 코타르증후군을 앓는 어떤 환자는 자신이 죽어서 살이 썩고 있어 냄새가 난다며, 영안실로 옮겨 달라고 호소했다고 한다. 건강염려증과 관련된 망상의 일환일 수 있다. 65세 이상 노년층에서 우울증과 연관돼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유래 및 기원 1882년 정신과 박사 쥘 코타르에 의해 명명됐다. 우리나라에서는 '걷는 시체증후군', '시체증후군'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원인 뇌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 교통사고 등으로 뇌에서 얼굴 인식을 담당하는 '방추형 얼굴 영역'이 망가지면 이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조현병, 우울증 같은 정신 질환이 있어 자신이 싫고 자신을 인정하기 싫을 때도 나타날 수 있다.
◇ 드크레람볼트증후군
증상 자신이 좋아하는 유명인이나, 단지 이름과 얼굴 정도만 알고 있는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이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망상한다. 가상인물과 전화통화하고, 데이트하며, 결혼해서 부부로 산다고까지 착각한다. 만약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는 상대가 다른 사람과 연애하거나 결혼하면, 이 또한 자신을 질투나게 만들기 위한 눈속임이라고 생각한다.
유래 및 기원 1921년 프랑스의 정신병학자인 가에탕 가시앙 드 클레랑보가 처음 명명했다. 한 프랑스 여인이 당시 영국 왕 조지 5세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주장한 데서 연구를 시작했다. 왕은 실제로 이 여성을 알지 못했는데, 여성은 궁궐의 커튼이 펄럭이기만 해도 자신에게 사랑의 신호를 보낸 것으로 착각했다고 한다.
원인 조현병이나 망상 장애와 같은 사고 장애가 있을 때 나타날 수 있다. 뇌의 도파민이 제 기능을 못하거나 정상적으로 분비되지 않아서 생긴 뇌 기능 장애가 원인이 되기도 한다.
사회학적 현상이 크게 반영된 증후군
◇ 아도니스증후군
증상 자신의 외모와 신체가 추하다고 느낀다. 연예인 등의 구릿빛 피부와 소위 '식스팩'이라고 말하는 복근, 가슴근육 등을 선망하고 이를 갖기 위해 애쓴다. 성형수술까지 감행하는 경우도 있다. 남들이 보기에 완벽한 몸매와 얼굴을 지녀도, 자신은 만족하지 못한다. 20~30대 남성에게 잘 생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래 및 기원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소년 이름 '아도니스'에서 유래했다. '아도니스 콤플렉스'라고도 부른다. 기존에 있던 정신과적 질병인 '근육 추형(Muscle Dysmorphia)', '신체 추형 장애(Body Dysmorphic Disorder)'의 일종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원인 다수의 전문가는 사회학적 현상이 반영된 결과라고 말한다. 외모가 도덕심, 경제적 능력, 성격처럼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요소 중 하나로 떠오르고 점차 외모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외모를 치장함으로써 자신의 가치가 높아진 것처럼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아도니스 증후군을 겪는 사람 중 대다수는 자존감이 낮다.
- ▲ 남들이 보기에 완벽한 외모와 몸매를 지녔는데도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추하다고 느낀다면 '아도니스증후군'일 수 있다.
◇파랑새증후군
증상 사회나 직장에 적응·만족하지 못한다. 아직 행복을 못 찾았다고 생각한다. 현재 하는 일에 열정을 느끼지 못하고, 다른 곳이나 미래에 행복이 있을 것이라고 몽상할 뿐이다. 다른 종류의 직업을 찾아다니거나 늘 이직을 고려한다. 직장인에게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래 및 기원 벨기에 극작가 모리스 마테를링크의 작품 〈파랑새〉에서 유래했다. 주인공 어린이들이 파랑새를 찾아서 이리 저리 떠돌지만, 알고 보니 파랑새는 집의 새장에 있었고, 이를 깨달은 주인공이 새장을 열자 파랑새가 날아가 버렸다는 내용이다. 이 작품에서 파랑새는 ‘행복’을 의미한다.
원인 행복을 느낄 틈 없는 불안한 사회 분위기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직장·육아·경제적 부담 등의 스트레스가 끊이지 않기 때문에 현실이 바뀌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막연한 상상을 한다.
◇조간증후군
증상 아침에 일어난 직후부터 무기력하고 몸과 마음이 피곤하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마음이 답답하기만 하다. 여성의 경우, 평소 늘 하던 화장이나 옷차림도 하지 않는다. 초점 없는 눈으로 멍하니 한 곳을 바라보는 일이 잦고, 모든 일에 관심을 잃는다. 30~60대 남성에게 잘 생긴다.
유래 및 기원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습관처럼 조간신문부터 찾던 사람이, 아침의 무기력한 증상 때문에 신문조차 찾지 않게 되는 증상에 비유해 조간증후군이란 이름이 붙었다.
원인 회사에서 해고를 당하거나 매번 면접에 떨어지는 등의 일을 겪어서 자신이 하던, 또는 하는 일에 회의감과 공허함을 크게 느끼면 조간증후군이 생길 위험이 크다.
◇착한사람증후군
증상 타인이 자신을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데만 집중한다. 부탁을 거절하기 어려워하고, 타인이 농담으로 하는 비판에도크게 상처받는다. 자신의 감정을 분명히 표현하는 것을 꺼린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부정적 감정을 마음속에 담아 두기만 하면서 속앓이한다.
유래 및 기원 딱히 알려진 것이 없다. 늘 착한 사람처럼 보이게 행동하므로 증상 자체가 이름이 됐을 수 있다.
원인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 겪을 확률이 크다. 타인에게서 존중과 사랑을 받기 위해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 ▲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 보다는 자신이 타인에게 착한 사람으로 비춰지는 것에만 집중하는 경우가 있다. '착한사람 증후군'이 지속되면 스트레스가 심해져 우울증 등에 걸릴 수 있다.
PART 2. 증후군도 관리·치료가 필요할까
증후군 있다고 무조건 치료하긴 곤란
증후군에 해당된다고 해서 정신 질환이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기는 어렵다. 같은 증상의 증후군이라도 강도의 편차는 개인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일시적으로 약한 강도의 증후군적 증상을 보인 경우가 있는 반면, 정신의학적 질환이 진단될 정도로 증상이 심한 사람도 있다. 예를 들어 리스트컷증후군의 경우 어떤 사람은 일시적 스트레스로 인한 반응일 수 있다. 반면 어떤 이는 ‘내 피 속에 나쁜 벌레가 있으니, 피를 내서 벌레를 빼야 한다’는 망상에 의한 반응일 수 있다.
증후군, 몸속에 잠복해 있는 ‘나쁜 병균’
최근 인터넷 등에서 회자되고 있는 증후군 증상이 만성화되거나 심해지면 정신 질환 등을 야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착한사람증후군인 사람은 처음에는 그저 증후군 증상을 보이는 정도에 그치지만, 이런 태도로 인해 대인관계나 사회생활에서 어려움이 생기면 우울증, 신체형 장애(원인을 찾을 수 없는 신체 증상), 여러 신체 질환(심혈관계·소화기·근골격계 등) 같은 질환과 사회생활 장애가 생길 수 있다. 결국 증후군이 있다는 것은 ‘나쁜 병균’을 몸속에 두고 사는 것일 수 있다. 면역력이 떨어지면 발병해 건강을 해친다.
일단 전문가 상담 받는 게 좋아
자신에게 증후군이 있다고 생각되면 의학적 질환이 생긴 상태는 아닌지 전문가의 상담이나 진료를 받아 보는 것이 좋다. 사전 조치가 취해져야 증후군이 질환 등으로 발전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질병으로 진단될 정도로 심한 경우라면 각 진단에 따른 치료가 필요하다.
정신과 질환이 진단될 정도가 아니라면 증상 악화를 막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스트레스를 관리하고 심신 안정 효과를 내는 명상, 심상유도법, 최면, 심리교육, 요가, 영양요법 등이 필요하다. 증후군 자체에만 초점을 두는 게 아니라 근본 원인인 성격, 과거 부정적인 경험으로 인해 생기는 자신이나 주위 사람에 대한 잘못된 믿음,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행동 패턴 자체를 치료하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인지 치료의 횡진단 접근법, 스키마 치료, ‘EMDR’이라고 알려진 안구 운동이나 촉각 자극을 이용한 기억 재처리 치료이다. 이런 치료는 과거의 심리 치료처럼 몇 년씩 걸리지 않으며 보통 3~4개월 전후로 끝낼 수 있다.
마음 건강 유지해 증후군 예방하는 게 바람직
마음의 문제인 증후군을 예방하려면 결국 평소 마음이 건강해야 한다. 마음 건강을 지키는 법은 개인의 성격 특성에 따라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말할 수 있는 요소는 ‘꾸준한 운동’과 ‘취미갖기’다. 운동 종목이나 취미를 고를 때는 자신의 취향과 행동 패턴을 고려해야 한다. 재미있고 몰입할 수 있는 것을 1주일에 최소 4회 이상, 회당 적어도 30분 이상 지속해야 효과를 볼 수 있다.
- ▲ 김대호
김대호
한양대구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한양대병원에서 수련한 후 캐나다 토론토대학 정신과에서 연구를 이었다.
외상 후 스트레스의 심리 평가와 심리 치료, EMDR(안구 운동 민감 소실 및 재처리 요법)에 관심이 많다. 현재 한양대구리병원에서 트라우마와 스트레스 프로그램'의 디렉터를 맡고 있다.
※ Special Report:증후군 홍수시대
피노키오증후군·무드셀라증후군… ‘증후군’ 홍수시대! 질병일까, 사회 현상일까
Chapter 1. 증후군, 그 정체는 무엇인가
Chapter 2. 증후군 올바로 이해하기
Chapter 3. 다양한 증후군과 치료법
/ 김하윤 기자 khy@chosun.com
사진 조은선 기자
※도움말: 전진용(국립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출처: 새로운 현재, 큰나무, 비채, 와이엠북스, 마담드디키
월간헬스조선 2월호 (92페이지)에 실린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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