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에게 수혈(輸血)을 하겠다고 하면 의사 100명이면 100명 모두 펄쩍 뛰며 수혈을 거부할 것입니다. 수혈을 많이 하면 감염 및 폐손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고 암 환자의 경우 생존율이 떨어집니다."
지난 8~9일 제주도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 수혈 및 헌혈에 대한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는 도발적인 발언(?)이 쏟아졌다. 김영우 국립암센터 위암연구과 과장(위암센터장)은 "오랫동안 저장된 혈액을 수혈하게 되면 암 진행을 촉진하고 수혈받는 사람의 생존율이 떨어진다"며 "수혈은 면역거부 반응, 알레르기, 폐손상, 간염(HIV, HBV, HCV), CJD(광우병) 등과 같은 질환에 감염될 수 있고 무엇보다 엄청난 의료비용을 증가시킨다"고 말했다.
김영우 과장은 헌혈로부터 얻은 혈액이 저비용이라고 생각하지만 혈액 한 단위를 얻는 데 드는 노력과 검사비용, 감염 등과 같은 부작용을 고려한다면 결코 낮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헌혈을 장려하는 것보다 호주처럼 혈액관리시스템을 도입해 폐기율을 낮춰야 한다"고 덧붙였다. 의사마다 수혈기준이 다르고 폐기되는 혈액이 많아지자 미국, 유럽 등 선진국 병원들도 혈액관리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현재 국내는 혈액이 부족해 필요량의 3분의 1을 중국, 동남아 등에서 수입하고 있다. 현재 혈액 가격은 파인트(pintㆍ400㏄)당 469달러(360유로)에 달한다.
몸무게가 60㎏쯤 되는 성인의 경우 피의 양은 약 5ℓ다. 무게로 치면 체중의 약 8%에 해당한다. 혈액량이 줄어들면 혈압이 떨어지고 산소와 영양분이 공급되지 못해 생명의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피(혈액)에는 우리 몸의 건강정보가 숨어 있다. 건강검진 때 가장 먼저 피를 뽑는 이유도 혈액에 가장 기초적인 질환정보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피에는 당뇨, 콜레스테롤, 간질환을 비롯해 간암(α-FP), 대장암(CEA), 췌장암(CA 19-9), 전립선암(PSA), 난소암(CA 125), 폐암(CYFRA 21) 등을 어느 정도 판별할 수 있다.
피는 우리 몸 곳곳에 거미줄처럼 뻗어 있는 혈관을 통해 60조개나 되는 세포에 영양을 공급한다. 그러나 혈액이 오염되고 더러워지면 각종 질환에 시달리게 된다. 탁해진 피의 흐름이 약해져 혈관 내 지방이 혈관벽에 쌓이면 동맥경화가 되고 이는 뇌ㆍ심혈관 질환으로 악화된다.
혈액은 잘못된 식ㆍ생활습관 이외에 수혈으로도 오염된다. 수혈은 급성출혈로 혈액량 감소, 수술 전후 출혈, 빈혈치료를 위해 사용되고 있지만 감염문제와 혈액수급 불균형으로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수혈은 이제 의학적으로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 최근 외과적 치료에서 무수혈 치료를 사용하는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 무수혈 치료는 외과치료를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출혈을 최소화해 수혈을 피하는 치료법이다. 미국은 50개 이상의 무수혈 센터가 있고 20여 개국에서 무수혈 치료가 시행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90년대 이후 무수혈 치료를 실시하는 센터가 설립되기 시작해 현재 25개 병원이 운영하고 있다.
국제 종양저널이 보도한 국가별 수혈대체 치료 현황(2002년 기준)을 보면 이탈리아 66%, 프랑스 42%, 스페인 41%, 독일 33%, 영국 5%다. 이 통계가 10년 전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 당시 한국의 수혈대체 치료는 거의 0%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무수혈의 장점은 간염, 에이즈에 감염될 위험성을 피할 수 있고 수혈로 인한 각종 합병증을 피할 수 있다. 또 수술 후 더 빨리 회복될 가능성이 커서 병원비와 치료비를 절약할 수 있다. 암수술을 받은 사람의 생존기간도 좀 더 길어질 것으로 예측된다.
이처럼 무수혈 치료법이 과감하게 도입되는 이유는 혁명(?)이라고까지 불리는 정맥철분주사제가 나오면서 가능해졌다고 김영우 과장은 설명한다. 김 과장은 "미국에서도 응급외상환자가 병원에 오면 수혈보다 출혈 부위의 혈관을 먼저 찾는다"며 "이는 외상으로 면역력이 떨어진 환자에게 수혈보다 빠른 지혈이 질환감염 우려가 적고 생존율이 훨씬 높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수혈을 대체하는 대표적인 치료법(무수혈)에는 △정맥철분주사제 △EPO(적혈구 생성촉진제) 투여 △경구용 철분제 △자가 수혈 등이 있다. 정맥철분주사제는 적혈구를 생산하는 조혈작용에 필수성분인 철분을 환자의 정맥을 통해 혈액 내 적혈구 비율(헤마토크리트)과 적혈구 내 헤모글로빈 농도를 증가시키는 제제이다.
이정제 순천향대 산부인과 교수는 "페린젝트(FerinjectㆍJW중외제약 출시)와 같은 수혈정맥주사제는 고용량 철분을 한번에 투여할 수 있어 빈혈에 취약한 임신부들이 한 번만 주사를 맞으면 되기 때문에 매우 편리하다"며 "페린젝트는 1회 1000㎎까지 정맥주사가 가능해 효과적이고 편리하게 수혈을 줄일 수 있는 유일한 철분제"라고 말했다. 정맥철분주사제는 비급여여서 환자들이 6만~7만원을 부담하고 있다. 빈혈은 남자의 경우 헤모글로빈 농도가 13g/㎗ 이하, 임신하지 않은 여성은 12g/㎗ 이하, 임신부는 11g/㎗ 이하일 때 진단한다. 빈혈은 여성의 15%, 임신부의 30%에게서 나타나고 있다.
이 교수는 "정맥철분주사제는 몸 안에 신속하게 철분을 공급해 투여 5분 만에 조혈작용을 도와 헤모글로빈 수치를 높일 수 있다"며 "기존 정맥철분주사제는 고용량 투여가 어려워 여러 번 병원을 방문해야 하고 1회 투여 시 40분 이상 소요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철분은 필요 이상으로 많으면 피가 진해져 혈전증(피떡)과 함께 변비를 유발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이병문 의료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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