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오다의원의 역사
► 고오다 미쓰오(甲田光雄, 1924~2008) 박사
오사카대학 의학부 졸업. 고오다의원 원장
일본 종합의학회 회장 역임
중학 때부터 병약하여 자주 휴학하게 되어 현대의학에 절망한 나머지 니시건강법과 단식요법, 각종 민간요법 등 자연의학을 실천 연구하여 이것들을 응용한 유니크한 자연의학으로 수많은 난치, 불치병 환자를 완치로 이끈바 있고 또한 많은 치험례를 올려 세계적으로 존경받고 있다.
고오다요법은 소식(小食)이 기본으로, 고오다의학으로 통칭되고 있다.
고오다요법은 노벨상에 필적한다.
생채식의 세계적인 권위자이자 세계 1인자로, 난치병과 희귀병 치유의 명의이다.
식의(食醫), 오라(aura) 진찰, 신의(神醫)로 추앙 받고 있다.
약물의사가 대부분인 현대에 식의(食醫)는 매우 드문 존재다.
1975년(51세)부터 저녁만 먹는 1일 1식주의자가 되었다.
이때 먹는 것은 현미 5작의 밥, 생채소 200g, 삶은 채소 200g, 두부 200g이다.
1982년(58세)부터 현미밥은 현미가루로 바뀌고, 그 밖에는 전과 동일하다.
► 미도리가오까(錄ケ丘) 시절
1950년 이꼬마(生駒) 靜養院에서 처음으로 11일간 단식
이때 처음으로 니시건강법(西式健康法)과 만남. 조식을 뺀 1일 2식의 생활
건강법을 터득하고 왜 병이 걸렸나 하는 것과 병이 낫는다는 것을 자각(自覺)
니시건강법으로 자신이 건강을 되찾음과 함께 난치의 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구원하려는 큰 꿈을 가지게 됨
1955년 개업
이 무렵은 현대의학적 치료 중심(1960, 1961년경까지)
이때 현미크림 고안
1960년 서서히 현대의학적 치료를 하면서 냉온욕, 생채소 이상즙(泥狀汁), 감잎차 등을 채택하기 시작
그러나 가짜 의사라고 하여 보건소에서 조사하러 나오는 일까지 있었음
① 당시의 회고(조례강의에서)
그 무렵은 집사람이 甲田醫院을 개설하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집사람이 진찰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의국을 그만두고 있었기 때문에 아내를 도우고 있었다.
또 대학에 돌아가 연구생활에 들어갈까도 생각했지만 집사람을 도우고 있으면서 환자들이 내가 하는 말을 듣고 병이 잘 낫는 것이었다.
그래서「甲田선생, 甲田선생」하고 환자들이 나를 따르게 되어 서서히 내가 진찰하게 되었다.
그러나 최초에는 현대의학적인 진찰로 주사도 놓고 약도 먹이고 현대의학의 그러한 장점도 전부 처방했다.
왜 그랬냐하면 이상한 놈이라고 생각당하면 환자가 오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 될 수 있는 한 이상한 소리를 하지 말라고 언제나 집사람이 말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생수! 생수를 더 많이 드세요, 냉온욕을 하세요” 등 그런 짓을 하고 있는 사이에 이상한 소문이 나돌게 되었다.
“저 고오다의원(甲田醫院)의 사모님은 의사의 면허가 있어도 주인은 면허가 없다더라!”
또 이번에는 大阪府에도 투서가 들어가고 “이상한 짓을 하는 의사가 있다. 저것은 가짜 돌파리야!” 등등의 소문도 났다.
② 절구에 나무공이로 녹즙을
1950년에 내가 이꼬마야마(生駒山)에서 단식을 했는데 거기에서 돌아와서 생채식이라는 것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믹서나 주스기도 없었다.
그 무렵은 전부가 다 절구에다 공이로 짓이겨야 했다.
그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온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제일 큰 절구를 사와서 떡갈나무로 손수 공이를 만들었다.
그것은 너무 많이 먹었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으면 감당을 못했기 때문이다.
조그마한 절구로는 어림도 없기 때문이다.
이것을 1950년부터 계속하여 5년간 계속했다.
5년 뒤 집사람이 믹서를 사다 주었다.
내쇼날제로 그때 마침 나온 것을 사다 준 것이다.
그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5년 동안 절구로 공이로 짓이겨 보라!
1950년경에는 내가 녹즙을 만들고 있어도 집안사람들은 모두 반대였다.
니시식(西式) 대 반대였다. 아무도 같이 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 따위 짓을 하니까 병이 낫지 않는 거야!”
어머니는 하루라도 빨리 니시식(西式)인가를 그만 두었으면 하고 바라면서 절대로 거들어 주지 않았다.
나는 손수 채소를 씻어서 이렇게 저렇게 찧고 있었다.
밤낮으로 5년간을 계속했다. 그렇기 때문에 공이를 3개나 갈았다.
지금 생각하면 나로서도 어이가 없었다. 5년간을 이런 짓을 했으니….
이런 짓은 약간 돈 사람이 아니고는 할 수 없다.
그런데 집사람이 믹서를 사다주지 않겠어.
믹서에 이파리를 넣어 스위치를 트니 즙이 되는 것이었다.
“아아! 참으로 편리한 것이 생겼군!” 하고 감동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
냉온욕만 해도 그렇지. 집에는 냉탕이 없으니 물통에 우물물을 길러야 했다.
펌프도 없으니까 두레박으로 샘물을 길러야 했었다.
물통 속에 들어갔다 다음에는 온탕에 들어가고, 온탕에서 또 물통에 들어가고, 이 짓을 5년간 했다.
5년 동안 두레박으로 우물물을 길러 보라.
그것이 여기에 오고는 냉탕이 준비돼 있다. 조금만 틀면 간단히 준비가 된다.
이것은 참으로 극락이다.
여러분도 두레박에 물통으로 한 번 해보라.
그러나 차차 익숙해지면 의외로 물통도 기분이 좋은 거야!
해본 사람이 아니면 모르지. 여기 와서는 참으로 극락이었다.
► 단식요법 확립기(투병시대)
1964년 생채식의 양이 많았던 것이 원인이 되어 대장에 궤양이 생겨 쓰러지다.
1개월간 히로시마(廣島)의 土本醫院에 입원 양생
이때 생채식의 양에 대하여 교훈을 얻다.
이상즙(泥狀汁)으로부터 녹즙(搾汁)이 나오다.
삼영비소(森永砒素) 밀크 후유증에 대한 단식요법의 효과에 대하여 학회 발표
이것을 기회로 朝日, 讀賣, 每日, NHK, 해외 등에서도 문의가 있고 甲田醫院이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때부터 니시건강법을 정면으로 내어 건 진찰을 시작했다.
1969년 맹장이 악화
23일간의 본단식과 그 뒤의 양생으로 회복, 오랜 담낭염도 전쾌
1970년 단식 체험기를 자비로 출판
150일간에 걸친 음수 실험하여 물과 소금의 관계 등을 실학으로 배우다.
염분을 전혀 섭취하지 않는 생수단식 후에 소금을 1일 1g, 3g … 으로 매일 늘려가 염분의 과부족과 건강과의 관계를 관찰
마찬가지로 물도 그 양과 건강과의 관계를 자신의 몸으로 실험
이 시기에 염분과 수분의 양과 변통의 관계 등을 잘 알게 되고 뒤의 장국단식의 발명에도 연결되어 갔다.
① 맑은 장국단식의 고안
생수단식은 최고로 잘 듣고 치료효과에 있어서도 위력이 있지만 반대로 식욕에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아 실패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또 지방뿐만 아니라 근육이 여위게 되고 체액도 강산성으로 되기 때문에 소모가 극심하여 견디기 힘들게 된다.
이러한 결점을 커브 하는 방법으로 장국단식이 발명되었다.
냉온욕 중에 영감이 떠올랐다.
② 체질개선의 理法을 알게 됨
「음양조화론」의 사쿠라자와식(櫻澤式) 이론에서「음양갈등과 조화」의 통일이론 탄생
음성체질에는 양성의 것을 주고 양성체질에는 음성의 것을 주는 종래의 음양조화 이론에 음에는 음을 준다고 하는 음양갈등에 의하여 체질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음양갈등론을 보태어 난치병 근치의 통일 이론을 확립했다.
③ 처음에는 집안사람도 녹즙에 대하여 비판
생소채도 많이 먹으면 창자에 구멍이 뚫려버린다.
참으로 얼토당토 안한 짓을 했구나 하고 후회했다.
생채소라면 많이 먹을수록 좋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때까지는 쭉 이상즙을 먹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상즙을 먹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찌꺼기를 버리고 짜서 먹기 시작하게 되었다.
녹즙이 이때부터 나오게 된 셈이다.
그런데 녹즙을 권하면 니시식(西式)이 아니라고 맹렬히 많은 사람들의 비판이 나오게 되었다.
“고오다 선생은 환자들에게 이상즙이 아닌 녹즙을 권하고 있다. 저것은 니시식(西式)이 아닌 엉터리다. 니시 선생은 절대로 즙만 마시면 안 된다고 하셨다”고 하면서
그 전까지는 쭉 이상즙만 먹어 왔다.
체질에 따라서 이상즙은 강해서 먹을 수 없다.
그래서 찌꺼기를 버리고 녹즙만을 먹어 볼까 그랬더니 아무 일이 없었다.
니시식(西式)을 하는 사람들은 여기에 대하여 반발이 심했다.
엔도녹즙(遠藤綠汁)이라든가 人間醫學社의 오오우라(大浦)선생이 권하고 있는 녹즙에 대하여 니시 선생은 대단히 공격하셨다.
“그런 녹즙을 먹이다니! 잘못 되어도 이만저만이 아니야” 이런 식으로 니시 선생은 遠藤 선생이 하는 짓을 맹렬히 비판하고 계셨다.
그래서 나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역시 이상즙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해 온 것이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서는 녹즙을 먹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환자들이 기뻐하고 도움을 받게 된다면 상관없다! 그런 생각으로 지금까지 해오고 있다.
④ 현미크림식이 생기기까지
내가 1950년경부터 단식을 몇 번이나 하게 되었는데 할 때마다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만 했다.
단식은 좋지만 그 뒤에 무턱대고 먹게 되어 위를 심하게 상하게 되어 12지궤양이 되었다.
그 때문에 명치 언저리가 쓰리고 아파 고생을 하게 되었다.
어떻게든 이것을 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라이스카레를 먹으면 안 되는데 나는 라이스카레를 대단히 좋아했다.
그래서 집사람에게 어느 때 “한번 매운 라이스카레를 먹어 보았으면” 하고 말했다.
그래서 만들어 준 것은 좋았는데 그 뒤에 심하게 가슴이 쓰리지 않겠나!
나는 화가 나서 집사람에게 “이런 것을 만들어 주다니” 하고 화를 냈더니 "당신이 먹고 싶다고 했잖았어요" 하고 또 싸움이었다.
그래서 여러 가지로 궁리를 하게 되었다.
백미를 먹으면 속이 쓰리고 그렇다고 현미를 먹으면 이번에는 위가 아파 오곤 하였다.
역시 병자에게는 병자에게 맞는 식사가 있다.
日蓮上人이 말하기를 "병중이 아니고는 正法을 얻을 수 없다"고 했다.
이것은 참으로 명언이다. 병자에게는 병자에게 맞는 식사가 있어야 한다.
이것은 영양이 있다고 해서 병자에게 그대로 먹인다는 것은 절대로 안 된다.
그것은 병을 앓아보지 않으면 모른다. 건강한 사람은 모르는 일이다.
내가 廣島에 갔을 때 廣島縣生活協會의 宮本씨가 병문안을 왔다.
土本의 병원에서 1개월 요양한 때이다.
그때의 참깨 페이스트의 이야긴데 "이 참깨 페이스트를 많이 드십시오! 영양 만점입니다"
그래서 먹었더니 속이 쓰려오기 시작하는데…
아이쿠! 이런 것을 위궤양이나 12지장궤양에 먹여서는 큰 일 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소금도 그렇지만 염분을 취하는데 여러분은 된장국이나 간장을 사용하는데 생간장을 먹으면 가슴이 쓰리다. 된장국도 나쁘다.
그러면 무엇이 좋으냐 하면 소금이다. 소금을 먹으면 속이 쓰리지 않는다.
다음은 밥도 그렇다. 밥과 죽은 어느 쪽이 좋을까.
속이 쓰리는 데는 죽이 낫다.
밥을 잘 씹어 먹으면 되지 않느냐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으니 문제다. 역시 밥을 먹으면 속이 쓰리게 된다.
죽은 그런 일이 없다. 이렇게 하나하나 실험해 본 것이다.
그래서 마침내 현미를 크림 상태로 하면 속도 쓰리지 않고 위통도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그래서 현미크림이 생긴 것이다.
위가 나쁜 사람은 현미크림식이면 절대로 틀림이 없는 것이다.
► 저작활동시대
1971년「현대의학의 맹점을 찌른다」출판
현재도 니시 고오다요법(西式甲田療法)의 바이블이 되어 있는 명저
이때부터 근본적인 치료 방침으로 일관하고 있다.
1972년「백설탕의 해는 무섭다」출판
1974년「단식요법의 과학」출판
고오다(甲田)커브 발견
생식에 소금과 현미가루를 가하여 생식에서 생채식의 탄생
1977년「건강한 어린이를 키우는 모임」주최
① 5부죽(五分粥) 개발에 심혈을 기울이다.
과식하면 장의 활동이 멈춘다.
내가 단식을 하고 알게 된 것은 단식을 하면 변이 쑥 빠지고 두통 같은 것도 거짓말 같이 없어진다.
그러나 단식을 마치고 과식을 하게 되면 또 두통이 시작된다.
단식을 하고도 과식을 하게 되면 또 숙변이 고이게 되니까 숙변을 고이지 않게 하려면 소식을 지켜야 한다.
내가 단식보다도 소식에 중점을 두는 것은 그 때문이다.
나는 단식을 하고 나서 어느 정도 먹어야 하나를 알고 싶었다.
단식을 하고 3부죽, 5부죽일 때는 많은 변이 쑥쑥 잘 나오는 것이다.
그렇게 적게 먹고 있는데도 변이 많이 잘 나오는 것이다.
어째서 이렇게 많은 변이 나올까?
그런데 밥으로 바꾸면 그렇게 많이 먹는데도 나오는 변이 적은 것이다.
조금 먹으면 많이 나오는데 많이 먹으면 변통이 나빠진다.
역시 그것은 먹은 것이 정체하기 때문이다.
숙변이 또 고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또 단식을 하면 말끔히 그러한 현상은 없어진다.
그것은 아무리 단식을 해도 그 뒤에 과식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사람이 5년이나 10년 이렇게 오랫동안 과식을 하고 있으면 창자가 늘어지고 부풀게 된다.
이 늘어나고 부푼 것을 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5년, 10년, 단식을 되풀이 하면 차차 늘어지고 부풀은 창자가 축소하여 게실 같은 것도 없어지고 정상적인 대장의 형태가 된다.
이러한 사정으로 5부죽이 나오게 된 것이다.
이 식사면 숙변도 빠지고 병도 낫는다.
그리고 이 5부죽으로 영양실조도 되지 않는다.
이 선을 어디에서 정하는가가 문제다. 여기에 나는 굉장히 고심했다.
5부죽이라고 하면 “뭐야! 이런 거야!” 라고 생각하겠지만 내가 여기까지 오기에는 상당히 고생했다.
양을 어느 정도 먹느냐?
현미가 좋다고는 알고 있지만 어느 정도 먹어야 좋은가?
이것을 굉장히 알고 싶었다.
그러려면 양을 대단히 엄밀하게 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크림 60g이야”, “거기는 70g이야!”, “당신은 100g이야!” 등
그때 사람마다 그 몸에 맞게 양을 정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무리 현미가 좋다고 해도 양의 문제는 가르쳐 주지 않는다.
그래서 자연히 많이 먹기 마련이다.
현미도 많이 먹으면 숙변이 찬다.
아토피성 피부염도 약을 그만두면 또 나타난다.
그것은 식사의 양을 모르기 때문이다.
이 식사의 양을 아는 사람이 병을 고치는 도사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것을 모른다.
자기 스스로 양생을 하고 있지 않으니까 알 수가 없다.
다만 책만 읽고 “현미가 좋다. 현미를 먹어. 채소가 좋다. 채소를 먹어!” 한다.
먹는 양을 모르고 어찌하여 병을 정확하게 고칠 수 있을 것인가!
► 생채식의 완성
① 소금과 현미가루를 가한 생채식
사쿠라자와식(櫻澤式)의 식양을 하는 분도 생채식에 소금을 넣어야 하는 문제가 있다.
생채소에 소금을 넣어서는 안 되는 거야! 이것이 니시식(西式)의 생각이다.
그런데 나는 한 번 소금을 사용해 보려고 시험했다.
나도 처음에는 생채소만을 먹는 생식을 하고 환자들에게 지도도 했다.
물론 현미가루도 먹지 않고 소금도 먹지 않는 니시식(西式) 본래의 생식이었다.
소금을 3개월 동안 먹지 않으니 체중이 엄청나게 줄고 완전히 그로기 상태가 되어 버렸다.
비틀거려 걸음도 제대로 못 걷는다.
그래서 “어떻게든 모든 사람이 편하게 그리고 적당히 병도 잘 낫는 그런 방법은 없을까?” 하고 고심 끝에 나온 것이 지금의 생채식이 된 계기인 것이다.
그때까지는 단식요법만 하고 있었는데 단식요법만으로는 아무래도 벽에 부딪치는 경우가 많았다.
암 같은 것도 단식으로 완전히 호전되어 가지만 그 뒤의 식양생에서 실패하면 재발하는 것이다.
단식은 좋으나 그 뒤의 음식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는 것을 통감하게 되었다.
단식이 만병을 고치는 비법이고 생채식도 만병을 고치는 비법
이 두 가지를 연결하면 어쩌면 가장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단식을 한 뒤에 생채식을 쭉 계속하게 하면 어떨까?
이것을 1년, 2년, 3년이나 계속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것이 나로서의 큰 과제였다.
또 하나는 백납병(白蠟病, 白癜瘋)이었다.
백납병은 여간 난치의 병이 아니고, 2주간의 단식으로도 끄떡도 하지 않는다.
절식연구회에 가서 여러 사람에게 물어본다.
“백납병 환자 어떠냐? 낫느냐?” “아냐!” “당신 병원에서는?” “안 돼!”
백납병은 단식을 해도 안 되고, 그렇다면 단식 뒤에 생채식을 시키면 어떨까?
그랬더니 깨끗이 낫는 것이 아닌가! 그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생야채식을 장기간 계속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데 니시식(西式)의 생식이라는 것은 현미도 사용하지 않는다. 소금도 사용하지 않는다.
모두가 다 그로기가 되어 버린다.
그래서 누가 뭐라고 하든 “현미가루도 사용해 보자, 소금도 사용해 보자” 하면서 내 자신이 그런 생채식을 시작해 보았다.
이것이 1974년 3월 1일부터이다.
그때의 체중이 57kg이였다. 57kg에서 쭉 계속해서 점점 체중이 줄게 된다.
생채소 1kg, 현미 1홉. 이것이 1일분으로 900kcal
그래서 체중이 계속 줄어 5개월이 지나 46kg이 되었다.
그리고 1개월 뒤에는 45kg까지 내려갔다.
모두가 “이제 그만 하는 게 좋겠다!” 고 했지만 나는 1960년 때를 상기했다.
1960년에는 1년간 쭉 생채식을 해서 체중이 65kg에서 37.5kg까지 줄었다.
그때는 나도 이제는 마침내 죽게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체중은 37.5kg인데다 계단도 오를 수 없었으니까.
계단을 오르는데 잡아 당겨 올라가야 했다.
그리고 바지를 입는 것도 서서는 불가능했다. 일단 앉아서 바지를 입는 것이다.
그런 상태가 되어 버렸고 얼굴도 정말로 누가 봐도 죽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상태였다.
야오시(八尾市)에 6명의 의사뿐인 친한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 친구들도 다 이제는 죽을 수밖에 없는 것으로 소문이 나 있었다.
“고오다 군이 죽으면 장사는 어떻게 한다? 그 사람 니시건강법을 하고 있으니까 그 쪽 西會에서 장례식을 하느냐 八尾醫師會에서 해야 하나?” 하는 이야기가 오갔다.
나는 몰랐지만 그런 상태로까지 되어 있어서 한 번 이 시점에서 양생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히로시마(廣島)에 양생하러 갔다.
그때부터 나도 생채식의 방법을 개선해 간 셈이다.
생채식이라는 것은 그런 극단적인 짓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좋은 것은 많이 먹어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잘못이었다.
소식(小食)이라는 것이 여기서 비로소 나오게 된 것이다.
② 고오다(甲田)커브의 발견에 감동
1974년 3월 1일부터 쭉 생채식을 하여 10개월간 45kg까지 체중이 내려갔다.
최초의 6개월로 45kg까지 되었다.
그로부터 3개월 또 그대로 체중유지. 그 뒤 10개월 정도부터 이번에는 체중이 늘기 시작했다.
나는 이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최초에는 영양실조로 붓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즉 영양실조로 단백질이 줄게 되는 셈이다. 그리하여 저단백이 되면 붓는 것이다.
그래서 체중이 느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혈액검사를 해 보았더니 저단백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정말로 살이 붙은 것이구나. 그러나 지금의 900kcal로는 그렇게 살이 찔 리가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현대 영양학이라는 것이 머릿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1950년경 내가 조식폐지를 하니까 체중이 줄었다.
이것은 역시 안 되겠구나! 2500kcal를 먹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또 먹는다.
아침을 다시 먹으면 체중은 돌아오는데 건강상태는 좋지 않았다.
아침을 먹지 않을 때가 체중은 줄지만 건강상태는 좋았다.
그러나 조식폐지를 하면 영양실조가 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있으니까 또 먹는다.
그러면 체중은 늘지만 건강상태는 나빠진다.
그러면 한 번 더 해볼까. 이렇게 5~6번 되풀이 했다.
최후에는 마침내 아침을 폐지해 버렸다.
해보니까 체중이 본래대로 돌아온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까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다.
이것이 다 실학이라는 것이다.
생채식으로도 체중이 46kg이 되고, 47kg이 되고, 48kg이 되고, 49kg이 되고, 점점 늘게 된다.
1974년 3월부터 시작하여 그 해 꼬박 계속하고 다음 해의 12월 31일까지 1년하고도 10개월간이나 했다.
더 계속했으면 좋았을 것인데 잘못 유혹에 못 이겨 그믐날 밤에 무심코 먹어 버렸다.
그것을 계기로 “또 하면 되지 않느냐” 하고 모두가 말하기 때문에 그 뒤로 쭉 먹기 시작하기는 했지만…
그때의 1년 6개월의 체험에서 이 생채식이라는 것은 체중이 불어온다는 것을 안 것이다.
이것은 고오다(甲田)커브라고 다들 이름을 붙이고 말하지만 그것은 현대 영양학으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실제로 봤을 때에 벌벌 떨리는 감동을 느꼈다.
이것을 새로운 영양학이라고 내 평생을 걸어 연구해 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오사까(大阪) 대학의 동창회에 가서 이야기를 하면 “아아! 그건 자네는 특이체질이기 때문이야!” 하면서 아무도 상대를 해 주지 않았다.
그래서 환자들에게도 한 번 시켜 봐야겠다. 그래서 쭉 시켜보니 역시 고오다(甲田)커브가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난치병도 다 낫게 되는 것이 아닌가.
교원병은 물론 백납병도 낫고, 암도 점차 호전되고, 중증의 근무력증도 낫고, 모든 난치병이 속속 좋아지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여 치험례가 하나하나 늘어나게 된 것이다.
► 국내에 번역된 고오다 미쓰오 박사의 저서
* 간장병치료의 비결(배성권 옮김/ 홍익재)
* 경이의 초소식요법(박영일 전홍준 옮김/ 정신세계사)
* 냉증은 생야채로 낫는다(김기준 옮김/ 형설출판사)
* 노년을 생각하는 지혜(김대원 옮김/ 한국자연건강회)
* 녹즙소식요법(배성권 옮김/ 홍익재)
* 단식건강법(박상호 옮김/ 한국자연건강회)
* 단식소식건강법(김기준 옮김/ 홍익재)
* 단식요법의 과학(배성권 옮김/ 미래지식)
* 당신의 소식이 세계를 구한다(김흥국 옮김/ 한국자연건강회)
* 등뼈의 만곡은 만병의 원인(김기준 옮김/ 홍익재)
* 마이너스 영양학(김기준 옮김/ 홍익재)
* 비만은 성인병의 시작(김기준 옮김/ 형설출판사)
* 생녹즙건강법(배성권 옮김/ 태웅출판사)
* 생채식건강법(배성권 옮김/ 홍익재)
* 소식예찬(김흥국 옮김/ 태훈산업)
* 신장병치료의 비결(배성권 옮김/ 홍익재)
* 신판 생채식건강법(배성권 옮김/ 한국자연건강회)
* 심신증치료의 비결(김기준 옮김/ 동남기획)
* 아토피는 반드시 낫는다(김흥국 옮김/ 한국예술사)
* 아토피알레르기(김기준 옮김/ 홍익재)
* 암 예방의 길(김기준 옮김/ 홍익재)
* 자연출산법(김기준 옮김, 홍익재)
* 장 비워야 오래 산다(김윤희 엮음/ 이지북)
* 쾌변으로 오래 사는 법(김소윤 옮김/ 동도원)
* 피할 수 없는 현대병(김기준 옮김/ 빛남)
* 해로운 백설탕 알고 먹읍시다(배성권 옮김/ 태웅출판사)
* 현대병의 예방과 자연치료(김종기 한학륜 옮김/ 도서출판진우)
► 甲田醫院 주소
日本國 大阪府 八尾市 櫻ケ丘 2-228(近鐵 八尾驛 東500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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