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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에이터 정관진 제2군단/암정보

“완화의료 거부감 여전”

by 크리에이터 정관진 2011. 4. 19.

“완화의료 거부감 여전”

 

암환자 8.9%만 이용… 美41%-유럽 30%와 대조
병상 충족률도 29%에 그쳐… 인프라 확충해야

 

《담도암과 폐암 말기 환자였던 70대 조모 씨. 그는 2009년 1월 대전성모병원 호스피스병동에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누우면 숨쉬는 것이 고통스러워 앉아 지냈지만 여느 환자와 마찬가지로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어 괴로워했다.당시 이 병동 조문애 간호사는 환자와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했다.환자는 입원한 지 한 달이 지났을 무렵 병동 옆을 걷다가 간호사에게 “나 죽어”라고 물었다. 끝까지 치료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던 환자가 자신의 상태를 인정하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환자는 “집사람에게 해준 것이 하나 없어 너무 미안하다. 스무 살 때 가난한 나한테 시집와 평생 고생만 했다. 간병한다고 잠도 못 자는 것을 보니 너무 미안하다”고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완치가 어렵다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환자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돌아보며 죽음을 준비한다. 조 간호사는 환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때마다 ‘사랑한다’고 말하라”고 조언했다.

조 간호사와 성이 같은 환자는 “막내딸로 여기겠다”며 조금씩 마음을 열었다.

며칠 뒤 눈이 퉁퉁 부은 환자 부인이 조 간호사를 찾아왔다. 부인은 “35년을 같이 살면서 한 번도 그런 적 없었는데, 오늘 ‘고맙다’고 했어”라며 흐느꼈다. 환자는 부부간 마음을 확인하고 난 뒤부터 표정이 조금씩 바뀌어갔다.

그해 7월 밤근무를 위해 병동에 들어서는 조 간호사를 동료가 급히 찾았다. 조 간호사는 환자를 가족들과 함께 임종실로 옮겼다. 눈꺼풀을 들어올릴 힘도 없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지만 그래도 표정은 평온해 보였다. 흐느끼던 가족들이 작별 인사를 시작했다.

“여보, 사랑해. 그리고 고마워. 애들하고 잘 살게. 내 걱정하지 마.”

조 간호사도 함께 인사를 나눴다. “아빠의 막내딸, 아빠를 사랑해요. 그리고 저에게 이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해요.”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환자는 세상을 떴다. 조 간호사는 “완화의료가 단순히 통증을 다스리는 분야가 아니라 마음도 간호해야 한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고 말했다.

○ 최근 “이용하겠다” 인식 늘어나

완화의료는 말기암 환자의 통증과 증상을 줄여주고 신체적 심리적인 치료를 병행해 삶의 마지막 순간에 환자와 가족의 삶의 질을 올리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완화의료를 치료 포기 또는 죽음을 기다리는 것으로 생각한다.

매년 약 7만 명의 암 사망자가 발생하지만 지난해 완화의료 서비스를 받은 말기암 환자는 6566명(8.9%)뿐이었다. 미국은 41%, 유럽은 25∼30%, 대만은 20%다. 김열 국립암센터 호스피스완화의료사업 과장은 “지난주 간암 말기 환자 의뢰가 들어와 방문했더니 병실 문을 열자마자 휴지곽이 날아왔다”며 “보통 환자들은 병원이 치료를 중단하는 것이라 생각해 거부감이 크다”고 말했다.

말기 암환자의 70% 이상은 심한 통증을 겪는다. 구역 구토 허약감 호흡곤란 부종 욕창과 같은 신체적 고통과 함께 우울과 불안 등 정신적 고통도 겪는다. 이러한 통증은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충분히 조절할 수 있다. 김 과장은 “대다수 말기 암환자는 중환자실에서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받다가 가족과 제대로 인사도 못 나눈 채 고통과 분노로 생을 마무리한다”고 말했다.

요즘 완화의료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다. 2008년 국립암센터가 성인 남녀 1006명을 대상으로 한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한 대국민 인식조사’에서 ‘만약 질병이 현재의 방법으로 치료가 불가능하고 점점 악화되는 경우, 호스피스 완화의료를 이용하겠다’는 응답이 84.6%였다. 2004년 57.4%보다 크게 늘어난 수치다.

○ 완화의료기관 병상 수 722개뿐


완화의료에 대한 의료계의 고정관념은 아직 큰 변화가 없다. 상당수 의사들은 증상 완화를 ‘의술’이 아니라고 여기고, ‘호스피스병동으로 옮기겠다’는 말을 꺼내기 어려워한다. 지난해 완화의료기관을 이용한 환자의 44%는 의사의 진료 의뢰 없이 직접 방문했다. 아직까지 의사보다 환자 본인의 선택이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국제적인 기준은 기대 여명이 3개월 정도 남았다고 판단될 때 완화의료 치료를 받으라고 권유한다.

완화의료 인프라도 충분히 갖추지 못했다. 현재 완화의료 병상은 전국에 722개뿐이다. 적정 완화의료 병상은 인구 100만 명당 50개. 국내 병상충족률은 29% 수준인 셈이다.

건강보험도 완화의료에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말기 암환자들이 병원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으면 건강보험에서 진료비를 지원받는 반면 호스피스병동에서 치료를 받으면 건강보험 혜택을 볼 수 없다. 대부분 완화의료기관은 자선모금 등으로 운영된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2011-04-18 03:00:00

출처 : 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