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대의 부부가 앞에 앉아 있다. 아내의 위암이 늦게 발견되어 완치가 어렵다는 말을 방금 들었다. 정작 눈물을 흘리면서 이야기를 쏟아내는 사람은 남편이다.
아내는 그동안 정말 고생이 많았어요. 내게 시집와서 좋았던 시간이 고작 오년이나 될까, 여럿 되는 시동생들 뒷바라지 하면서 군소리 한번 없었는데... 사업이 부도가 나니 남편이란 자는 도망 다니고 채무자에게 온갖 시달림을 받아왔어요. 남편 있는 곳 대라고 칼 들고 온 사람도 있었다던데, 내 한 몸 챙기느라 온갖 구질구질한 일을 이 사람에게 떠맡기고 비겁했어요... 병석에 누운 시부모 수발까지... 요새 그런 여자가 어디 있어요? 아파도 내색도 못하고 그래서 이렇게 늦어버린 것 같아요. 이제 빚도 대충 갚고 살만한데, 이사람 호강도 시켜줘야 하는데.... 내가 이 사람한테 못 갚을 큰 빚을 졌어요.
또 다른 오십대의 부부. 남편의 병은 알콜성 간경변과 간암이다. 남편은 명문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굴지의 대기업에 특채로 입사한 엘리트였다. 소개로 결혼한 미모의 아내와 초고속 승진... 성공으로 질주하는 그의 삶에 브레이크란 없는 것 같았다.
외국 바이어를 접대하고 차를 몰고 귀가하던 길이었다. 잠시 졸았다 싶었는데 사람을 치었다. 술을 마셨기에 걸리면 음주운전으로 큰일이다 싶어 황급히 도주했다. 늦은 밤이고 누가 보랴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과실 치사에 뺑소니라는 오명까지 붙어 그의 이력에 처음으로 전과가 붙었다. 합의하여 옥살이까지는 피했는데 회사의 명예를 실추시켰다고 퇴직을 종용받았다. 자기보다 못한 놈들이 설치는 세상, 그 세상에서 소외되어 버린 자신이 용납되지 않았다. 맨 정신으로 세상을 마주할 수 없어서 날마다 술을 마셨다. 그러기를 1년, 2년... 몸에 이상이 왔다. 알콜성 간경변도 충격인데 간암이라니! 그는 한없이 절망하였다.
우리 주변에서 드물지 않게 접하는 상황들이다. 그래도 이 두 부부는 끝까지 부부의 끈을 놓지 않은 다행스러운 경우이다. 비록 절망의 순간이라 할지라도 인생에서 가장 험난한 길을 동행하는 벗이 있지 않은가. 배우자간의 불신으로 인하여 사실상 홀로 남겨진 이들은 암 진단후 투병의 고된 여정을 외롭게 시작한다.
도대체 암은 어떻게 생기는 걸까. 이를 답변하느라고 학문적으로 엄청난 연구가 진행되어 왔고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단순하게 이야기 하자면 우리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적 요인과 우리 주변의 환경적 요인, 이 두 가지의 상호 작용으로 인하여 암이 발생하게 된다.
담배는 폐암의 원인인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골수까지 골초이면서도 폐암에 걸리지 않는 이들을 보게 되는데 이런 경우는 강력한 발암 요인에 장기간 노출되었어도 유전적으로 암 발생 억제력이 높은 경우이다. 이런 사람 한 둘이 있으면 자신은 어떨지 몰라도 주변에 폐해가 크다. 저 사람 보니까 괜찮던데 하면서 따라 하기 십상이다. 물론 그들은 거의 대부분 만성 폐질환에 시달리면서 노년을 보내게 된다. 반면 다른 원인은 없는데 오랜 기간 배우자의 흡연으로 인한 간접흡연에 노출되었던 여성이 폐암으로 진단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부모의 흡연에 노출되는 어린 자녀도 마찬가지이다. 발암 요인에 대한 노출량은 많지 않아도 암에 걸리는, 취약한 계층이 있는 것이다.
실험적으로 이는 증명된 바가 있다. 골초이면서 폐암에 걸리지 않은 노령인, 비흡연자이면서 폐암에 걸린 청년 등 여러 계층을 대상으로 이들의 유전적 취약성을 비교한 연구이다. 세포핵 내 유전 물질은 세포가 분열하기에 앞서서 염색체라는 형태를 취하게 되는데 블레오마이신이라는 약물을 주면 염색체가 절단된다. 연구 참여 대상의 혈액에서 임파구만을 골라내서 약물을 주고 보니 대상마다 염색체 절단이 수적으로 차이가 크게 나타났다. 물론 비흡연자인 젊은 폐암 환자에서 절단 수가 훨씬 더 많았던 것이다. 이 연구는 일반 인구 집단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서 암을 일으킬 수 있는 요인에 대하여 다양한 감수성을 보인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한편 극단적으로 발암물질에 민감한 집단이 있는데 대부분 유전자가 관련되어 있는 유전 질환이다.
1985년 영화 위트니스(Witness)를 보신 분이 있는지. 존 북 형사로 분한 해리슨 포드는 살인범을 유일하게 목격한 한 소년을 찾아 미국 펜실베니아주의 한 아미쉬 마을로 들어가게 된다. 영화 전면에 흐르는 팽팽한 긴장감과 함께 형사와 한 젊은 미망인과의 애틋한 사랑까지 곁들인 수작이었다. 영화로 인하여 생생하게 대면하게 된 아미쉬 마을(또는 공동체)는 미국판 청학동(?)이라면 더 이해하기 쉬울 듯하다. 17세기 유럽에서 종교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이주한 종교 공동체인데 현대 문명을 거부하고 지금까지도 농사와 수공업으로 살아가고 있다. 공동체 안에서만 결혼을 하는 풍습 때문에 ATM이라는 열성 유전자의 돌연 변이가 이 집단에서 꽤 높은 빈도로 나타나게 되는데 이들은 방사선에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예를 들어 유방암을 조기 진단하기 위하여 유방 촬영을 몇 번 반복하는 것만으로도 오히려 유방암을 촉진할 수도 있다는 보고가 있다.
일전에 라면 스프에서 벤조피렌이 검출되어 떠들썩했던 때가 기억나시는지. 불과 1년도 안되었는데 이제는 신경도 안 쓴다. 하지만 그 당시 우리는 많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벤조피렌이라는 발암 물질이 우리의 일상생활에 얼마나 흔하게, 과량으로 있는지를. 직화법으로 구워 먹는 고기에, 심지어는 기름을 짜내기 전에 볶는 참깨에도 이 발암 물질은 다량 존재한다. 어디 이뿐인가. 아무리 슬로우 푸드가 좋다고 해도 이 바쁜 세상에 가공 식품을 안 먹을 수가 없다. 가공 식품에는 예외 없이 보존제, 착색/착향제, 기타 여러 가지 화합물들이 들어 있다. 각 식품마다 허용 기준이 있지만 많은 량을 지속적으로 먹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주거 환경은 어떤가. 건축자재에서는 라돈을 비롯한 발암물질이 나온다. 자동차를 거부하지 않는 한 미세 먼지와 배기가스로 인한 화학 물질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 환기 대신에 화학물질이 뿜어 나오는 방향제가 실내 어디에나 있다. 입는 옷은 어떤가. 염색하지 않은 천연 섬유를 입지 않는 한 화학 염료에 물들인 의복을 일생 멀리하기 어렵다. 멋 좀내는 사람이라면 얼굴과 몸, 그리고 머리에 얼마나 많은 화학물질을 바르고 뿌리는지 생각해 보라. 우리의 삶은 환경적 요인으로 볼 때 암 발생에 매우 유리해 보인다.
우리 몸에는 외부로부터 신체를 방어하는 시스템이 매우 정교하게 조직되어 있다. 면역이라는 시스템이다. 다른 질병으로 사망한 사람들의 부검 결과를 보면 혈액내에 암세포가 존재하는 것이 많이 발견된다. 대개의 암세포는 면역시스템에 의하여 청소가 되는데 어떤 이유든지 면역시스템이 약화가 되면 암세포가 빠른 속도로 그 숫자를 불려나가게 되며 결국 확연한 암 발생으로 이어진다. 암표지자나 영상 촬영으로 암을 진단하는 현재의 의학기술로는 크기가 직경 1 cm는 되어야 암을 의심하게 되는데 이정도 크기라면 이미 암세포의 숫자는 10억개에 이르는 수준이다. 첫 번째 부부의 아내처럼 지속적인 스트레스가 방치되면 암 발생이 촉진된다는 것이 밝혀졌다. 한국인에 많은 이른바 화병이라는 심리적 질병도 많은 경우 신체적 질병으로 발전하는데 암도 그 중 하나이다. 두 번째 부부의 남편이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면역시스템을 강건하게 해서 웬만한 초기 병변을 해결하는 것이다. 암이 진단되어서 본격적으로 약물이나 방사선으로 항암 치료를 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어떻게 하면 면역 시스템이 강건해 질까. 영양의 섭취를 잘하고, 질 좋은 숙면을 취하는 것은 기본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 정서적인 안정, 사랑을 나눌 수 있는 대상, 가족이나 주변사람에 대한 감사와 신뢰의 마음이 필요하다. 아이 때처럼 웃고 기뻐하는 순간을 억지로라도 더 많이 갖고, 신앙적인 의지도 중요하다. '문제 해결의 열쇠는 내안에 있다'라는 격언이 다시금 새롭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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