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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에이터 정관진 제2군단/암정보

거품으로 癌세포 잡는다

by 크리에이터 정관진 2010. 11. 19.

거품으로 癌세포 잡는다

 

'경제학의 골칫덩이' 거품, 과학분야선 '다재다능' 재간둥이
항암제 넣은 '나노 거품' 혈관에 투입 초음파로 터뜨려 암세포만 정밀공격
공기 거품 겹겹이 쌓은 '에어로젤'은 시속 2만㎞ 우주먼지 채집에 유용

바다거품 발생 양으로 기후 예측도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연구팀은 최근 혈관 내에 미세한 거품으로 뇌의 혈뇌장벽(blood-brain barrier)을 여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혈뇌장벽은 뇌로 가는 혈관에 존재하는 일종의 방어막으로 혈류 속 이물질이 뇌로 침투하는 걸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혈뇌장벽은 각종 바이러스 등으로부터 뇌를 보호하지만 뇌 질병 치료에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뇌에 생긴 질병을 치료하려고 약물성분을 투입해도 혈뇌장벽에 막혀 뇌 세포에 직접 작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이번 연구에서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연구팀은 '마이크로 버블'이라고 불리는 미세한 거품을 혈관 속에 투입, 이를 초음파로 진동시키는 방법으로 혈뇌장벽을 통과시키는 데 성공했다. 연구팀의 엘레아노 스트라이드 교수는 "뇌 질병 치료와 관련해 매우 흥미로운 결과"라고 말했다.

 

경제학에선 쓸모없는 존재인 거품이, 과학에선 못하는 게 없는 존재이다. 혈뇌장벽 돌파에 성공한 건 거품의 다양한 활용사례 중 하나일 뿐. 의학·우주연구·식품과학·물리·화학 등 과학의 전 분야에서 요즘 거품을 활용한 각종 연구가 벌어지고 있다.

 

◆거품으로 암세포 잡는다

 

거품을 이용한 연구가 가장 활발한 분야 가운데 하나가 항암치료, 특히 암세포만을 표적 치료하는 분야다.

 

암세포로 가는 혈류를 막아 영양과 산소공급을 차단, 암세포를 죽이는 방법이 색전술(塞栓術)이다. 기존의 색전술은 고체로 된 물질을 관을 통해 체내에 삽입, 혈류를 차단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암세포 주위의 정상세포로 가는 혈류에도 영향을 미치는 등 단점이 적지 않았다.

 


미국 미시간대학교 연구팀이 개발한 방법은 과불화탄소를 함유한 미세한 액체방울을 주사하는 방식이다. 이 액체방울들이 암이 생긴 부위에 도달하면 초음파를 진동해 기화시킨다. 액체방울 속의 과불화탄소 가스가 최초 액체방울 크기의 125배로 팽창하면서 암세포로 가는 혈류를 막아 암세포를 죽이게 된다.

거품을 이용한 또 다른 암 치료법은 나노버블(nano bubble)을 이용한 표적치료법이다. 항암제를 함유한 나노버블을 혈관에 투입, 암세포에 투입시킨 뒤 이를 초음파로 진동시켜 터뜨리는 방법이다. 이렇게 되면 정상세포를 손상시키지 않고 암세포만 공격할 수 있다.

거품 속에 항암제가 아닌 유전자를 담으면 유전자 표적치료법이 된다. 손상된 인체 조직이나 세포에 이를 치료할 유전자를 투입하는 유전자 치료법은 1990년 첫 임상시험이 이뤄졌다. 그러나 이후 기대했던 만큼의 진보를 이뤄내지 못했다. 문제가 생긴 부위만을 집어내 유전자를 정밀하게 투입하는 방법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우주 탐사 때는 우주먼지 흡착에 쓰여

우주탐사 분야에서도 거품은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과학자들이 '초극의 스펀지'라고 부르는 에어로젤(aerogel). 실리카겔에서 물을 뽑아내고 이산화탄소 같은 가스를 주입해 만든 에어로젤은 고체이기는 하지만 부피의 90~99.8%가 공기 거품층이다. 덕분에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고체'로 불리지만, 1㎏의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려도 혹은 1300도의 불꽃으로 태워도 끄떡없다.

미국 나사가 혜성 탐사를 위해 발사한 우주선 '스타더스트'가 2004년 혜성의 꼬리 속으로 들어가 우주먼지를 채집할 때 사용한 것도 에어로젤이었다. 시속 2만2400㎞의 초고속으로 날아다니는 우주먼지를 충격 없이 흡수할 수 있는 물질은 에어로젤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사가 추진하고 있는 화성 거주 프로그램에서 우주인들이 입게 될 옷도 에어로젤로 만들어질 예정이다.

식품과학에서도 거품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한 해 58억유로(약 9조원) 규모의 영국 샌드위치 시장에서는 건강에는 좋지만 거친 맛 때문에 소비가 부진한 통밀 샌드위치의 인기를 끌어올리려는 연구가 한창이다. 통밀빵이 백밀빵에 비해 부드러움이 떨어지는 것은 거품조직이 적기 때문. 맨체스터 대학의 화학공학자인 그랜트 캠벨 교수는 "빵의 풍미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거품"이라며 "통밀가루 반죽의 공기 함량이 6~8%를 유지하도록 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로드아일랜드 대학의 해양학자들은 바다에서 생성되는 거품과 날씨 변화의 관계를 연구 중이다. 해수면에서는 바다와 대기 사이에 거품 교환이 쉼 없이 일어난다.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와 산소가 바다에 녹아들고, 식물플랑크톤이 만들어내는 황화합물이 대기 중으로 내뿜어진다. 이 황화합물은 하늘로 떠올라 수분이 구름을 형성할 때 씨앗 역할을 한다. 연구팀의 헬렌 체르스키 박사는 "거품의 발생 양상을 추적하면 날씨 변화를 한층 쉽게 예측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10.11.15 22:01  

 

이길성 기자 atticus@chosun.com


출처 : 조선일보