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t1.daumcdn.net/cfile/cafe/1623C9184B8124E6C2)
암이나 뇌질환과 같은 중병을 돌봐야 하는 가족의 경우 환자 못지않게 병과 싸워야 한다. 대개 배우자나 자식 가운데 한 사람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장기 간병을 도맡아야 되기 때문이다.
간병을 하다 보면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짜증이 나기 마련이다. 이를 제대로 해소하지 못하고 마음에 담아 두면 결국 스트레스가 돼 우울증으로 이어지기 쉽다. 이른바 ‘간병 우울증’이다.
실제 국내에서 암환자를 간병하는 가족 가운데 67%가 우울증을 경험하고, 이중 절반가량(35%)은 매우 심각한 우울증을 겪는다는 보고가 있다. 이는 서구 암환자 가족의 우울증 발생빈도 40∼60%를 웃도는 수준이다.
삼성서울병원 정신과 전홍진 교수는 “특히 돌보는 가족이 여자이거나 배우자일 때, 환자의 상태가 나쁠 때, 환자 간병에 적응하지 못할 때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각각 간병 우울증을 겪을 위험도가 배 이상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간병인을 따로 두지 않고 자신이 직접 간병을 하면서 엄마로서의 역할도 감당해야하는 여성들이 우울증에 노출되기 쉽고, 간병을 짐스럽게 느낄 때 우울증을 겪을 우려가 더 높다는 지적이다.
이들이 우울증을 겪는 이유는 장기간 환자 간병에 따른 신체적, 심리적, 경제적 부담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우울 증상의 정도는 간병으로 인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기 힘들수록, 환자를 돌보는 신체적, 정신적 부담이 클수록 높아진다.
세브란스병원 정신과 김경란 교수는 “이밖에 자신도 그와 같은 중병에 걸리지 않을까 두려워하며, 나아가 환자가 자신 때문에 병에 걸리거나 악화된 것은 아닌지 자책하는 죄의식도 간병 우울증을 부추기는 위험요인”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간병 우울증을 극복하는 길은 간병 부담에 따른 스트레스를 적절히 해소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첫째, 극단적인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행동은 좋지 않다.
김 교수는 “중병 환자 가족들 중 감당하기 어려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음주, 흡연, 도박 등에 몰입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킬 위험이 있다”며 “가급적 긍정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취미 및 운동과 종교 활동 통해 해소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둘째, 객관적 상황과 투병 및 간병 정보를 적극적으로 수집, 활용할 필요가 있다. 자신이 돌봐야 할 환자와 함께 절망과 우울감에 빠져 있기보다는 그 병의 경과에 대한 객관적인 상황이나 정보를 적극적으로 수집, 간병 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환우회 등 중병 환자 보호자 모임에 참석, 선험자들의 간병 경험 및 스트레스 해소법을 공유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셋째, 우울감이 심할 때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심리 상담을 받는 것은 나약하다는 신호가 아니다. 전 교수는 “중병 환자를 돌보는 보호자로서 심리적 스트레스가 너무 과중해 혼자 해결하기 어려울 경우엔 정신건강클리닉을 방문, 적극적으로 전문가와 상담하기를 권한다”고 조언했다. 문제가 심각한지, 항우울제 복용 등의 치료가 필요한지 여부는 전문가의 판단에 맡기라는 주문이다.
넷째, 지나친 죄책감을 버린다. 중병을 앓는 가족이 생기면 ‘과거에 내가 잘못한 것 때문에 벌을 받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죄책감에 시달리는 경우가 간혹 있다. 그러나 환자의 병은 가족 중 누구의 책임도 아니다. 죄책감을 버리고 환자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도록 한다.
마지막으로 절망은 중병 치료의 숙적이다. 간병을 맡은 보호자 역시 희망을 갖고 최선을 다해 치료를 돕는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김 교수는 “절망은 현실의 고통을 가중시키지만, 희망은 치료 효과를 높이는 든든한 지원군”이라며 “우울한 기분이 들더라도 환자 가족으로서 의연한 태도를 보이며 되도록 밝은 모습을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출처: 국민일보/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